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스마트폰영화 중에도 옥석은 있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인터넷 웹사이트 또는 스마트폰영화제·단편영상제를 통해 소개된 수많은 작품들 중 8편의 ‘웰메이드’ 스마트폰영화를 엄선했다. 전문 영화인들이 만든 작품은 촬영의 실험성이, 독립영화인 혹은 아마추어 영상 제작자가 만든 작품은 기존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있는 설정이 돋보였다. 기사를 읽다가 영화의 세부 내용이 궁금해진다면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www.ollehlottefilm.com)나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www.sesiff.org)를 방문하면 추천작 전편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제작한 스마트폰영화를 출품할 수 있는 공모전 정보도 소개한다.
<맛있는 상상>
감독 봉만대(<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상영작 식욕과 성욕은 맞닿아 있다고 했던가. <맛있는 상상>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훈남을 보고 야릇한 상상에 빠진, 한 여자(고수희)의 백일몽이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요리사로 변신한 훈남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웰빙 음식을 탐한다. 메뉴판에는 ‘무모하지만, 바이브레이션, 속사정’ 등 관능적인 이름의 음식이 가득하다. 봉만대 감독의 이 단편은 접사촬영의 실험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접사로 촬영된 알록달록한 오색빛깔 음식과 요리사의 손, 음식을 씹는 배우의 입술이 빠르게 교차편집되며 마치 러브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로본능>
감독 이호재(<작전>) /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상영작 관람 전 필독! 세로로 촬영한 장면을 가로로 눕혀 상영하는 이 영화를 보려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여야 한다. 외로운 ‘건어물녀’ 혜지(김혜지)는 모든 휴대폰 사진을 세로로 찍는다. 도시락도 세로, 길게 양쪽으로 뻗은 에스컬레이터도 세로, 침대에 누운 그녀도 세로 프레임으로 촬영된다. 혜지의 ‘세로본능’이 ‘가로본능’으로 바뀌는 건 공원에서 농구하던 남자 무열(김무열)과 가까워지면서다. 그녀의 옆자리를 무열이 채우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영화는 가로 프레임의 형식으로 돌아온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할 수 있는 영화와 일반 극영화의 차이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도둑고양이들>
감독 민병우 /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 플래티넘스마트상 수상 여자친구에게 차인 날, 새 여자(?)를 만났다. <도둑고양이들>은 애인과 이별을 겪은 한 남자가 길고양이 ‘나비’와 동거하며 겪는 심경의 변화를 좇는 작품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정제된 촬영이 일품인데, 민병우 감독은 “햇볕 잘 드는 장소를 골라 촬영한 것”이 화사한 영상의 비결이었다고. 애교부리다가 이유없이 토라지고, 불현듯 남자를 떠났다가 마음을 접었을 때 다시 나타나는 나비의 모습을 ‘여자 사람’과의 이별 과정과 대비하는 내레이션이 재치있다. 물론, (고양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목욕신까지 참아내며 감정 연기를 무리없이 소화해낸 주연배우 ‘나비’의 공도 크다. 애묘인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작품이다.
<농반진반>
감독 정정훈(<박쥐> 촬영) /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상영작 <평양성>의 ‘페이크 코멘터리’ 버전. <농반진반>은 <평양성>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영화의 촬영 기간 중 이준익 감독을 주연배우로 캐스팅해 찍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느림의 미학? 그거 다 개소리야. 어차피 영화현장이 전쟁터인데 속도전으로 가야지”라고 믿는 이준익 감독은 ‘아이폰4’를 주겠다는 정정훈 촬영감독의 제안에 하루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수염을 자르고, 전화기를 붙들고, 방 안을 서성거리다가도 너무 심심해 일부러 세수까지 하는 이준익 감독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한편 감자칩 속에 스마트폰을 넣고 촬영한, 봉지를 들여다보는 이준익 감독이나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거울을 대칭축 삼아 찍어낸 장면은 과연 일류 촬영감독의 솜씨답다.
<미니와 바이크맨>
감독 정윤철(<말아톤>) /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상영작 “미니가 바다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미니와 바이크맨>은 ‘미니’라 불리는 인형이 아늑한 집을 떠나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떠나는 여행담이다. 정윤철 감독은 도시의 번화가를 지나 바위가 가득한 산을 넘어 백사장으로 향하는 작은 인형의 여정을 핸드헬드와 접사촬영 등을 이용해 감성적으로 담아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실사판 <토이 스토리>라고 할까. 특히 미니가 마침내 백사장에 도착해 자전거로 바닷가를 질주하는 모습은,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손쉽게 담아낼 수 없었을 장면이다.
<사랑의 3점슛>
감독 강동헌 /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 실버스마트상수상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댔는데, 그녀는 달랐다. 열세 번째 고백에 실패한 남자에게 여자가 제안한다. “나랑 농구해서 이기면 너랑 사귈게!” 그런데 여자는 농구선수다. 그날부터 남자의 맹훈련이 시작된다. <사랑의 3점슛>은 내용만큼이나 다정다감한 색감의 영화다. 로모 느낌이 나는 장면과 더불어 인물은 선명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아웃포커싱한 영상의 퀄리티가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 못지않다. 덕분에 영화제 게시판에는 ‘아이폰만으로 촬영한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항의글도 올라왔단다. 하지만 <사랑의 3점슛>은 강동헌 감독이 “일반 단편영화를 찍을 때보다 다섯배는 더” 촬영에 공들인 작품이다. 아이폰에 DSLR 렌즈를 붙일 수 있는 어댑터를, 강동헌 감독이 아이폰영화 <파란만장>을 만든 박찬욱 감독의 제작사 모호필름에서 직접 빌려와서 촬영한 영화라고. 공들인 보람이 있는 감성적인 영상이 돋보인다.
<아이의 방>
감독 정율 / 제2회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벅스익스트림모바일상 아이와 폭력의 조합은, 그 수위와 강도를 넘어서서 가장 소름끼치는 악몽이 될 수 있다. <아이의 방>은 소녀가 과거에 겪은 폭력의 기억을 벌레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녀의 방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난다. 장롱 뒤편 벽에는 벌레의 진액으로 보이는 섬뜩한 액체가 묻어 있고, 소녀가 사과를 베어물자 (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사과의 속살을 적신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영화가 아이폰으로 촬영되었으나 이 영화는 갤럭시S로 촬영한 작품이다. “출시된 첫날에 구입해” 이른 시일 내에 촬영하느라 어플리케이션 기능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정율 감독은 “용산 전자상가에서 구입한” 디지털카메라용 삼각대와 휴대폰에 부착 가능한 광각렌즈를 사용해 소녀의 악몽을 완성해냈다. 흑백영상과 방 안에 아른거리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대변해준다.
<내새끼>
감독 이대영 /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 브론즈스마트상 수상 90살 할머니와 스마트폰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새끼>는 일반 독립단편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장점인 영화다. 손자가 선물로 두고 간 스마트폰은 할머니의 말을 득달같이 따라한다. 사실 그 정체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어플리케이션(Talking Tom)이지만 할머니는 잘 때나 밥 먹을 때나 ‘말하는’ 스마트폰을 끼고 살며 손자 대하듯 애지중지한다. 촬영 기법상 새로운 시도는 드물지만,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의 밀도를 촘촘히 쌓아나가 마지막 장면에선 끝내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안정된 연출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유튜브에만 올리세요? - 스마트폰영화제 일정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를 유튜브에만 올리지 말고 영화제에 출품해보자. 국내외 스마트폰영화제를 정리했다. 일정을 살펴보니 서둘러야 할 영화제도 많다. 수상의 영광과 상금을 거머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JIFF 폰 필름 페스티벌’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 열리는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제1회 JIFF 폰필름페스티벌이 다음tv팟과 공동으로 진행된다. 5분짜리 단편을 제작해서 다음TV팟 사이트에 3월20일까지 영화를 업로드하고 신청서를 온라인 접수하면 된다. 출품된 작품 중 최종 10편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최우수 작품상의 상금은 300만원이다.
*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3회를 맞는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는 지난해에 이어 모바일 경쟁부문을 모집한다. 모집요강은 4월에 발표되고 6월 말에는 접수를 시작할 예정이다.
*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 최근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의 수상작 발표가 있었다. 국제영화제로 확장될 2회 영화제는 내년이 아니라 올 하반기에 열린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 개최될 예정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10분 내외의 영화를 모집한다. 4월경에 모집요강이 발표된다.
* 해외 스마트폰영화제 박찬욱 감독이 홈페이지 메인을 접수한 아이폰필름페스티벌(www.iphoneff.com)은 3월31일까지 작품을 접수한다. 영화제는 4월6일에 열린다. 스마트폰필름페스티벌(www.smartphoneff.com)은 10월19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인디폰필름페스트(www.indiefone.com)는 9월11일까지 작품을 모집한다. 그 밖에 전통적인 모바일영화제의 전통을 이어온 프랑스의 포켓필름페스티벌(www.festivalpocketfilms.fr)과 홍콩 모바일필름페스티벌(www.mobilefilm.hk)도 주목해야 할 영화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