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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디자인의 비밀 [4] - 베스트 사운드 ②
박혜명 2005-11-24

지구상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 <내츄럴시티>

감독 민병천 사운드 슈퍼바이저 김용훈 믹싱 서영준 사운드 이펙트 슈퍼바이저 황진수 제작연도 2003년

SF영화는 지금 이 순간 들을 수 없는 미래의 소리들을 요구한다. <내츄럴시티>의 이펙트 슈퍼바이저 황진수는 영진위 녹음실 후배들에게 “지금 우리가 보는 저 그림과 일치하는 소리는 세상에 없다”고 수십번을 강조했다. 컴퓨터에서 나는 빕사운드 하나조차도 관객이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R(유지태)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BMW 오토바이 엔진 소리 녹음 소스와 전기드릴 사운드 녹음 소스와 라이브러리에서 찾은 우주선 소리 등을 개별 디자인해 섞는 것은 ‘트릭’ 정도에 불과한 작업. R이 자주 찾는 오뎅집의 앰비언스 작업 과정에서는 사운드 소스 하나하나를 폴리로 녹음한 다음 일일이 개별 디자인해서 앰비언스 에디터에게 넘겼다. “미래라면 시장에서 들리는 말소리 하나, 도심에서 들리는 차 소음 하나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츄럴시티>에서 우리가 듣는 소리는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들어본 적 없는 미래의 것들이면서, 동시에 어둡고 세밀한 화면에 맞게 섬세한 리얼리티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감독은 영화가 서정적인 SF로 보이길 바랐고, 폴리 아티스트는 R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똑같은 감정을 소리에 담았다. 폴리작업에 1개월, 사운드 소스 전체 작업에 두달여가 소비되고 프리믹싱에만 1개월을 공들여 완성한 사운드다.

가짜가 아닙니다, 진짜 총소리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감독 강제규 사운드 슈퍼바이저 김석원, 김창섭 제작연도 2004년

<쉬리>의 도심 총격전에서 실탄을 장전해 총을 쏘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김석원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사운드를 해외 라이브러리에서 채집한 것이 아닌 “우리만의 소스”로 만들고자 했다. 규모의 경제학을 자기 한계처럼 실험하는 강제규 감독의 100억원짜리 프로젝트 <태극기…>는 사운드도 영화의 규모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제몫을 다 한다. 북한군과 남한군, 장교와 사병이 쓰는 총을 구분해가며 20여 종류, 총알 500여발을 양수리 스튜디오로 들여왔다. 실탄 장전한 총으로 사운드를 채집해보긴 처음이라, 단발로도 쏘고 연발로도 쏘면서 “블루캡 전체가 난리가 나서” 작업했다. 포탄 소리와 탱크 소리도 모 군부대 지원을 받아 직접 녹음한 소스를 사용했다. “프린트 3권은 마음에 안 들어서 재믹싱을 바랐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그는, 스케일을 감안하면 3개월 정도 들여야 할 작업을 1개월 안에 끝냈다는 자부심을 표했다. “지금은 우리가 들어도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고, 아쉬움이 남는다. 소리를 좀더 예쁘게 다듬고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태극기…>의 사운드는 우리가 전부 만든 거다.”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소리로 만든 한국전쟁의 사운드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트 목록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현장의 소리로 실감나게, <달콤한 인생>

감독 김지운 사운드 슈퍼바이저 최태영 사운드 디자인 이승엽 제작연도 2005년

<반칙왕> <장화, 홍련> 등 김지운 감독의 전작을 계속 작업해온 최태영은 <달콤한 인생>의 사운드 작업의 목표를 “임팩트 강하면서도 사실적인 소리”에 맞췄다고 말한다. 격투신의 펀치 소리, 총격신의 총소리 등 공간 안에서 들리는 소리들 하나하나에 최대한 리얼리티를 심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촬영이 벌어진 바로 그 공간 또는 그와 가장 유사한 공간에서 폴리 소스를 따오는 것. 선우(이병헌)가 일하는 나이트 클럽의 발소리들은 부산 크라운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따왔고, 총소리들은 양수리 스튜디오에서 실탄 장전한 총을 발사해 소스를 땄다. 야간 도로를 질주하는 선우 주위의 도시 소음도 서울의 밤소리를 직접 따서 디자인한 앰비언스다. 리얼리티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사운드 소스는 6.1채널 방식으로 믹싱됐다. <화산고>(2001)에서 국내 최초로 돌비디지털서라운드 6.1채널 사운드 믹싱을 시도한 그는 <달콤한 인생>의 사운드가 화려한 패닝감을 가졌다고 자평한다. “김지운 감독의 비주얼이 가진 앵글 자체가 믹싱 엔지니어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패닝을 연상시킨다.” 센터, 좌, 우, 좌측서라운드, 우측서라운드, 백서라운드, 서브우퍼 등 7개 채널에서 정신없이 쏟아져나오는, 리얼한 사운드의 화려한 입출. 김지운 감독은 올해 칸영화제에 다녀와 최태영에게 감동적인 한마디를 던져주었다. “사운드 죽였어!”

동네 소리를 입혀 온기를 더하다, <사랑니>

감독 정지우 사운드 슈퍼바이저 김석원, 김창섭 제작연도 2005년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는 그 흔한 사랑에 관한 영화이지만 사랑에 관해 흔한 방식으로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사랑니>에서는 시간과 공간, 기억과 현실, 인물들간의 관계가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합체-분리를 해나간다. “인영-이석의 공간인 학원과 인영-정우의 공간인 집에 대한 설정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김창섭은 처음 <사랑니>를 보고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인영과 이석의 사랑이 좀더 있음직한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평범한 소리를 둘만의 공간에 담자고 감독에게 제안했다. <사랑니>의 학원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영화적으로 끌어들일 만한 사운드 요소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먼 곳의 소리들을 쓸어담았다. 분필 소리와 옆교실 소리가 없는 대신, 건물 바깥 먼곳에서 들리는 현실적인 도시 소음으로 학원이 둘만의 고유한 장소가 되게끔 했다. 사랑이 시작되고부터는 소녀들의 속살거림 같은 건물 안 소리를 입혀 두 사람이 사람들 속에 있음을 표시했다. 영화 속의 적막한 순간들이 지나친 긴장을 품지 않도록 인영의 집 주변으로 동네 아이들의 소리나 행상인의 목소리를 심어둔 것을 감독도 만족해했단다. 감독의 예상보다 많은 소리들이 인영의 삶에 개입함으로써 <사랑니>는 온기를 띠게 됐고, 사소하거나 평범한 소음들로 세심한 공간 연출을 시도한 김창섭에게는 개인적인 애착이 큰 작품으로 남았다.

할리우드 베스트 사운드

사운드와 이미지의 완벽한 화모니

<매트릭스>(1999)의 사운드 디자인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데인 데이비스는 “난 시끄러운 소리에 알레르기가 있다.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총소리와 폭발음에 진력이 나 있다. 끔찍하게 지겹다”고 몇번을 강조해 말했다.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한국이나 할리우드나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 할리우드식의 과장된 사운드가 싫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한국 영화계의 사운드 디자이너들처럼 할리우드의 사운드 디자이너들도, 바로 그 과장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들도 그런 소리는 싫어한다.

<지옥의 묵시록>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새로운 사운드란 없는 소리의 창조뿐 아니라 소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시각도 포함할 것이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사운드 디자이너 월터 머치의 오스카 사운드상 수상작인 <지옥의 묵시록>(1979)은 세상의 모든 사운드 디자이너들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 신경질적인 헬리콥터 소리가 오래도록 반복되다가 주인공이 누운 방 위의 선풍기 소리로 치환되는 오프닝 시퀀스의 사운드 디자인은 이미지와 완벽한 결합을 이루는 대목. 커츠 대령을 찾아 베트남 깊은 곳을 파고드는 윌라드(마틴 신)의 여정 또한 소리에서 억눌린 광기를 표현한다. <지옥의 묵시록>은 음악과 앰비언스, 이펙트간의 믹싱도 소름끼치도록 정교하다.

6회 오스카상을 수상한 사운드 디자이너 게리 라이드스트롬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로 7번째 사운드상을 받았다. 극한 전투 상황 그 자체인 초반 30분간의 노르망디 상륙 시퀀스는 수많은 사운드의 요소가 난잡하게 늘어져 있지 않고 철저한 계산에 따라 배치된 효과를 발휘한다.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가는 카메라에 따라 분명하게 갈리는 소리의 세계, 근음들과 원음들이 번갈아 닥치며 가하는 생명에의 위협, 밀러 대위(톰 행크스)의 시점과 전지적 시점이 교환될 때 달라지는 사운드 컨셉 등. 스티븐 스필버그는 게리 라이드스트롬에게 초반 시퀀스와 관련해 단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그 부분은 음악을 쓰지 않고 소리로만 갈 테니, 관객이 그 속에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달라.”

<스타워즈>

<쎄븐>

렌 클라이스는 할리우드의 젊은 사운드 디자이너다. 월터 머치나 게리 라이드스트롬 같은 거물급은 아니지만 앰비언스 디자인과 이펙트에 관한 남다른 시각을 인정받고 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파이트 클럽>(1999)보다도 국내 사운드 디자이너들이 감탄을 표하는 작품은 <세븐>(1995). 뉴욕의 도시 소음을 비롯한 공간 앰비언스의 섬세한 디자인이 빛을 발한다. 뉴욕 아침의 대표적인 소음이랄 수 있는 아침의 쓰레기 수거 소음을 밀즈(브래드 피트)의 방 바깥으로 입히기 위해, 그는 콘티를 그리고 쓰레기차와 배우를 고용해서 오직 소리만을 위해 장면을 연출하고 폴리 사운드를 일일이 딴 다음 앰비언스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벤 버트의 <스타워즈>(1977) 사운드가 있다. 광선검과 다스베이더의 목소리를 비롯해 조지 루카스가 창조한 광대한 미래세계의 모든 사운드를 그야말로 새롭게 만들어낸 인물이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불분명한 다스베이더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이즈가 심한 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모터 진동음이 섞인 심장 박동음으로 표현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광선검 사운드는 USC 학생 시절, 낡은 프로젝터 안에서 모터가 내는 낮은 허밍음을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에서 출발해 디자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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