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로 향하는 서해안의 여인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 서해안에 가서 찍은 이 영화는 서울을 꼭짓점으로 한 다음 지정학적으로 남서쪽에 가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그 세 사람이 도착해서 바다를 바라볼 때 이상하게 자꾸만 동해안에 가서 진행되는 것처럼 90도 상상선을 그은 다음 그들을 바라보고 왼쪽 45도에 카메라를 세운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는 강원도의 바닷가에 가서 반대로 진행하였다. 지숙은 그녀의 두 친구와 함께 강원도 해변가에 간다. 짧은 신이지만 여기서 <해변의 여인>과 거의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그녀들은 해변에 도착해서 바다를 본 다음 돌아서 모텔을 보는데 그 앞에 웬 말이 서 있다. 주인은 이 말 이름을 ‘주필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지숙의 친구는 그 이름을 듣고 “주피야, 주피야, 넌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세 사람은 해변가에 앉는다. 그런데 카메라는 구태여 그녀들을 마치 서해안에 온 것처럼, 그러니까 이번에는 상상선의 오른쪽에 가서 보여준다. 바다는 건물이나 길과 달리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마스터 숏으로 방향을 정하면 그걸 반대로 틀어놓기 매우 힘들어진다. 나는 <강원도의 힘>을 보았을 때 이 신이 너무 이상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실 난 이런 장면을 만나서 설명이 안 되면 거의 못 견디는 쪽이다. 이 장면에서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홍상수는 아직 영화에 서투른 예술가이거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힘>은 에릭 로메르 ‘이후’에도 새로웠다) 아니면 그 스스로의 이미 완성된 세계 안에서 결론을 갖고 영화를 시작한 셈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시행착오란 없다. 이미 그는 영화에 대해 결론을 내렸고, 다만 그 안에서 반복의 역설 아래 차이로서의 반복과 반복 안의 차이 사이를 오갈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내기를 미루었다. 그런데 꼭 10년 만에 <해변의 여인>으로 서해안에 간 홍상수가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바다 앞에서 반대로 진행할 때 어떤 쇼크를 받았다.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에서 해변가를 ‘서해안의 힘’처럼 보여준다. 그런데 <해변의 여인>은 내게 <동해안의 여인>으로 보인다. 나는 문숙의 차가 마지막 마지막 신에서 지정학적으로 서해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가다가 갑자기 수렁에 빠진 다음 두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거기서 빠져나오자마자 갑자기 유턴을 할 때 아니, 여기서 유턴을 할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여기는 길도 아니고 모래사장 한복판이다. 나는 거기서 차를 수렁에서 건져주는 두 남자 대신 그녀 스스로 ‘똥차’라고 부른 하늘색(푸른 바다색?) 마티즈의 유턴을 보았다. 그때 서해안을 가던 차는 유턴을 해서 천연덕스럽게 동해안처럼 되돌아간다. 이때 나는 가까스로 되찾은 긍정된 세계로부터 재빨리 다시 물러나는 홍상수를 본다. 똥차 혹은 버림받은 개. 개의 예와 아니오와 문숙의 예와 아니오. 그것은 되돌아오는 것일까, 나아가는 것일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변덕스러운 봄날의 뿌연 공기.
김기덕에 대한 작은 연대
나는 <해변의 여인>을 본 다음 막 개봉한 김기덕의 <시간>을 다시 보러 갔다. 그러는 동안 김기덕은 소란의 한복판에 외롭게 던져져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거의 개의치 않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영화이지 그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 이루어진 기자회견을 거의 소설로 각색한 기사에 항의하는 배급사의 회견 전문을 다운받았고, 심야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100분 토론>을 산만하게 보았고, 그 방송이 끝난 다음 김기덕이 연합통신에 보낸 메일 전문을 읽었다. 김기덕은 네이버 조회 인기검색어에도 올라왔다. 김기덕의 메일에 달린 글은 그의 영화에 대한 글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그 메일에 수능시험 논술고사 채점하듯이 문장 단위로 일일이 토를 단 기사마저 있었다. 김기덕은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한 다음 “나는 언론을 실험용 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누가 누구를 조롱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다시 보는 <시간>은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텅 빈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서 8명이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조롱의 게임은 누가 바보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였다. 대답은 둘 다이다. 그것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 수가 무심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의 개봉을 촉구하기 위한 격문의 형식을 빌려 단지 줄거리 소개만 했기 때문에(<씨네21> 제549호, ‘반복 안에서 찾은 새로움: 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을 최초로 보고 쓰다’), 좀더 안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영화에 가장 따뜻한 글을 쓴 사람은 남다은이다(<씨네21> 제566호, ‘죽음만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 하지만 <시간>이 한국에서 개봉한 것이 김기덕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제는 솔직하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꼭 내가 쓴 글 때문에 개봉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 일정 정도 개입한 글을 쓴 나는 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그저 쳐다보았다. <시간>에 대한 담론은 정작 빈곤하기 짝이 없었고 모두들 김기덕의 말에 대한 주석에 매달려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걸 보는 내 느낌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려가면서 물어뜯듯이 매달린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그 주석에 어떤 집요한 성찰이 있거나 혹은 그 말을 경유하여 영화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물론 김기덕의 영화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김기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걸 혼동하면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칸이나 베니스 혹은 뉴욕, 어쩌면 도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서울에서 다시 ‘개봉’할 때까지 나는 더이상 그의 ‘새로운’ 영화에 대해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이 김기덕에 대한 나의 작은 연대이다.
오즈의 계절에 듣는 밥 딜런의 음악
그런 다음 잠시 망연자실하게 돌아보았다. 이제 막 여름이 끝나고 가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 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 말하자면 오즈의 계절.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노래다. 밥 딜런의 (‘공식 해적음반’ 연작을 제외하고, 그러나 5장의 라이브와 그레이트풀 데드와의 라이브와 한장의 사운드트랙을 포함해서) 39번째 앨범 <모던 타임스>는 그냥 한마디로 심금을 울린다. 이 앨범은 누구나 연상하듯이 채플린의 그 유명한 마지막 무성영화와 같은 제목이다. 하지만 밥 딜런이 여기서 채플린에게 오마주를 바치거나 패러디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떠올리자면 채플린이 토키시대에 끝까지 무성영화로 저항한 것처럼 밥 딜런은 여기서 ‘옛것이지만 근사한’ 재즈 블루스 백 밴드에 기대어 중얼거리면서 노래한다. 그는 이번에는 엘모어 제임스와 윌리 브라운, 머디 워터스, 로버트 팻웨이 혹은 토미 존슨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말하자면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탁류에 몸을 내맡기고 세션 맨들과 어울려 흘러가듯이 노래한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로니 존슨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세 번째 트랙에서 느닷없이 머디 워터스처럼 <롤링 앤 텀블링>을 노래할 때는 이상하게 걷잡을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밥 딜런의 모든 앨범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거의 동시에 데뷔한 폴 매카트니의 행보와 비교하고 있으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의 실패를 노래하는 고다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
나는 똑같은 마음을 고다르에게서 느낀다. 광화문에서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 막 보고 나오면서 고마워, 고다르, 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두 영화를 마치 동시상영처럼 보여주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사랑의 찬가>는 일상의 물건들이 이미지가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우주의 질서 안에 살고 있다는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때 고다르는 단지 숭고함의 물신주의에 매달리는 대신 이미지가 덧없이 영화라는 시간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다루면서 이미지를 다루는 영화의 운명과 임무에 대해서 계속 질문한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려면 무엇보다도 질문을 견뎌야 한다. 질문은 고다르에게 영화의 존재 이유이다. 아니, 차라리 고다르의 카메라가 사물의 이미지를 건드릴 때 세계가 질문을 던진다, 라고 말하는 편이 맞다. 반대로 <아워뮤직>은 이미지의 교육학이라고 부르게 만든다. 그건 반드시 ‘연옥’편에서 고다르가 하워드 혹스의 <그의 여자 프라이데이>를 텍스트 삼아 숏과 상대 숏의 관계에 관한 긴 강연을 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이 토픽은 1963년 장 피에르 우다르가 로베르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본 다음 (라캉의 ‘봉합’(suture) 개념을 빌려) 문제제기를 하였고, 그때 고다르는 이미 나나가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을 보다 말고 갑자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비브르 사비>를 찍은 다음이다. 핵심은 왜 그걸 지금 다시 끌어들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 관계, 그에 영화가 대응하는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그런 다음 숏과 상대 숏의 비대칭성이라는 삼항 관계로 놓고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그리고 이 영화는 단테의 <신곡>을 빌려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삼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고다르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진행 중인 역사가 변증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실패한 것이 역사이지 변증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진행이 중단된 모순으로서의 상대 숏, 좀더 정확하게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물어본다. 상대 숏으로서의 팔레스타인. 안티테제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변증법은 잘못된 종합명제로서의 천국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아워뮤직>의 ‘천국’은 불길하다. 말하자면 주한미군에게 ‘작통권’을 갖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우파들이 날뛰는 대한민국은 고다르에게 21세기의 천국이다. 제국의 천국. 역사 속의 이미지들은 지옥의 피에 젖어들고, 현재 진행 중인 연옥의 이미지들이 모순의 불평등에 시달릴 때, 미래의 천국은 미군의 이미지들이 점령할 것이다. 그것이 고다르가 부르는 ‘우리의 음악’(notre musique)이다. 음악은 아직 (혹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은 이미지를 부르는 호명이다.
그렇게 노래하는 고다르와 밥 딜런. 나는 이 두 사람을 같은 해에 ‘발견’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새로운 영화 혹은 노래를 기다리면서 살았다. 때로는 실망했고, 때로는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항상 나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 그걸 뒤쫓아가면서 나는 배우고 또 배웠다. 그 안에 있는 앎의 비밀. 아니 차라리 세계라는 비밀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기호. 지치지 않는 사랑. 앎과 사랑 사이를 연결하는 긍정. 그 사이(entre). 그 둘이 연결될 때 배움의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상위형식의 비밀에 대한 간절한 궁금증. 그 형식 안에서 활동하는 나의 능력의 한계가 안겨주는 슬픔. 그러므로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 보면서, 혹은 밥 딜런의 <모던 타임스>를 들으면서 또 배운다. 이것이 이번 이른 가을의 두 번째 배움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놀라운 클로즈업 <퍼펙트 커플>
그리고 종로에서 짧은 축제가 있었다(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끝났다. 멀어서 오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게을러서 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일곱 번째를 맞는 서울영화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올해가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영화가 지나치게 자기를 뽐내거나(실험영화들), 반대로 너무 겸손해할 때(미디어로서의 영화들) 흥미를 잃는다. 물론 그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취향을 말하는 중이다. 영화는 세상과의 긴장을 유지할 때,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내가 개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생각이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결국 영화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선택할 때 거기서 진실을 볼 수 있느냐는 선택의 내기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를 중재하는 자세와 거리.
스와 노부히로의 <퍼펙트 커플>과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더 선>은 동시상영처럼 볼 필요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더하고 싶다. 본 것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스와와 소쿠로프는 자기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든다. 스와 노부히로는 지금 막 이혼을 결심한 부부의 이틀간의 감정적인 위기를 다룬다. 소쿠로프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다음 유폐되어 살고 있는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다(그리고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의 두 형사를 다룬다). 이 세개의 인물 다루기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셋 다 디지털카메라로 인물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까지 바짝 다가간다. 그 놀라운 클로즈업이 전혀 다른 내용, 전혀 다른 스타일, 전혀 다른 인물에게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때 클로즈업은 카메라와 얼굴 사이에서 그 이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거리를 창조한다.
나는 이미 마이클 만에 대해서는 말했다(<씨네21> 제568호, ‘눈물과 매직 아워’). 그러므로 그 뒤를 이어 스와 노부히로,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퍼펙트 커플>은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을 파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스와 노부히로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세 번째 영화 <H 이야기>에서는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자기 방식으로 리메이크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알랭 레네에게 보내자 레네는 “편집이 되지 않은 영화를 왜 내게 보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일화는 스와 노부히로 스타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스와 노부히로는 영화에서 데드 타임을 그냥 내버려둔다. 그는 로셀리니보다는 존 카사베츠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장면은 때로 배우에게 맡겨지고 종종 한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1시간44분 동안 고작 44숏이다(중간에 나오는 검은 자막은 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게 한신을 한숏으로 찍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찍기는 했지만 그러나 갑자기 장면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은 방을 쓰다가 다른 방으로 옮긴 아내 마리를 찾아 남편 니콜라스가 찾아간 장면에서 갑자기 숏을 나누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스와 노부히로는 고정된 카메라로 롱테이크로 찍을 때는 소통의 단절을 보여주다가 그들의 대화가 소통될 때 갑자기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비밀은 롱테이크나 멈춘 카메라에 있지 않다. <퍼펙트 커플>에서 이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카롤린 샹페티에의 카메라와 그 카메라와 거의 혼연일체가 된 동시녹음 기사 장 클로드 로뢰가 들려주는 미세한 소음들이다. 카메라는 멈춰 서 있는데 사운드의 붐마이크는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마치 후시녹음을 한 다음 폴리를 한 것처럼 제한적이고, 어떤 장면은 카메라는 이쪽에 와 있는데 붐마이크는 저쪽에 있어 카메라와 붐마이크가 숏과 상대 숏의 역할을 한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마리가 로댕의 조각이 있는 미술관에 들를 때다. 그때 장면은 모두 실내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실내를 두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때 카메라와 붐마이크는 공간이 오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야만 그 존재를 인정한다. 말하자면 장소가 지닌 물질성과 붐마이크가 갖는 질료성 사이에서 카메라가 그것을 중재한다. 그 안에서 스와 노부히로는 이혼을 앞둔 불안한 마리가 불멸의 예술품으로 남아 있는 로댕의 조각상이 주는 영원성과 우연히 어린 아들과 함께 거기를 찾아온 옛날 고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삶의 소멸 사이에서 겪는 심리적 동요를 끌어낸다. 영화는 두번 아내 마리와 남편 니콜라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간다. 그런데 카메라가 너무 가까이 가서 표정을 알 수가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그때 이 얼굴은 말 그대로 풍경처럼 보인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
세 번째.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매우 난처한 세명의 인물의 연작을 찍었다(아마도 이 연작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 하나는 레닌을 다룬 <몰로크>이고, 그 다음은 히틀러를 다룬 <타우르스>이고, 그리고 <더 선>은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결정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다루면서 소쿠로프는 그런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히로히토는 작은 도서관에 유폐된 채 지낸다. 마치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그의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은 미군 점령관 맥아더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저런 인물을 또 어디서 보았을까?”), 여전히 히로히토를 모시는 가신들은 그를 ‘태양의 신’으로 생각한다. 전쟁에 진 것은 인간인 신하들의 책임이며, 여전히 신인 동시에 일본 그 자체인 히로히토에게 누가 될까 인의 장벽을 친다. 그래서 히로히토가 국민들에게 알리는 담화문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전쟁에 책임을 진다”는 녹음을 한 젊은 남자는 그 녹음과 함께 할복자살한다. 그때 소쿠로프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거의 꺼져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진행한다. 그래서 이미지들은 ‘일본의 태양’인 히로히토가 마치 금방이라도 꺼져서 어둠이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희미한 빛과 거의 화면 전체를 지워가는 그림자로 가득 차 있다. 사실 그 태양은 꺼져야 한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 빛이다. 이 영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은 얼굴의 일부가 그림자들이 갉아먹은 것처럼 지워져 있지만 히로히토의 얼굴은 항상 온전하게 보인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인물을 소쿠로프는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따라간다. 그때 소쿠로프는 ‘감히’ 히로히토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신이 가질 수 없는 삐죽대는 뻐드렁니와 주름 잡힌 피부를 거의 만질 것처럼 본다. 거기엔 어떤 신화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가서 인간의 얼굴을 드러낼 때, 그래서 그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조차, 그를 신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주변의 인물들이 기꺼이 복종하고 심지어 할복자살을 할 때 히로히토는 그가 염원하는 인간의 자리에 내려오지 못한다. 소쿠로프는 종종 히로히토의 얼굴을 바짝 다가가서 찍지만 <더 선>은 소쿠로프가 쓰고, 연출하고, 찍었다. 거의 폐소 공포증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이따금 히로히토의 상상을 따라 도쿄가 폭격당하는 장면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그때 불바다가 된 도쿄거리를 날아다니는 것은 마치 헤엄을 치는 듯한 물고기들이다. 그 기괴한 장면들은 이 태양의 신이 바다에서 온 것은 아닐까, 라는 환상에 빠질 만큼 소름 끼친다. 한 가지 더. 영화 중간에 나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5번>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이다. 내가 이 위대한 대가의 연주를 평가할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봐야 하는 10시간30분짜리 영화 <필리핀 가족의 진화>
올해 서울영화제에서 백지수표를 위임받고 거기에 다섯편의 추천작을 써넣었다. 그중 한편이 라브 디아즈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이다. 우선 이 영화를 보려면 그날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10시간30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문할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건 그날 하루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로테르담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다음날 아무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이 영화를 다시 생각했다. 간단한 줄거리. 할머니와 그녀가 낳은 남매가 있다. 오빠는 세딸을 남겨두고 아내가 도망갔으며, 여동생은 돈 벌러 마닐라에 갔다가 강간을 당한 다음 미쳐서 쓰레기장에서 자기의 아들이라고 믿는 아이를 주워서 고향에 돌아온다. 마르코스 대통령 독재치하의 필리핀은 이 작은 시골에서도 혁명군과 정부군의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진다. 오빠는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혁명군 편을 들면서도 빨치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문제가 되어서 매를 맞은 그는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다. 오빠가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동네 남자들에게 납치되어서 강간을 당한 다음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주워온 소년은 총을 구한 다음 그들을 쏘아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이제 오빠의 집과 소년이 떠돌다가 흘러들어간 집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오빠는 소년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 온 다음 소년을 찾아서 필리핀을 떠돌다가 도둑이 된다. 오빠는 그러면서 마닐라의 범죄조직에 연루된다. 그러는 동안 고향에서 오빠의 어린 딸을 노리는 시장은 계속 할머니를 찾아와 어린 그녀를 첩으로 달라고 조른다. 한편 소년이 머무는 집에서 그를 양아들로 받아들인 아버지는 금맥을 발견하겠다고 세 아들과 함께 정글을 헤매다가 그의 아들 중 한명이 금을 둘러싼 갈등 끝에 옛 친구의 부하들에게 맞아 죽고 실종된다. 아버지는 복수를 맹세한다. 그러는 동안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마닐라로 돌아온 민주인사 베그니노 아키노는 공항에서 총에 맞아죽고, 그의 아내 코라손 아키노가 투쟁을 계속한다. 마르코스는 실각하지만 군부가 재집권을 하고, 민중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필리핀 가족들은 아직도 투쟁 중이다.
좀더 놀라운 이야기는 <필리핀 가족의 진화>가 5시간30분의 <남부, 바탕>, 그리고 9시간의 <예레미아>와 함께 3부작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보아도 다 보지 못한다. 나는 두 번째 이야기만을 보았을 뿐이다. 라즈 디아브는 필리핀 근대사라고 할 이 거대한 서사를 8년에 걸쳐 찍었다. 문제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정말 나이를 먹고, 한편으로 베타 캠으로 시작한 촬영은 DV로 바뀌면서 영화의 화질이 바뀐다! 게다가 필리핀 근대사의 사건들을 발췌한 텔레비전 화면들도 그냥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기술적인 완성도로 본다면 일부는 마치 아마추어가 찍은 것처럼 약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사운드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너무 손실이 커서 일정 수준에 맞춰놓고 상영하면 중간에 안 들리다가 갑자기 큰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단지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혹은 역사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여기에는 새로운 화법이 있다. 라즈 디아브는 역사와 가족사를 단순하게 도식적으로 병렬시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필리핀의 근대사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데도 거의 나라 끝에 위치한 것 같은 이 두 가족은 자본주의와 봉건적 관료제, 반근대적인 인습과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개인들의 욕심, 정치를 내세운 교활한 잇속, 민중투쟁을 하다가 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순간 권력으로 변모하는 해방전선의 동지들, 그 속에서 부서져가는 여자들, 여자들 사이의 착취, 그 악순환의 고리들이 어떻게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로 이것은 마치 현장에 취재나온 기자의 생방송 중계처럼 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시적인 실험영화처럼 DV를 이용한 무한정한 롱테이크로 진행되다가, 마닐라의 범죄 소굴에서는 장르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산만하기보다는 인물들의 사건 안에서 피와 살을 부여하는 것은 이것이 누가 보아도 전투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를 보지 말고 영화를 만든 과정을 보라고 충고했다. 만일 라즈 디아브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영화사의 계보에 놓아야 한다면 오페라풍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지는 흔들린다>로부터 이어지는 긴 미학적-사회적-정치적-여정의 21세기 버전일 것이다.
사적인 고백. 그런데 이 영화를 추천한 다음 의기양양해하다가(*^^*) 갑자기 그날 아침 아, 어쩌면 그 상영시간에 질려서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리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자리에 28명의 관객이 각오라도 단단히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그 곁에 앉았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본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사람이 중간에 가고, (중간에 세번의 휴식이 있었다) 신기한 건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몇 사람이 있었다.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가 주는 관습과 싸우면서 투쟁적으로 획득하는 자유로운 리듬의 쟁취의 일부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 2시간이라는 상영시간에 굴복해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건 그 시간 안에 풀어내야 하는 시간의 물리적 경제성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모든 이야기가 2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는 순간 영화의 시간적 경제성이란 무효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28명의 투쟁적인 관객에게 동지들, 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단 한번의 상영. 우리는 2006년 9월11일 월요일,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나에게 영화 친구란 말하자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다.
지아장커에게 배우다
마지막 수다. 내가 가을이 막 시작되려는 9월의 첫 번째 주말에 들은 기쁜 소식은 지아장커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스틸 라이프>(三峽好人)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뉴스였다. 물론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걸 읽으면서 문득 구정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구정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문학과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런 다음 지아장커 영화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그의 조연출이 되었다. 그는 지아장커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997년, 우리는 졸업할 때가 되었다. 친구들은 각자 앞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영화를 찍고 싶어했으나, 아무런 대책없이 그와 함께할 친구는 없었으며,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조금도 슬프지 않았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이렇게 흘렀고, 우리는 생계의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볼 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졸업하기 4개월 전, 지아장커가 돈을 구해왔다. (중략) 지아장커가 나와 왕홍웨이(<소무>의 주연)를 찾아왔다. 우리 같이 영화를 찍자. 구정, 네가 조감독을 맡아주고, 왕홍웨이, 네가 주연을 맡아줘.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야. 우린 거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으러가니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는 거였으니까. 우리는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구정, ‘우리 같이 영화 찍자’, <지아장커, 중국영화의 미래>) 그 영화가 <소무>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1980년대 중국을 통과하는 가무단 이야기 <플랫폼>을 찍었고, 다퉁에 사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임소요>를 그렸고, 베이징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청춘을 그린 <세계>를 찍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중국 사회주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그는 아주 멀리 왔지만, 그러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그것을 지아장커에게 배운다. 이것이 막 시작하는 가을에 세 번째 배움이다. 오늘 밤에는 그에게 축하 메일을 쓸 생각이다. 그렇게 이 수다스러운 일개 영화평론가의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당신은 오늘 밤 누구에게 메일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