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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에서 <장화,홍련>까지,오기민 PD의 영화 세상 [2]

그가 스타 캐스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프로듀서인 것은 이런 점과 관련있어 보인다. <장화, 홍련>은 최초의 투자사에서 캐스팅이 약하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절했던 영화지만 “공포영화는 스타 캐스팅이 중요하지 않다”는 오기민씨의 믿음에 따라 완성됐다. <고양이를 부탁해>도 애초 원했던 스타 캐스팅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신인배우의 등용무대가 된 <여고괴담>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제작준비 중인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100% 중년배우들로 캐스팅할 예정이다. “운이 좋았던 점도 있다. 투자사가 내가 하자는 대로 받아들여줬으니까.” 캐스팅에 대한 이런 태도는 그가 기획한 영화들이 쉽게 무산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충무로 상황을 보면 수많은 영화가 캐스팅에서 고배를 마시고 좌절되곤 했지만 그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라도 영화를 완성시키는 편이다. 변영주 감독의 <밀애>를 기획했다 내부 사정상 좋은영화에 넘긴 것도 차선으로 영화를 완성시킨 경우다. <장화, 홍련>을 영화사 봄과 함께 만든 것과 비슷한 예다. 오기민씨는 영화사 봄에서 마케팅을 맡고 마술피리가 제작을 하는 시스템을 택함으로써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봤다고 말한다. 아마 <장화, 홍련>의 협력사례는 다른 제작사들에도 자극이 될 것이다.

4. 기획력으로 승부하는 프로듀서

“기획력이 좋다.”(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남들이 안 하는 기획을 한다.”(청년필름 대표 김광수) “기획을 하면 마지막까지 그 기획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아이픽쳐스 대표 최재원) 제작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오기민씨에게 “기획력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흔히 볼 수 없던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타당한 지적이다. 그간 십대 소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점도 이런 차이를 만든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취향이 다르다고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여기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처음 충무로에서 일하면서부터 낚시를 취미로 삼게 됐다고 말한다. 멍하니 물을 바라보며 영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낚시를 하면서 영화 아이디어를 떠올린 적은 없다. 거꾸로 낚시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버리는 작업을 한다. TV를 보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그걸 전부 영화로 만들겠다고 덤벼들면 곤란하다. 낚시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하나씩 버리는데 그래도 끝까지 남는 아이디어는 영화로 만들게 된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느 CF문구처럼 아이디어를 버리면서 건진 기획은 그만큼 추진력을 갖기 쉽다.

그가 이처럼 기획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자신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독한테 맡겨두거나 산업의 논리에 끌려가는 식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취향이 폭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작자와 산업의 접점을 잘 찾아야 된다.” 여기서 오해를 피해야 할 것은 그가 말하는 ‘기획’이 90년대 유행했던 ‘기획영화’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획영화가 관객의 기호나 유행에 민감하게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오기민씨가 말하는 기획영화는 작가와 산업의 공존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작자 스스로 어떤 취향과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여자가 주인공이거나 주변부적인 인물이 나오는. 그걸 감독한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영화사로 시나리오 들어오는 걸 보면 너무 심각한 예술영화인 경우가 많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런 영화가 들어오길 앉아서 기다릴 수만도 없다. 기획 시스템이 중요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오기민씨의 제작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아직 5편밖에 안 만든 프로듀서이며 영화사로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제작자라는 점에서 너무 많은 것을 미리 규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오기민씨의 일관된 태도가 지금 한국영화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제작자의 취향과 관심에만 지나치게 경도된 영화사가 아니냐는 지적에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려고 영화하는 거 아닌가? 이 영화 저 영화 다 할 생각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겠는가? 자기 색깔을 갖는 영화사들이 많아지고 잘되는 게 전체 한국영화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닌가?”

(추신: 오기민씨에 관해 물었더니 씨네2000 대표 이춘연씨는 이런 농담을 했다. 혼자 알고 있기 아까워 기록으로 남긴다. “기민한 놈이다. 오기도 있고. 마술에 의지해보려고 영화사 이름도 마술피리로 짓지 않았나. 오전에도 만났다. 영화가 잘되니까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 그래서 한마디 해줬다. 니가 언제부터 그런 인자한 표정이냐 늘 긴장한 표정이더니. 만나거든 장화 한 켤레 사달라고 해라.”)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오기민이 말하는 오기민의 영화들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 감독과 얘기해야 하는지 알았다”

<이방인> 1998년, 감독 문승욱 제작 기획시대 서울관객 7200명

처음 프로듀서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운 영화다. 촬영한다고 폴란드에 도착했더니 애초에 문승욱 감독과 얘기했던 시나리오와 전혀 달랐다. 폴란드에 가기 전에 문승욱 감독이 제안했던 건 스트립클럽에서 벽돌깨기 쇼를 하는 태권도 사범과 스트리퍼인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점잖은 태권도 사범 이야기로 바뀐 거였다. 원래 이야기의 느낌이 좋아서 시작했던 건데 폴란드 제작사가 워낙 개입이 심해서 감독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시기에 감독과 어떤 식으로 얘기해야 하는지 많이 깨달았다.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프로듀서를 했는데 아마 폴란드에서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폴란드 스탭들은 내가 어떤 영화를 했는지 상관하지 않았으니까. <이방인>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씨네2000에서 <여고괴담>을 하겠다고 해서 <이방인> 후반작업엔 참가하지 못했다. <여고괴담> 촬영을 시작할 무렵, <이방인>이 개봉했는데 관객이 이 정도로 조금 들 수 있구나 싶더라.

“힘든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예산도 적고 일정도 촉박하고”

<여고괴담> 1998년, 감독 박기형 제작 씨네2000 서울관객 62만1032명

오랫동안 갖고 있던 아이템이었는데 처음엔 거의 모든 영화사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다 씨네2000에서 제작하고 강우석 감독이 투자하기로 하면서 갑자기 준비에 들어갔다. 12월8일에 박기형 감독을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했더니 생각해보겠다며 2주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기다렸더니 12월15일에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나서 5번 시나리오를 고쳐쓰고 이듬해 2월20일경에 첫 촬영에 들어갔다. <여고괴담>은 힘든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스탭들한테도 너무 미안하고. 예산이 너무 적었고 일정이 정말 촉박했다. 순제작비 6억5천만원인데다 촬영장소인 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만 찍을 수 있었다. 28회 만에 끝냈고 소녀들의 우정에 관한 얘기라고 말하고 학교를 빌릴 수 있었다. 개봉하는 날 갔더니 첫 영화랑 너무 달랐다. 서울극장 앞에 줄을 섰는데 엄청났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 그건 꼭 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은 게 아니다. 버스를 타면 여학생들이 <여고괴담> 얘기만 하고 요즘 <장화,홍련>이랑 비슷했다.

“김태용·민규동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1999년, 감독 김태용, 민규동 제작 씨네2000 서울관객 9만4405명

쉽게 갈 수도 있었는데 쉽게 가는 건 일단 포기했다. 1편과 다른 성격의 영화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내준다면 재능있는 신인감독과 신인배우를 배출하는 좋은 시리즈가 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관객이 조금 더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굉장히 참신한 영화가 나왔으니까. 스타일도 새롭지만 정서적인 느낌이 정말 좋았다. 1편 때와 다르게 ‘여고’와 ‘괴담’이라는 두 가지만 살린다는 조건으로 김태용, 민규동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참고로 <천상의 피조물들>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크게 영향을 준 건 아니었다. 안타까운 것은 1편 때처럼 너무 급하게 진행했던 점이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가야 돼서 미루자고 말하기도 했는데 감독들이 그냥 하겠다고 해서 그대로 진행했다. 방학 동안 촬영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1편과 마찬가지로 쫓기며 작업했다. 1편과 달리 훨씬 여유있게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해서 중간에 감독들이 쓰러지는 사태도 겪었고 벅찬 일정 때문에 힘들었다.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을 다뤄보고 싶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2001년 감독 정재은 제작 마술피리 서울관객 2만8200명

회사를 차리고 첫 영화인데 정재은 감독이 들고온 시놉시스로 영화를 만들었다. 처음에 정재은 감독을 만난 건 그의 단편영화를 보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연출부를 해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결국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스크립터를 했고 내가 회사를 차리자 시놉시스를 갖고 찾아왔다. 소재가 재미있었고 <여고괴담> 시리즈를 하면서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을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감독도 단편영화 <둘의 밤>을 만들고나서 그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고 그래서 잘 맞았던 거 같다. 첫 작품을 돈 버는 영화를 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손해를 각오하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만든 건 일종의 고집이다. 먼저 상업적인 영화를 만든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고, 처음부터 내가 지향하는 영화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게 앞으로 일하는 데 훨씬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

<장화,홍련> 2003년 감독 김지운 제작 마술피리 마케팅 영화사 봄 서울관객 71만4712명6월25일 현재)

원래 아이디어는 대학생이 친부모를 살해한 실화에서 떠올렸다. 이걸 민간설화인 <장화홍련전>에 접목하면 어떨까 싶었고 가족관계에서 나오는 살의와 공포를 다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가족> 때부터 눈여겨봤다. <조용한 가족>이 <여고괴담>보다 조금 일찍 개봉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호러 느낌의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장화,홍련>을 제안할 때 <커밍아웃>은 봤고 <메모리즈>는 못 본 상태였는데, 김지운 감독이 공포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연출을 부탁해보자고 생각했다. 소녀들이 나오고 여성적인 느낌이 나는 공포영화여서 잘 맞을 것 같았다. 다행히 흔쾌히 승낙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감독이 알아서 진행했다. 김지운 감독이 워낙 시나리오를 빨리 써서 1주일에 1번씩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 감독이 돈 벌 영화라는 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흥행성공의 요인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그런 걸 알려주면 좋겠다. 다만 기획과 감독과 마케팅의 힘이 제대로 결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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