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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2004] 영화의 바다, 신작들이 팔딱인다

7일 개막하는 부산영화제 266편 상영

영화팬이자 미식가이기까지 하다면, 전어와 부산영화제는 동의어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창 물이 오른 전어철에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오는 7일부터 15일까지 세계 63개국의 장·단편 영화 266편이 부산을 찾는다. 이중 세계에서 처음 상영하는 월드 프리미어 영화 39편, 자국 외의 국가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6편, 아시아에서 처음 상영하는 아시아 프리미어 50편은 말 그대로 싱싱한 회다.

9년이 흐르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 영화제가 됐다. 영화제 섹션의 하나인 ‘아시아 영화의 창’엔 허우샤오시엔을 비롯해 이와이 슈운지, 미이케 다카시, 왕차오, 아피찻퐁 위타 위라세타쿤 등 유명 감독과 주목받는 신예들의 신작이 총집합했다.

지난 1년동안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기에도 부산영화제가 적격이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미치고 싶을 때>(파티 아킨 감독),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추방된 사람들>(토니 가틀리프 감독)을 비롯해 에밀 쿠스트리차, 켄 로치, 파트리스 르콩트, 월터 살레스 등 명망가 감독의 신작이 관객을 기다린다.

올해 부산이 마련한 특별 프로그램은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과 △새롭게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최근의 독일 영화들을 모은 ‘독일 영화 특별전’ △6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한국·홍콩 합작영화 회고전’ 등이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에선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1970)부터 2003년작 <울부짖는 초원>까지 12편을 튼다. 개막작은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신작 이며 폐막작은 변혁 감독, 한석규 주연의 <주홍글씨>이다. 올해 프로그램의 화제작 가운데 조만간 극장에서 개봉할 영화를 빼고 8편을 추려서 소개한다.

일본거장 오즈 100돌 기념작 <카페 뤼미에르>(대만·일본, 허우샤오시엔 감독, 2004년)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1903~63)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영화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20대 일본 여자가 대만인 애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여자의 아버지는 착잡해 하면서도 이렇다할 충고를 하지 못한다. 전작들보다 관조적, 사색적 분위기가 짙다. 부모와 자식 세대의 갈등이라는 소재나 몇몇 화면에서 오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인기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가 출연한다.

식욕에 담긴 여러가지 단상들 <신성일의 행방불명>(한국, 신재인, 2004)오른쪽 사진

한국독립영화계의 ‘신동’ 또는 ‘기인’으로 꼽히는 신재인 감독의 첫 장편영화. 뭐든지 먹어치우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에 이어 식욕이 다시 소재로 오른다. 공개된 자리에서의 식사가 금지된 고아원에서 금욕을 교육받고 자란 소년 성일이는 먹지 않아도 찌는 퉁퉁한 외모 탓에 늘 경멸당한다. 우연히 고아원을 탈출하게된 성일이가 먹거리 지천인 세상에 나와 받는 충격을 그리면서 감독은 기묘하고 다의적인 의미를 여기저기에 깔아놓는다.

뚱보들, 패스트 푸드를 먹다. <슈퍼 사이즈 미>(미국, 모건 스펄록, 2003)

과일이나 공산품의 크기, 기업의 규모뿐 아니라 사람의 덩치도 ‘슈퍼 사이즈’인 나라 미국에서 사람들의 비만도와 패스트푸드 소비량의 함수 관계를 ‘마루타’식 실험으로 입증하는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정밀한 신체 검사를 받은 다음 한달 동안 매일 세끼를 꼬박 맥도날드의 세트 메뉴로 먹는다. 한달 뒤 불어난 몸무게와 늘어난 혈당량, 콜레스테롤 지수가 경악할 수준이다. 덧붙여 의사, 요리사, 소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패스트푸드 애용의 혹독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다른 사형제의 생존방식 <아무도 모른다>(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4)

일본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영화화했다. 각기 아버지가 다른 네 남매를 데리고 살던 철없는 엄마는 어느 날 푼돈만 남겨둔 채 도망가고 12살 소년이 하루 아침에 가장이 된다. 서서히 피폐해지면서도 나름의 생존방식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연기가 눈물겹다. 아키라 역의 비전문 배우 야기라 유야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탄광에 갖힌 인간의 욕망이여 <낮과 밤>(중국, 왕차오, 2004)

왕차오는 데뷔작 <안양의 고아>(2001)에서 주변부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을 정적인 화면 안에 놀랄만한 에너지를 담아 표현했다. 두번째 영화 <낮과 밤>은 민영화가 시작된 탄광촌의 변화상을 담으면서도 욕망과 죄의식이라는 근원적인 주제에 다가선다. 주인공 남자는 국가로부터 탄광을 넘겨받아 성공하지만, 스스로의 욕망은 이전의 윤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파행적인 삶을 산다.

전장에 핀 사랑도 축볼일까. <인생은 기적처럼>(프랑스·세르비아, 에밀 쿠스트리차, 2004)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다운 시끌벅적함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드리운 영화. 전작들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을 구체적으로 스크린에 불러왔다. 세르비아의 평범한 철도 기술자가 세르비아-보스니아 내전의 한 가운데서 적군의 인질과 사랑에 빠진다. 광적인 응원 속에서 벌어지는 동네 축구에 내전을 빗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앵글로 쓴 30년간의 일기 <타네이션>(미국, 조나단 카우에트, 2004)

물경 30년의 제작기간(?)으로 완성된 셀프 다큐멘터리. 엄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대리부모 사이를 전전하며 자란 감독은 어릴 때부터 취미삼아 캠코더 카메라로 찍어놓은 자신의 기록을 한권의 내밀한 일기장처럼 완성했다. 기구한 가족사와 이로 인한 자아분열의 모습이 드라마보다 극적이면서도 구사하는 전위적인 영화어법은 ‘인간극장’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일종의 환각체험을 선사한다.

오위썬이 만든 한·홍 합작품 <용호문>(홍콩·한국, 우위썬·김정용, 1975)

할리우드 스타 감독이 된 우위썬(오우삼)의 초기작. 소림사의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모인 세명의 협객 이야기로 성룡, 홍금보, 원표의 30년전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쪽 감독 김정용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며, 이후 합작영화 5편을 감독했다. 한국·홍콩 합작영화 특별전에서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