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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34년을 듣다

<고다르X고다르> 데이비드 스테릿 지음, 박시찬 옮김 / 이모션북스 펴냄

지하철에서 읽기 권장 지수 ★ 패러독스 지수 ★★★★ 고다르의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지수 ★★★★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일상에 휩싸이던 어느 찰나, 문득 우리 속 심연이 말을 걸어온다. 네가 처음에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냐? 지금 당신의 모습이 정말 처음에 원한 것과 같아? 그제야 떠오르는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 “생각을 해야한다.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 고칠 수 있다. 생각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이제 이 질문을 영화한테로 돌린다. 영화를 생각하다 혼란에 빠질 경우 보아야 하는 지평,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고다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영화는, 그렇게나 고다르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데이비드 스테릿이 엮은 <고다르X고다르>는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나온 2년 뒤, 그러니까 <비브르 사 비>가 개봉된 1962년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1996년 <필름 코멘트>에 수록된 개빈 스미스와의 대화까지 총 14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여과되지 않은 그대로의 기록보다는 인터뷰어의 녹취 방식과 질문 형식에 따라 기록의 성격도 다양하게 정해졌다. 이는 고다르의 예측 불가능한 인터뷰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영화를 말하면서도 그는 어떤 때는 주저하는 모습을, 또 다른 경우엔 혁신적인 태도를 보이며, 때론 우울하지만 이내 쾌활해지기도 한다. 저자인 스테릿은 고다르 특유의 신비주의와 과묵함이 이런 기조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혼란스러울지 모를 일부 독자들을 위해, 이렇게 발견되는 명백한 모순을 그저 고다르의 장난기로 여기라고 어른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고다르의 태도는 무척이나 다양하며 혼합적이지만 실은 그 사상과 영화적 법칙을 혼합하는 데 있어서는 꾸준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스테릿의 정리처럼 고다르의 변증법적 사유는 모든 논증의 이면들을 인정하는 형태를 취한다.

1976년, <뉴요커>와의 대담에서 고다르는 픽션을 묻는 질리아트의 질문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며 요즘 그 예로 ‘역사서’를 보고 있다고 답한다. 또 다른 대답, 친밀한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는 항상 ‘소음’이 담긴다고도 그는 언급한다. 한편 1980년에 가졌던 세 인터뷰 중 아네트 인스도로프의 질의에 고다르는 “나에게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복귀가 아니라 접근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때 ‘접근’의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68년 이래 정치적이면서도 건조한 작품에만 몰두하던 그가 비교적 쉬운 자신의 새 장편을 칭했던 단어, 이는 제3의 입장에서 고다르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을 스스로가 자신에게 일렀다고 보는 게 옳다. 즉 장르와 미장센, 심지어 작품의 경향에까지 그는 일관되게 ‘3자적인 무언가’를 추구한다. 고다르가 천착한 ‘정과합, 그리고 그 사이를 횡단(trans-)하는 또 다른 부유물들’에 대해 이 책은 다양하게 접근하는 셈이다. 만일 당신이 <만사형통>의 마지막 대사를 기이하다 여기거나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제스처와 싱크에 회의를 가진 적이 있다면 이제 당신이 봐야 하는 건 <고다르X고다르>이다. 진화하는 작가의 자화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당신에게 고다르가 직언한다. ‘말’은 스크린을 채우는 이미지며,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타협’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고. 고다르와 고다르의 사이에는 바로 그 ‘생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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