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공개된 칸영화제 라인업을 보면, 통상 아시아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칸영화제가 올해는 아시아영화에 단순한 존경 이상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모두 아홉 나라(한국·중국·일본·대만·말레이시아·싱가포르·타이·베트남·인도)의 열세편. 숫자 면에서는 지난해나 2004년, 2007년과 같다. 칸영화제가 아시아영화를 한참 내세우던 1999년에서 2001년과 비교해도 한두편 정도 적을 뿐이다. 아시아영화로서는 기적의 해라 할 수 있는 2005년에는 임상수의 <그때 그사람들>과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을 포함 열여덟편의 아시아영화가 초대됐었다.
물론 올해 선정작의 질이 어떨지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네편의 한국영화가 초대된 것은 한국 영화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다. 2005년의 여섯편보다는 적지만 2000년 임권택의 <춘향뎐>, 이창동의 <박하사탕>, 정지우의 <해피엔드>와 홍상수의 <오! 수정>이 상영된 때와는 동등한 숫자다. 홍상수와 이창동은 올해도 <하하하>와 <시>로 초대됐고, <해피엔드>의 스타 전도연은 임상수의 <하녀> 리메이크로 칸에 돌아왔다. 올해 처음 등장하는 이는 장철수로 그의 장편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된다.
지난 15년간 칸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되지 않은 해는 1999년, 2001년 그리고 2003년이었다. 그러나 최근 15년간의 영화적 부흥기 훨씬 이전에도 칸에서 한국영화가 상영된 바 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칸에서 상영된 첫 번째 한국영화는 이두용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다. 그 영화는 1984년 경쟁부문이 아니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됐다. 5년 뒤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역시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됐다. 2년 뒤인 1996년에는 양윤호의 극도로 예술적인 영화 <유리>가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되었으나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전수일의 단편 <내 안에 우는 바람>은 그 다음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되었으나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에 와서도 한국영화는 칸 관객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거의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던 극도로 특수한 예술영화들이 한국영화를 대표했다. 그 다음 두해 동안 칸영화제의 뒤늦은 한국영화의 ‘발견’을 이끈 두명의 감독은 서로 무척 다른 위치에 놓여 있었다. 베테랑 감독인 임권택의 영화는 곧바로 경쟁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상대적으로 젊은 감독인 홍상수의 영화는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임권택의 영화는 이미 1990년대를 거치면서 베를린영화제에서 정기적으로 상영되었고, 칸영화제가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다음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홍상수의 경우 프랑스 회사들이 공동제작하고 사실상 프랑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고 여겨졌을 때에야 비로소 칸은 그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넣어주었다. 그 이전 홍상수의 작품 중 가장 도전적인 <강원도의 힘>과 <오! 수정>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비교적 짧은 한국영화 칸 진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제까지 서른여섯편을 넘지 않는 수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래도 이것은 아시아 지역을 통틀어 일본, 인도,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다. 올해 칸에서 상영되는 네편은 지금까지 중 가장 뛰어나게 한국영화를 대표하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