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개봉작 중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 <좀비딸> <침범>의 공통점은 일종의 재난이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재난물의 단골 소재인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소설 속 환난이 현실화된 세계, 좀비 아포칼립스, 사이코패스가 갑작스레 주인공의 일상에 틈입한다. 조건이 다를지언정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재난물의 기본 골자는 그대로 적용된다.
위의 세 작품, 특히 <전독시>와 <좀비딸> 은 영화제작이 확정됐을 무렵부터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잘 재현하고 원작과 어떤 차이를 지닐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제기됐다. 전부 호평받은 웹툰 혹은 웹소설이 원작이기 때문이다. 웹툰이 시초인 <좀비딸>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전독시>는 웹소설, <침범>은 영화 각본을 바탕으로 웹툰이 먼저 제작된 뒤 영상화가 이루어진 사례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영화계에서 웹툰, 웹소설의 영상화 시도는 계속되어왔다. <아파트>(2006), <이끼>(2010), <이웃사람> (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내부자들>(2015), <신과 함께> 시리즈(2017, 2018) 등 2000년대부터 웹툰 기반의 영화가 꾸준히 제작됐으며 일부는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보였다. <사내맞선>(2022), <재벌집 막내아들>(2022), <선재 업고 튀어>(2024) 등 근래엔 웹소설의 시리즈화가 다수 이루어졌는데 장르 면에선 현대 로맨스, 현대 판타지, 스릴러가 많았고 해당 장르의 클리셰를 흡수한 명료한 스토리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독시>는 RPG 게임의 특성을 반영한 퓨전 판타지이며 <좀비딸>은 생존주의라는 인간의 본능 안에 좀비를 포함시키고, <침범>은 모녀 관계에 사이코패스를 대입한다. 요컨대 앞선 실사화 작품과 비교해 낯선 형식, 클리셰의 변주를 접목한 영화들인 것이다. 연출자와 관객에겐 작품에 관한 정보의 위계가 존재한다. 개봉 전까진 더 공고히 유지되지만 웹툰, 웹소설과 같은 오픈소스를 활용할 경우 창작자와 독자간 정보의 위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기작의 영상화에 관한 관심이 원작의 재현, 원작과의 차이에 관한 논의를 제외한 채 가시화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전독시> <좀비딸> <침범>에선 원작과의 교집합을 유지하면서도, 원작 또는 원작을 기반으로 한 타 매체와 구별되는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과감히 시도하거나 제외함으로써
<전독시>부터 살펴보자. 극 중 ‘도깨비’는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에서 줄곧 비극의 서두를 열어온 존재다. 그러나 현실에서 갑자기 도깨비가 나타났을 때 그 위험성을 인지하는 건 김독자(안효섭)뿐이다. <전독시>의 중요한 전제는 ‘오직 나만 아는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김독자에게만 적용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그는 자기 삶의 장르가 리얼리즘이 아니라 판타지라면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자문하지만 판타지가 펼쳐질 리 없는 현실에선 역시 독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확언한다. 그러나 <멸살법>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 정정하지 않아도 김독자의 위치는 자연스레 조정된다. 김독자는 <멸살법>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내레이터이자 공략법을 수행하는 주인공이다. 영화는 주어진 상영시간 내에 서사를 압축적으로 담기 위해 그의 주인공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그를 추동하는 동력에도 변화를 준다. 원작과 달리 김독자는 ‘주인공 혼자 살아남는다’는 소설의 결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원하는 결말을 직접 써보라는 <멸살법> 작가 ‘tls123’의 말에 답이라도 하듯 중후반부로 갈수록 새 동료를 팀원 삼는다. 합심해 빌런을 물리친 김독자와 동료들의 최후의 전투 신은 영화 <전독시>가 지닌 연대의 메시지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전독시>는 영상화 자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멸살법>이라는 텍스트를 따르기 때문인데, 이를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크린에 글로 세세히 적는 대신 김독자로 하여금 <멸살법>의 시나리오를 완벽히 체득해 이행하게 한다(<씨네21> 1517호, 인터뷰 ‘놀이기구를 탈 때 느낄 법한 공포와 긴장감을’ 참조). 영상매체에서 불가피했을 이 시도는 역설적으로 영화 <전독시>가 원작 팬과 일반 관객을 두루 포괄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된다. RPG 게임의 미디어와 미션 수행 방식에 익숙하다면 극을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테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관에 진입하자마자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김독자의 능숙함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한편 <전독시>의 설정을 사전에 숙지한 원작 팬은 <멸살법>의 결말을 최악이라 칭하는 주인공의 반발심, 연대의 메시지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좀비딸> 역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이 연대는 좀비 창궐 구역이 아닌 아직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는 ‘은봉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실현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 수아(최유리)를 포기할 수 없던 할머니 밤순(이정은)과 아버지 정환(조정석)은 수아의 존재를 감추거나 정상성을 가정한다. 주민과 학생들은 그를 조금 특별한 이웃이자 친구로 받아들인다. 은봉리라는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영화 <좀비딸>이 취하는 전략은 명확하다. 실사화가 까다로운 부분은 제외하고 극적 효과를 자아낼 요소는 강화하는 것이다.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의 매력 중 하나는 고양이 애용(금동)이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선 실제 고양이를 등장시켜 감초로서의 존재감은 유지하되 발화하는 CG 작업은 넣지 않았다. 그 밖에도 거의 유일한 빌런인 이문기(조한선)의 등장 이유를 비롯해 원작에서 다소 잔인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서사는 수정을 가했다. 대신 정환의 직업을 번역가에서 맹수사육사로 바꿔 훈련 과정에서의 재미는 더하고, 수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환의 대사를 통해 딸에 대한 애정을 강화한다. 이러한 부성은 극의 말미에 좀비 바이러스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 다수의 관객에게 소구 가능한 원작의 매력과 안정성을 지키는 방식을 통해 <좀비딸>은 올해 최초의 500만 돌파 영화가 되었다.
한편 <침범>이 비추는 모성은 <좀비딸>이 그리는 부성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영은(곽선영)과 그의 어머니는 전통적인 모녀상을 그대로 옮긴 반면,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지닌 딸 소현(기소유)과 엄마 영은의 관계는 그와 반대급부에 선다. 소현은 영은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존재다. 엄마를 독점하고 싶어 영은에게 호의적인 이들에겐 적대심을 보이고 단순히 재미를 이유로 친구를 죽일 듯 괴롭힌다. 영은도 정환과 마찬가지로 지역을 옮겨 육아를 이어가려 하지만 소현을 향한 냉담한 시선엔 변함이 없다. 영은의 세계는 소현을 중심으로 점점 좁혀지고 외부와의 단절은 강화된다. 2부에 접어들면서 극의 주요 인물은 영은과 소현이 아닌, 비슷한 나이대의 김민(권유리)과 해영(이설)으로 전환된다. 소현이 영은에게 그랬듯 해영은 김민의 삶에 예기치 못한 순간 침투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혈연지간의 모녀들은 2부에 이르러서도 화합에 실패하며 그나마 연대라 칭할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영화는 해영이 결국 정체를 감춘 어른 소현이었음을 밝히면서도, 소현에 관한 설명은 최소화해 끝내 그를 이해 불가한 존재로 묘사한다. 단절과 낯설게 하기. 이것이 영화 <침범>의 전략이자 웹툰과 달리 택한 전개 방식이다. 이렇게 영화 <침범>은 관객이 감정적으로 붙들고 따라갈 캐릭터가 부재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한다.
원전의 재현이라는 문제
앞서 말했듯 <전독시> <좀비딸> <침범> 모두 일부에 그칠지언정 원작과의 연결점을 유지하면서, 독립된 한편의 영화로서의 완결성을 지니고자 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이러한 도전은 앞으로 나올 웹툰·웹소설 영상화 작품과 결부지어 다시금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원전의 재현은 역사가 오래된 논의다. 그중 국내 웹툰·웹소설의 영화화에 관한 분석은 <이끼>가 350만 관객,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659만 관객, <신과 함께> 시리즈 두편이 각각 천만 관객을 모객했을 때 이들을 사료로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특히 <신과 함께>의 사례를 들어 원작의 재창조, 재해석이 웹툰·웹소설의 성공 공식이라는 2010년대의 분석 결과 또한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이에 무조건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끼>가 개봉한 지 15년,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개봉한 지 7년이 흐르는 동안 기존 콘텐츠의 재생산이 수없이 이뤄졌고 수많은 웹툰·웹소설 영상화 작업이 흥망의 결괏값을 남겼다. 웹툰·웹소설의 영상화 제작 공식과 수용자의 반응은 2020년대에 맞게 재편됐지만 이에 관한 충분한 논의와 분석은 더없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웹툰과 웹소설의 작법에 익숙한 동시대 관객은 이전과 달리 실사화 작품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각색은 반복이되, 복제가 아닌 반복’이라고 말한 연구자 린다 허천의 말을 빌리자면, 타 매체로 전위할 때 원작의 무엇을 그대로 가져오고 가져오지 않을 것인가. 정확히는, 연출자들은 원전의 무엇을 재현하길 택하고 포기하는가. 이를 통해 어떤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웹툰과 웹소설의 영상화는 한국영화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안에서 더 다양한 작품의 반응과 분석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