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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내 생활이 된 영화 현장의 이야기”

<필름시대사랑> 장률 감독

조명부 퍼스트(박해일)가 현장을 뒤흔들었다. “영화 이렇게 찍으면 사랑을 모욕하는 거”라고 당돌하게 소신을 밝힌 그는, 찍어둔 필름통을 집어들고 현장을 뛰쳐나왔다. 빛을 통제하는 조명부 퍼스트와 필름통의 사라짐! 필름으로 찍는 현장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이 시대엔 볼 수 없는 풍경이고, 또 실제 현장에서 이런 ‘반역’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사실상 판타지에 가까운 해프닝이다.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은 그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필름과 필름을 사용하던 지난 시대,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탐구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배우들이 등장하는 1장이 밑그림 역할을 해준다면 나머지 세개의 장은 변주와 실험에 가깝다. 빛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구성된 2장, 배우들의 출연작 영상을 활용한 3장, 그리고 1장과 같은 상황에서 배우들의 육체를 빼버린 4장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겹겹이 겹쳐져 하나로만 보였던 영화의 각 레이어들이 해체되어 새로운 해석을 불러오는 신비로운 경험과 마주하게 된다. “이 음악이 들리니?”라는 노인(안성기)과 “사랑을 믿으세요?”라는 조명부 퍼스트의 질문은 결국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자, 그가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태도다. <경주>(2013) 이후 2년 만의 신작. 고정관념과 틀을 벗어난 시선과 방식을 통해 장률 감독은 다시 한번 영화를 향한 그의 지극한 구애를 펼친다.

-2015 서울노인영화제(10월21~23일) 개막작으로 진행된 단편 프로젝트 <동행>이 지금의 장편으로 확장됐다. <풍경> 때도 ‘디지털 삼인삼색 2013: 이방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중편을 장편으로 재편집한 경험이 있고, 단편으로 의뢰를 받아도 꼭 장편을 만든다. (웃음)

=단편이니 이번에 필름으로 한번 찍고 싶었다.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시대다. 사람도 늙어가고 사라지지 않나. 노인과 필름의 질감이 비슷한 것 같더라. 세월이 지나면 흔적이 남게 마련인데 디지털은 백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가만 보면, 늙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걸까. 그런 의미를 더해 필름으로 찍으려고 좀 알아봤다. 전혀 가능성이 없더라. 서울에 있는 현상소는 다 문을 닫았고 알아보니 일본에나 가야 할 수 있겠더라. 단편 전체 예산이 2천만원이어서,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디지털로 1장을 찍었다. 3일간 촬영했는데 배우, 스탭 모두 흔쾌히 참여해주었다. 그렇게 즐겁게 3일간 촬영하고 다들 떠났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금의 장편 버전이 첫 공개되었다. GV에서 “단편 작업이 끝났는데도 내 안에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가 그렇게 발목을 잡았던 건가.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며칠간을 끙끙거렸다. 필름과 노인의 질감을 생각하고 찍었고, 영화에 필름통도 나오는데 디지털로 찍었더니 뭔가 불안하고 끝나지 않은 것 같더라. 그래서 일주일 후 다시 스탭들을 찾았다. 좀 도와달라. 찍을 게 남았다. 이 이야기는 장편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배우는 필요 없고 빈 공간을 찍자고 하니 스탭들 모두 궁금해 하더라.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웃음)

-필름 작업을 거친 세대이자 디지털 작업을 하지만 자연광을 고집하는 스타일이다. 필름의 어떤 지점이 중요하다고 본 건가.

=매력이나 이런 것들을 떠나서 이렇게 빨리 없어질지 몰랐다. 필름으로 작업한 마지막 작품이 <두만강>(2009)이었는데 겨우 6년 사이에 다 사라진 거다. 필름과 디지털은 질감이 너무 다르다. 질감이 같으면 편리한 쪽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질감이 전혀 다른데 디지털이 편리하고 누구든 다 찍을 수 있다고 디지털로만 가는 게 맞을까, 또 그걸 주류의 편리함으로 없애버릴 권리가 있는 걸까. 이런 변화를 가만 놔둬도 될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필름이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본다. 절대 주류가 되어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세상에 주류만 남아야 하나. 그건 아니지 않나. 어떤 정서는 필름으로 담아야 할 게 있다. 그런 여유와 공간을 줘야 한다.

-만약 1장을 필름으로 찍는 게 가능했다면, 지금의 장편 버전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전체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장을 필름으로 찍었다. 필름 작업을 할 때 항상 35mm로 작업을 했고 이번처럼 16mm는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16mm를 찍어보면 좋겠다 싶었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일부러 유효기간이 5년 이상 지난 필름만 모았다. 유효기간이 지난 건 ‘나이 든’ 필름이 아닌가. 노인에 대한 태도와 필름에 대한 태도가 똑같다 싶더라. 실상은 죽을 때까지 죽어라 하고 무관심하게 놔두는 거다. 한국과 달리 필름 현상을 하는 곳이 유럽, 일본에는 여전히 있더라. 주류는 아니지만 존재한다. 소중한 기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곳에는 일부 있다는 거다. 너무 쉽게 버리면 결국 보복당한다고 생각한다.

-현상은 서울현상소에서 했고, 필름 기증자 중에는 촬영을 한 조영직 촬영감독도 있다.

=문 닫은 서울현상소를 설득해서 다시 열었다. 그 사람들은 어떤 미친 사람이 와서 해달라니까 해준 거다. (웃음) 그분들도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으니 거절을 못한 거다. 2장과 4장에 등장하는 빈 공간을 모두 16mm로 작업했다.

-디지털로 찍은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면서 질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5년 지난 오래된 필름과의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총 10통의 필름을 써서 촬영했는데, 현상소에서는 현상하고 나서 너무 실망하더라. 장인정신으로 작업을 해온 분들이니 필름 상태에 민감하실 텐데, 오래된 필름으로 찍은 걸 확인하고 이 영화 망했다 싶었던 거다. 더 잘할 수 없냐, 새 필름으로 다시 찍으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유효기간 지난 필름의 질감은 새 필름과 질감이 또 다르고 거기서 오는 느낌이 있다. 생각 같아서는 10년 이상 된 필름을 사용해 오래된 필름임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오래된 필름이 없어서 못한 거였다.

-오랜만에 필름으로 촬영해본 현장은 어땠나.

=요즘도 현장에서 항상 그때는 어땠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며 과거의 현장을 그리워한다. 그런 기억들이 현장에서 현실이 된 거다. 확실히 그 긴장감이 다르더라. 디지털은 무궁무진하게 찍어도 되는데, 필름은 절약정신이 생기지 않나. 어떤 분야에서든 이런 정신은 소중한 것 같다. 지금 시대에 그런 경험을 해본 거다.

-1장 ‘사랑’에서 현장의 조명 퍼스트가 ‘니들이 영화를 알아, 쥐뿔도 모르면서 영화를 죄다 망치고 있어’라고 일갈하고, 필름을 들고 촬영장에서 도망을 간다. 많은 스탭 중 조명 퍼스트가 깽판을 치는데, 그곳에서 한 배우(문소리)만이 그에게 지지의 의미로 박수를 보낸다.

=실제 현장에서 스탭이 필름통을 들고 간다는 건 상상 못할 일이다. 모든 스탭들을 대표해서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영화라는 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그 모든 파트의 사람들이 각자의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는데, 영화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감독의 결정 안에서 사라진다. 그 결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그 안에서 같이 창작하는 사람들, 즉 다른 생각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속 여배우처럼 그렇게 박수치고 싶은 사람이 실은 많을 거다.

-2장 ‘필름’은 병원의 물탱크와 지하를 비롯해 빈 공간의 오브제를 카메라가 부유하다가 결국 30년대 중국 통속 사랑가로 마무리한다.

=대중영화라는 매체는 이상하게 자기정서를 없애버리고 공통점을 관객한테 맞춰서 가게 된다. 그런데 그게 과연 맞는가. 이 경우에 한국 노래를 가져다 쓰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내 정서는 중국 노래가 맞다고 말하는 거다. 저우쉬안은 1930∼40년대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배우이자 가수였는데 그렇게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생을 마감했다. 나 말고도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이 영화를 보다가 공감하는 지점이 생길 거다. 물론 영화는 그 한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대담하게 했다. 일단 어떤 틀을 고정해놓고 안전성을 찾으며 살아가기는 싫다. 뭐 원래도 막 살았고. (웃음)

-이 영화가 필름시대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그리고 있다면, 3장 ‘그들’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1장에 출연한 배우들의 출연작 영상에서 사운드를 제거하고 짜깁기해 3장 전체를 구성했다.

=무성영화식으로 해보려고 했다. 배우들 모두 한국 영화사에서 좋은 배우들이지 않나. 한국 관객한테 이 배우들의 전 작품들을 보여주면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친구들이 모두 다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건너온 사람들이기도 하다. 필름의 질감을 경험했던 사람들, 그 배우들의 작품을 모아보자 생각했다.

-3장의 영상은 2장에서 등장한 빈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필름처럼 보인다. 박해일의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박하사탕>(1999), 안성기의 <화려한 휴가>(2007), 한예리의 <귀향>(2009)을 사용해서 조명 퍼스트가 병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안성기)와 손녀(한예리)를 살인하고 도망쳤다는 식의 이야기를 만든다. 각 배우의 대표작 중 그 영화와 장면을 선정한 기준이 있었나.

=박해일과 문소리는 그들의 초기작으로 해보고 싶었다. <살인의 추억>에는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정말 신비롭게 나왔다. 저놈이 정말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가늠이 안 된다. (웃음) 영화에서처럼 현장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고 나올 수 있는 조명 퍼스트가 현실에는 없다. 다들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박해일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정말 그런 면이 있는 배우다. 문소리와 안성기는 죽음과 관계되는 영화를 고르고 싶었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젊은 시절도, 늙은 모습도 특별히 생각나지 않는 배우다. 항상 좋은 중년의 모습이랄까. 노인의 모습이 잘 연상되지 않는 배우다. 한예리는 반면 좀 희망을 주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어서 <귀향>에서의 출산 장면을 넣었다.

-2장과 4장에서 카메라가 좇아가는 빈 공간인 정신병원, 탄천주차장, 거리는 모두 1장에 등장했던 곳인데 그곳에서 ‘배우’가 빠지고 공간이 새롭게 해석된다. 필름이라는 유형의 물질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를 대변해주는 장치로도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은 자기방식으로 재창조와 해석을 한다. 4장은 특히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고 1장의 공간과 배우들의 사운드만 넣었다. 작품을 촬영하면서 현장이나 공간이 너무 소중한데 작업이 끝나면 버려진다 싶더라. 어떤 세계를 만들었다가 촬영팀이 철수하면 바로 없어지는 거다. 그렇게 떠난 빈 공간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가령 집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는데 다 돌아가셨다. 정말 그 공간에서 그들이 사라졌을까, 다른 형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사라진 게 결국 꼭 사라진 게 아니다. 여전히 나의 정서에 영향을 주니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현장이 ‘사랑’이라면 사랑했던 공간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2장에서 복도에서 빈 병이 돌아가고 스크린의 불빛이 켜진 후, 4장에 와서는 배우의 육체가 사라진 오래된 병원 곳곳에 배우들의 보이스가 오버랩되면서 카메라의 움직임만 남는다.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에서 멀티플렉스가 도착하기 이전 폐관 직전의 극장, 그곳의 혼령과 마주하는 듯한 쓸쓸함과 공포감 같은 것이 이곳에서도 전해졌다.

=서울의료원 강남에서 촬영했는데, 이곳이 폐관 직전이었다. 입원 환자도 거의 떠나고 촬영 때 두분밖에 없었다. 그 느낌이 왠지 옛날 극장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 공간 때문에도 단편으로 끝내지 못하고 연장해서 작업을 하게 된 것 같다. 신기했던 경험이, 그 입원 환자 중 한분이 상당히 중환자였는데, 촬영팀이 부산스러웠을 텐데도 불평 안 하시고 따뜻한 눈길로 복도에서 지켜보고 계시더라. 알고 보니 그분이 내 영화를 거의 다 봤다고 하시더라. 늘 썰렁한 내 영화를 봐준 게 너무 미안하고 여러 생각이 들더라. 단편 작업 후 이틀을 더 찍었는데, 내가 지금 이 공간에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다.

-빈 공간을 보충하는 세번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빈 공간이 있으면 이상하게 소리들이 더 잘 들어온다. 2장에서 한예리가 읊는 윤동주의 시 <새벽이 올 때까지>는 시 구절이 쓸쓸하다. 실제 정신병원에 가보면 노래하는 사람, 시 읊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정신적 활동을 보통 사람보다 환자들이 더 많이 한다. 없어지는 공간, 사라지는 공간이지만 시는 아직까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장에 나오는 보르헤스의 <만리장성과 책들>의 구절과 책을 불태우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바는 무엇인가. 특히 직접 내레이션을 했는데 중국어 목소리는 한국어를 말할 때와 달리 상당한 저음에 전문 성우 같은 음색이다.

=중국어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웃음) 진시황은 통일 후 자기 앞의 3천년 역사를 다 태우고 지금부터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리고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시공간을 새롭게 만든다니 어찌 보면 감독의 소질이 있다. 영화를 잘못 만들면 그렇지 않을까, 독단적으로 되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되 그 시공간과 밖의 시공간이 통할 수 있게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어찌 보면 정신병원도 같은 맥락이다. 이곳도 시공간이 고립된 공간이다. 감독, 정신병원, 진시황 셋이 어떤 부분에서 겹치는 지점이 있다고 봤다.

-영화 속 ‘사랑’과 ‘필름’은 결국 감독님에게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이 영화 전체가 영화를 대하는 일종의 태도로 느껴진다.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서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중국 노래를 왜 넣었나. 스탭들도 편집할 때 한국 노래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다고 말했다. 3장에서 배우들이 나올 때 한국 관객은 감정이 일어나지만 외국 관객은 그 의미를 모른다. 영화라는 건 눈치를 보자면 별 눈치를 다 봐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그걸 견지하는 거다.

-<경계>(2007), <이리>(2008), <두만강> 등 이전 작품이 조선족, 탈북자, 실향민, 이방인으로서의 어떤 정체성에 주력했다면, <경주>와 이번 작품을 거치면서 관심이 달라진 것 같다.

=삶이 바뀌지 않았나. <풍경>은 서울에 살면서의 시선이었고, <경주>는 경주에서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을 말했다. 이전의 문제들에 대해서 그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찍을 수도 있다. 어느 날에는 찍겠지만, 찍어도 그전 것과는 달라졌을 거다. 톤이나 그런 것들이 변했을 거다. 영화는 자기가 사는 대로 담아내는 것이다. 돌아보니 한국에 온 지 3년 반 됐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다 영화인이다. 중국에 있을 때와 달리 다른 연대가 없다. 중국에서 영화는 일상의 작은 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앉으나 서나 영화 이야기만 하고 있더라. 그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영화 이야기 아니고는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학교에 가서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문득 내가 병원에 들어왔나 싶더라. (웃음) 내 생활이 된 영화 현장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필름시대사랑>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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