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3]

현실의 공포, 슬래셔의 테크닉을 봉인하다 <가위>에서 <장화, 홍련> 까지, 한국 공포영화의 진화론적 연구

다시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지난 6월 <장화,홍련>으로 막을 연 이 시즌은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 이어 과 <거울속으로>가 개봉하면서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9월에 개봉할 <아카시아>까지 포함하면 무려 5편의 공포영화가 1년에 60편 남짓 생산되는 한국영화의 한 부분을 선연한 핏빛으로 장식할 참이다. 여름하면 공포영화를 연상하는 버릇 때문에 그닥 새로운 일이 아닌 듯하지만 한국영화가 1년에 5편씩 공포영화를 쏟아낸 일이 빈번했던 건 아니다. <가위> <해변으로 가다> <하피> <찍히면 죽는다> <공포택시> 등이 개봉했던 2000년 이후 3년 만이며 1998년 <여고괴담>이 흥행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없었던 일이다. 가히 한국 공포영화의 복수혈전이라 부를 만한 이런 현상은 어디서 비롯된 일이며 무엇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개별 영화의 완성도는 천차만별이지만 지금 이곳에서 공포영화의 진화과정은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각각 5편의 공포영화를 양산한 2000년과 2003년을 비교하면 아주 뚜렷해진다.

1998년 이후 공포영화 흥행성적

1998년

여고괴담 | 박기형 | 62만1032

퇴마록 | 박광춘 | 41만9201

조용한 가족 | 김지운 | 34만3946

1999년

자귀모 | 이광훈 | 42만

링 | 김동빈 | 33만2354

신장개업 | 김성홍 | 10만915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 김태용, 민규동 | 10만

<가위> <장화, 홍련> - 원혼을 불러내다

2000년에 개봉한 5편 가운데 <공포택시>를 제외한 4편은 한눈에 드러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군의 젊은이들이 차례로 살인마의 손에 죽어간다는 슬래셔영화의 설정이 그것. <가위>의 경우 원혼이 등장하는 반면 <해변으로 가다>는 사람이 살인마라는 구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이들 영화가 모두 <스크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1996년 할리우드에서 슬래셔 붐을 다시 일으킨 <스크림>은 공포영화에 관심있는 감독들을 자극할 만한 작품이었다. 북미에서만 1억8천만달러를 거둬들인 이 영화는 이름값을 지불해야 할 스타나 엄청난 특수효과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장르가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줬고 국내 제작자와 감독들도 그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들 영화는 슬래셔영화의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은 모방했지만 이 장르가 태어난 맥락에 관해선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슬래셔는 섹스, 음주, 마약으로 대변되는 10대의 방종을 처벌하는 무시무시한 아버지(혹은 <싸이코>의 어머니)였지만 한국의 10대 혹은 청년문화가 미국과 같을 수는 없었다.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현실을 비판하는 <여고괴담>이 미국에서 흥행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의 슬래셔영화는 2000년 사망선고를 받았고 즉각 봉인됐다. 그나마 5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모은 <가위>가 달랐던 점은 미국 슬래셔영화에만 의존하지 않았던 점이다. 검은 옷을 입은 소녀,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원혼은 1998년 일본열도를 얼어붙게 만든 <링>에서 빌려온 것이다. 기이한 능력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소녀 사다코는 국내에 직수입될 수 있는 공포의 형상이었다. 드라큘라나 살인마, 혹은 프랑켄슈타인이나 악마와 달리 한맺힌 여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살았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링> 이전에 리메이크된 신은경 주연의 <링>이 국내에 먼저 소개된 것도 이런 맥락에선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발빠른 제작자라면 사다코가 한국으로 건너오는 데는 다른 언어조차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폰>

<해변으로 가다>

TV에서 튀어나와 관객을 경악시킨 사다코는 2003년 공포영화의 시작을 알린 <장화,홍련>의 별장에도 초청받았다. 수연의 꿈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여귀의 움직임은 전보다 기괴한데다 단순히 기어나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눈앞으로 확 달려든다. 즉각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사다코만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장화,홍련>은 <링> 외에도 <큐어>나 <오디션>의 장면을 빌려왔고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의 반전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식스 센스> 스타일의 반전은 <장화,홍련>을 이전의 공포영화와 구분짓는 분수령이다. 여기서는 원혼이 아니라 망상이 문제가 되며 전후 상황은 논리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 어떤 면에선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의 반전은 시점을 교란시켜 뒤집힌 상을 똑바로 보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두 영화 모두 반전을 통해 감정의 전환을 끌어내는 데 비해 <장화,홍련>은 감정을 쌓고 해소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평론가들의 비판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2000년의 공포영화들과 2003년의 <장화,홍련>이 당시 유행했던 미국영화나 일본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미디나 멜로드라마도 이처럼 외화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적이 있던가?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나 왕가위의 영화처럼 유행을 일으킨 영화들은 있지만 코미디나 멜로드라마가 토착적인 장르로 뿌리내린 것과 달리 공포영화에선 외국에서 얼마 전 히트한 것이 그대로 수입된 예가 훨씬 많다. 단순히 공포영화의 역사가 일천해서일까? 60년대 국산 공포영화가 상당수 제작된 것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2002년 여름 의외의 흥행을 기록한 <폰>은 60년대 한국 공포영화의 유산을 계승한 작품이다. 치정과 질투가 얽혀든 멜로드라마에 공포물의 트릭을 겹합한 <폰>은 작품의 완성도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최근 공포영화의 어떤 전형을 보여준다. 휴대폰과 인터넷이라는 첨단 통신기술, 60년대 여성관객을 포박했던 여인의 한을 다룬 이야기, <링> 이후 일본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됐던 긴 생머리의 소녀, <엑소시스트>의 악령들린 아이 이미지,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 등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소재와 표현기법이 등장한다. ‘퓨전’ 공포영화라고 부를 만한 이런 경향은 최근 개봉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로도 이어진다. 공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다양한 기법의 활용에 있다는 사고방식인 셈이다.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1]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2]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3]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