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피와 뼈> <메종 드 히미코> 등 그동안 일본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왔던 영화사 스폰지가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을 연다. 7월1일(토)부터 12일(수)까지 스폰지하우스 종로에서 진행될 이번 행사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던 일본영화 10편을 골라 상영한다. 상영작들은 청춘의 방황과 사랑, 꿈에 대한 영화를 묶은 ‘청춘의 문’, 소설과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모음인 ‘문자의 변주’, 일본 특유의 웃음이 묻어나는 ‘웃음의 미학’ 등 크게 세개의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청춘의 문’ 섹션에는 <메종 드 히미코>의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스크랩 헤븐>, 탁구 히어로를 꿈꾸는 청년의 이야기 <핑퐁>, 첫사랑의 아픈 상처를 아름답게 그린 <좋아해> 등이 포함돼 있고, ‘문자의 변주’ 부문에선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오가와 요코의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삶을 소재로 한 <란포지옥> 등이 상영된다. 일본영화에선 빼놓을 수 없는 코미디도 있다. ‘웃음의 미학’ 섹션에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엉뚱한 이야기를 담은 <녹차의 맛>,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만화 오타쿠들의 세계를 코믹하게 그린 <사랑의 문> 등이 포진해 있다.
영화제 시작 하루 전인 6월30일에는 개막작 <좋아해>의 상영이 준비돼있다. 이날 상영에는 이시카와 히로시 감독과 두 주연배우 미야자키 아오이,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무대인사를 할 예정이다. 서울 상영이 끝난 뒤에는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에서 8월16일까지 지역 순회상영을 한다. 6월23일부터 현장 및 온라인(www.spongehouse.com) 예매가 가능하다.
스크랩 헤븐 スクラップ·ヘブン 이상일 | 2005년 | 117분 | 오다기리 조, 가세 료
<69>를 만들었던 이상일 감독의 영화. 껍데기만 경찰인 싱고(가세 료)는 무기력 그 자체다. 거리에서 여자들이 위험에 처해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탄 버스가 한 남자에게 납치되고, 싱고는 ‘경찰의 본모습을 보여줘야 할 상황’과 마주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납치범을 제압할 것인가, 경찰의 신분을 숨기고 목숨을 건질 것인가. 항상 마음만 앞섰던 그는 이번에도 후자를 택하고 사건은 납치범의 자살과 한 승객의 부상으로 끝난다. 그리고 3개월 뒤, 싱고는 거리에서 부상을 당했던 승객 테츠(오다기리 조)를 우연히 만난다. 버스 사건의 총상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화장실 청소 전문가’ 테츠. 더이상 인생을 ‘똥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싱고와 함께 ‘복수대행업’을 시작한다. 담당 의사의 의료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남자 간호사, 아동 학대로 엄마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 초등학생. 화장실 부스에서 접수받은 사건들은 곧 싱고와 테츠의 실행으로 이어진다. ‘사무실 안에 틀어박혀 있어봤자 세상은 1인치도 변하지 않는다’는 테츠의 대사처럼 영화 <스크랩 헤븐>은 세상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이들의 몸부림을 담은 영화다. 경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상력 부족이라고 일갈하는 이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도발한다. 시니컬하면서 코믹한 연기를 보여주는 오다기리 조와 시종일관 무력한 경찰의 마스크를 하고 있는 가세 료의 연기는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킬 빌>에서 유바리로 출연했던 여배우 구리야마 지야키가 한쪽 눈을 잃은 약사로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2005년 광주국제영화제 상영작.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龜は意外と速く泳ぐ 미키 사토시 | 2005년 | 90분 | 우에노 주리, 아오이 유우
평범한 주부 카타쿠라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해외출장으로 장기간 집을 비운 남편은 가끔씩 전화만 걸고, 그나마 걸려온 전화도 애완용 거북이의 안부만 묻는다. 똑같은 일상에 자신의 존재마저도 의심스러워진 스즈메, 우연히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본 그녀는 전단에 쓰여진 장소로 찾아가고, 이상한 스파이 부부로부터 스파이 생활을 제안받는다. 활동자금 500만엔을 받고 시작한 스파이 활동, 그녀의 삶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더니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 쿠쟈쿠(아오이 유우)가 없어진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상 속에도 아직 모르는 세계가 숨어 있으며 그것을 깨달으면 조금 더 행복해진다”는 미키 사토시 감독의 말처럼 <거북이는…>은 평범한 인물들을 스파이로 설정하면서 발생하는 의외성을 변주한 코미디영화다. 상점가 안내 방송 속에 암호가 숨겨져 있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매우 평범한 메뉴를 선택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렵게 한다. 오다기리 조가 출연했던 드라마 <시효경찰>과 영화 <인더풀>로 이미 한차례 독특한 코미디 감각을 선보였던 미키 사토시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스윙걸즈>의 명랑 소녀 우에노 주리와 <하나와 앨리스>의 아오이 유우가 새로운 모습의 연기를 선보인다.
좋아해 好きだ 이시카와 히로시 | 2005년 | 104분 | 미야자키 아오이, 에이타, 니시지마 히데토시
‘고마워’, ‘미안해’, ‘아무것도 아냐’. 강둑에 앉아 대화를 하는 유(미야자키 아오이)와 요스케(에이타)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좋아해.’ 영화 <좋아해>는 17년이나 지체된 사랑 고백을 조용히 따라가는 순진한 러브스토리다. 학급친구 요스케와 유는 서로 좋아한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 요스케는 기타를 연주하다가도 유가 다가오면 자리를 뜨고, 유는 그의 기타 연주를 흥얼거리기만 한다. 수업시간에 상대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도 이들만의 사랑법. 유가 선뜻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녀의 언니(오야마다 사유리)가 요스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자신의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는 유에게 다른 이의 감정을 판단할 논리는 부재하다. 예민한 유와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요스케. 아무런 진척도 없이 시간은 흐르고 유의 언니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다. 17년 뒤, 유와 요스케는 재회한다. 아쉬움과 반가움, 망설임이 혼재하는 시간. 사랑 고백 앞에서 주저하기를 반복하던 그들은 드디어 ‘좋아해’라는 말에 성공한다. <나나>의 명랑한 ‘하치’ 미야자키 아오이와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검객 에이타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CF 출신 감독 이시카와 히로시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CF 출신 감독답게 푸른 하늘과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연출이 인상적이며, <카우보이 비밥>으로 유명한 음악감독 간노 요코의 선율이 마음을 울린다.
핑퐁 ピンポン 소리 후미히코 | 2002년 | 114분 | 구보즈카 요스케, 아라타
마쓰모토 다이요우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페코(구보즈카 요스케)는 ‘탁구의 히어로’를 꿈꾸는 학생이다. 하지만 실력은 그의 친구 스마일(아라타)이 한수 위. 탁구가 인생의 전부인 페코와 달리 스마일은 일종의 취미로 탁구를 즐긴다. 좋은 게 좋다고 스마일은 매번 경기에서 페코에게 져주고, 이를 알게 된 페코는 열등감과 질투로 괴로워한다. 타고난 천재와 노력하는 천재의 이야기, <핑퐁>은 구보즈카 요스케의 매력이 십분 살아 있는 영화다. 재일조선인의 ‘사랑 이야기’ <고>를 통해 이미 한국에 얼굴을 알린 바 있는 구보즈카 요스케는 유난히 길고 가는 팔다리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만화책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미지와 몸의 균형점이 소실된 듯한 행동은 구보즈카 요스케의 색다른 면. 특히 바가지 머리와 하얀 유니폼, 승리 뒤 얼굴 가득 퍼지는 환한 미소는 영화의 절정을 대신할 정도다. 영화 <고>와 <69>의 각본가 구도 간쿠로가 각본을 썼으며 2005년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한밤중의 야지 키타 眞夜中の彌次さん喜多さん 구도 간쿠로 | 2005년 | 124분 | 나가세 도모야, 나카무라 시치노스케, 쓰마부키 사토시
에도 시대 게이 커플의 모험담 <한밤중의 야지 키타>는 사무라이에서 레게 힙합을 오가는 ‘퓨전시대극’이다.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는 키타(나카무라 시치노스케)와 야지(나가세 도모야)는 서로 죽고 못사는 연인 사이. 이들은 약물 중독 치료와 ‘행복한 사랑 성취’을 위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세’로 향한다. 웃음의 여관, 기쁨의 여관, 노래의 여관 등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즐비한 이들의 여정은 그야말로 판타지. 영화는 에도 시대와 현재를 섞고, 게임과 퀴즈쇼를 삽입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달려간다. 심지어 시골 마을 한쪽에선 미식축구팀이 달려나오고, 주인공들의 대화장면 뒤론 TV쇼의 방청객이 등장할 정도. 하지만 이는 모두 삶의 리얼함을 이야기하기 위한 전주다. <고> <핑퐁> 등의 각본을 썼던 구도 간쿠로 감독은 어디로 튈지 모를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전한다. TV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와 영화 <서울>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나가세 도모야가 야지로 출연하며 <라스트 사무라이>의 메이지 황제 나카무라 시치노스케가 키타로 분했다. 카메오로 출연한 쓰마부키 사토시의 모습도 볼 수 있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