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러의 밑그림”
1. “영화는 밑그림을 그려준 셈이죠. 영화에서 본 게 아니라면, 누구도 그런 잔학한 행위를 상상하거나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할리우드 영화인들이야말로 이런 테러를 가능케 할 만한 분위기를 조장해내고 또 그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친 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로버트 알트만의 이런 고백은 지나치게 솔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9·11 테러공격은 우리에게 일종의 기시감을 제공해줄 정도로 영화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맨해튼 상공을 날아가는 고질라와 <인디펜던스 데이>의 고층건물 폭파, <타이타닉>의 낭만적 격정, 그리고 <진주만>의 상처받은 순수…. TV에서 이날의 테러를 본 사람들은 모두, 전세계 모든 이를 즉각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매체라곤 블록버스터뿐이라는 결론에 달했을 것이다. 눈을 놀라게 하며 움직이는 이미지와 거기에 맞물려 돌아가는 사운드야말로 블록버스터가 내쏘는 정보의 형식이다. 블록버스터의 공용어는 폭력적인 액션이며, 소비에트가 무너진 지금, 그러한 액션과 이미지의 담지자는 오로지 할리우드뿐이다. 미국 주도의 그 다국적 세력 말이다. 영화 이미지들은 이제 사람들의 DNA에조차 박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9월11일, 이제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꾸던 꿈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독일 사회비평가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한 국가의 영화는 그 국민의 정신세계를 되비춘다. 나치의 등극이라는 관점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의 영화들을 분석하면서, “독일은 독일영화를 통해 처음부터 익히 예견되던 바를 실현했을 따름이다. 영화 속에 싹이 담겨 있던 그대로”라고 주장했다. “영화 속에 담겨 있던 그대로”라. 그렇다면 그날의 테러는, 예언적인 판타지가 현실화된 것이란 말인가?
2. 반세기도 넘는 세월을 미국은 일본에서 베트남까지, 이라크에서 세르비아까지 폭격을 일삼으며 지냈다. 미국 자신은 자기 도시들에 단 한개의 폭격 투하도 허락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훨씬 전부터 미국은 이미, 전세계를 미국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공략하고 있었다. 어떤 목사와 율법학자들은 그래서 재빨리 9·11 테러를 신의 보복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날의 비극을 거리를 두고 냉소적으로, 심지어 쾌감마저 느끼며 바라보는 세력 또한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많은 비디오숍들은 <쥬라기 공원>과 <혹성탈출> 테이프들 사이에 <금세기의 대재난>(The Century’s Great Catastrophe)이라는 제목의 책을 진열해놓았다. 국영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단행본은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빌딩과 이 스펙터클의 라이벌 스타들인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화로 장식된 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진 중국의 눈으로 보기에, 이 이벤트는 ‘지하드’ 대 ‘맥도널드 세계’의 싸움일 뿐이다. 그들은 안전한 곳에서, 이 끔찍한 대량학살과 파괴라는 스펙터클을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하다. 대단하다!
앙드레 바쟁은 이런 영화적 쾌락을 ‘네로 콤플렉스’라고 명명한 바 있다. 네로는 자기의 뮤지컬 배경음악을 위해 도시를 불태웠던 인물 아닌가. 하긴, 엄청난 참극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이런 고상한 미적 경험은 영화의 태동 당시부터 이 매체의 특기 중 하나였다. 수잔 손탁이 갈파한 바 있지만 영화란, 그리고 이제 TV와 비디오 게임도, 사람들의 죽음과 도시들의 멸망과 인간성 자체의 파괴를 통해 삶을 이어가는 환상세계 아니던가.
미국, 모든 재난의 원인3. 베를린 장벽 붕괴와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이의 12년을 일종의 황금시대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숫자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 날짜가 각각 11월9일과 9월11일임을 눈여겨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역사의 종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행복한 시절 동안 엄청난 액션블록버스터들이 탄생했으며 재난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조지 부시의 ‘사막의 폭풍’으로부터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에 이르기까지. 수잔 손탁이 명명한 ‘재난의 상상력’은 이 기간 동안 시도때도 없이 밤낮으로 작동하며 생산에 힘썼던 것이다.
<타이타닉>(디지털로 대량 사상을 묘사했다)이 역대 최고흥행 영화에서 <스타워즈>를 몰아냈고, Y2K 패닉은 지금껏 어떤 종말의 날에 대한 스릴러보다 더 큰 영향을 사람들 사이에 불어넣은 바 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자연적인’ 테러리즘 영화인 <트위스터>, ‘예술’ 재난영화인 <쉰들러 리스트> <아이스 스톰> <크래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매그놀리아> 등이 줄을 이었다. 물론 70년대에도 재난은 많았다.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석유파동, 그리고 불황. 이것은 60년대의 흥청망청에 대한 죄값이라고도 했고, 어떤 재난영화들은 당시의 기업들과 지도자들을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 자체야말로 모든 재난의 원인이 돼버렸다. 세계 최고의 슈퍼파워이자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이 그저 모든 재난의 원인이었고 그래서 미국은 매번 그 죄값을 받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무기나 팔아대고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남들 뒤통수나 때리는, 세계 유례없는 그 슈퍼파워 미국 말이다.
4. 9·11 테러에 대한 할리우드의 반응은 그저 몇편의 영화가 지금 시기에 적합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데 그쳤다. 워너브러더스는 <콜래트럴 데미지> 개봉을 미뤘고 제리 브룩하이머는 제3차대전에 대한 영화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판단내렸다. 물론 재난영화를 제작하는 곳에서만 곤란을 겪은 것은 아니다. 디즈니에서는, 팀 앨런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빅 트러블>을 연기했는데 원자폭탄을 제트기를 이용해 해외로 빼내는 내용이 있었다. MGM은 <Nose Bleed>를 연기하기로 했는데, 성룡이 고층건물 창문닦이로 나와 세계무역센터를 날려버리려는 테러리스트 집단의 계획을 무산시킨다는 내용이다(영화 속 테러리스트들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무역센터 빌딩 하나는 자본주의를 뜻하고 또 하나는 자유를 대변하지. 즉 미국 전체를 표상하는 거야. 그러니 그 빌딩 두채를 무너뜨리는 건 미국을 무릎꿇게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보류되었다. 마치 과거를 다시 쓰면 미래가 안전해진다는 듯이. 그리고 그뿐이었다. 할리우드도 물론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빌딩이 무너지고 며칠 뒤, 다음 타깃이 자기들일지 모른다고 스튜디오들이 FBI에 보고한 것이나 9월21일 LA 공격임박 루머가 퍼졌을 때 패닉한 정도에 그쳤다.
영웅적 전투영화 대여 호황
5. 언론의 어떤 예상들은 빗나갔다. <LA 타임스>는 이제 “재난과 테러리즘은 더이상 관객에게 매력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화는 이제 대체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혹자는 이제 “영화들은 훨씬 더 건전해질 것이며 우리는 분명히 훨씬 친절하고 부드러운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드림웍스 프로듀서는 이제 더이상 <피스메이커>나 <딥 임팩트> 같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그와 반대다. 10월3일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비디오 대여점들은 “영웅적 전투영화들 대여가 엄청난” 가운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람보>나 <다이하드3> 같은 영화들이 블록버스터 코너를 “날아다니며” 쉴새없이 대여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날짜 <뉴욕 타임스>는 좀 다른 견해를 보인다. 큰 사건 이후에도 사람들이 빌려가는 비디오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디펜던스 데이>류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리라는 것은 그저 한 일화에 지나지 않았고, 한 블록버스터 프로듀서의 말을 빌리자면,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댔자 딸꾹질만도 못할 정도로 미미한” 정도였으며 신작들은 여전히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더구나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는 추세도 전혀 아니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나오기 전에도, 가을 영화가는 매출이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할리우드는 뭔가 벌을 받을 듯했으나 오히려 여기저기에 잘 팔리고 더 잘 나갔다. 테러공격 며칠 뒤, 국방성이 재단을 후원하는 ‘USC Institute for Creative Technologies’는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드 수자(<다이 하드> <다이 하드2>), 감독 조셉 지토(<델타 포스 원>) 그리고 데이비드 핀처 같은 이들을 불러모아 수차례 미팅을 가졌다. 이 모임은 준장급에 의해 주재됐는데, 말하자면 재능있는 이들을 모아 머리를 짜내어, 모든 가능한 테러 시나리오들을 사전에 봉쇄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하긴 안 될 것도 없겠다. 우리는 스필버그가 국회에서 증오범죄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고 톰 클랜시가 테러리즘 전문가로 `CNN`과 인터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6. 이제 미국 정부는 아프간을 응징하는 한편 “그 국민에게는 관용과 엔터테인먼트를 전해주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신문에 났듯이 “기쁨과 혼돈 속에 카불 영화관이 문을 다시 열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카불의 첫 일반인 대상 영화상영에 참석하기 위해, 아프간 남성 군중이 함박웃음을 띤 채 총 600석의 박타르극장을 향해 마구 밀려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보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디펜던스 데이>가 마지막 영화였다지. 여성들은 여전히 극장 출입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은 그저 잊어버려라. <슈렉>은 문제없이 들어올 것이고 어쩌면 <진주만>도 들어올지 모른다. 이제 카불조차도 미국 문명권으로 편입되게 된 것이다.
짐 호버먼/ 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
(<빌리지 보이스> 2001.11.5.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