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6일은 한국 영화사의 선구자였던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 그러나 영화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기념사업과 행사가 자금 부족과 영화인들의 무관심 때문에 축소가 불가피한 실정이어서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다.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를 주최해온 한국영화감독협회(이사장 임원식)는 함경북도 회령에 춘사 탄생 사적비를 건립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남북한 공동 기념사업을 추진해왔으나 북한측의 소극적인 자세와 자금 부족 때문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한민족아리랑연합회도 지난 8월 초 북한의 대외초청영접위원회와 △<아리랑> 주제의 다큐멘터리 평양영화축전(9월 4∼13일) 출품 △유현목 감독 <아리랑>의 상영 및 세미나 개최 △춘사 어록비 건립 및 전집 발행 등을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별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규동 시인이 시를 쓴 춘사 탄생 100주년 기념시비도 기념일에 맞춰 세워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영화감독협회는 시를 새길 돌까지 확보해놓았지만 관계기관 간에 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와 서울 필동 남산한옥마을로 의견이 엇갈려 장소를 확정하지 못했다. `영화의 거리'가 조성될 서울 돈암동 아리랑고개도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곳에는 공사가 끝나는 내년 9월 이후에나 건립이 가능하다.관련자 증언과 자료 수집 등을 통해 그의 대표작 <아리랑>을 원형대로 복원, 올해 개봉하려는 계획도 이두용 감독에 의해 완성되기는 했으나 송사에 휘말려 상영이 불투명한 형편. 서경웅 감독은 제작사(시오리필름)가 자신의 시나리오와 연출 아이디어 등을 도용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놓았다.`민족영화 1호`로 꼽히는 1926년작 <아리랑>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란 일본인 영화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만일 보관돼 있다 하더라도 질산염 필름으로 제작돼 상당부분 훼손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영화감독협회는 부족하나마 제10회 춘사 나운규 예술영화제를 비롯해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11월 26일 오후 5시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릴 춘사영화제 시상식에 앞서 이달 26일 본선 진출작을 발표하며, 영화제 기간에 <그들도 우리처럼>을 시작으로 <사의 찬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서편제>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시절>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 역대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을 특별상영할 예정이다.11월 25일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는 기념 심포지엄을 마련한다. 이어 전야제에서는 유현목 감독의 <아리랑>이나 최무룡 감독ㆍ주연의 <나운규 일대기> 등을 상영할 계획이다. 영화감독협회는 북한에서 만든 <아리랑>이나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의 영화를 상영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시기상조라는 내부 의견이 우세해 무산됐다.춘사 관련 자료를 모은 <춘사 나운규 영화총람>도 출간된다.임원식 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다양하고 풍성한 행사를 기획했으나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영화인과 영화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을 호소했다.조희문 상명대 영화과 교수는 '나운규 선생은 처음으로 몽타주 기법을 도입하고 발성영화를 기획하는 등 우리 영화의 기틀을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영화계에 급속한 세대교체가 이뤄진데다가 전반적 경향이 산업화로만 흐르다보니 영화사 선구자들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너무 빈약해졌다'고 지적했다.1902년 회령에서 태어난 춘사 나운규는 3ㆍ1운동과 독립군 투쟁에 참여한 뒤 1925년 <운영전>에서 단역인 가마꾼을 맡아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37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아리랑>과 <사랑을 찾아서>(28년), <벙어리 삼룡이>(29년), <임자없는 나룻배>(36년) 등에서 주연과 감독 등을 병행하며 영화사의 초석을 다졌다.그의 출생일은 10월 27일로 알려져왔으나 최근 지인의 일기에서 당시 날짜가 음력인 것을 확인, 올해부터 100년 전 양력날짜인 11월 26일을 해마다 탄생일로 기념하기로 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