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난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0년 초 잠시 만났던 적이 있다. 영화공간 1895라는 단체였는데 영화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고 그랬었다. 당시 대학 시험에 막 붙은 나는 어디서 신문광고 같은 걸 보고 그 단체에 불쑥 들어갔다. 어렴풋한 기억에, 영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전양준(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 넘버1이었고 대학 졸업반 김영진은 넘버2나 3쯤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가끔 나와서 목소리를 깔며 회원들 세미나를 시켜주곤 했었다. 경계심이 드는 인물이라 그 후로 연락은 안 했다. 얼마 후 그는 평론가가 되어 있었고, 내가 영화를 계속 하면서 가끔 보게 되었다.
인터뷰는 광화문 ‘미로스페이스’ 극장과 그 안에 있는 호화로운 바에서 이루어졌다. 동석한 정재혁 기자가 옆에서 실시간으로 타이핑한, 경어와 막말이 뒤섞인 현장의 기록이 왠지 생생한 것 같아 그 분위기 그대로 그냥 구술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김영진 평론가와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정윤철: 지금으로부터 딱 8년 전 그러니까 2000년 4월13일. 필름2.0 <김영진의 러프컷> 컬럼을 시작하면서 ‘나는 훌륭한 평론가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김영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윤철: 칸영화제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이랑 밥도 먹었다는데, 그런 거 보통 평론가 수준에서 힘든 건데... 김영진: (웃음) 베르톨루치랑 밥 먹어야 훌륭한 평론가냐? 후배나 학생들에게도 하는 얘기지만, 나는 독자로서는 일류라고 생각해. 뭐가 좋은 글인지, 평론인지. 남들보다 많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평론가로서는 나는 결코 일류는 아닌 거 같다. 겸양의 표현이 아니고. 영화도 일류, 걸작이 많으면 좋겠지만, 이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쟁이도 기본이 되어있는 이류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어야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글을 쓰는 자세와 직결되는 거고, 그래서 비교적 섬세하고, 일정하게 성실한 평론가로서는 살아갈 수 있는 거 같다. 어떤 자기 다짐이죠.
정윤철: 8년 전의 김영진과 지금의 김영진은 달라졌는지, 아니면 똑같은지? 김영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영화를 보는 경험에 빗대어 말하면, 점점 영화 속에서 남들이 고통을 받는 걸 보는 게, 이젠 생각 이상으로 괴롭더라고. 내가 보수적으로 변하가나, 라는 생각도 했는데. 이를테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나 <블러디 선데이>. 정말 괴로운거야.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고통을 다루는 좋은 영화도 있지만, 거꾸로 고통을 구경꺼리화 시키는 것들. 그런 건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 책임감이 더 많아졌다고 할까. 내 스스로. 영화에서 다뤄지는 기쁨과 고통에 대해 더 신중하게 의식한 상태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윤철: 그때에 비해 세상을 좀 더 단면이 아닌,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보려는 경향이 생긴 건 아닌지. 김영진: 꼭 그렇게 이야기할 순 없고. 아무래도 7, 8년 더 살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아. 30대는 질풍노도처럼 살잖아. 뭐든지 대드는 기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쁘게 말하면 소심해지고, 좋게 말하면 책임감 있어진 거. 영화를 보고 가짜 같다고 느끼면, 그게 아무리 테크니컬하게 잘 만들어도 동하지 않는거야. 굳이 보고 싶지도 않고. 그런 차이가 있는 거겠지.
정윤철: 자신을 훌륭한 평론가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훌륭한 평론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김영진: 이를테면, 수잔 손택이나 존 버거. 수잔 손택의 <어게인스트 인터프리테이션>이란 책을 좋아하는데, 그 책을 읽어보면 참 좌절스러워. 저 사람은 어떻게 자기가 접한 예술의 경험을 분방하면서도 유려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변에 깔린 교양이란 게 참 깊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존 버거도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란 책을 보면, 그게 피카소론인데, 피카소가 속한 시대와 피카소 개인의 작품 궤적을 다 짚어내는 거야. 굉장히 차분한 비평 에세이 속에서. 그 책을 읽으면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의 미술사가 보이고, 피카소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전개 형태가 다 어우러지는 거지.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어, 대학생이 읽기에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 지성과 감성이 이성적으로 조화를 이룬. 지성만 있고 감성이 없거나, 감성만 있고 지성만 잇으면 좀 추해보이잖아, 자기 감성이 과하면. 자기도취 비슷해져서. 편안하게 자기 속에 흡수시켜 물 흐르듯이 쓰는 거. 앙드레 바쟁이나, 로든 후드. 한국의 정성일을 보면, 그들의 모든 글들을 다 모아놓으면 아무개적인 무엇이 형성돼. 그들이 굳이 론을 주장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이 훌륭한 자질인 거 같아. 나는 그런 깜냥은 아닌 거 같고... 스스로 너무 확신에 차서 하는 것도 문제고 추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글을 쓰면서 골격을 잡아가는 거, 나는 아직 그런 평론가는 못된 것 같아. 어떤 평론가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영화란 무엇이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 그런 게 훌륭한 거겠지. 내 글은, 비교적 영화라는 대상에는 충실한 것 같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겸손하게 자세를 수그리고 대화를 청하는 거.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한 평론가의 모든 글을 묶어서 읽어보면 독자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상을 갖게 되는 거. 그런 통찰이 있는 사람이 좋은 평론가가 아닐까.
정윤철: 르누아르는 ‘모든 영화감독은 하나의 영화를 찍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모든 평론가도 결국 하나의 평을 쓰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는지. 김영진: 그럴 수 있겠지.
그러면서 그는 수잔 손택의 <어게인스트 인터프리테이션>,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이류를 좌절시키는 일류 문화 평론가들의 명저로 꼽았다.
정윤철: 당신은 언젠가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번역본 서평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평론은 언제나 작품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평론이 평론이 아니라 이론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1960년대 구조주의 열풍 이후 한 때 영화계의 신념이 되었다. 검증될 수 없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며, 영화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3류 저널리즘의 인상비평에서나 할 짓이다라는 통념은 오늘날에도 완강하게 통용되고 있다. 영화보다 평론가의 자의식과 지식이 더 돋보이는 평론은 그래서 불편하다. 이게 동시대의 대중뿐만 아니라 동업자들끼리도 평론을 잘 읽지 않는 이유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평론의 위기일 수도 있는데, 한국영화 평론이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지요? 김영진: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갈수록 역할이 위축되고 있는 건 사실인데, 영화감독은 자기만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엔 언론이나 평론의 역할이 컸었다. 90년대 초반, 중반만 해도 한국영화의 세가 미약했고, 한국영화를 평하는 글도 많지 않았다. 자료를 찾아봐도 80년대의 임권택 감독 영화 평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원고지 10매짜리, 하나마나한 인상평이 전부. 90년대 초반까지 그랬다. 지금처럼 일정하게 주목받는 수준의 영화가 나왔을 때, 많은 평론이 제출되는 건 감독들에게도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씨네21>이 나올 때만 해도 한국 배우 표지에 넣는 것에 우려가 많았다. 잡지 팔리겠냐고. <로드쇼>나 <스크린>만 해도 한국영화는 맨 뒤에 있었으니까. 어떤 영화가 나오면 감독 인터뷰하고, 그런 관행이 생긴 게 90년대 중반 이후다. 물론 허와 실이 있지만, 한국영화가 좀 더 대중에게 주목받는, 문화 권력으로 상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비평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위의 로저 에버트 서평에서 한 얘기를 좀 더 설명해 달라. 김영진: 그건 철저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한 얘긴데, 한국의 젊은 평자들을 의식한 걸 수도 있고. 대학원에서 공부한 애들. 이 친구들이 기본적으로 현학적-정성일씨한데 오리엔트된 것도 있고- 폼을 잡는 경향이 강해. 좋은 평론을 읽고 있으면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거 있잖아. 그게 평론의 1차적인 역할 아닌가 싶어. 글은 좀 부족해도, 읽다보면 해당 장면이 생각나면서 영화를 체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어떤 씨네마틱 경험이랄까... 그게 매개자로서의 역할이지. 요즘 평론들은 그런 걸 방기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낯뜨거운 칭찬이거나, 아니면 자기 안에 갇힌 비판이거나. 영화라는 덩어리를, 호기심을 갖고 기본적으로 매혹시키는 글들이 드물지. 그런 면에서 나는 내공이 좀 부족한 거 같아. 성일이 형의 글은, 요즘은 질려서 잘 안 읽지만, 읽다보면 기본적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지잖아.
고양이를 그렸는데 호랑이를 그리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곤란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정:감독들이 가장 불만을 갖고 있는 건 평론가들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딱 찍어서 부풀려서 그게 전체인 양 말한다는 점이다. 평론가들은 우선 철학이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틀에서 영화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워낙에 연출에 대한 미학적인 언급이 없으니까 감독에겐 별 자극이 안 되죠. 어차피 시나리오에 다 있는 거 시나리오 읽고 비평을 써도 같은 내용이 될 거란 생각이 드니까. 영화 자체의 스타일이나, 구조, 그런 거에 대해 언급이 너무 없는데,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미학적인 비평은 누구의 몫입니까. 교수입니까. 김영진: 평론가들이 해야죠. 지금까지 그런 걸 안 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입장에 서거나, 윤리적인 입장에 서면서 스토리위주, 그게 더 세지면 플롯 위주로 평론이 전개되는 문제가 있죠. 감독의 윤리적 입장을 보더라도 그걸 컷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컷과 컷이 연결될 때, 그 장면의 프레임 구성, 전체적인 미장센 등을 통해 읽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평론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나도 그런 평론은 싫어하고 읽기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감독들에게 바라는 건,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되어서 거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이미지로 무엇을 보여줄지 성찰을 하는 감독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건 불만이다. 사실 커머셜 영화에서도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 게 많으면 재밌는데.
정윤철: 평론을 쓸 때, 누구를 대상으로 씁니까. 김영진: 일차적으로는 감독과 어떤 이상적인 독자들. 감독이 일단 진원지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독자들이 2,3천명 정도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그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오버일 수도 있는데, 2,3백이든 2,3천이든 이상적인 독자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해.
정윤철: 상당히 독특한 방법인데, 언제 창시한 건지? 김영진: 창시했다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지. 글을 쓰면서, 젠장, 내가 독백하는 거 아냐? 자괴감이 들 때가 있잖아. 기본적으로 감독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서 쓰는 게 있고, 감독이든, 촬영이든, 배우든, 만든 사람들과, 하지만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나 말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면 글을 못 쓸 것 같다.
정윤철: 어쨌든 한국영화평론은 영화의 상호텍스트성에만 관심 갖고, 그걸 통해 한국사회를 읽어내려고 하는 데에 너무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한국의 80년대를 뚫고나온 이념들이 문화비평으로도 많이 투영된 거 같은데. 김영진: 그런 걸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너무 굵게, 크게, 노는 론들을 싫어합니다. 그런 걸 가장 실감하는 게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다. 부산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진행자를 맡아 하고 있는데, 정말 절실하게 느낀다. 예를 들어 어떤 중국영화를 봤다고 하면, 관객 질문이 ‘이건 80년대 이후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주의 중국의 병패를 훑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추상화시키는 거. 역사를 무조건 거대담론화 시키고 추상화시키는 거,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개별성으로서의 영화를 무의미한 보편성으로 환원시키나, 그런 생각이 들지. 그래서 그런 질문하게 생긴 사람은 안 시키려고 하는데, 가끔 실패하잖아. 순진해 보여서 시켰는데, 그런 질문 하면 속으로 낭패군, 하지. 오히려 영화제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사소한 질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때가 있어. 아까 그 중국영화를 예로 들면, 영화에서 사람들이 케이블카로 왔다 갔다 하거든. 이쪽과 저쪽을. 그게 신선했어. 그래서 내가 개입해서 케이블카를 출퇴근용으로 쓰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질문했더니, 감독이 5분, 10분 대답을 하는 거야. 그 공간을 어떻게 찾았고, 에피소드를 어떻게 구상했고, 당시 상황이 어땠고. 난 그런 게 영화를 보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을 잡아 끈 어떤 하나의 이미지에서 영화를 분석하는 키워드, 영화로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좋지아니한가> 같은 경우 그것은 영화 처음에 나오는 가족들 뒤통수 샷이었고.
정윤철: 3년 전,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구달이 한국에 왔을 때 강연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대학원생이 침팬치, 오랑우탄, 고릴라를 다 엮어서 장광설을 편 다음에, 자신의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뭐 이런 식의 질문을 하더라. 담론화시키고, 분석평가하는 질문. 제인구달은 ‘그럴 수도 있겠군요’ 식으로 10초도 안 되서 대답을 끝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일어나 ‘아프리카에 침팬치가 얼마나 살아있나요‘라고 질문했더니 굉장히 반색을 하면서 한참 동안 답변해 주더라. 김영진: 베리 임포턴트 퀘스천이라고 했다지?
정윤철: 제인구달이 먼 우리나라까지 와 강연을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대학원생이 아닌 아이가 짚어낸 거죠. 영화에서도 감독이 보지 못한 걸 짚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를 짚어내는 게 먼저인 거 같아요. 김영진: 그렇죠. 평론가들이 감독이 의도한 걸 읽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때로는 정말 엉뚱한 걸 수 있어요. 또 평론가가 자기를 너무 드러낼 때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이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만나고, 굳어있는 생각에 영화를 집어넣으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거지. 자기의 생각 덩어리가 영화를 만나 네모가 될 수 있는데, 그게 중요한 건데, 영화를 먼저 자신의 동그라미 안에 집어넣으려는 거야.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글을 쓰려는데 그저 ‘이게 뭔가’ 싶더라고. 그래서 첫 문장도 이렇게 썼다. 이게 뭔가... 그런 식으로 풀어나갔지, 차근차근. 그랬더니 부산영화제에서 오광록 선배가 술이 완전 취해 말을 걸어왔는데 ‘첫 문장이 죽였어~’라고 하더라. 자기도 영화에 출연했지만 영화를 보구 나서, ‘이게 뭔가’ 싶었다고. 왓 이즈 디스.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자기가 영화를 규정하고 들어가는데, 그러기 보다는 자기를 당혹시키는 것을 따라서 영화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당혹한 게 있다면, 당혹 한 거에서 시작해야 한다? 김영진: 쉽게 말하면 오픈 마인드인데, 너무 뻔한 말이니까.
정윤철: 미학적인 비평과 정치적인 비평이 다 중요하지만…. 김영진: 뭐든지 경계를 나누는 건 불만이예요. 정치적 비평, 미학적 비평. 그렇게 나뉠 수 있는 비평은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비평은 윤리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섬세한 비평은 명시적이지 않아도 두개를 다 건드린다. 이데올로기 비평이나, 덜 무르익은 정신분석 비평은 짜증나잖아. 라깡 해설서도 아니고. 줄창 그런 개념만 나오면서 영화를 대입시키면 정말 짜증난다. 지젝한테 잘못 배우면 그렇게 되는 거고. 비평의 제1무기는 섬세함인 거 같아. 그러면 어떤 분석 툴을 가져와도 다 훌륭할 수 있다고.
정윤철: 정신분석학적 비평이 요즘 많은 이유는? 김영진: 학문적인 트렌드가 그러니까.
정윤철: 90년대 초반에는 들뢰즈, 구조주의 경향이 강했고. 김영진: 지금은 지젝학파지. 들뢰즈는 돌아가셨고, 현재 플로어에서는 지젝학파가 가장 세니까. 아카데미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지. 지젝을 가져와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그게 주간지에서는 설익은 걸로 보이기 쉽더라구. 20매짜리 원고에서 실제계, 상징계 이런 게 나오면 무의미한 거 같아. 원고지 80매, 100매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저널비평에서 그렇게 쓰는 건 우리나라 밖에 없지 않나 싶어. 앵글로색슨 쪽에서는 전혀 안 써. 그러니까 내가 볼 때 좋은 평론은 작품을 완전히 자기 세계로 분해, 해체, 재조립하는 것보다는, 작품에 더부살이하면서 지적인 코멘트를 붙이는 것이지. 로저 코만이 평론의 역할은 영화에 지적인 코멘트를 붙여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비록 B급 영화만 찍었지만) 어떤 영화인가를 떠나서 말야. 지적이라는 게 현학적이란 게 아니라, 점점 곱씹고 음미할 수 있는 거다. 요즘은 좀 변모하고 있지만 어쩔 땐 저널리즘 평론이 지나치게 아카데믹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저널리즘 평론이 대학원생 페이퍼 같아, 심하게 말하면. 그렇다고 한국영화학계가 엄청 발전했나? 그건 아니거든. 한국의 영화학이 세계적인 수준, 뭔가 선두하고 있어? 그렇진 않잖아. 학회지 활동이 활발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2,30매 원고에서 엄청 아카데미적인 냄새가 난다고. <롤링스톤즈>의 트래비스가 쓰는 글 보면, 엄청난 요설이라고. 그 사람은 그걸로 명성을 얻었어. 씹을 땐 잘근잘근 씹고, 진짜 웃겨. <진주만>을 씹는데, 전투신이 너무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워서 거기 나오는 포탄을 핥고 싶다고 한다고. 표현이 죽여.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쓰나? 대동아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어떻고, 그렇게 쓰잖아. 물론<필름코멘트>라는 잡지엔 진지한 평론가도 많지. 하지만 좀 더 전문적인 원고라 해도 그리 현학적인 문체가 아니라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평론은 딱 그 수준이야. 유럽의 인문학 세례를 받은 문장들, 실제계, 상징계, 이런 식의 문장이 저널리즘 평론에서 난무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봐. 성일이 형 글이 현학적인 것 같잖아. 밑의 애들이 현학적인 것만 따라해. 많은 영향을 끼쳤지. 그런데 애들이 놓치고 있는 건 그의 글의 탄력적이고 선동적인 문체와 유머야. 정성일의 글에는 유머가 있거든. 그건 아무도 따라하려고 안 해.
정윤철: 그런 게 독자들을 평론에서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닌지. 김영진: 그렇다고 생각한다.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 같진 않아. 조금 건방진 얘긴데, 아직 나보다 후발주자 평론가들에게 위협을 느끼진 않거든. 쟤 글을 읽으면서 정신차려야겠다라는 건 없어. 나는 대학생 때부터 정성일 선배 글을 읽으면서 항상 자극받았거든. 내 글이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후배들한테도 자극을 받고 싶어. 얜 누구야? 새로운 고수가 나타났네. 이런 거. 그런데 지금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황진미 글에서 가끔 그런 걸 느끼긴 했어. EBS <새로운 영화, 새로운 시각> 할 때 내가 그 친구를 출연시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거든. 그런데 황진미가 비호감이야. 간부들도 싫어하고, 통제가 안 되거든. 일단 말하면 혼자 발동 걸리는 스타일이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무지하게 싸가지 없게 본다고. 근데 옆에서 보면 귀여워.
정윤철: EBS 뭐요? 황진미가 나온 적 있나 방송에? 김영진: 한 번도 본 적 없냐?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 없구나.
정윤철: 정성일씨가 성균관대 3학년 때 쓴 글을 읽어봤는데, 놀라운 건 지금과 똑같다는 거. 상당히 어렵고, 방대한 인용. 성대 3학년생이란 것만 지워버리면 지금과 완전 비슷해. 그만큼 자기 세계와 스타일이 이미 확립되어 있더라고요. 김영진: 부정적인 영향도 많아. 옛날 <열린 영화> 시절에 쓴 거 보면, 영화는 빠롤 없는 랑그이며, 뭐 이런 식의 표현... 이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공부하고 읽어보면 이해는 되는데, 그런 게 불필요하게 많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거기에 숨는 경우도 있어. <키노>라는 잡지도 참 안타까운 게, 꼭 그렇게 많은 글을 실을 필요가 있었을까. 내용을 1/3로 줄이고, 그 수많은 동어반복의 문장들을 좀 줄이고 했으면... <사이트 앤 사운드>(영국의 영화전문지)는 되게 얄팍해. 아주 정제된 글만 싣는 거지.
그의 거침없음,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만... 아마도 이류 평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듯.
정윤철: 임권택 감독은 영화감독이란 자기가 태워난 곳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평론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영화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김영진: 7살에서 9살 정도까지 영화관에 많이 간 것 같아. 당시 아버지가 실업자였는데 동네 극장과 아는 사이여서, 영화관에 자주 공짜로 드나들었던 거 같아. 아버지랑 손잡고 가는 거지. 아버지도 영화관에 대낮에 혼자 가기는 좀 그렇잖아. 실업자가 할일은 없고. 그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동네에서 아저씨들하고 윷놀이 하고 있어. 당시 실업자가 많았나 봐. 윷놀이 하고 있으면 저녁 드시래요, 부르러 가고. 그럼 엄마는 수제비 끓이고 있고. 당시에 영화를 많이 봤지. 동시상영으로. 문희, 신성일, 신영균 나오는 멜로드라마.
정윤철: 연소자 관람불가인데도? 김영진: 동네극장에 그런 게 어딨냐. 이후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집이 잘 사는 편이 아니라 극장에 돈이 없어서 못 갔어. 극장에 가고 싶으면, 저금통에서 돈 빼서 가고, 나중에 뒤지게 맞고. 저금통에서 핀셋으로 돈을 빼내는 거야. 입장료가 100원인가 그랬는데. 외사촌이랑 보려고 빼냈어. 외사촌 보여주러 간 거면 혼나지 않겠지, 그런게 걔 보는 앞에서 개 패듯이 맞았지. 그러다가 중학생 되면서 용돈에 유도리가 생기니까 돈 생길 때마다 영화를 봤지. 주력해서 본 게 액션영화였어. 오승욱 감독하고 코드가 맞지. 류승완이랑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인터뷰하는데 걔가 막 그런 영화 이야기하니까, 내 기억에서 잊혀졌던 게 떠오르더라고. 거의 다 본 거 같아. 주로 부천의 소사극장에서 봤다고. 안 걸리고 볼 수가 있었어. 중3때는 반장이었는데, 애들 데려가서 봤다가 걸렸지. 교외지도 나온 담임한데. 사춘기 시절에 영화가 나를 매혹시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반역이 아닌 가 싶어. 반역의 정서. 학교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육 받잖아. 유신부터 50까지 학교가 거의 병영시스템이잖아. 탈출구라고 해봐야 책이나 영환데, 영화를 통해 반역의 정서에 동감한 게 있는 거 같아.
정윤철: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동감했겠네요. 김영진: 많이 공감했지. 아마 개별영화로 가장 평을 많이 쓴 영화일거야. 연말영화상 시상식에 왜 <말죽거리 잔혹사>가 없냐고, 그런 식으로도 쓰고.
정윤철: 황진미는 <말죽거리 잔혹사>을 비판했다. <비열한 거리>는 좋지만, <말죽거리 잔혹사>는 당시 마초들의 잊혀진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찌질한 인생을 영화로 보상받게해주는 안좋은 경향이 있다면서. 김영진: 그건 여자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영화같아. 여자들은 여자 나오는 영화에 대해 남자가 뭐라고 하면 그건 남자니까 모르는 거라고 하잖아. 그런 것처럼. 이게 젠더에 치우친 선입관인데, <말죽거리 잔혹사>의 경우, 황진미 식의 평은 좀 오버센스인 것 같아. 그 영화는 숫컷되기에 어쩔 수 없이 편승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영화라고. 마초이즘이란 것의 쓸쓸함. 공허함. 여전히 거기에 실려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속의 남자 개인들. 이런 걸 정확하게 잘 그렸다고 생각해. 오히려 <비열한 거리>는 지식인의 자의식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라고 생각해서 비판했지.
정윤철: 감독의 직접 개입? 김영진: 유하 감독이 투영되어서 지식인의 시선으로 보는데, 그걸 비판했어. 유하 감독도 수긍하더라고. 자기는 영화 끝나고 평론을 읽었는데, 맞는 말 같다고 생각했다고. 특정 인을 비판하는 건 아니지만, 비열한 거리를 황진미가 잘 봣다면, 그것도 먹물의식이야.
정윤철: 고교시절엔 어땠는지? 김영진: 고등학교 때 불꽃을 당긴 게 샘 페킨파야. 주말의 명화 시간에 <겟어웨이>를 보는 데. 엄청 많이 자른 거야. 1시간 10분이야. 그런데도 영화가 엄청 재밌더라고. 마지막에 결말이 너무 충격적이야. 나쁜 짓을 했는데 화끈하게 행복하게 살아. 바이바이 하고 가는 거야. 그 결말이, 이렇게 좋지아니한가. (웃음) 실제 삶이 이렇다는 거. 그래서 페킨파 영화는 다 봤어. TV에서 다 본 거 같아. 결국 고2때, 영화가 정말 매력적이다, 영화로 뭘 해보겠다고 생각했지. 뭘 할지는 모르지만. 집안의 반대로 당장은 못하고 어영부영 대학 다니며 책도 좀 읽고. 문화원에선 상주했지. 졸업하면서 2년간 상주했지. 주로 프랑스 문화원 가고, 독일 문화원도 자주 갔지. 하루에 4,5편을 보는 거야. 12시부터. 그럼 나올 때 쓰러질 것 같아. 하도 영화를 많이 봐서. 공허하기도 하고.
정윤철: 영문자막 보려면 눈 빠질텐데. 김영진: 빠지지. 또 좀 우울해. 문화원 가면 전경들이 있어. 들어갈 때마다 가방을 검사했어. 좌우간 그때 프랑스 영화에 대해서 많이 실망했지. 프랑스 영화가 되게 좋은 줄 알았는데 후진 영화도 많은 거야. 유일하게 당겼던 건 역시 누벨바그의 영화더라. 트뤼포나 고다르가 만든 영화를 보면 형이 만든 거 같은, 내가 아는 형이 만든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금방 만들어진 것 같은 동세대의 느낌. 대학원 졸업하고 강사 1년하다가, <영화저널>에서 평론 쓰다가 <씨네21>에 기자로 들어가 몇 년 있었지. <씨네21>에서도 평론하라고 했는데 기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지. <필름2.0>생기면서 사장인 후배 권유로 옮겼는데 거기선 자유롭게 평론을 할 수 있었어. 정체성을 바꿨고, 그건 성공했다고 생각해. 이제 나를 아무도 기자라고는 안하잖아.
정윤철: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김영진: 있었죠. 고등학교 때도 있었고. 평론을 하면서도, 곧잘 그런 생각을 했죠. 사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존재는 스튜디오 시스템 하의 고용감독. 월급쟁이 감독들... 일년에 한 두편 꾸준히 찍는, 늘 팀이 있고 늘 영화 구상하고 각본 쓰는데 관여하고. 스테이지에 출근해서 영화 찍고 퇴근하고. 50년대까지 일본도 그랬잖아. 그런 감독들의 존재가 부러워. 영화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얘기하는 예술가도 있지만, 나는 그냥 영화를 직업으로 해서 살고 싶어.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는 저예산으로라도 퍼스널한 영화를 몇 편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겸손하게 찍어서, 겸손하게 보여주고 끝나는 영화들.
정윤철: 본능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이마무라 쇼헤이, 최양일 등. 반면 여성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영화에 대한 글은 적은 거 같아 보이고. 김영진: 남자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은 있는 거 같아. 클래식한 영화도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영화를 좋아하니까. 소설도 헤밍웨이를 좋아해. 그런 세계에 친밀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지. 또 에릭 로메르나 이런 감독 영화도 좋아해. 델리키트한 세계. 이마무라나 최양일은, 정말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인 거 같아.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 파워풀하고, 압도당하는 면이 좀 있어.
정윤철: 류승완 감독이 물어봐 달랍니다. 요즘 김영진의 글을 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알겠는데 가끔 그 애정이 지나친 감이 없쟎아 있다, 그리고 교수된 다음부터 글 자체도 좀 두루뭉실해지고 어쩔 땐 너무 범생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영진: 지나친 애정을 보이는 유형의 영화들은 제3의 길이라 명명했던 영화들. 장르의 틀을 끌어왔으나 그 안에서 자기 색깔을 지키려는 중도파적인 영화들. 그런 게 커머셜 영화의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런 영화들을 우호적으로 쓴 건 사실이지.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싫어하는 영화도 많은데? 그런 건 몇 번씩 비판하지. <여친소>도 두세 번 거쳐서 비판했고 <역도산>도 그랬는데. 근데 비판하고 나면 기분이 안 좋더라고. 고양되는 느낌도 없고. 점점 비판을 안 하게 돼. 아예 무시하자. 외면하자. 내가 써야할 영화도 많은데. 최근 1년을 보면 조금씩 외국영화에 대해 쓰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최근 1년간에 한국영화에 대해 굳이 안 써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바뀌고. 그리고 굳이 변명을 좀 더 하자면, 글을 쓰는 방침의 변화랄까...요즘 한국 영화들이 너무 빨리 극장에서 사라지쟎아. 그래서 개봉전의 평보다는 개봉한 후의 리뷰에 좀 더 신경 쓰고 있죠. 작년의 <강적>, <구타유발자>, <가족의 탄생> 등...나의 글에서나마 한번이라도 더 언급해주자. 그러다보니 아쉬움과 미련이 더 글에 남아있어서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 않을지.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 본단 말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 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 밖에 없어- J.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 中
정윤철: 영화의 탄생시기, 뤼미에르와 멜리에스는 뚜렷이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뤼미에르의 영화는 리얼리즘, 멜리에스의 영화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두 개의 커다란 흐름이 아직 있다고 보는데 한국영화는 너무 리얼리즘 쪽에 치우치는 게 아닌지, 비평도 그걸 더 중요시하고. 김영진: 그런 강박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자기 개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경향들이 나타난 거 같아. <세상 밖으로>같은. 이런 영화를 분단의 현실을 야유하면서 가는데 장르적인 패러디와 겹쳐. <내일을 향해 쏴라>도 그렇고. 영화 속에 문성근이 문익환의 아들이라는 걸 암시하는 대화도 나오고. 현실과 허구가 막 겹치는. 자의식적인 것들을 처음 본 거 같아. 김홍준의 <장미빛 인생>을 봐도 리얼리즘적인 지형에서 출발했으나, 예전 액션에 대한 혐오도 드러나고. 하지만 장르적인 관습을 끌어오는데 현실과의 어떤 긴장, 끈을 잃어버리면 위험하다고, 그런 글을 내가 썼었어. 어떤 연구자가 그걸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으로 읽더라. 그리고는 최근에는 장르적인 것들을 끌어온 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평을 하는데, 10년간 관점이 변했냐고 묻는거야. 하지만 이건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게 장르영화에 대한 매혹으로 출발했다고 생각해. 장르에 대한 매혹에서 출발해서 분화된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영화들은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곳에서, 가짜같다는 느낌이 안드는 무언가를 항상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현실을 열심히 묘사하는 독립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저것이야 말로 작가의 자의식이 과잉된 허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관습화된 롱테이크도 그렇고.
정윤철: 무엇이 현대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김영진: 20세기의 영화는 시효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이제 끝이 아닌가. 스크린에서 멜빌의 영화를 보는데, 이제 저런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라. 거대한 스크린에서 말없이 얼굴 닦는 거 10분 보여주는 영화. 살인 전과 후만을 10분 보여주는 영화. 요즘 영화는 디지털화되면서 컴퓨터로도 볼 수 있고,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시대잖아. 내가 사랑했던 20세기 영화를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지난 주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봤어요. 보고난 뒤 평을 읽어보니까, 지지리 궁상인 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대다수의 평이 그런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역설, 모순, 아이러니가 좋았다고 하더라고. 거든. 그런데 나는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영화의 스타일은 키치적이고 현란하고, 짬뽕 스타일이야. 그건 마츠코란 캐릭터를 바라 본 감독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마츠코가 불행했다고 하지만, 감독은 마츠코가 불행했다고 안 봐. 그 여자는 자기를 때리는 남자와 살아도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여자야.(오해말기를, 마츠코, 그 여자는 말이다) 그 믿음. 그 희망, 그게 행복한 거야. 결국 중요한 건 감독이 어떤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른가, 새로운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면에서 영화의 근본-새로운 시선-은 변하지 않을 거 같애. 그게 디지털이든 뭐든.
정윤철: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의 한국영화 미래는 불투명한데, 극장에게 집중된 권력이 가장 큰 문제다. 관객이 조금만 안 들어도 하루 1,2회만 틀어버리는 교차 상영과 조기종영 등 모든 게 극장 멋대로 이다. 돈을 버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 영화라는 컨텐츠가 살아야 극장도 산다는 인식이 아쉽다. 김영진: 극장의 권력에 문제가 있다는 건 4년 전부터 내가 해온 얘기야. 나만큼 많이 지적한 사람도 없을 거야. 그런데 한 번도 메아리가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사실 절반의 책임은 영화계에 있다고. 현재 영화계 주류들이 10년 전 비쥬류였을 때, 90년대. 기업들의 대자본과 연합하면서 충무로를 몰아낸 거잖아. 무혈혁명을 한 거라구. 그 결과 지금은 40대가 어른이야. 이렇게 전면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건 한국밖에 없어. 그러면서 구습을 없애고 영화발전에 이바지 한 건 사실이지.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필요악이라고 방치한 게 있어. 그들은 자신이 언젠가는 승자가 될 거라고, 다음 영화에서는 내가 왕이 될 거라는 생각에 행동에 나서지 않은 거지. 다음에는 내 영화사에서 뭔가 해줄 것이다. 이제 영화계 스스로 아젠다를 세우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 언론에서 아젠다를 세워도, 메아리도 없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좌판을 영화계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스크린쿼터보다 중요한 거지.
정윤철: 중견 프로듀서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40대 프로듀서가 없고, 다 애들이고. 김영진: 그건 모든 분야의 문제점인 거 같아. 언론에도 할아버지 기자가 없잖아. 한국은 꼭지점을 강요하는 사회같아. 필드에 있으면 아직도 필드에 있냐, 그런 분위기가 강해. 기자나 평론가도 결국 일정하게 한 두번 두각을 나타내면 CEO가 되어야 하는거야. 제리브룩하이머 같은 프로듀서가 있어야 돼. 끝까지 현장에 남는 풍토가 시급하다고 생각해. 지금 세대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60살까지 해먹어야 한다는 거지. 나도 저널평론가로 계속 살아보려고 했지만, 시장이 날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정윤철: 그래서 교수로? 김영진: 그 제의가 왔을 때 얼씨구나 했지. 그러나 현장과의 끈을 놓지 않겠다, 정기적으로 글 쓰겠다는 게 내 생각이야.
정윤철: 평론가로서의 보람은? 김영진: 정말 누구보다 빨리 평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을 때지. 평론도 기본적으로 연애하는 기분과 비슷할 때가 가장 행복한 거 같아. 누굴 만났는데 참 알고 싶고, 그런 거 있잖아. 들어가 보고 싶고.
정윤철: <씨네21>에 충고가 있다면. 김영진: 충고는 뭐…. 이런 거 한 거 <필름2.0> 후배들이 보면 눈이 뒤집어질거야. 뭐야, 회사에는 나오지도 않으면서.
정윤철: 누구보다 빨리 평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을 때, 이 말이 멋있는 거 같아. 김영진: 상투적이지.
정윤철: 동시에 새로운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