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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의 창조주
이기준 2013-05-28

스탠 윈스턴 Stan Winston, 1946-2008 <터미네이터> <쥬라기 공원> 특수효과

<터미네이터>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2>(1984)의 공포스런 액체로봇 T-1000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쥬라기 공원>(1993)의 흉포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어떤가. 마지막으로 <배트맨2>(1992)의 음산한 고담시와 그곳에 출몰했던 기괴한 캐릭터들을 떠올려보자. 80, 90년대 할리우드가 창조해낸 가장 환상적인 피조물 뒤에는 언제나 스탠 윈스턴이 있었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 팀 버튼의 비전을 실현시킨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특수효과 감독이었다. <에이리언2>(1986)의 거대한 퀸 에일리언과 <프레데터>(1987)의 섬뜩한 외계인 사냥꾼, 그리고 <가위손>(1990)의 주인공 에드워드 시저핸드 역시 모두 이 명장의 손을 거쳐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

<쥬라기 공원>, 공룡들이 살아오다

그는 할리우드의 으뜸가는 인형술사였던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고 적용하는 데에 개방적인 혁신가였다. 재래식 특수분장과 모형제작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그는 컴퓨터그래픽(CG) 시대의 개막과 함께 디지털화된 제작환경에서도 변함없이 출중한 결과물들을 뽑아내며 적응력과 창조성을 과시했다. 실제 촬영된 사물과 컴퓨터에 의한 영상효과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스탠 윈스턴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해내는 데 골몰하는 연금술사들처럼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배합공식을 갖고 있었다. 애니매트로닉스(기계장치로 조종이 가능한 움직이는 로봇)의 생생한 물질감과 CG의 자유분방한 효과를 적절히 뒤섞어 장면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46년생인 스탠 윈스턴은 버지니아대학에서 회화와 조소를 전공했다. 졸업 뒤 맨 처음 그가 선택했던 진로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즈니 스튜디오에 입사, 분장 부서의 조수로 3년 동안 일하면서 스탠 윈스턴은 특수효과의 매력에 눈뜨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르바이트 거리’로 시작했던 일이 특수분장사 밥 시퍼의 지도 아래 6천 시간의 연수를 거치면서 차츰 필생의 사업으로 변모해간 셈이다.

1972년 디즈니를 떠난 그는 자택의 차고에 ‘스탠 윈스턴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특수분장 전문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괴수가 등장하는 TV영화 <가고일>(1972)로 데뷔와 함께 에미상(분장부문)을 수상한 그는 이후 10여년간 크고 작은 TV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영화계가 그를 주목한 것은 극지의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투를 그린 존 카펜터 감독의 82년작 <괴물>부터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특수효과 감독을 돕기 위해 뒤늦게 투입된 스탠 윈스턴은 끔찍한 형체의 괴물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일조하면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제공한 영화는 따로 있었다. 당시만 해도 신출내기였던 제임스 카메론과 의기투합한 스탠 윈스턴은 1984년 <터미네이터>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다. 두 천재는 650만달러라는 초저예산 SF영화의 한계를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특수효과로 뛰어넘었다. 미래에서 온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전사, 그리고 불 속에서 기어나오는 은색빛 내골격 로봇의 이미지는 전세계 수많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이로써 단번에 할리우드의 중심으로 진입한 스탠 윈스턴은 7년 뒤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1991)에도 참여해 거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 영화는 100% 디지털 합성방식의 부분적 도입과 액체금속로봇 T-1000에 사용된 모르핑(morphing) 기법 등 컴퓨터와 디지털이 만들어낸 시각효과가 두드러진 영화였다. 하지만 총을 맞아 기괴하게 우그러든 액체금속로봇이나 핵폭발에 순간 연소되는 인체 모형을 실감나게 만들어내 CG 효과가 안정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탄탄한 기본틀을 마련해준 스탠 윈스턴의 공로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애니매트로닉스와 CG를 연계시키는 방법을 체득한 스탠 윈스턴은 1993년작 <쥬라기 공원>을 통해 다시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공룡의 65%를 만들어내며 일류 ‘크리처 크리에이터’(creature creator)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공룡과 주변의 사물간에 크고 작은 물리적 접촉이 발생하는 장면에서 스탠 윈스턴이 제작한 모형들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CG 기술만으로는 넘보기 힘든 박진감을 창출해냈다. “만능인 것처럼 보이는 디지털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 다른 사람들이 컴퓨터의 위력에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도 그는 이러한 지론을 꿋꿋이 고수했다.

<아이언맨> <아바타>까지 늘 최첨단에

특수효과 전 영역에 걸친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이런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선택하는 유연함이 그를 거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애니매트로닉스의 일인자였지만 이를 뚜렷하게 구획된 영역으로 분리하는 대신 다른 기술과의 연계 지점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그는 프로덕션 초기 단계부터 CG팀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장면을 설계해나갔고, 모든 기술들이 조화롭게 담긴 최상의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1993년 스탠 윈스턴은 제임스 카메론과 함께 CG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을 창설했으며, 기존의 스탠 윈스턴 스튜디오를 확장해 CG까지 통합한 총체적 특수효과 업체를 설립해 전방위적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끝까지 단 한 발자국도 시대에 뒤떨어진 적이 없는, 항상 최첨단에 서 있던 테크니션이었다. 다발성 수종 판정을 받은 뒤에도 <A.I.>(2001), <콘스탄틴>(2005), <아이언맨>(2008), <아바타>(2009) 등의 작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온 스탠 윈스턴은 2008년 6월15일,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이 만든 여러 크리처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면했다.

< A.I. >

진짜보다 진짜 같은

그의 경쟁자들, 딕 스미스와 릭 베이커, 특수분장 전문가

<아마데우스>(1984)에서 노인 살리에리 분장으로 오스카 분장상을 받은 딕 스미스(1922~)는 현실감 넘치는 분장의 대가다. ‘딕 스미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고 하면 될까. <작은 거인>(1970)에서 무려 100살 넘은 노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더스틴 호프먼, 입안에 솜뭉치를 넣은 <대부>(1972)의 말론 브랜도, 머리를 가운데만 남긴 <택시 드라이버>(1976)의 로버트 드 니로(그가 머리를 밀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바로 딕 스미스가 만든 가발이었다)가 바로 그의 솜씨다. 노인 분장만 했다고 말하면 섭섭하다. <엑소시스트>(1973)의 귀신 들린 소녀, <악마의 키스>(1983)에서 뱀파이어가 된 데이비드 보위가 바로 그의 손을 거쳤다. <스타워즈> 메이크업에도 참여했던 릭 베이커(1950~)는 1982년에 생긴 아카데미 분장상 부문에 무려 11번 후보에 올라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하울링>(1981)의 늑대인간과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스릴러>가 바로 그의 솜씨이며 할리우드판 <링>(2002)의 사다코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맨 인 블랙>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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