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단편영화는 질주한다, 2005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오정연 2005-05-02

초청작의 스펙트럼은 넓히고, 경쟁작 수는 줄인 2005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한해 동안의 단편영화 흐름을 점쳐볼 수 있는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가 5월4일부터 8일까지 5일간의 항해를 시작한다. 경성대 콘서트홀과 소강당, 소극장에서 진행될 이 영화제는 부분적으로 경쟁을 도입한 국제영화제다. 전세계 23개국에서 만들어진 총 133편의 단편영화가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6개국 52편이 포진한 아시아 경쟁부문(Asian Short Prism)과 17개국 38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International Perspective’, 그리고 네개의 초청부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식 경쟁부문인 아시아 경쟁부문.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는 동백대상을 포함한 7개의 상들이 이 부문에 주어진다. 타이의 반종 피산타나쿤 감독, 앵커리지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밥 커티스 존슨,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이 관객상과 특별상을 제외한 부문의 심사를 맡는다.

올해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International Perspective’를 신설하면서 참가국을 미주와 유럽까지 확대한 점. 그러나 좀더 의미심장한 시도는 지난해에 비해 100편 이상 증가한 623편의 출품작 중에서 선정했음에도 경쟁부문 상영작의 비중을 크게 줄인 것이다. 기존 단편영화의 매너리즘을 지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영화제쪽의 설명. 대신 다양한 초청 프로그램들이 선보이게 된다. 일본 8mm 소형영화전과 이란단편영화 특별전, 칼아츠 특별전, 그리고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앵커리지국제영화제 교류전이 준비돼 있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8mm 소형영화 제작 워크숍과 영화를 통한 어린이 교육의 가능성, 학생감독 교류 프로그램의 성과, 디지털영화 제작의 추세와 전망에 대해 논의하는 세번의 오픈 토크 등 부대행사에도 참가할 수 있다(문의: 051-744-1978, http://www.basff.org).

개막작

아시아 경쟁부문의 <정거장을 지나치다>, ‘International Perspective’에서 선정된 3편의 영화가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미로속의 피카소>(주앙 파블로 에취베리)는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사내가 미노타우로스의 미로 속을 헤매면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비롯한 피카소 작품세계의 모든 요소들을 맞닥뜨리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미술적 소양 혹은 철학을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랫집과 옆집에서 벽과 천장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네 이웃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평범한 이웃>(조나스 게르네일트)은 간결한 그림체와 효과적인 사운드가 돋보인다.

<미로속의 피카소>

<평범한 이웃>

아시아 경쟁부문

촌철살인의 유머 혹은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를 앞세워 권력과 가족 등의 일상적인 주제를 고찰하게 만든 코미디물이 눈에 띈다. 좀더 큰 목소리, 즉 권력을 상징하는 마이크를 둘러싼 못 말리는 해프닝을 다룬 <정말 큰 내 마이크>(우선호)는 현실과 판타지를 저울질하면서 의미심장한 우화를 완성한다. <덤앤 더머>를 능가하는 막강한 주인공 커플, 사실적으로 묘사된 쫀쫀한 인간들의 갈등, 못 말리게 통 큰 상상력 등이 효과적인 핸드헬드와 리듬감 있게 편집된 맛깔스런 대사의 힘으로 유쾌하게 전개된다. <핵분열가족>(박수영)은 핵폭탄이 날아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콩가루 가족의 마지막 몇분을 묘사한다. 시부모든 자식이든 혹은 남편이든 마지막 순간에는 어차피 남이 되어버린다는 평범하고도 섬뜩한 진리를 화끈하게 설파하는 발랄한 영화.

<정말 큰 내 마이크>

<핵분열가족>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내세워 한국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고찰한 작품도 있다. 미국 중산층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일산에서 벌어지는 백주대낮의 반전이 인상적인 <골목의 끝>(홍원찬)은, 평온함 속에 소속되고 싶은 주인공의 욕망이 어떻게 배반되고 좌절되는가를 신랄하게 묘사한다. <가리베가스>(김선민)는 가리봉동을 떠나가는 여공의 하루를 그린다. 미혼 여자의 나 홀로 이사가 빚어내는 익숙한 상황으로 시작한 영화는, 끝없이 솟아오르는 첨단 빌딩 공사현장의 앙상한 풍경, 빈집에 들어서는 외국인 노동자 커플이 내뱉는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로 쓸쓸하게 끝을 맺는다. 시종일관 거친 태도를 고집하던 이삿짐 아저씨도, 악착같이 복비를 챙기는 주인집 아줌마도, 결국 악한 사람은 없다. 그저 세상이 변하는 것일뿐. 그 풍경이 안타깝고 착잡한 것은 그 때문이다. <죽어라지마>(류훈)는 ‘죽어라’와 ‘죽지마’를 합성한 제목. 황학동 철거 아파트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외면하지도, 적극적으로 살리지도 못하는 한 사내의 갈등을 다뤘다.

<Lost&Found>(김동령)와 <흡연모녀>(유은정)는 모녀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크린에 옮긴다. 데면데면하기 그지없는 모녀와 지하철 안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꼬마의 에피소드를 의미심장하게 병치시킨 <Lost&Found>는 설명을 절제함으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을 극대화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세라진> 등에 출연했던 연극배우 이영란이 어머니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각자의 고민으로 힘겨워하던 일곱살난 딸과 젊은 엄마가 서로에게 담배를 권하는 <흡연소녀>의 결말은 능청스럽고도 따뜻하다. 감독의 전작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들도 있다. 익숙한 괴담을 익숙한 문법으로 풀어낸 <목구멍 깊숙이>는 충격적인 반전이 여운을 남기는 <겨울철 독거노인> 이정현 감독의 최근작이다. 낯익은 공간에서 귀에 익은 대사를 내뱉지만 낯설기 그지없는 두 남녀를 바라보는 <텍사스, 여름, 음행을 피하는 신학생 부부 <입술의 모든 말>은 <나는 네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등의 영화에서 텍스트 및 영상을 인용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던 윤성호 감독의 영화.

특별전-어린이 프로그램

<존스의 모험>

영화제 기간 중 5월5일 어린이날 한회에 한해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모아 특별상영한다. International Perspective에서 선정된 11편은 다양한 형식과 포맷을 자랑한다. 어느 날부턴가 클래식과 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된 12살 소년의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미세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포착한 <피아니시모>(소엘렌 바레), 괴도 뤼팽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3D애니메이션 <사랑에 빠진 도둑>(길스 바이올렛), 회전목마를 탄 장난꾸러기 남매의 신나는 상상을 흥겨운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남매의 질주>(미하엘 살라빌), 귀여운 반전이 깜찍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존스의 모험>(엔리케 게토) 등이 눈에 띈다.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