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11일 저녁 7시30분(현지 시각) 평화롭게 개막했다. 지난해 공연예술분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영화제 개최 자체가 위기를 맞았던 흔적은 눈 씻고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축제 분위기에 이질감을 주는 것은 영화제 본부에 해당하는 팔레 데 페스티벌 건물벽 한 쪽에 걸린 현수막 정도. 최근 실종된 이라크 종군기자들과 통역관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리베라시옹>의 여기자 플로랑스 오베나와 그의 통역관 실종은 전세계 언론이 다룬 큰 사건이었지만 리비에라 해안의 화려한 5월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극장전’ 들고 온 홍상수감독 등 경쟁부문 스물 한명 감독 출사 심사위원장 “미학적 완성도 우선” 주목할만한 시선 김기덕 <활> 개막작 시사회 자리엔 꽉찬 관심
독일 출신의 프랑스 감독 도미니크 몰의 <레밍>으로 문을 연 칸영화제는 명백하게 작가영화를 지지한다. ‘거물들의 귀환’이라는 <르 몽드>의 표현대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아톰 에고이안, 미하엘 하네케, 허우 샤오시엔, 짐 자무시, 구스 반 산트, 라스 폰 트리에, 빔 벤더스, 다르덴 형제, 홍상수 등 경쟁부문에 속한 21명의 감독들 중 절반이 뚜렷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이며 이중 반 산트, 트리에, 벤더스, 다르덴 형제는 황금종려상 수상경력이 있다. 레드 카펫을 처음 밟는 감독들이 반 이상을 차지했던 지난해 라인업과 놀라울 만큼 대조적이다. 올해로 2년째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티에리 프레모는 “지난해가 새로운 발견에 좀더 집중했다면 올해는 최고로 위대한 감독들이 돌아와 우리를 기쁘게 해준다”라며 “우리는 스포츠가 아닌 예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에밀 쿠스트리차는 이날 오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심사기준으로 “미학적 완성도를 우선으로 삼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작가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이 넘쳐나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될 한국영화는 모두 8편. 홍상수 감독은 신작 <극장전>으로 2년 연속 경쟁부문에 진출하게 됐고, <달콤한 인생>은 공식 비경쟁부문에, <주먹이 운다>와 <그때 그 사람들>은 감독주간에 선정됐다. 조선족 출신 재중감독 장률의 <망종>은 비평가주간에 소개되며,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칸클래식 부문에서 복원 상영된다. 심민영 감독의 단편 <조금만 더>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은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의 개막작으로 선정돼 11일 첫 시사회를 열었다. 김 감독에 대한 유럽 비평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일찌감치 만석이 된 <활>의 상영관 밖에선 많은 기자들이 좌석을 얻지 못하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레드 카펫 위는 매우 소박했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우디 알렌 감독 등의 얼굴이 개막식에 비치긴 했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칸에서 세계 첫 시사를 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씨즈의 복수>의 조지 루카스 감독과 나탈리 포트먼, 이완 맥그리거 등 주연 배우들이나 브루스 윌리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샤론 스톤, 줄리엣 비노쉬 등 경쟁부문 상영작의 배우들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까이에 뒤 시네마>가 5월호 편집장의 글에 “세계 영화가 흥행과 산업 중심으로 가고 있는 반면, 그것과 다른 관점으로 영화의 좌표를 제시하는 것이 칸”이라고 쓴 대목은 올해의 작품 목록 뿐 아니라 스타 없이 조촐한 개막식 분위기에도 걸맞은 표현이 됐다. 제58회 칸국제영화제는 12일간 28개국 53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22일 폐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