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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라

제4회 환경영화제, 5월17일부터 23일까지 상암 CGV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든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처음 받았던 충격은 점차 줄어드는 대신 대자본에 의한 경영 논리, 즉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산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오염된 환경과 그로 인한 이상 기후와 환경적 재난에 더 익숙해져서 원래 지구의 모습과 자연의 법칙들을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환경 운동은 그것을 전문적으로 맡아하는 누군가의 몫처럼 여기게 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인의 여가시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를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나 환경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가는 환경영화제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거리두기와 다른 각도에서 보기를 통해 행동을 촉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4회를 맞는 서울환경영화제는 ‘생생한 지구를 위한 영화 선언’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5월17일부터 23일까지 상암CGV에서 개최된다. 서울환경영화제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단편 등 장르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적 결과물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SOS, 우리를 구하는 환경영화 545편

이번 서울환경영화제는 55개국에서 545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이것만 보아도 전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영화적인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들 중 19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경쟁부문인 ‘국제환경영화경선’에서는 세계 환경영화의 최근 경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비경쟁으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널리 보는 세상’, 앞으로 환경의 주인이 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구의 아이들’ 그리고 서울환경영화제가 사전제작을 지원한 디지털 환경영화를 상영하는 ‘환경영화 사전제작 지원’이 매년 이 영화제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올해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저조한 국내에서 환경영화 제작을 독려하고 그런 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마련된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이 새롭게 신설되었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은 <SOS-우리를 구하는 단편영화>인데, SOS란 Save Our Selves 의 약자로 아프리카를 위한 빈곤 퇴치를 위한 대형 공연 등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케빈 월이 주창하고, <불편한 진실>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특별 강의를 펼치는 모습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던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가 동참한 세계적인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오는 7월7일 7개 대륙에서 24시간 동안 7개의 공연을 개최할 초대형 콘서트 라이브 어스(Live Earth)와 6개 대륙의 60명의 감독이 참여하는 SOS 단편영화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환경영화제는 그러한 실천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지구 온난화를 주요 화두로 삼고 있는 그 작품들 가운데 6~7편을 선정하여 개막작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솔튼호의 재앙과 희망>

‘국제환경영화경선’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솔튼호의 재앙과 희망>은 환경다큐멘터리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캘리포니아의 리비에라’가 되기를 꿈꾸었던 관광명소 ‘솔튼호’(Salton Sea)는 지금은 최악의 환경파괴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다. 크리스 메츨러와 제프 스프링어가 공동으로 연출하고 독립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존 워터스가 내레이션을 맡은 이 작품은 인간의 손으로 탄생한 솔튼호가 오염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과정을 찬찬히 쫓아간다. 감독은 낚시의 명소이자 아름다운 휴양지였던 솔튼호에 농업 폐수와 쓰레기들의 난입으로 인해 아름다운 호수가 오염된 늪으로 변해가고 악취의 근원지가 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교훈만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솔튼호 주변의 독특한 지역 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쓰레기들을 모아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괴짜 예술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솔튼호의 흥망성쇠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전락하는 모습을 환경오염을 매개로 은유적으로 조롱하며 까발리는 작품이다.

장편다큐와 단편애니가 함께 경쟁

경쟁부문에는 장편다큐멘터리가 주류를 이루지만 극영화와 단편애니메이션도 함께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특별한 소포>와 <그들의 바다>는 짧지만 강력한 인상을 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독일 작품인 틸 노박 감독의 <특별한 소포>는 환경보호론자의 이상을 다루고 있다.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에게 어느 날 소포가 배달되고, 정체불명의 소포를 들여다보던 노인은 그것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축소판임을 알게 된다. 공장의 매연으로 인해 스모그가 가득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던 노인의 해결책은 비현실적이지만 몽환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동화적인 결말을 맺는다. 이 작품은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동시에 디즈니, 드림웍스, 픽사나 재패니메이션에 길들여진 한국의 관객에게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김운기 감독 작품인 <그들의 바다>도 반갑게 다가온다.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망망대해 위에서 고독한 노인의 사투를 그린 이 작품은 독특한 필치로 거센 폭풍 뒤에 숨어 있는 환경오염의 주범을 밝혀나간다.

‘널리 보는 세상’에서 소개되는 잉에 알테마이어와 라인하르트 호르눙 감독의 <언제나 코카콜라>는 독일월드컵 경기장에서 즐겁게 코카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을 렌즈에 담는 것으로 시작해서 FIFA의 공식후원자인 코카콜라가 전세계의 환경오염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폭로하는 작품이다. 인도의 코카콜라 공장이 절대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의 수자원을 거의 무료로 갈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농민들이 농지를 잃고, 생활용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콜라의 청량감은 더이상 소비자의 갈증을 달래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코카콜라의 제조 과정 뒤에 숨겨진 반환경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주의적 착취구조를 드러내면서 상품의 표면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음모와 책략에 눈뜨게 한다.

<불편한 식사>

설경숙 감독의 <불편한 식사>는 채식주의에 대한 정보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라는 개인적인 계기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한국사회에서 ‘나는 채식주의자입니다’라는 말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거센 반감과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여는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한 인터뷰이의 말을 통해 채식주의자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불편함을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감독은 자신이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단순히 채식의 장점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육식산업이 환경과 건강에 끼치는 해악까지 파악하게 된다. 감독은 결국 채식이란 단순히 식성에 대한 취향이나 동물에 대한 동정심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농축산 산업의 구조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이며 환경보호 실천의 일환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NHK>에서 제작한 <기후의 위기> 시리즈는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물이다. <기후의 위기: 미래에서 온 경고>는 일본의 슈퍼컴퓨터 중 하나인 어스 시뮬레이터(Earth Simulator)를 통해 향후 100년간의 지구의 평균 기온이 4.2도가량 상승하고 태풍과 허리케인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변화할 것이며 엄청난 재앙이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근간 실제로 경험한 이상 기후와 대규모 해일 등이 이 시뮬레이터를 통해 미리 예고된 바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전망이 매우 가능성 높은 미래의 모습임을 입증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속에 가상적으로 구현되었던 장면들이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 속에서 실제로 재현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 외에도 이번 영화제에서는 환경운동의 대표적인 단체인 그린피스의 역사와 활동 상황, 캠페인 등을 담은 영상을 소개하는 ‘그린피스: 무지개의 전사들’이 기획되어 있고, 워크숍을 통해 그린피스의 활동에 대한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도 마련된다. 또 ‘양심있는 창작’이라는 모토를 내세워 독특하고 재미있는 플래시애니매이션을 선보이고 있는 ‘프리레인지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특별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프리레인지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감독인 루이스 폭스의 강연을 들어볼 수도 있다. ‘속깊은 동물 친구’ 섹션은 지구 위에서 인간과 공존하면서도 인간의 이기심이 저지른 환경오염의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영상을 통해 다시 생각하도록 할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특별전과 강연, 워크숍을 통해 환경과 영상이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즐거움을 접할 기회들이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지만 언제나 세상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의 모습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들이 관객이 영화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잊혀진다면 영화의 소망은 그 어둠 속에 밀봉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환경영화제가 초점을 맞추는 이슈들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가장 행복한 환경 속에 영화의 소망들을 오래오래 구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틀을 제시한다. 이번 서울환경영화제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런 소망들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친지구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적극적인 축제와 교육의 마당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프리 레인지 스튜디오 특별전

<미트릭스>부터 <스토어 워즈>까지

제4회 서울환경영화제는 ‘양심있는 창작’이라는 기치 아래 인권, 환경 등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프리 레인지 스튜디오의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가상실제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를 직시할 것을 촉구했던 SF영화 <매트릭스>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 시리즈는 농가에서 사육되던 돼지 리오가 소 무피우스의 방문으로 공장화된 축산 산업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에 대항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육류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축산 시스템은 가축을 열악한 사육환경과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 등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육류를 생산해내고, 이는 소비자들의 건강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편으로 제작된 이 플래시애니매이션은 현실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줄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육류와 유제품이 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후원하고 올바른 제품을 선택하도록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스토어 워즈>는 한 슈퍼마켓에서 유기농 큐컴버 스카이워커, 오비원 카놀리, 햄 솔로, 레티스 공주 등이 대량생산된 농축산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는 스토리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다. <스타워즈>의 명장면들이 채소와 저장식품 등을 활용해서 기발하게 재현되는 것을 보면 그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우주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들의 몸에 해악을 초래할 수 있는 대량생산된 농산물 대신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햄버거의 과거>에서는 우리가 즐겨먹는 패스트푸드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며 <바이오다버시티 코드>는 <다빈치 코드>를 패러디하여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프리 레인지 스튜디오의 작품은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을 패러디함으로써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환경문제가 우리의 식탁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관객이자 소비자인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