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자>(1956)에서 존 웨인이 석양으로 사라질 때, 웨스턴의 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문밖 저쪽 황야로 존 웨인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수색자>의 끝장면이기도 했지만, 왠지 웨스턴이 끝나가는 예감까지 전달했다. 먼지가 풀풀 이는 서부에서 오직 자기만의 법으로 고독하게 살아가던 무법자의 모습을 더이상 못 볼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사실 웨스턴은, 그리고 존 웨인은 <수색자>를 통해 고별을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는 존 웨인과 그리고 웨스턴과의 이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관객에게 주어진 여분의 기회였다.
당시는 누가 봐도 진 켈리의 시대
이렇게 배우와의 이별이 곧 장르와의 이별이 되는 또 다른 경우가 <밴드 웨건>(1953)이다. 뮤지컬의 역사를 이끈 프레드 아스테어 때문이다. 그가 RKO에서 진저 로저스와 팀을 이뤄 뮤지컬을 만들어낼 때인 1930년대는 바로 뮤지컬의 급성장기였다. <톱 햇>(1935), <스윙 타임>(1936), <쉘 위 댄스>(1937)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히트였다. 뮤지컬의 아이콘이 된 프레드 아스테어는 늘 그가 입고 등장하던 검정색 중산모(top hat), 흰색 나비넥타이, 흰색 장갑, 그리고 지팡이로 상징화됐다.
<밴드 웨건>은 관객이 프레드 아스테어의 스타성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 은퇴 위기에 놓였다. 젊은 세대들은 기억도 못할 정도다.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물건을 경매하는 곳에서 시작한다. 프레드 아스테어의 영화 속 분신인 토니 헌터(프레드 아스테어)의 중산모와 지팡이가 경매에 나왔다. 왕년의 대스타가 쓰던 물건이니 활발한 가격 경쟁이 붙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헌터는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다. 그는 이제 영화는 그만두고 브로드웨이에 가서 다시 뮤지컬을 해볼 참이다. 여기서도 승객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팬 매거진을 보며 한물간 스타를 동정하고 있다. 헌터의 처지는 당시 54살이었던 프레드 아스테어의 입장을 떠오르게 한다. 젊은 후배들에게 밀려 어쩔 수 없이 스크린에서 밀려나는 왕년의 스타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할리우드의 뮤지컬은 더이상 프레드 아스테어처럼 품위있게 춤추는 스타를 원치 않았다. 당시는 누가 봐도 진 켈리의 시대였다. <파리의 미국인>(1951), <사랑은 비를 타고>(1952)가 연속으로 히트했다. 진 켈리는 근육질의 몸으로 관능미를 표현했다. 그는 버스 지붕 위, 광장, 길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춤춘다. 반면 프레드 아스테어는 맵시있는 정장을 빼입고, 주로 무대 위에서 춤을 췄다. 섹시한 몸매로 힘찬 동작을 내지르듯 표현하는 후배 진 켈리에게 뮤지컬의 왕좌가 이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뮤지컬의 <수색자>…영화의 역사에 대한 의례
<밴드 웨건>은 댄서로서의 은퇴 위기에 놓인 토니 헌터가 뉴욕에서 다시 성공할 것인가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 있다. 성공적인 뮤지컬 공연이라는 종결부를 향해 가는, 전형적인 뮤지컬 공식을 따른다. 그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다. 브로드웨이의 천재 연출가라는 남자는 뉴욕의 현학적인 예술가답게 헌터의 새로운 뮤지컬을 싹 바꾸어 현대판 파우스트로 개작하길 원한다. 헌터의 춤 파트너는 발레리나(시드 채리스)로 결정한다. 다시 말해 평생 대중적인 뮤지컬만 해온 헌터는 졸지에 ‘고전’ 파우스트를 연기하고 발레리나와 ‘전통’적인 춤을 춰야 한다.
<밴드 웨건>의 감독 빈센트 미넬리는 웨스턴의 존 포드에 비교될 만큼 뮤지컬의 독보적인 존재다. 1944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로 춤과 노래가 플롯 속에 통합되는 현대적인 뮤지컬을 처음 발표한 장본인이다. 뮤지컬이 춤과 노래만을 자랑하는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 한편의 드라마로 발전한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진 켈리가 출연한 <파리의 미국인>을 보면 그가 춤장면을 연출하는 데 얼마나 뛰어난 감독인지도 알 수 있다. <밴드 웨건>에도 소문난 춤장면이 등장한다. 도입부의 구두닦이와의 춤, 종결부의 ‘걸 헌트’(Girl Hunt)에서의 시드 채리스와의 2인무 등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그런데 <파리의 미국인> <사랑은 비를 타고>와 비교하면 <밴드 웨건>의 춤장면은 매력이 좀 떨어진다. <밴드 웨건>에서 춤으로 비교우위를 찾으려면 실망하기 싶다. 대신 미넬리는 아스테어라는 스타의 의미에 강조점을 뒀다.
이 영화는 뮤지컬의 <수색자> 혹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스크린에서 나누는 이별의 순간인 것이다. 그와의 이별은 곧 뮤지컬과의 이별도 포함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곧 현대판 파우스트를 다시 아스테어 스타일의 코미디로 바꾸어 대성공을 거둔 뒤, 단원들은 모두 모여 대스타이자 선배인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 순간은 한 개인에 대한 감사의 의례라기보다는 영화의 역사에 관한 의례에 가깝다. 프레드 아스테어라는 한 배우의 퇴장은 뮤지컬 장르의 퇴장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다음엔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