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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내 조감독 4명 중 3명이 미쟝센 출신이다”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8-06-18

미쟝센단편영화제 대표집행위원을 맡은 류승완 감독

미쟝센단편영화제가 6월26일부터 열리는 7회 행사를 앞두고 류승완 감독을 새 얼굴로 내세웠다. 2002년 1회 때부터 줄곧 영화제를 꾸려왔던 이현승 감독이 명예집행위원장으로 한발 물러서는 대신 류승완 감독이 대표집행위원을 맡아 박진표 심사위원장 등과 함께 올해 축제를 이끌게 된다. 1년 동안 한시적으로 대표집행위원을 맡게 됐지만, 신작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후반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입장이니 부담이 적지 않을 터. 게다가 영화제 규모 또한 몰라보게 커졌다. ‘장르의 상상력展’이라는 소규모 이색 영화제는 이제 출품작이 740여편에 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됐다. 몸을 둘로 쪼개야 할 만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촛불집회에 나가 시민들과 어깨를 함께 겯는 일도 마다않는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72시간 연속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했다. =나간다는 말만 해놓고 그동안 못 나갔다. 72시간 연속집회도 별다른 징후가 없었으면 부채감을 한번 더 안고 말았을 거다. 그날은 시청 앞에 특수공작임무부대원 분들도 나오신다고 해서 큰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간 거다. 결국 CG 작업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스크린쿼터 축소 및 FTA 체결 반대 목소리를 냈던 영화인들이 이번에는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대신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면 오히려 누를 끼칠까봐 그렇게 안 하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문제로 거리에 나갔을 때도 쌀, 쇠고기 다 있었던 이야기잖나. 방법이 좀 다르면 어떤가. 신념 갖고 옳은 일을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으니 좀더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났을 텐데. =이전에 10대들은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저러고 마는구나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오호∼. 진짜 문제는 기성세대들이구나, 기득권자들이구나 알겠더라. 근데 <한겨레21>이나 <시사IN> 인터뷰 말고 <씨네21> 인터뷰를 하자. 반정부요인처럼 비쳐지면 안 된다. (웃음)

-이런 발언들을 공개적으로 하는 게 꺼려지나. =시민 자격으로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그런데 영화나 잘 만들라는 핀잔 들을까봐 걱정된다. (웃음) 직업 때문에 내 한마디가 피를 토한 누군가의 한마디보다 더 부각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분들도 있잖은가. 난 그저 쇠고기 안전하게 먹고 싶고, 우리 애들이 영어 안 배워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건데.

-거리에 나간 건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도 작용했을 것 같다.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고. =어제는 애들 머리에서 이와 서캐를 소탕했다. 물대포를 좀 쏜 거지. 물대포는 이 잡는 데 쓰는 거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의 특수효과상은 어청수, 올해의 코미디상은 2MB에 줘야 한다고 답한 걸 보고 많이 웃었다. 요즘은 일부 종교인들까지 올해의 마케팅상을 노리더라. =물대포 맞은 사람들이 빠당빠당 넘어지는데 안전하다는 게 말이 되나. 경찰이 그런 훌륭한 스턴트 특수장비를 개발했다면 영화계가 반성해야 한다. 파란 지붕 아래 계신 분들은 연일 유머를 날려주시는데 가관이다.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마태복음 구절 인용하면서 자신들을 예수로 치환하는 독선의 정치인들이나 고작 여중생 두명 죽었는데 촛불집회 한달 이상 하는 한국은 몇 십명 쏴 죽인 조승희를 용서하는 미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하는 목사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종교계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니. 자꾸 국민 수준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백번 양보해서 수준 낮은 국민이라고 하자. 근데 수준 낮은 국민은 국민 아닌가. ‘그렇다고 대통령을 바꾸냐’는 한나라당 의원의 말에 ‘그럼 국민을 바꾸냐’는 한 시민의 인터넷 댓글을 보고 속시원했다.

-여러모로 올해 6월은 바쁜 때일 것 같다.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얼마 전에 맡았다. =집행위원장이 아니라 대표집행위원이다. 집행위원장이라면 영화제 성격을 규정할 정도의 권위가 주어지는 자리이고. 이현승 감독님이 나보고 심사위원 할래, 대표집행위원 할래 해서 작업 때문에 대표집행위원 하겠다고 한 거다.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감독들도 예비군 모임 성향이 강하다. 다들 6월이 되면 아 때가 왔구나 한다. 시간있고 타이밍 맞으면 차출되는 거지. 굉장히 자유로운 강제 조항이다.

-7회 영화제까지 오면서 집행위원, 심사위원들을 맡았던 감독들이 지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왔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감독들이 책임을 맡아도 편하게 생각한다. 그런 말 자주 하는데 우리 노선이나 심사원칙이라는 게 그날 기분따라, 내 취향따라다. 가끔 심사하러 오는 길에 차가 막혔느냐, 안 막혔느냐도 영향을 미친다. 너무 막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2, 3명의 심사위원들이 합의하고 특별심사위원들의 조언을 듣는 방식이지만 말이다. 확실한 건 미쟝센은 심사위원들도 관객으로서 즐기는 영화제다. 엄숙한 기준 아래서 100점 만점에 얼마 이런 식으로 점수 매기고 상 주는 게 아니다. 밀실 공작 하듯이 비밀을 숨겨가며 우리 권위를 유지해야 해 하는 식이었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대상 줄 영화가 없으면 안 주는 것이고, 와 이건 그냥 떨어뜨리기 안타까우면 아차상 특별 제정하고. 3회 때 <인비져블1: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영화는 새로 시나리오상을 만들어서 줬다.

-장르영화제를 표방해서 다른 단편영화제들과 차별점을 확실히 한 것도 주요 성공 요인이다. =사회드라마라는 억지 장르까지 만들었으니까. (웃음) 처음 시작할 때는 독립영화 진영에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미쟝센 덕분에 국내영화제들의 특색이 더 뚜렷해진 것 같다. 인디포럼은 장편쪽에 무게를 싣고 있고, 인디다큐페스티발이나 환경영화제들도 색깔이 분명해지고. 관객도 이 영화제 가면 뭘 볼 수 있겠구나 기대하게 되고. 과거에는 영화제간 영역이 분명치 않아서 사실 단편 하나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천에서 만나는 단편들을 부산에서 상영하는 경우도 많았고.

-미쟝센영화제는 단편을 만드는 후배들에게 가교를 제시한 측면도 있다. =1회 때 절대악몽 섹션의 <사춘기>를 보고 다들 촬영 누가 했느냐 했다. 이모개 촬영감독이 픽업된 가장 큰 계기다. 구본웅, 정인기 선배 같은 배우들도 활동영역을 더 넓힐 수 있었고. 나홍진, 윤종빈, 김한민 같은 감독들도 있고. 현재 진행 중인 내 영화 조감독 4명 중 3명이 미쟝센 출신이다. 자극받는 영화들을 보면 감독 입장에선 어떻게든 저 친구의 감성을 좀 뽑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미쟝센영화제가 좀더 일찍 생겼더라면 본인의 영화도 더 빨리 주목받지 않았을까. 한두번 상영 뒤 세상에서 사라진 <변질헤드>도 더 많은 관객을 만났을 테고. =진작에 날렸겠지. (웃음) 근데 <변질헤드>는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예선에서 주저없이 떨어뜨렸을 거다.

-심사위원으로서 영화제 초창기부터 4년 동안 활동했다. 본인의 취향이 강하게 작용된 상영작이 있다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박준형 감독의 <어느날>은 사실 엄숙한 영화제에서는 상영될 수 있을까 싶은 영화다. 특히 코미디 장르가 상영되는 희극지왕 부문에서는 낄낄대고 볼 수 있는 엉뚱한 영화들이 대거 올라온다. 3년 전 이진우 감독의 <만사형통>이 그러하고. 2006년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 특별상을 받았던 이상근 감독의 <베이베를 원하세요>는 원래 예심에서 떨어진 영화였다. 상영작 편수를 고려해서 예심에서 떨어진 영화들을 다시 훑어보다가 놓치면 평생 욕먹고 후회할 뻔한 영화를 발견한 거지. 절대악몽 부문에서 2004년에 상영됐던 애니메이션 <절규>의 이미지는 지금도 생생하고.

-최근 몇년 동안 단편, 장편 할 것 없이 액션 장르를 표방한 영화가 굉장히 많았다. =양적으로는 많아졌지만 <올드보이의 추억>이나 박준형 감독이 만든 버스터 키튼식 영화들을 만나는 게 좀 힘들다. 눈 돌아가는 액션은 많지만 그 액션을 구성하는 앞뒤 상황이 아쉬울 때가 많다. 공포판타지 쪽도 그렇고. 뭐 그런 비판은 나한테도 해당되는 말이니 그 얘긴 그만 하자. (웃음)

-다른 부문과 비교하면 어떤가. =멜로드라마 섹션인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만 해도 올해 상영작 중에 노인 동성애 커플을 비롯해서 다양하게 끌어올 수 있는 소재나 설정이 많다. 반면에 액션과 공포는 형식적인 세공술까지 따라붙어야 사람의 심리를 흔드는 물건이 나온다. 얼마 전에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뵀는데, 액션영화 감독들은 캐라(연출료)를 두배 줘야 한다도 하시더라. 우리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데라고 하시면서.

-형식적인 세공이 이른바 때깔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테고. =연출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심사위원들끼리, 충무로 스탭들이 모여서 때깔 과시하는 시도는 제쳐두자고 말 많이 한다. 동네 친구들하고 6mm카메라로 거칠게 만들었어도 정신이 담긴 영화들이 있다. 우리가 지지하는 영화는 웰메이드라기보다 현장의 쾌감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단편들이다. 자기 학교의 자재들을 가져다가 몇년 동안 집 안에서 끙끙대며 우주비행선 세트를 만든 <편대비행>이나 자기 시력이 다해가는데도 건물 위를 뛰어오르는 박준형 감독의 영화처럼 말이다.

-그런 활력들은 충무로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충무로가 영화공장화된 것이 역으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재능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영화 만드는 일이 안정화되면서 전반적으로 맥이 없어졌다. 누군가는 <데어 윌 비 블러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예로 들며, 산업적인 안정화가 돼야만 이런 영화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할리우드는 아니잖나. <여고괴담> <조용한 가족> <정사>가 나왔던 1998년, 그 전후로 나왔던 <비트>와 <쉬리>, 그리고 <초록물고기>와 <공동경비구역 JSA>까지. 억눌렸던 감성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던 시기를 돌아보면, 한국영화의 에너지는 불안한 위기를 영화로 돌파하면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 또한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반성한다.

-내년에 심사위원을 하게 된다면 어떤 부문을 맡고 싶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같은 섹션도 한번 해보고 싶을 텐데. =<클로저> 같은 영화는 김지운 감독이 정말 여러 번 추천했는데 뒤늦게 봤을 정도다.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다. 사회드라마 섹션인 비정성시도 관객으로서 보는 건 좋지만 막상 심사하라고 하면 심사가 뒤틀릴 것 같다. 희극지왕이나 절대악몽이나 4만번의 구타가 그래도 좋은데. 희한하게 매년 좋은 영화들이 특정 섹션에 몰린다. 올해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액션스릴러나 공포판타지가 강세이지 않을까. (웃음)

-<다찌마와리…>는 얼마나 진행했나. =1차 편집 끝내고 4주 동안 후시녹음을 했고. 지금은 음악과 CG 작업 중이다. 자막만 해도 4개 국어가 등장하니까 좀 복잡하다. 스위스, 만주, 미국 등등.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 보고 하자. 더 이야기했다가는 강(혜정) 대표에게 혼난다.

-이대로 갔다가는 나도 편집장한테 혼난다. 단편처럼 코믹한 분위기가 주된 정서인가. =완전히 다르다. <야차>가 좀 밀리면서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시나리오를 썼는데, 나와서 돌렸더니 낄낄대며 보기에 그럼 이걸 해볼까 한 거다. 코믹도 아니고, 배경이랑 캐릭터도 다 다르다. 단편이 깡패영화였다면, 이번에는 첩보영화다. 단편은 1960년대 한국 갱스터영화들을 참조했다면 이번엔 1970년대 스파이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었다. 부제는 박노식 감독의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에서 따왔는데 별 의미는 없다. 처음엔 ‘다찌마와리 자크를 채워라’로 할 생각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진 스파이영화들은 007 시리즈의 흥행 때문이었다. =일부러 들어가기 전에 007 시리즈를 다 봤다. 에코가 논문도 썼듯이 너무도 명확한 플롯 라인이 다 보이더라. 우리도 한번 007을 해보고 싶은데 조건은 안 따라주는 상황에서 절박하게 만든 게 1970년대 스파이영화들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회의하면서 그때 제작자들처럼 예산을 제한해놓고 이 환경을 돌파하면서 엉뚱하게 나온 것들을 끌어들여보자고 하곤 했다. 회의하면서 사기 재떨이 갖다놓고 ‘(예산이) 뭐 얼마?’ 하는 식으로 공포 분위기도 조성해보려고도 했고. (웃음)

-임원희, 안길강, 류승범 등 단편에 출연했던 주요 배우들이 고스란히 나온다. =단골 배우들이니까. 내가 대본을 안 줬는데도 본인들이 그냥 운동하고 몸 키우더라.

-<다찌마와리…>는 투자를 확정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영화계가 힘든 시기에 직접 제작사를 운영해야 하니까 이중고일 텐데. =처음에 시나리오만으로는 영화의 재미를 잘 못 느끼더라. 그렇다고 내가 그 앞에서 직접 시연할 수도 없잖나. 제작사 상황이야 안 좋지. 요즘은 해외영화제 가도 제작사가 부담해야 한다. 사실 <짝패>로 베니스에 가서 손만 안 흔들었어도 손해는 안 봤는데. 갔다와서 대종상에 주력했어야 했는데 그랬다. <씨네21>에서 한번 기획으로 다뤄달라. ‘영화제 다녀와서 제작사 허리 휘청’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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