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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프로덕션의 리더가 낳은 위대한 일본 영화

일본 거장 탄생 100주년 회고전: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의 네 번째 프로그램은 신도 가네토와 야마모토 사쓰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한국영상자료원,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영화의 전당이 공동 주최하는 특별전으로 2월과 3월에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의 전당에서 각각 개최된다. 근래 각국 대사관과 문화원이 후원하는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곳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월간 프로그램인 ‘일본영화걸작 정기 상영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 프로그램인 ‘일본영화 거장 시리즈’를 빌려 자국의 우수한 영화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전자가 일본 영화사를 통시적으로 접근한다면 2010년에 시작된 후자는 특정 감독의 작품세계를 심도 깊게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살아남기’에 관한 영화서부터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국제영화계에서 명성이 높은 신도 가네토의 몇몇 작품이 한국에서 제한적이나마 알려진 반면, 야마모토 사쓰오는 (일본 내 유명세와 상관없이) 거의 미지의 감독에 가깝다. 신도와 야마모토는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는 것 외에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하나,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은 두 사람의 영화세계는 독립프로덕션 운동에 힘입어 바야흐로 꽃피게 된다. 신도는 1950년에 일본의 대표적 독립영화사인 ‘근대영화협회’를 설립해 독립제작사의 붐을 이끌었고, 도호쟁의로 인해 스튜디오에서 나와야 했던 야마모토 또한 독립 프로덕션을 세워 새로운 조류의 핵심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둘, 여태껏 작품 활동을 계속한 신도와 지난 1983년에 세상을 떠난 야마모토는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여러 빛깔의 작품을 선보인 감독이다. 당시 대개의 일본 감독이 폭넓은 장르의 작품을 만든 바 있어 두 감독에 국한된 특징이라 할 수 없지만 두 감독의 경우 독립 프로덕션의 리더로서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긴장이 그러한 형태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근대영화협회를 지금껏 이끈 신도가 겪었을 힘겨운 투쟁은 다양한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신도 영화의 시작점인 <원폭의 아이>와 99살에 발표한 신작 <한 장의 엽서>를 관통하는 주제는 ‘살아남기’다(앞에 하나의 말을 더한다면 ‘적극적으로’다). 몰락한 상류계층 출신인 그는, 마찬가지로 패망한 나라의 현실로부터 그런 주제를 뽑아냈다. 생존의 문제는 기실 신도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과한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매달린 주제다. 그들에게 전쟁은 생명의 반대말이다. 그들 중 신도 영화의 특징은 살아남는다는 것과 노동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여기서 노동이란 단순히 돈을 받고 용역을 제공하는 차원과 다른 게, 생존을 위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몸짓을 의미한다. 거지이건 창녀이건 작가이건 선생이건 배우이건 농부이건, 심지어 귀신이건 그들은 몸을 움직임으로써 주어진 삶을 버틴다. 54년 작품 <도랑>에서 백치 여인은 ‘일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신도가 ‘영화인생 최후의 작품’이라고 말한 <한 장의 엽서>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노부부가 며느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까닭도 다르지 않다. 자신들에게 노동력이 없으니 곁에 머물며 일해달라는 거다. 급기야 <오니바바>에선 나의 목숨을 위해 타인의 죽음을 어떤 의미에서 정당화하는 데까지 다다른다. <목동기담>에서 부유한 작가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기녀의 자세에 비굴함 따위는 없다. 그녀는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럼 노동력을 상실하면 어떻게 할까. 곧 죽음을 의미할까. 이를 오랫동안 고민했을 신도는 여든여섯살에 내놓은 <살고 싶어>에서 <나라야마 부시코>의 눈물겨운 설정을 뒤집어버리는 짓을 감행한다. 여든 노인의 넉넉하면서도 귀여운 몸짓에 많이 웃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신도의 작품들은 ‘오토와 노부코’의 발견이라는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한다. 신도의 아내이자 영화의 동반자인 그녀는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역할과 변신을 통해 신도 영화의 다른 쪽 연대기를 형성한다. <오니바바>에서의 악마의 눈빛과 서민 드라마에서 짓던 순진무구한 표정을 비교해보라. 그녀의 얼굴은 도무지 한 사람의 연기라고 믿기 어려운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17편의 상영작 중 가장 유명한 <오니바바>와 <벌거벗은 섬>은 무조건 봐야 하는 걸작이다. 사회정치적인 토대 위로 시대극과 괴기 드라마를 얹어 그 시기 일본영화의 진액을 집결한 <오니바바>와 당대 일본 리얼리즘 영화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증언하는 <벌거벗은 섬>의 가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밖에 개인사를 가미하기를 즐긴 감독의 성향이 빚은 작품들과 20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그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후기작인 <오후의 유언장> <살고 싶어>는 사적인 모습이 짙게 투영된 작품이며, 요시무라 고자부로가 연출한 <게이샤의 삶>, <겐지 이야기>에선 신도의 스승 미조구치 겐지의 영향이 느껴진다. 각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도랑>과 <한 장의 엽서>다. 더러운 개천 옆 판자촌에 흘러들어온 천사의 이야기인 <도랑>은 그 슬픔과 향수에서 가히 일본판 <길>이라 불릴 만하다. 온갖 희생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백치 여인이 같은 해인 1954년에 세상을 찾아온 건 어쩌면 기적처럼 보인다. 동시대에 고바야시 마사키가 연출한 <검은강>과 유사한 공간을 나누면서도 엇갈린 정서를 전하고 있으며, 이후 <도데스카덴>과 <진흙강>으로 이어지는 판자촌 엘레지의 원형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한 장의 엽서>는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1965), 와카마쓰 고지의 <캐터필러>(2010)와 함께 감상하면 좋을 작품이다. 미조구치 겐지를 스승으로 둔 신도와 마스무라가 걸어간 정반대의 길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아울러 현대 일본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유연한 운동가, 야마모토 사쓰오의 작품들

야마모토 사쓰오 <하얀거탑>

야마모토 사쓰오는 일본 내 의식있는 영화인의 중심에서 활동했던 감독이다. 좌익사상범으로 검거돼 대학을 중퇴한 그는 스튜디오에 항거한 영화인의 최전선에 섰으며 영화인연맹의 리더로 활약했다. ‘대중매체는 진실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폭력의 거리>는 야마모토의 성향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연기자 및 영화인연맹이 스튜디오 바깥에서 난관을 극복하며 제작한 이 작품은, 부정부패가 만연한 소도시에서 검경과 기업인, 조직폭력배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시민운동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담았다. 그렇지만 야마모토를 딱딱하고 건조한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외골수 감독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1960년대에 메이저의 초대에 응한 그는 다수의 상업영화를 발표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유연한 운동가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 작품을 성공시켜 흥행의 보증수표라 불리면서도 그가 자기 주제를 상업영화에 반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금환식> <상처투성이의 산하>처럼 드러내놓고 현실을 비판한 작품은 물론, 시대극이자 오락물인 <닌자 시리즈>에서조차 권력에 대한 비판과 사회의 정의를 주제로 삼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기록한 듯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주무기인 만큼 조직과 인간관계를 다룬 작품에서 야마모토의 연출력은 빛을 발한다. 일본과 한국에서 TV드라마로 리메이크돼 인기를 끈 <하얀거탑>은 그런 장점이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이번 회고전에선 야마모토의 영화 두편과 비슷한 성격의 한국영화를 나란히 상영하는 코너가 별도로 준비됐다. 서민 드라마의 대표작인 강대진의 <마부>와 <수레의 노래>를, 한·일 괴담영화의 수작인 신상옥의 <이조괴담>과 <모란등롱>을 비교 감상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 즐거움을 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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