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귀덕, 김경애, 정윤헌, 장한별, 권지훈(왼쪽부터).
올여름 극장가를 접수한 두편의 한국영화 <암살>과 <베테랑>의 액션은 모두 서울액션스쿨의 작품이다. <신의 한 수>(2014), <군도: 민란의 시대>(2014),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감시자들>(2013), <전설의 주먹>(2012), <신세계>(2012), <베를린>(2012) 등 굵직한 한국영화의 인상적 액션 신엔 어김없이 서울액션스쿨의 공이 들어갔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베테랑>으로 다시 한번 류승완 감독과의 찰떡궁합을 선보였는데, 영화의 유쾌하고 통쾌한 액션을 책임진 숨은 조력자들, 서울액션스쿨의 액션 베테랑들을 만났다. 정윤헌 무술감독을 비롯해 카 스턴트 담당, 바이크 담당, 주인공 대역을 담당한 이들을 소개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자주 보게 될 이름들이다.
정윤헌
1978년생.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베테랑>의 공동 무술감독. 유상섭 감독과 함께한 <도둑들>로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했다. 특기는 와이어액션코디와 합기도. 충북 음성 만석꾼의 외아들이며 애 셋 둔 가장. 184cm의 큰 키 덕에 장신 배우들의 액션•스턴트 대역을 많이 했다. <군도: 민란의 시대> <전우치>에선 강동원의 대역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선 정우성의 대역을 맡았다. <베테랑>에선 전 소장의 아지트에서 오 팀장(오달수)을 공격하는 조선족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이외에 <감기>(2013), <감시자들>, <신세계>, <짝패>(2006) 등 다수의 작품에 무술팀으로 참여했다. <베테랑> 이후, 정두홍 무술감독과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에 참여할 예정이다.
1978년생. 특기는 우슈, 복싱, 수영, 유도, 이종격투기 그리고 바이크. 서울액션스쿨 6기와 7기 사이에 들어간 6.5기. 액션스쿨에서 몸이 가장 좋은 스턴트맨으로 소문났다. 몸매의 비결은 턱걸이. 술을 좋아해 주 5회 술을 마시면서 현재의 몸매를 유지한다니 억울한 사람도 많을 듯. <베를린>, <남자가 사랑할 때>(2013), <전설의 주먹>(2012) 등에 참여했고, 9월 국내 개봉예정인 클라이브 오언, 모건 프리먼 주연의 할리우드영화 <제7기사단>에 세컨드액션코디네이터로 참여했다. <베테랑>을 촬영하다 큰 부상을 입었지만 3개월 만에 복귀해 현장에서 펄펄 날고 있다. 어릴 때 원진 무술감독, 김춘식 무술감독 등 스턴트맨들이 모여 만든 영화 <고수>(1997)를 보며 스턴트맨의 꿈을 키웠다.
1986년생. 서울액션스쿨 14기. 전직 이종격투기 챔피언이었다. 대한격투기 아마추어 선수권대회 우승, 대한 격투기 신인왕전 우승, 충주무술축제 격투기 여자 라이트급 우승 등의 수상 경력 보유자. <도둑들> <베를린> <암살>에서 전지현 대역,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윤지혜 대역, <베테랑>에서 장윤주 대역을 했다. “카메라에 뒷모습이 잡히면 긴장되지 않는데 얼굴이 나오면 긴장돼서 연기가 안 된다”고 했지만 ‘대역’을 넘어 당당히 ‘배역’을 따내길 희망하는 욕심 많은 스턴트우먼이다. “자신이 소화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상처받고,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는 게 정윤헌 무술감독의 얘기.
1980년생. 특기는 카 스턴트. 서울액션스쿨 8기. 액션스쿨 동기인 정병길 감독의 <우린 액션배우다>(2008)에 주연배우로 출연, <내가 살인범이다>(2012)엔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베테랑> <황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의 카 스턴트를 담당했다. 좋아하는 액션영화로 이연걸의 <영웅>(2002), 견자단의 <살파랑>(2005)을 꼽았지만 사실 액션보다 멜로를 더 좋아한다. 아침댓바람부터 <친정엄마>(2010) 보고 엉엉 울 정도의 감수성을 지녔으며,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0)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타고난 장난기와 유머가 상당하다. 하지만 작업할 땐 “연습장에 써가며 시나리오를 분석”할 정도로 열심이라고 정윤헌 무술감독이 귀띔한다.
1984년생. 서울액션스쿨 12기. 특기는 합기도. <베테랑>의 유아인 대역, <베를린>의 류승범 대역, <신세계>의 황정민 대역 등을 맡았다. “몸을 열심히 키우고 싶은데 늘씬한 배우들의 대역을 해야 해서 운동(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홀히 하고 있다.” 옥택연을 닮은 미남. 전남 나주가 고향이며, 서울 생활 8년째인데 아직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무협물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무협드라마와 무협지를 많이 접했다. <무사>(2001)에서 창 돌리는 정우성과 엔딩 장면은 지금 봐도 멋있다고. 다양한 액션에 욕심이 많다. 권지훈은 “한별이는 사극도 잘하고 현대물도 잘하지만 내가 볼 땐 몸놀림이 사극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입문: 나는 어떻게 스턴트를 시작했나
김경애_격투기를 했는데 격투기는 돈이 안 된다. 시합이 1년에 한번밖에 없는 데다 뛰어도 개런티가 적다. 운동 관련 일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서울액션스쿨의 기수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전엔 스턴트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몰랐다. 현재 서울액션스쿨엔 나를 포함해 스턴트우먼이 5명 있다. 국내엔 총 20명쯤 스턴트우먼이 있는 것 같다.
장한별_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전공보다는 운동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학교 연극영화과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해야 하는데 복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더라. 복싱은 할 줄 몰랐는데 촬영에 참여하게 됐고, 연극영화과 교수님들이 날 좋게 보셨는지 전과하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 액션스쿨의 존재도 알게 됐다. 스턴트 집단이라는 것을 모른 채 거기 가면 액션도 배울 수 있고 가끔 연기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지원했다. 기수 생활 6개월은 참 길게만 느껴졌다.
권지훈_같이 촬영을 다니게 되면 그때부터 조금씩 선배들이 정을 주기 시작한다. 위험한 일이라 이놈이 언제 도망갈지 몰라 정을 잘 안 주니까. 소림사 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처음 두달 동안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거울 앞에서 발차기 하고 있으면, 선배들이 지나가면서 ‘저기서 발차기 1만번 하고 있어’ 그런다. 가끔 ‘앞차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면서 앞차기 보여주고 가버리고. (웃음)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우슈 선수 생활을 했다. 유도와 격투기 같은 운동을 꾸준히 했고, 대학에선 경호학과를 다녔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영화를 좋아했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스턴트를 떠올렸다. 무작정 스쿨에 찾아와 ‘스턴트 하고 싶습니다’ 했었다.
정윤헌_고향이 충북 음성이다. 시골에 아버지의 땅이 좀 있다.
권귀덕_만석꾼의 아들이다. (웃음)
정윤헌_시골에서 낮엔 아버지 일 도와드리고 저녁엔 체육관을 다녔는데, 체육관 형님이 액션스쿨 얘기를 하더라. 그때 TV <인간극장>에 정두홍 감독님이 나왔다. 그거 보고 스턴트 일에 매력을 느껴 서울에 올라왔다. 24살 때였다. 서울에 와서 보라매공원 근처 합기도 체육관엘 갔는데 거기가 정두홍 감독님의 스승인 이각수 관장님의 체육관이었다. 이각수 관장님과 함께 미국에 합기도 시범단으로도 다녀왔고, 반년쯤 사범 일도 했다. 그러다 26살에 서울액션스쿨에 입문했다.
권귀덕_어릴 땐 말썽꾸러기였다. 액션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다. 살길을 찾아 헤매다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2004년에 액션스쿨에 들어왔다. 카 스턴트 전문은 아니고, 그냥 스턴트맨이다. 일단 신체적인 조건이 열악하다. 국내 최단신 스턴트맨이라 할 수 있다. (웃음) 배우들 대역을 하자니 나만 한 키의 배우가 없더라. 그래서 차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앉은키는 크니까.
#데뷔: 내 마음의 작품은?
장한별_첫 현장은 사극 TV드라마 <천추태후>였는데, 내 마음속에 첫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은 <베를린>(2012)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1년을 꼬박 힘들게 준비한 작품이다. <베를린>에선 류승범의 대역을 맡았고, 영상 콘티를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님이 워낙 꼼꼼한 분이라 콘티 작업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 갈대숲 장면도, 처음엔 농가 주택을 폭파한 다음 주택 안으로 들어가 싸우자고 하셨다. 그래서 그 콘티를 대여섯개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갈대숲에서 액션을 찍게 됐다. <베를린> 하면서 영상 콘티를 거의 20여편은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베를린에는 못 갔다. (웃음) 제목도 <베를린>이고 이야기 배경도 베를린이어서 당연히 외국에 가는 줄 알았는데 나만 못 갔다. 베를린에서의 액션 분량이 없어서.
권지훈_류승완 감독님은 액션을 잘 알기도 하거니와 액션을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 콘티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항상 그 이상을 요구하신다. 한별이가 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액션의 합도 짜야 하고, 몸도 준비해야 하고, 영상 콘티도 작업해야 하고, 그러면 머리에 쥐가 난다. 이런 걸 몇달간 했으니. 나는 <베를린>에서 하정우를 상대하는 국정원 요원으로 출연해서 베를린에 갔다. (웃음) 나 역시 류승완 감독의 영화로 시작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이 첫 영화다. 와이어도 당기고, 와이어도 탔고, 마지막 액션 신에서 당시 직접 출연하셨던 정두홍 무술감독님의 몸 대역으로도 출연했다.
권귀덕_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액션스쿨 8기 과정 수료하자마자 투입된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다. 104부작 드라마라 1년 넘게 찍었는데 그 현장에서 스턴트의 많은 것을 경험했다. 카 스턴트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황해>(2010)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다. <황해>의 나홍진 감독님은 조금의 오차 범위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디테일하다. 차간 거리를 초 단위로 계산하는 분이다. 대형 트레일러가 뒤집히는 장면은 유상섭 무술감독님이 직접 했고, 그 뒤 구남(하정우)과 면가(김윤석)의 추격전에서 카 스턴트를 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센 장면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주인공(여진구)이 미성년자라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풀 대역으로 스턴트를 했다. 촬영하는 일주일 동안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집중했고, 그 일주일은 연예인처럼 살았다. 권진구로 살았다. (웃음)
정윤헌_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다. 스턴트 관련해 다양한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또 중국의 사막에서 고생하며 찍은 거라, 다들 추억 얘기할 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만 한 작품이 없다고들 한다. 중국의 드넓은 사막에서 전력질주하는 말들을 통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정우성 선배가 그렇게 말을 잘 타는데도, 컷 하고 나면 말이 100m를 더 달린 다음에야 멈췄으니.
김경애_<블라인드>(2011)에서 김하늘씨 대역한 게 첫 영화다. <도둑들>(2012), <베를린>, <암살>(2015)에선 전지현 대역을 했고, <베테랑>에선 ‘미스 봉’ 장윤주 대역을 했다. 윤주 언니만큼 키 큰 스턴트우먼이 없다. 내 키가 166cm인데, 아마 스턴트우먼 중에선 나보다 큰 사람이 없을 거다.
권귀덕_나보다 크네. (일동 웃음)
김경애_여배우들의 액션 대역과 스턴트 대역을 주로 하는데, 단역조차도 출연 자체는 절대 안 시켜주더라. 쌍꺼풀수술하고 오면 출연시켜줄지도 모른다고 하기에 혹시나 해서 수술까지 했는데 아직은 멀었나 보다.
권귀덕_시청률도 생각해야지. (웃음)
#현재: <베테랑>의 베테랑
장한별_<베를린>에 이어 <베테랑>에서도 액션 콘티 작업을 했다.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왔구나 싶었다. (웃음) 카센터 장면, 이종격투기 체육관 장면, 명동의 다찌마와리 액션까지 세개의 액션 콘티 작업을 했다. 콘티 작업을 하면서, 정해진 컨셉에 맞게 어떤 소품을 이용해서 어떤 동선으로 어떤 액션을 보여줄지 디테일하게 합을 만들어간다. 컨셉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리얼한지, 그 공간에서 활용 가능한 소품은 무엇인지 고려해서 무술감독님과 대역 스턴트들이 같이 합을 짠다. 그걸 촬영하고 편집해서 감독님한테 컨펌받는다. 조태오(유아인)가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하는 장면도 영화에선 짧게 나오지만 준비할 땐 엄청 일을 벌였던 장면이다. 액션 컨셉을 복싱처럼 할지, 이종격투기처럼 할지 무수한 버전으로 시도해봤다. 영화에서 유아인이 처음으로 액션을 선보이는 장면이라 고심이 많았다.
권귀덕_(내가 우리나라 최고의 카 스턴트맨이라는 건) 잘못된 소문이다. 카 스턴트의 경우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카 스턴트의 매력은 한번밖에 못 간다는 거다. 미친 듯이 집중해서 미친 듯이 한방에 오케이를 내야 한다. 거기서 오는 긴장감과 부담감이 대단하다. 할 때는 겁나고 무서운데 성공하고 나면 또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마약 같다. 레디, 액션 하기 전까지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들, 긴장감, 성취감에 중독된다.
권지훈_오토바이에 대한 관심과 로망은 <천장지구>(1990)에서 웨딩드레스 입은 오천련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유덕화가 질주하는 장면을 보고 생겼다. 그때가 중2 때였다. 아직도 밤마다 센치할 때면 <천장지구>를 본다. 지지난해에 폭스바겐 CF를 찍느라 3일 내내 바이크를 탔는데, 슛 들어가기 전 심장의 RPM(분당 회전수)이 쫙 올라가더라. 컷 하고 난 뒤에도 RPM이 꺼지지 않았다.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을 때의 희열이 크다. 이런 게 아마 귀덕이가 말한 마약 같다는 거 아닐까.
정윤헌_<베테랑>의 자동차 액션에선 명동이란 공간이 중요했다. 그 많은 인파가 밀집한 골목을 차량 한대가 질주하는데, 실제 상황이라면 소름 끼치지 않겠나. 귀덕이도 찍으면서 많이 긴장했을 거다. 우리 식구들이 아니라 보조출연자들이 차를 피해야 했고,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사람과 사람, 기계와 기계가 부딪힐 땐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차와 사람이 합을 맞추는 건 힘들다. 하지만 조태오란 캐릭터를 생각하면 그런 액션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권귀덕_이런 장면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해도 위에서 “해!” 하면 해야 한다. (웃음) 차량은 한대밖에 없고, NG 나면 100% 독박이고. 라스트의 명동 질주 신에서, 조태오가 탄 머스탱이 언덕에서 내려오다가 우회전으로 휙 꺾었는데 도로가 차로 막혀 있어 다시 급하게 방향을 꺾어 뚫고 나가는 장면에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머스탱이 후륜구동이라 드리프트 기술을 구사할 때 전륜과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전륜의 경우 핸들을 꺾으면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기면 뒷바퀴에 록(lock)이 걸려 차 뒷부분이 휙 돌아가지만 후륜은 사이드브레이크를 잡아도 그렇게 돌지 않는다. 전륜으로 드리프트하려면 사이드브레이크의 장력이 좋아야 하고 후륜으로 하려면 엔진의 출력이 좋아야 한다. 기술마다, 차종마다 차에 대한 튜닝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에선 튜닝되지 않은 차로 튜닝한 차가 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 이번 현장에서도 그랬다. 생각한 그림처럼 차가 휙 꺾이지 않았다. 안 된다고 했는데 “야, 해!” 하니까 거기서 마음의 상처를 좀 받았다. 결국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운전대를 잡았는데 안 되지, 당연히. 내가 안 되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 (웃음) 그렇게 그 장면만 7, 8번 찍었던 것 같다.
권지훈_<베테랑> 하면서 스턴트 생활 중 가장 큰 사고를 당했다. 명동 질주 신에서 경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찍다가 사고가 났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자동차와 언덕을 오르는 오토바이가 충돌했고, 권지훈의 다리가 오토바이에 걸려 계산된 완벽한 타이밍에 공중으로 뜨지 못했다. 오토바이 앞 유리에 부딪쳐 턱이 찢어졌다. 이후 병원을 찾은 류승완 감독에게 권지훈이 던진 첫마디는 “그림 잘 나왔습니까”였다고 한다.-편집자) 바로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마지막 촬영까지 끝마치지 못해 아쉬웠다. 엊그제 극장에서 <베테랑>을 봤는데, 영화를 보면서 좀 있으면 내가 사고 나는 장면이 나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심장이 두근두근하더라. 그때 얼굴로 왔던 충격, 몸으로 받았던 충격이 고스란히 기억났다. 그래도 그 장면이 잘 나와서 만족스럽다. 실제 사고 장면이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장면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나. 사고 나고 병원에서 보름 정도 차렷자세로 누워만 있었는데, ‘왜 사고가 났을까, 어디서 타이밍이 어긋난 걸까’ 하는 생각을 수만번 했다. 어릴 때 싸우다 맞고 들어오면 분해서 잠이 안 오는 것처럼, 그렇게 잠이 잘 안 오더라. (웃음) 그래도 프로 스턴트맨인데 현장에 폐를 끼친 거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만약 그 장면이 오케이가 안 났더라면 또 다른 친구가 나 대신 오토바이를 타야 했으니…. 진단은 32주쯤 나왔다. 무릎도 수술하고, 손도 부러지고, 턱을 크게 다쳐 60여 바늘 꿰맸다. 6개월은 재활훈련해야 한댔는데, 3개월 만에 재활 끝내고 퇴원했다.
장한별_나도 드라마 찍다가 무릎을 다쳐서 <베테랑>의 라스트 액션 신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훈 선배랑 비슷한 시기에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선배는 회복 속도도 빨랐다.
권지훈_복귀했을 때 주위에서 ‘너 이제 오토바이 못 타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석달 만에 복귀해서 나간 첫 촬영이 바이크 신이었다. ‘바이크 탈 수 있겠니?’라고 물어보는데, 그 순간 망설여졌다면 아마 이 일 그만뒀을 거다. 동료 중에도 다치고, 깨지고, 부러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트라우마를 계속 가지고 간다면 스턴트 생활 오래 못한다. 두려워하는 자신이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일을 그만둘 때라고 생각한다.
#미래: 진짜 심장이 요만해지는 걸 하고 싶다
김경애_누군가가 <아저씨>(2010)처럼 <아줌마>라는 영화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여자가 원톱으로 나오는 액션영화. 그런 영화의 주인공 대역을 해보고 싶다. 남자들은 대역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웃되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스턴트우먼은 액션 분량이 적다. <도둑들> <베를린> <암살> <베테랑>도 회차가 많지 않았다. 한 영화에서 여러 가지 액션을 경험하고 싶다.
권귀덕_무술감독이나 책임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계속 현장에서 뛰고 싶다. 계속 차 뒤집고 ‘빡치기’하고, 즐기면서 일하고 싶다
정윤헌_<미션 임파서블>이나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스케일이 큰 영화들의 디테일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
권지훈_운이 좋게 막내 때부터 액션배우로서의 경험과 스턴트 경험을 두루 많이 했다. 그래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톰 아저씨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했던 것처럼 비행기에 매달리는 건 아직 못해봤으니. 저런 거 하면 진짜 심장 요만해지겠다 싶은 걸 해보고 싶다.
장한별_액션은 뭐든 다 하고 싶다. 와이어 많이 들어간 화려한 사극도 좋고, 현대물도 좋고. 욕심이 많다. 잘나가는 무술감독이 될 거고, 안 해봤던 스턴트도 더 많이 해볼 거다.
권지훈_한창 욕심이 많을 때다. (웃음) 그런데 한별이는 다 잘한다. 나는 10년 넘게 일을 하다보니 일에 대한 재미가 다른 쪽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친구들끼리 재미 삼아 영상을 찍기도 한다. 순수하게 재미로 하는 작업이다. 무술감독이 돼야겠다, 이런 명확한 꿈이 아니라 스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재미와 열정이 계속 다른 쪽으로 확장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