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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의 힘’으로 감정을 창조한 사나이, 앨프리드 히치콕 걸작선

시네마테크 서울과 필름포럼이 주최하는 ‘앨프리드 히치콕 걸작선’이 3월17일(금)부터 25일(토)까지 필름포럼 2관에서 열린다.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총 9편으로, 4편의 흑백영화와 5편의 컬러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흑백영화 시대의 히치콕 작품으로는 그의 영국 시절 영화들의 특징이 집약돼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39계단>(1935)부터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데이비드 셀즈닉과 함께 작업한 <레베카>(1940)와 <의혹>(1941), 그리고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 영화의 특징인 양식화와 단순함의 극대치에 도달한 작품으로 평가했던 <오명>(1946)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영화 매체에 대한 히치콕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이창>(1954),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연출력을 시험하기를 즐겼던 히치콕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다이얼 M을 돌려라>(1954), 서스펜스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감싸고 도는 에로틱한 분위기가 압권인 <현기증>(1958), 히치콕의 할리우드영화의 요약판과도 같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등 4편의 영화는 히치콕의 창조적 역량이 절정기에 달했던 시기인 50년대에 연출한 작품들이다. 여기에 그의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렌지>(1972)가 함께 상영된다. 특히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프렌지>는 국내에서 처음 필름 프린트로 상영되는 작품들이다.

흑백 4편 등 총 9편 상영

트뤼포는 <히치콕과의 대화>의 서문에서 만약 신의 장난으로 영화가 하루아침에 사운드트랙이 없어져 무성영화가 돼버리고, 그래서 순수하게 시각적인 이미지만으로 관객의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을 때를 가정한다. 트뤼포는 이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당시(1966년) 대부분의 감독들이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겠지만, 존 포드, 하워드 혹스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만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는 감독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실제로 히치콕은 의혹, 질투, 욕망 등의 여러 감정을 설명적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창의적인 감독이었고, 트뤼포는 이러한 히치콕 영화를 두고 순수영화(pure cinema)라 불렀다.

히치콕은 영화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주어진 앵글에 놓았을 때 그 장면에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는 마치 바닥에 엎질러진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마냥 영화 전체를 흡수하는 ‘숏의 힘’에 매혹당하는 영화적 경험이 존재한다(‘숏의 힘’이라는 표현은 김영진이 존 포드의 영화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것을 빌려온 것이다). 언젠가 장 뤽 고다르는 <오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컵이 화면을 가득 채우던 화면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고 이야기한 적 있지만, 이러한 경험은 고다르만의 것이 아니다. <의혹>을 본 관객이라면 마치 거미줄 같은 그림자 선들이 가로지르는 벽을 배경으로 남자주인공이 하얗게 빛나는 우유잔을 들고 층계를 오르는 장면에서, <레베카>를 본 관객이라면 마치 유령처럼 움직임의 단서없이 여주인공의 뒤편에 서 있던 댄버스 부인의 출현장면에서, <프렌지>를 본 관객이라면 살인자의 집 문 앞에서부터 아파트의 홀을 경유해 실외의 거리까지 물러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장면에서 히치콕 특유의 ‘숏의 힘’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이것이 그의 영화를 TV 화면이 아닌 극장에서 다시금 확인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이얼 M을 돌려라>

<39 계단>

이처럼 순수영화의 대표자로서의 히치콕 영화는 단지 내러티브 층위에서만 서스펜스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이미지 내부의 시선의 방향, 인물의 움직임, 사물들의 미장센, 카메라 움직임 등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것이 다수의 리메이크작이나 그로부터의 노골적인 영향력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결국에는 히치콕 영화의 독자성을 증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릭 로메르와 클로드 샤브롤이 히치콕을 두고 “가장 위대한 형식의 창안자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렀던 이유 역시 영화 형식이 단순한 내용의 설명이나 치장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내용의 창조를 이끌어내는 힘 때문이었다.

관객의 감정을 창조하기, 관객과 게임하기

영화 포스터에 배우보다 더 큰 글씨로 이름이 새겨진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인 히치콕은 언제나 관객과의 게임을 즐겼다. 히치콕이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그래서 관객이 실제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하는 기술이었고, 그럼으로써 그의 영화는 감독과 영화 사이의 상호 작용이 아니라 관객도 참여를 요구받는 3자간의 게임이 된다. 히치콕이 트뤼포와의 대화에서 적절하게 설명한 것처럼 관객과의 게임을 즐기는 히치콕 영화의 특징은 그가 놀람(surprise)보다는 서스펜스를 더 선호했던 이유였고, 이를 위해 그는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도록 했다. 히치콕이 맥거핀을 중요한 서사적 요소로 설정했던 이유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관객과의 게임을 유도하는 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영화 연출의 테크닉에서도 기교를 위한 기교에 반대했던 히치콕은 자신이 사용하는 영화 테크닉이 관객의 감정을 창조하기를 원했고, 이러한 그의 영화관은 <이창>에서 살인자의 집으로 들어간 여주인공과 홀에 나타나는 살인자를 함께 보여주는 장면에서 적절히 드러난다. 실제로 히치콕 자신이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것처럼 아주 창조적인 때’에 연출한 작품이라 칭했던 것처럼, <이창>은 감독, 영화 그리고 관객간의 게임이 외연적으로나 함축적으로나 제대로 표현된 작품이다. 또한 히치콕은 폐쇄된 공간의 서스펜스뿐만 아니라, <오명>처럼 오히려 공적인 장소(지젝식으로 말한다면, 상징적 질서의 외양이 유지되어야 하는 장소)에서 쫓고 쫓기는 자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처럼 위협받는 인물이 숨을 곳이 없는 광활한 들판 위에서 히치콕만의 서스펜스를 창출하곤 하였다.

<프렌지>

<현기증>

하지만 히치콕이 관객과의 게임을 즐겼다는 것은, 영화 전편에서 관객의 긴장감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 최근 유행하는 영화 말미의 갑작스러운 반전이나 미스터리 추리물에서 등장하는 탐정과 관객간의 머리싸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히치콕은 미스터리 추리물에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이는 그러한 작품들이 관객의 감정을 외면한 채로 영화의 마지막에 모든 호기심을 집중시키는 일종의 수수께끼 놀이가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많은 작품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결말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엉뚱하게 ‘누명 쓴 인물’이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과정을 담거나(<39계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프렌지>), 먼저 살인자(혹은 강박관념이나 심적으로 불안에 떠는 인물)의 실체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그의 악몽 같은 세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방식(<레베카> <오명> <현기증>)을 더 선호하였다.

성격화의 극한까지 나아가는 힘

히치콕 영화의 인물들에게서 그 성격의 극한까지 활용하고자 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39계단>에서 기억하는 모든 것을 대답하는 직업을 지닌 ‘미스터 메모리’가 그 직업적 특징으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이나,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을 유령 같은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그녀로부터 움직임을 배제하여 재현한 것, <이창>에서 살인자가 자신의 방에 침입했을 때 주인공 제프의 직업적 도구인 사진기 프레쉬로 저항하는 장면 등은 인물과 관련된 요소를 극한까지 활용하는 히치콕 영화의 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인물뿐만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히치콕이 즐겨 말했던 “스위스에서는 초콜릿을, 네덜란드에서는 풍차를”이라는 표현은 공간을 활용하는 히치콕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스펙터클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는 무엇보다 명확한 재현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히치콕은 단순화의 능력을 중요시했다. 물론 그것이 그의 영화가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히치콕이 이러한 명확하고 단순한 표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정서를 감독 자신이 먼저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와 서스펜스를 영화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히치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겁쟁이 감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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