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부산은 3월22일(목)부터 4월15일(일)까지 ‘월드시네마’란 행사를 마련한다. 부제인 ‘세계 영화사의 위대한 유산’이 부연하듯 ‘월드시네마’는 영화사의 걸작들을 순례하는 자리인데, 이번 네 번째 오디세이의 진행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맡는다. 이번 행사가 단순히 유명 영화들로 치러지는 잔치가 아니라 한 영화인의 관심영역이 상하로 위치한 영화사를 횡으로 통과하려는 시도이기에 이 시대 영화의 어떤 화두를 목격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1924년에 만들어진 <탐욕>에서 시작해 1999년작 <밤바람>으로 이어지는 스물한편 영화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리스트에 애써 이름을 붙이자면 ‘상실과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가 어떨까 싶다. 생명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의 역사, 장르의 쇠퇴를 지나 자기 반영에 이른 영화의 역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문화와 시간을 되돌아보는 주체로서의 역사가 스물한편의 영화 깊숙이 자리한다.
상영되는 영화는 크게 유럽산 예술영화와 할리우드가 만든 장르영화로 나뉜다. 예술영화 진영에 <강>(장 르누아르, 1951), <황금 투구>(자크 베케르, 1952), <만약에…>(린제이 앤더슨, 1968), <암흑가의 세 사람>(장 피에르 멜빌, 1970), <벌집의 정령>(빅토르 에리세, 1973), <밤바람>(필립 가렐, 1999) 등이 포진한 가운데, 수난과 유배 그리고 희생의 이름인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만든 경이로운 세계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 루키노 비스콘티의 유작이자 귀족 계급의 영락에 관한 보고서의 결정판인 <순수한 사람들>(1976, 일전에 많은 부분이 가려진 채 상영된 TV판은 잊도록),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실질적인 데뷔작으로서 우리에겐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마리아스 러버>로 익숙한 원작 소설의 진정한 면모를 드러낼 <외로운 인간의 목소리>(1987)가 눈길을 끈다. 그간 보기 힘들었던 작품이기에 관람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전설의 실체를 확인하게 해줄 <탐욕>(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1924)을 지나면, 할리우드에서 나온 다양한 장르의 대표작들이 문을 연다. 작가로서의 감독이란 영역을 개척한 프레스톤 스터지스가 만든 스크루볼코미디의 걸작 <설리반의 여행>(1941), 나치 치하의 유럽을 비틀면서 비극적 상황이 신랄한 풍자를 통해 위대한 코미디로 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느냐 죽느냐>(에른스트 루비치, 1942), 보드빌 쇼를 재현하며 뮤지컬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밴드 웨건>(빈센트 미넬리, 1953), 멜로드라마의 독보적 존재인 더글러스 서크의 손길을 거쳐 한숨과 눈물로 완성된 전쟁멜로드라마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가 상영되는데, 그 곁으로 할리우드에서 탄생한 작가영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오슨 웰스가 죽을 때까지 감내한 고난의 시작인 <위대한 앰버슨가>(1942), 웨스턴 장르에서 존 포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인 앤서니 만의 <운명의 박차>(1953), 소개 자체가 쑥스러운 앨프리드 히치콕의 대표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B급영화의 음울한 정신을 간직한 새뮤얼 풀러의 <충격의 복도>(1963)가 그들이다. 이외에 <복수는 나의 것>(이마무라 쇼헤이, 1979),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가 리스트의 끝을 잇는다. 들고 다니는 초소형 모니터까지 가세해, 영화를 보는 방법을 일일이 세기 힘든 요즘이다. 그러나 어떤 영화의 영혼은 너무나 위대해서 스크린이 아니면 그 광채와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의 기이한 색채와 세트, <탐욕>의 사막이 전하는 광기와 열기, <벌집의 정령>이 간직한 시대의 정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의 사무치는 소리를 딱딱하고 작은 화면으로 느낄 수 있을까? 그 진실을 깨우칠 수 있다면 이번 행사는 가치 하나를 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