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한국영화 동향을 간단히 규정해 보자면, 소수의 개성적인 영화들을 통해 상당한 정도의 다양성이 확보되었고 폭력과 섹스 코드가 여러 양상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폭력과 섹스는 주류 상업영화의 중심 소재로서 흥행의 견인차 노릇을 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문제작들로까지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라는 정신분석학의 명제가 유용해 보인다. 한국영화가 융성하고 퇴조하는 커다란 흐름을 도표화해보면, 영화의 흥망성쇠가 정치적인 억압과 정확하게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억압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시기에는 국가기구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체의 비판이 봉쇄될 뿐만 아니라, 폭력과 섹스를 둘러싼 윤리적인 태도에서도 보수적인 기조를 띤다. 뒤집어 말하자면 정치적 검열이 완전히 소멸한 1990년대 후반 이후 폭력과 섹스가 질풍노도처럼 스크린에 귀환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혜택을 가장 크게 입고 과실을 먼저 챙긴 것이 조폭영화다. 조폭영화는 영화 속에서 재현을 금지당했던 폭력이 스크린 안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견된 하나의 진입로였다. 그것이 얼마나 유혹적인 통로였는지는 지난해의 상황을 잠시나마 회고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조폭영화가 선풍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필자는 남성 주체의 뒤틀린 자화상을 통해 사회적인 좌절과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조폭영화의 사회학을 위해’, <씨네21> 2001. 12. 19일치).
그런데 올해는 조폭영화의 제작편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흥행면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조폭영화가 갑자기 사라졌다거나 폭력 코드의 위력이 쇠퇴한 것은 아니고, 몇 가지 계열로 분화되면서 변화를 겪는 중이라고 여겨진다. 그 방향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까 한다.
폭력, 하나의 코드첫 번째 기류는 폭력영화 스스로가 폭력에 대한 윤리성을 강하게 환기하면서 사회제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는 현상이다. 그 출발점은 <공공의 적>이었고 대미를 장식한 것은 <광복절특사>다. 이런 조짐은 사실 조폭영화 안에 내재해 있었다. 지난해에 나온 <두사부일체>는 조폭을 통해 교육조직의 비리문제를 건드렸고, 그 외에도 몇몇 영화들이 제도 자체의 부패와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공공의 적>은 이같은 기류를 흡수해서 경찰 조직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보면서도, 타락한 펀드매니저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더 큰 비리와 모순 앞에서 무능하고 폭력적이던 경찰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각성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광복절특사>는 감옥에 갇힌 폭력배들을 통해 도리어 교도소라는 제도의 비인간성과 허위를 드러냈다. 폭력영화의 이같은 윤리적, 정치적 각성에 대해 관객과 평론가들이 어느 정도 일치된 호응을 보냈다.
두 번째 변화 방향은 폭력 자체를 스타일리시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지난해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이어 나온 <피도 눈물도 없이>와 <복수는 나의 것> 가 바로 그런 예다. 이들 영화는 장르와 주제, 스타일면에서 두루 작가주의적인 의지를 수반하기 때문에 폭력성에 대한 윤리적인 면죄부와 미학적인 평가가 함께 주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런 경향의 한 정점으로 올 한해 동안 나온 영화 가운데 작품과 감독이 가장 과소평가된 경우라고 생각된다.
세 번째 방향은 유력한 상업영화 장르와 결합하는 것이다. 조폭영화가 코미디 장르와 결합하는 것은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등 이미 지난해부터 관찰된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전통과 흥행력을 가진 멜로드라마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관점에서 기획된 예가 <가문의 영광>이다.
<가문의 영광>은 조폭 가문의 남자들이 딸/여동생으로 하여금 모양새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합당한 배우자를 찾아주려고 좌충우돌하는 소동을 그렸다. 말하자면 조폭과 코미디, 멜로 장르를 혼성한 셈인데 관객은 이런 시도를 적극 환영했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조폭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대열에 끼어들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조폭영화가 변화를 일으키는 와중에 조폭이라는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조폭영화의 네 번째 변화 방향은 이른바 ‘양아치영화’로의 이동이다. 조폭은 주요 인물들의 연령대가 20대 중반 이후로 설정된다. 그런데 올 한해 동안 연령대가 십대 후반 정도로 낮아진 남성 문제아 집단이 영화 속에 대거 출현했다. <정글쥬스> <일단 뛰어>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대략 이런 부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적인 주류로의 진입이 거의 봉쇄되어 있고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폭력적인 소동에 의지하는 청소년들로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조폭영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 어린 양아치들은 아직 조직폭력과 연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구사하는 폭력의 수위는 조폭영화에 비해 한결 낮아졌으며, 특히 유소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라는 코드를 결합한 까닭에 정감있고 아련한 느낌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라는 가까운 과거가 복고적 향수의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같은 경향을 총망라하고 있는 영화가 최근에 완성된 <품행제로>다. 이 영화는 집단성을 띠고 있는 문제아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결말에 가서 칼과 피가 동원된 비장한 난투극을 벌일 뿐만 아니라, 두명의 여성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의 대립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폭영화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고등학생이고 이들이 구사하는 폭력은 코믹한 개그처럼 묘사되어 있으며 멜로드라마 플롯을 상당한 비중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올해 들어 조폭영화가 보여주는 변화 방향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배우 류승범은 그 자체로 양아치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널리 알려진 그의 청소년 시절은 이 영화의 주인공과 어딘가 유사하면서도 결국에는 모범적인 주류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조폭영화 혹은 양아치영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볼 때 <가문의 영광>과 <품행제로>는 통하는 데가 많다. 과거의 조폭영화가 난폭한 가학-피학을 통해 왜곡된 사회현상에 대한 좌절과 욕구 불만을 드러냈다면 최근의 폭력영화는 가볍고 낙관적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월드컵과 대통령 예비선거 등을 거치면서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자는 신념을 피력하고 있는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섹스, 또 하나의 코드올 한해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섹스 코드가 폭력 코드와 맞먹을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민주화운동이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일 때마다 섹스를 다룬 영화들의 표현 수위도 파상적으로 출렁거렸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애마부인>과 <매춘> 시리즈, 1990년대 초 <결혼 이야기>를 필두로 젊은 연인 혹은 부부의 사랑과 성을 다룬 로맨틱코미디가 득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나온 성애영화들에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동안 한국영화가 안전하게 혹은 관습적으로 다루어온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윤리적으로 비난받았거나 모른 척 시치미를 떼온 변방의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스, 정류장>은 여고생의 원조교제라는 모호한 형태로나마 청소년 여성의 성애문제를 불러들였고 <중독>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장치를 통해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에 접근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기혼 여성의 일탈적인 성애를 별다른 죄의식 없이 다루었고, <밀애>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적인 각성의 동기로까지 끌어올렸다.
<로드무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는 각각 게이와 레즈비언 관계를 전향적으로 다루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 이성애와 동성애 커플의 삼각동거라는 모티브를 통해 코믹한 형태로나마 미래에 닥칠 새로운 가족 유형을 예고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춘기의 성을 소재로 한 <몽정기>, 성인이되 공인받지 못한 20대 초반의 성을 다룬 <색즉시공>, 노인들의 열정적인 섹스를 묘사한 <죽어도 좋아> 등 연령적으로 영화 안에 진입하지 못했던 세대의 성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들이 관객 혹은 평론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섹슈얼리티가 활발하게 도입되면서 섹스의 부산물, 즉 임신과 낙태문제 또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얀방>과 의 경우에는 낙태를 무차별적인 살인이라고 보는 주제의식을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나간 반면, <색즉시공>과 <마들렌>은 여성의 순결이나 혼전임신 여부에 대해 한결 관대하고 포용적이 된 남성들의 태도 변화를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해당 영화에 대한 리뷰를 통해 피력했던 의견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미성년자와 여성, 노인, 동성애자의 성은 우리가 정면으로 다루기를 꺼려하는 변방의 성이고, 이는 출산과 교육, 노동력 재생산의 책임을 몽땅 가족에게 떠넘기는 사회 시스템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변방의 성이 스크린에 활발하게 등장한다는 것은 일부일처제 가족을 둘러싼 갖가지 신화와 금기가 점차 무력화되어 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섹스와 폭력 비판보다 대안을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폭력과 섹스가 코미디를 중심으로 버무려지고 흥행을 독점하는 현상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영화가 강력한 흥행 코드를 하나둘씩 찾아나감으로써 영화산업의 안정성을 기약할 수 있는 중심 장르를 갖게 되었다는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문화적인 편중을 해소하고 다양성을 확보할 단서는 이같은 흥행 코드를 무작정 비판하는 데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마이너리티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자잘한 유통망을 체계화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대안적인 배급체계의 건설이야말로 향후 문화적인 행정 능력을 집중해야 할 이슈라고 생각된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