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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천재의 한뼘드라마, <텐 미니츠 트럼펫>
조성효 2004-03-18

<텐 미니츠 트럼펫> Ten Minutes Older: The Trumpet

2002년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외 6인

상영시간 92분

화면포맷 4:3

음성포맷 DD 2.0 영어, 기타

자막 한글

출시사 영상프라자

21세기 초는 게으른 자들에게 효율적인 영화보기를 제공한 기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9·11의 깃발 아래 제작된 〈11’09”01〉이나 광고와 예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BMW의 〈HIRE>, 그리고 35인의 감독들이 만든 애니메이션 연작 <겨울날> 등을 통해 시간대비 양질의 단편 옴니버스들을 (그것도 거장들의) 감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코 각국 대표감독들의 연작 <텐 미니츠 트럼펫>이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삶을 때론 잔혹하게 때론 따뜻하게 보여주는 카우리스마키는 페르소나인 카티 오티넨과 함께 <과거가 없는 사나이>를 10분 더 연장시킨다. <벌집의 정령>의 빅토르 에리세는 또다시 1940년을 그린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불러낸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스페인 내전이 아닌 나치즘의 망령이었다. 헤어초크는 <아귀레, 신의 분노> <위대한 피츠카랄도>에 이어 또다시 아마존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만년의 시간을 영위해온 아마존의 우르유족이 어떻게 20년 만에 멸망했는지를 보여준다. 흑백영상을 사랑하는 짐 자무시는 10분간의 휴식을 취하는 여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탭들에게 끊임없이 방해받는 그녀가 실제로는 그 10분 동안 연기를 하는 것이며 트레일러를 나간 뒤 진정한 휴식을 가질 것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 로드무비의 제왕 빔 벤더스는 뮤직비디오 제작경험을 살려 실수로 약물을 과다복용한 남자의 시야를 MTV적 영상으로 보여준다. 스파이크 리는 대통령선거 막바지에서 투표결과에 승복하려는 고어를 참모들이 어떻게 10분 동안 막았는지를 숨막히게 연출하고 첸가이거는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져가는 과거를 CG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

평범한 화질과 사운드를 담았지만 <텐 미니츠 트럼펫>은 전세계를 통틀어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된 DVD로서의 의미가 있다. 서플먼트로는 각편의 주제를 두개의 단어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극장예고편만 수록되었다.

조성효

이번주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대작 타이틀이 없기 때문에 세 사람의 선택이 각자의 주관적인 취향에 따라 갈렸다. 본인이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국내판의 출시를 기다려온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다. 토르나토레 감독의 로맨틱한 복고풍의 영상도 훈훈하지만, 다채로운 영감을 마음껏 분출해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천재성에는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서 펜의 휘하에 쟁쟁한 명배우들이 집결해 열기를 내뿜는 <체이스>는 고전영화 팬에게는 필수일 테고, <텐 미니츠 트럼펫>도 영화광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타이틀이다.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인 <칠수와 만수>의 발매도 반갑다. <곰이 되고 싶어요>와 <사토라레>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마감일까지 샘플이 도착하지 않아 다음주로 넘겨졌다.

이른바 ‘나이 먹은’ 영화는 출시 자체가 가시밭길이다. 리뷰용 샘플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대중성이 적다는 이유로 출시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씬맨>(1934)과 <하이 시에라>(1941) 등 많은 작품이 그랬다. 콜럼비아사가 3월에 출시한다고 광고한 <프론트>와 <체이스>도 같은 경우가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주엔 굳이 예전 작품 두편, 마틴 리트의 <프론트>와 박광수의 데뷔작 <칠수와 만수>를 선택한다.

<텐 미니츠 트럼펫>은 작은 제작사에서 나온 인상적인 DVD다(사실 DVD 자체는 그저 그렇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짐 자무시 등 멀고도 가까운 일곱 존재가 모여서 만든 작품은 10분 내외의 길이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단 세편의 영화로 거장이 된 빅토르 에리세는 아직 국내에서 비디오나 DVD로 출시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시되는 <텐 미니츠 트럼펫>은 그의 <남쪽>이나 <벌집의 정령>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영화제에서 놓쳤던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줄 듯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탈언어적인 영화를 만든다. 그의 작품들은 비영어로 제작된 것들도 무자막으로 그냥 보고 있노라면 대부분 이해가 된다. 그의 작품을 한국자막이 지원되는 DVD로 만나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짐 자무시는 10분이라는 작은 시간이 얼마나 달콤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그렸다. 너무 사랑스런 작품이다. 이번주의 선택은?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더이상 이야기 해야 하나? 만일 <텐 미니츠 트럼펫>의 7작품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빅토르 에리세와 짐 자무시를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