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가 오는 5월26일부터 29일까지 부산 경성대 소극장과 소강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1개국에서 출품된 770편의 단편영화 중 선정한 76편의 경쟁작, 아시아의 최근 단편영화의 어떤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34편의 초청작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는 110편의 단편영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올해 전주영화제 등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물론이고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따끈따끈한 신작이 포진한 경쟁부문, View of Asia. 총 17개의 섹션으로 나눈 경쟁부문의 작품 중 국내 작품은 모두 53편이다. 예년과 달리 장르별 예심위원단을 구성한 결과 10편의 다큐멘터리, 8편의 애니메이션, 6편의 실험영화가 포함되어 좀더 다양한 장르의 단편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혼모에 대한 <아프리카의 미혼모>(문정현, 이민희, 오은정, 이숙애), 원폭피해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 <원폭 60년, 그리고…>(김환태), 친구와의 여행길을 담은 <나는 기분이 좋아>(가영은, 정진경, 장영선), 조선족 동포의 문제를 다룬 <연변에서 왔습네다>(김진희, 정해은), 강원도 폐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연극단체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 <후용리 공연예술단 “노뜰”>(박선욱) 등 다양한 소재를 택한 작품이 고루 포진해 있다.
장르별 예심위원단 구성, 다양한 장르의 단편 준비
여성적인 화법을 택하거나, 여성의 심리를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소재에서 출발하는 등 올해 경쟁부문에는 여성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한달 전 남편을 잃은 임신부가 남편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온 남편의 정부를 만나 공항까지 동행한 여정을 묘사한 기이한 로드무비 <우리여행자들>(이도윤), 화창한 휴일 하루 동안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던 상대를 기다리며 이태원 일대를 서성이던 소녀의 감정적 파고를 묘사한 심리극 <우연한 열정으로 노래부르다 보면>(권지영)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수선집 여자의 일상 속에 담긴 감춰진 말 못할 기다림과 간절한 마음을 차분하게 묘사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의 가슴 아픈 반전, 아빠의 외도를 목도한 아이의 아이다운 심술을 거쳐 엄마를 향한 어른스러운 애틋함으로 마무리되는 <훼미리사이즈 피자>(김경미)의 아련하고도 따뜻한 정서, 술버릇 고약한 남자친구를 향한 주인공의 가차없는 징벌이 후련한 <그녀의 핵주먹>(선지연)이 코미디와 뮤지컬,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오가는 능란함 등도 놓칠 수 없다.
주저없는 반전과 고도의 폭력 묘사로 무장한 ‘센’ 영화들 역시 만만찮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잔인한 외면과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동시에 간직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어떤 결심으로 마무리되는 <참! 잘했어요>(정다미)는 동심의 상반된 측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찌질하고 저질스러운 캐릭터의 자기합리화가 불러온 비극과 순환을 이야기하는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이승영)가 던지는 사실적인 충격 역시 놀랍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눈길을 끌었던 하정우가 경찰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그 어떤 말이나 노래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이 시대 가장들의 전쟁 같은 하루를 짧지만 강렬한 반전 속에 담아낸 <아빠 힘내세요!>(원종호, 김도령), 병장과 일병의 일상적인 주말외박이 참사로 귀결되는 과정을 끔찍한 플래시백을 통해 더듬어 나간 <외박>(이종윤) 등은 단편에 어울리는 촌철살인의 복화술로 폭력을 권하는 이 사회를 향해 발언한다.
소수자를 향해 손을 내밀고 이들을 보듬는 것 역시 단편영화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다. 수염난 여자가 자신의 멋진 수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과정(<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 노덕), 샌프란시스코행, 색소폰 연주가를 꿈꾸는 게이 남자와 여성의 배신과 우정(<샌프란시스코 블루스> 허인), 각기 다른 이유로 힘겨운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의 비극적인 인연(<플랫폼> 김영제) 등을 다룬 영화들은 그런 미덕이 돋보이는 영화들이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주류를 거부하는 이들의 도전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신 승자없는 전쟁>(남정태)은 총이나 피를 한번도 보여주지 않고 사운드와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평범한 출근길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총격전을 천연덕스럽게 묘사한다. 넥타이 부대가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서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그 모습은 도처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전쟁을 은유한다. 우아한 흑백영화의 기품이 가득한 <그 유명한 작가 베토벤씨와 그의 가정부>는 대단한 작품에 몰두한 작가와 그의 집을 싹쓸이하는 가정부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엘리제를 위하여>와 <운명 교향곡>을 효과적으로 변주한 음악, 세심하게 명도의 차이를 고려한 미술과 조명, 별다른 대사없이 실험극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의 리듬감있는 움직임 등 순수하게 영화적인 요소들이 빚어내는 화음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국내 출품작은 디지털과 35mm영화로 크게 양분
디지털영화가 경제성과 실용성, 완성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필름과 대등하게 겨루면서 단편영화에서 16mm영화는 급격하게 부진한 양상을 띠게 됐다.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가 DV로 제작된 영화와 장편영화급의 완성도와 연출력을 겸비한 35mm영화로 양분된 것은 그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경력을 자랑하는 감독들이 만들었기 때문인지 충무로 영화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었던 배우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35mm 단편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김뢰하(<백식이 불여일견> 정원식), 박원상(<처용의 다도> 정용주)을 비롯해서 부산영화제는 물론이고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등에 초청된 유지태의 연출작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는 35mm는 아니지만 오광록, 오달수, 전혜진 등 호화 캐스팅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재기발랄하고 기이한 정서를 지닌 시대극 <전쟁영화>(박동훈)처럼 사용한 필름뿐 아니라 미술과 스케일 역시 블록버스터급인 35mm영화들도 눈에 띈다.
한차례 검증된 해외의 유수 단편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초청부문 역시 화려한 리스트를 자랑한다. 말레이시아의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단편영화 <COMPANY OF SHORTS>,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장르와 화법으로 지난해 쓰나미 참사에 대한 감독 개인들의 느낌을 담은 옴니버스 <쓰나미 프로젝트>, 홍콩 독립영화 배급기획사가 기획한 퀴어프로젝트 옴니버스물 <지상의 무지개: 투 오브 카인드> 등 다양한 옴니버스물이 골라보는 재미를 더한다. Asian Documentary Special Section에는 야마가타영화제 수상작 3편이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