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초청작은 일반 관객에게 소개될 가망성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시장성없는 다큐멘터리와 영화다. 하지만 지난 17년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제인권영화제가 최근 다시 뉴욕을 찾았다.
6월8일부터 22일까지 뉴욕 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에서 열린 이 영화제는 휴먼 라이츠 워치와 링컨센터 필름 소사이어티가 공동 주관한 것으로 현존하는 인권영화제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전세계 20여 작품이 소개된 올 영화제에는 이라크전의 영향으로 중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고, 이중 어린이와 여성, 노동계급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제이비어 코쿠에라 감독의 <바그다드의 겨울>(Winter in Baghdad)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들은 공부를 포기하고 가정에 보탬을 주기 위해 구두닦기, 노상 휘발유 판매 등을 한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다니지만, 아이들 특유의 해맑은 미소는 잃지 않았다.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는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폭격으로 허물어진 공터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노는 이들의 모습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초인적으로까지 보인다”고 평했다.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모슬렘인 소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샤댜>(Shadya). 로이 웨슬러 감독은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식구들을 뒤로하고, 가라테 세계 챔피언을 향해 밤낮으로 연습하는 억척 소녀 샤댜의 이야기를 생동감있게 다뤘다. “여자가 어디 남자들 보는 앞에서 다리를 벌리냐. 빨리 시집이나 가라”며 윽박지르는 오빠들, “모슬렘이 어떻게 이스라엘팀에서 싸우냐”는 모슬렘 국가 가라테 선수 등 샤댜를 힘들게 하는 주변 사람들은 너무 많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며 운동 연습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이 밖에도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이용됐던 오스트리아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의 관광 가이드들의 이야기를 다룬 <KZ>,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권으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이 나라의 석유를 착취하는 외국 대기업과 정부 관료들과 대조시킨 <소스>(Source), 99년부터 2003년까지 가자 지역 해변에서 물고기를 잡은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어부들의 이야기 <멘 온 디 에지>(Men on the Edge-Fishermen’s Diary) 등도 돋보였다.
특히 <KZ>에서 나오는 일단의 젊은 가이드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오스트리아의 징병제로 군대에 가는 대신 수용소의 관광 가이드로 대체복무를 선택한 것. 더욱이 이 젊은이들은 과거 나치와 협력했던 할아버지 등 친나치 선조를 가진 젊은이들로 이처럼 가이드로 근무하면서, 역사를 다시 배우고 이해하며, 이를 수용소를 찾는 어린 학생들에게 다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38년 4월부터 45년 5월까지 12만2천명 이상이 처형 또는 굶어죽은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이곳을 단체 관광으로 찾은 어린 학생들은 나치가 얼마나 잔인하게 포로들을 대했고, 끝내 가스실에서 죽였는지를 가이드에게 들으며, 일부는 실신하기도 했다. 또 이 수용소에서 20여년간 가이드로 근무하는 한 남성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 때문에 가이드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무슨 대화를 해도 결국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 부인과도 말하기 힘들다”며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제 중 다른 작품에 비해 제작 규모가 비교적 큰 영국의 3개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1934년부터 56년까지 600명 이상을 처형시켜 영국 최고의 교수형 집행인으로 악명을 떨쳤던 앨버트 피어포인트의 이야기를 그린 에이드리언 셰어골드 감독의 <피어포인트>(Pierrepoint)와 르완다 학살을 배경으로 한 <슈팅 도그스>(Shooting Dogs),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아 2년간 관타나모 수형소에 감금됐던 4명의 모슬렘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재현 방식으로 들려준 마이클 윈터보텀, 매트 화이트크로스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 등이 소개돼 관객의 인기를 끌었다.
과거 이 영화제에서는 2005년 탈북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서울기차>와 <송환>(2003), <꽃잎>(1997),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이 소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