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세상을 삼킨다!
1963년 12월 8일 자정 일본 동경의 거리.거센 빗길을 다급하게 달리는 차 안에는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시뻘건 피로 점점 물들어가는 하얀 와이셔츠,
배를 움켜쥔 역도산의 손위로 피가 새어 나온다.
10분전,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역도산은 누군가의 칼을 맞았다.
세상을 다 가졌지만, 웃지 못했던 사나이 역도산
1950년 9월. 일본 대 스모협회에서는
거구의 스모 선수들과 임원들이
단 한명의 남자에게 쫓겨 다니고 있다.
의자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상투머리의 사내는
현재 스모 랭킹 3위 역도산이다.
순수 일본인이 아니면 스모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난동을 부리는 중이다. 그는 이방인이다.
결국 역도산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었던 스모를 포기하며
상투를 자르고, 스모 밖엔 할게 없었던 역도산은
술과 싸움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어김없이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고 있는 역도산은 운명처럼 ‘레슬링’을 만난다.
미국에서 온 프로레슬러에게 기습 제압 당한 역도산은
아픔이나 패배감보다 이 새로운 세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바다 건너엔
‘세계의 스포츠’ 프로레슬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도산은 십년 전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왔듯
이번에도 미련 없이 태평양을 건넌다.
2년 후, 미국에서 프로레슬러가 되어 금의환향한 역도산은
이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사업을 시작한다.
생소한 스포츠에 흥행사들과 국민들도 반신반의하지만
역사적인 첫 경기가 열리던 날 상황은 역전된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역도산이 링 위에서 미국 선수들을
때려눕히는 광경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치밀한 계산 하에 치뤄진 경기였지만
이로서 역도산은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러나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역도산의 삶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동영상 (2)
- 제작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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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은 일본 열도의 중심인 혼슈 전역을 오가며 로케이션 촬영된다. 고구마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혼슈 섬의 전체 길이는 약 1,500km에 달하며 동쪽과 서쪽의 위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기후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실례로 지난 4월 26일 혼슈 동쪽 끝인 모리오까현에서 촬영된 벚꽃길 장면은 전날 20cm의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새벽부터 눈을 치워야 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역도산>은 일본의 수도 동경을 비롯해 동쪽 끝인 모리오까부터 서쪽 끝인 히로시마까지 한국의 두배에 해당하는 섬을 가로지르며 1950~60년대 일본의 근대기를 재현해낸다. 가장 화려했던 레슬링시절은 동경시내를 중심으로, 조선인이라는 설움으로 차별 받았던 스모시절은 우리의 근대사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도시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재현된다. 욕망이 이글대는 긴자의 화려한 밤거리부터 역도산이 잠시 행복한 시절을 보낸 소박한 일본전통 가옥까지… 화려하게 피었다 진 역도산의 인생을 로케이션에서부터 보여줄 것이다.more
한국 영화의 자신감!
한국이 만들고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역도산
韓-日 공동 투자 프로젝트
몇 년 전부터 충무로에서는 제작비 대비 시장이 작은 한국영화의 돌파구는 해외시장 뿐이라는 생각으로 해외투자 유치 및 세일즈에 관심을 가져왔다.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전액 홍콩자본으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내 머리 속의 지우개(270만불)>,
<달콤한 인생(350만불)> 등은 연이어 최고가를 경신하며 일본에 판매됐다.
<역도산>은 처음부터 일본시장을 염두에 두고 한일 합작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성공한 영화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한국전을 소재로 한 영화였던 반면 <역도산>은 그들의 영웅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더욱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역시나, 지금 일본에서는 한국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역도산’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소식에는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역도산>은 한국 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시장 진출이 가능했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시나리오 만으로 지난 2월 ‘SONY JAPAN’에 250만불과 부가판권 지분까지 받는 우수한 조건으로 판매가 됐다. 사전 투자를 받은 셈이다.
또한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프리미어 행사 때 하일라이트 장면이 소개된 후, 애초 염두에 두었던 일본 시장 뿐만 아니라 유럽, 미주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역도산>은 일본에선 한국영화로선 최고 흥행을 거둔 <쉬리>의 기록을 깰 영화로, 유럽과 미국에선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흥행을 거둘 빅이벤트 무비로 꼽히고 있다.
韓-日 공동 제작 프로젝트
특히 <역도산>은 한일 공동 제작이라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시장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려면 다 만들어진 영화를 ‘파는 것’ 만이 아니라 제작을 통해 그 시장의 시스템과 네트워킹을 속속히 알아야만 한다. 지금 일본시장에서는 한국영화가 붐이지만 일본 영화 관계자들은 이 현상은 비정상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영화 내용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스타가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것은 곧 스타가 사라지면 열기도 식을 거라는 이야기다. <역도산>은 일본과의 공동 제작을 통해 세계 2위의 영화 시장인 일본의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향후 한국영화사가 일본에서 일본영화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와 인프라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한국영화의 열기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한국영화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일본에서 일본시장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싸이더스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시류에 휩쓸리는 영화를 만들지 않듯이, <역도산>은 범 아시아 속의 영화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2004년 최강의 프로젝트 - 역도산
2002년 초, 사진 한 장에 모티브를 얻어 영화 <역도산>을 만드리라 생각했던 그 순간은 이렇게 험난한 일이 있을 거라곤 짐작치 못했다.
기획과정부터 ~ 치열했던 촬영현장까지. 3년에 걸친 영화 <역도산> 제작기.
1라운드. 41년 만에 조국에서 부활하는 역도산
1-1. 결국 한국영화가 역도산을 깨웠다.
우리나라 보다는 일본에서 영웅으로 떠받들여진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 일본에서는 160권이 넘는 도서가 출간될 정도로 국민적인 영웅인데도, 아직까지 영화화 된 적이 없다. 2003년 역도산 사후 40주기를 맞아 일본 유수의 영화사에서 역도산 영화를 기획했지만, 결국 영화화에 성공한 것은 한국이 먼저 이다.
영화 <러브레터>의 프로듀서 가와이신야로부터 ‘역도산’ 이야기를 처음 들은 차승재 대표는 너무 욕심이 나 준비해온 시나리오가 있다고 말했다. 가와이 신야는 그럼 둘 중 더 좋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한달 만에 시나리오를 썼다. 물론 결과는 한 남자의 격렬하고도 진한 감정이 잘 묻어난 송해성 감독의 시나리오였다.
1-2. 아직까지 살아있는 역도산의 영향력.
2003년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이은 흥행실패로 <역도산>은 위기를 맞았다. 한국 투자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어차피 일본에서 개봉을 할 영화이니 일본 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가 ‘역도산’이라는 말에 흥미를 보였고 순조롭게 풀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모두 손을 들고 빠져나갔다. 그때만해도 ‘역도산’이 일본내에서 얼마나 거물인지 알지 못했다.
스포츠선수라기 보다는 수완 좋은 쇼비지니스맨이었던 역도산의 성공에는 야쿠자, 북한, 우익 문제 등 일본의 가장 미묘한 사안들이 곳곳에 얽혀있었던 것이다.
역도산은 죽은지 40년이 넘었어도 아직까지 일본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역도산을 찔러 죽인 야쿠자가 아직 살아있으니 모두 겁을 먹을 만도 했다.
1-3. 한-일 국가대표 영화인 모이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역도산>에 참여한다는 것은 영광이자 모험이었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한국 최고의 배우 설경구와 일본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인 <링>의 나카타니 미키, <감각의 제국>의 후지 타츠야, <큐어>의 하기와라 마사토, <배틀로얄>의 야마모토 타로 등 일본에서도 유례가 없는 최강의 캐스팅이다.
또한 <무사>,<살인의 추억> 등 한국영화의 자부심이 된 촬영 김형구-조명 이강산 콤비, <나라야마부시코>,<우나기>등에 참여한 일본영화계의 거장 이나가키 히사오 미술감독 등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인이 최고의 자존심을 걸고 최고의 작품을 완성했다.
2라운드. 치열하게 담아낸 일본 로케이션 촬영현장
2-1. 일본의 공기를 담다
3개월간 1,500km에 달하는 일본 혼슈섬 전역을 가로지르며 이뤄졌던 방대한 분량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4월말, 지는 벚꽃을 찾아간 동쪽 끝 모리오카현에서 전날밤 내린 20cm의 폭설을 모두 치우고서야 가능했던 크랭크인을 시작으로 가장 화려했던 레슬링 시절은 동경시내를 중심으로, 조선인이라 설움 받았던 스모시절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생생한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재현되었다.
때론 비포장 도로를 열 시간 넘게 달렸고, 두시간의 휴식 같은 잠을 청해야 했으며, 폭염을 이겨내야 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치열했던 현장이었지만, 그러나 역도산이 살다간 그 도시에서 같이 숨쉬며 그 공기를 담아냈던 3개월간의 일본 로케이션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2-2. 완벽하게 그 시대를 되살린다
일본 로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195,60년대 일본 근대기를 재현해 내는 것이었다.
욕망이 이글대는 긴자의 화려한 밤거리부터 역도산이 잠시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소박한 일본가옥까지…화려하게 피었다 진 역도산의 일생을 담기 위해 10여 개의 오픈 세트를 지었고, 전차가 달리는 동경 시내는 CG로 완벽히 복원했다.
최고의 삶을 살았던 역도산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비 1억여원 어치의 역도산 의상과 1950년형 벤츠 클래식과 롤스로이스 등 최고급 자동차가 70여대 동원됐다. 실감나는 드라마를 위해 100여명의 실제 스모선수와 게이샤가 출연했으며, 총 만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엑스트라 의상만 해도 1톤 분량이었다.
3라운드.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한 투혼의 레슬링 3회전
설경구는 마른침을 삼켰고, 스탭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레슬링 촬영현장. 지옥 같았던 열흘.
레슬링 장면은 영화 <역도산>의 하일라이트 이다.
3-1. 역도산,이무라 VS 샤프형제
미국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일본인들에게 가라데촙으로 희망을 안겨준 역도산의 첫경기. 실제 레슬링 선수로 활동 중인 거구의 미국 배우들에게 처음엔 긴장했던 설경구, 슛과 함께 경기 시작 종이 울리자 그간 갈고 닦은 가라데촙, 헤드락, 드롭킥 등을 특수장비나 대역 없이 실제로 구사하며 전혀 손색 없는 대결을 보여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3-2. 역도산 VS 이무라
역도산의 레슬링은 쇼라며 이무라가 도전장을 내민다. 역도산이 후원자 칸노와 처음으로 대적하게 된 경기. 설경구의 가라데촙을 연이어 맞던 이무라역의 후나키 마사카츠는 따로 분장이 필요 없을 만큼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3-3. 역도산 ,아즈마나미 VS 반칙레슬러 아토믹
영화 속 레슬링 경기 중 가장 슬프고 드라마틱한 장면. 설경구는 2m 신장에, 몸무게 140kg의 거구들에게 메다 꽂히고 철재 의자로 머리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링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며 지옥 같던 3분의 롱테이크 촬영을 감내했다. 피투성이가 된 설경구을 지켜보던 일본 분장 스탭은 끝내 눈물을 보였고 다른 스탭들은 미안한 마음에 그와 눈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그리고 설경구!
<역도산>은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한국 최고의 배우 설경구.
한국영화의 활황기를 이끄는 대표배우인 그가 진정한 역도산이 되고자 지옥의 라운드를 거쳤다. 그 치열하다 못해 지독한 현장을 공개한다.
설경구는 어떻게 역도산이 되었나?
> 1라운드 체중 vs 설경구
5개월만에 28kg의 체중을 불렸다. 살 찌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레슬러가 되기 위해 피멍이 가실 날이 없었고 관절에 허리에 몸 여기저기 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숨쉬기도 힘들만큼 버거웠던 지옥의 1라운드
> 2라운드 일본어 vs 설경구
더빙은 죽어도 하기 싫어서 일본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정말 끔찍할 정도의 스트레스 였지만 죽기살기로 매달린 결과 ‘일본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본어’란 찬사를 받았다. 그 지독한 프로정신은 제대로 된 NG한번 없이 모든 일본어 대사를 소화해 냈다.
> 3라운드 레슬링 vs 설경구
후나키 마사카츠, 하시모토 신야, 무토 케이지 등 현재 최고의 프로레슬러들을 상대하면서 단 한번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 3분동안 컷없이 계속되는 롱테이크, 1분이 1시간 같던 촬영이 끝나고 나면 누구든지 다 씹어 먹을 것 같은 독기가 차올랐다.
> 4라운드 역도산 vs 설경구
역도산 마지막 모습을 찍기 전 설경구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었다. 세상을 다 가졌지만 자신을 몰아부치기만 했던 한 남자의 삶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있던 것. 치열한 두 남자가 세월의 무게를 떠나 만나는 순간이었다.
> 5라운드 설경구, 세상을 삼킨다!
영웅의 이야기라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역도산의 삶이 누구보다 치열했기에, 세상 전부를 가지고도 맘껏 웃을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맨몸으로 시대를 관통했던 역도산이, 설경구를 통해 부활한다!
제작일정
2000년 차승재대표, ‘역도산’구상
2002년 초 송해성 감독, 차기작으로 역도산을 생각
2002년 7월 차승재-송해성, 의기투합
2002년 8월 시나리오 초고 완성
2002년 9월 송해성 감독 일본으로 건너가 자료수집 및 시나리오 작업
2003년 7월 ‘역도산’역에 설경구 캐스팅 확정
2003년 10월 ‘아야’역에 나카타니 미키 캐스팅 확정
2003년 10월 최종 시나리오 완성 (11고)
2003년 10월 설경구 몸 불리기, 레슬링 훈련, 일본어 공부 시작
2003년 11월 일본 로케이션 헌팅 및 스탭 구성
2004년 2월 일본 소니 재팬에 시나리오로 사전 판매
2004년 3월 4일 한국 첫 촬영 (강원도. 눈오는 밤 고향을 떠나는 어린 신락)
2004년 4월 6일 고사 및 테스트 촬영
2004년 4월 19일 일본 고사 및 한일 스텝 상견례
2004년 4월 26일 크랭크인 (일본 모리오까)
2004년 7월 11일 일본 로케이션 촬영 완료
2004년 8월 레슬링 경기 장면 촬영 (한국)
2004년 8월 15일 크랭크업(70회차)
2004년 10~11월 편집, CG, 음악 등 후반작업
2004년 10월 9일 부산영화제 ‘역도산의 밤’ 개최–하일라이트 장면 최초 공개
2004년 12월 6일 대규모 월드 프리미어 개최
2004년 12월 15일 한국 개봉 (역도산 41주년 기일)
2005년 6월 일본 개봉 예정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
제작
차승재
노종윤
가와이 신야
-
각본
송해성
-
촬영
김형구
-
음악
이재진
-
편집
박곡지
정진희
-
미술
신점희
-
각색
구동회
-
동시녹음
한철희
-
무술감독
정두홍
유상섭
-
소품
강민수
-
스틸(현장사진)
손익청
-
조명
이강산
-
프로듀서
김선아
우메가와 하루오
-
제작
싸이더스
-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
공식홈
http://www.cjent.co.kr/rikidozan/main.asp
수상내역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기획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편집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조명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촬영상 수상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수상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영상기술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