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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결이라는 개념을 구현하기 - <데스 스트랜딩 2 : 온 더 비치> 고지마 히데오 감독 단독 인터뷰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25-07-18

- 안 피곤한가.

잠을 거의 못 잤다. 파스도 붙였고. (웃음) 마사지를 받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피곤하지만 월드 투어가 이제 시작이라 괜찮다.

- <데스 스트랜딩2: 온 더 비치>(이하 <데스 스트랜딩2>)의 타이틀시퀀스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울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편인 <데스 스트랜딩>을 하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30시간짜리 영화를 체험하는 것 같았다. 전세계적으로 분열과 고립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 연결을 주제로 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2016년 무렵, <데스 스트랜딩>을 기획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같은 일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앞으로 고립이 더욱 심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게임이 재미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 안에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했다. <데스 스트랜딩>이 출시된 지 3개월이 지난 뒤, 코로나가 터지면서 전세계가 실제로 고립 상태에 빠졌다. 그때 <데스 스트랜딩2>를 기획했고 메타버스, 리모트를 활용한 인터넷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제의식을 녹이고자 했다. 홍보 카피에서 담았듯이 ‘우리는 연결되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이번 게임을 통해 던지고자 했다.

- <데스 스트랜딩2>에는 소셜 스트랜드 시스템(SSS)이라고 해서 인스타그램이나 X(옛 트위터)처럼 게임 플레이를 하면서 ‘좋아요’를 받을 수 있게 됐다. SSS를 이 게임에 반영한 것은 앞서 얘기한 연결과도 관련 있나.

맞다. 고립과 분단이 심화한 사회에서 나는 스틱(막대)과 로프(줄) 개념을 강조한다. 막대는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는 도구이고, 줄은 좋아하는 것을 끌어오는 도구다. 21세기 인터넷은 전세계를 줄로 연결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대전 게임이나 SNS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이 게임은 ‘줄’의 개념으로 만들어졌고, ‘좋아요’를 통한 느슨한 연결,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좋아요’를 받아도 무기나 돈으로 바뀌는 건 아니지만 자기만족과 감정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 TV 앞에서 혼자서 하는 게임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니 ‘좋아요’를 받았을 때 누군가로부터 응원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단지 자기만족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까지의 게임 시스템과는 조금 다른 체험을 만들고자 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별을 모으면 캐릭터가 성장하거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돈으로 바꿔 장비를 바꾸는 식이지 않았나.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느슨한 연결이라는 개념을 구현하려고 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버텨낼 수가 없다

- 느슨한 연결이란 무슨 뜻인가.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주인공인 샘이 되어 대륙을 횡단한다. 정말 외로울 수도 있는데, 문득 게임 속 발자국을 보면 자기 발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도 볼 수 있다. 그 발자국을 센서로 비추면 그 사람의 이름이 뜨고. 그 말은, 지금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전세계에도 있고, 자신 말고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자신은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세상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시스템은 그걸 위한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 대부분의 게임이 싱글 플레이다 보니 플레이를 하면서 외롭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친구도 없는 아이가 혼자 게임을 하다가 전원을 끄고 밖에 나가면 길이 있고, 전봇대가 있고, 편의점이 있잖나. 그건 누군가가 만든 거다. 그에게 자기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 이 게임은 ‘죽은 자와의 연결’을 다루고 있다. 건물들 역시 누군가가 만들었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은 이미 죽었을 수 있으니까.

- 전작이 샘과 클리프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은 샘과 루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게임을 기획할 때 무엇을 목표로 삼았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작 스토리를 보면 고독한 인물인 샘에게 클리프라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가 샘을 많이 사랑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게임은 ‘루는 도대체 어디서 온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루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루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또 하나는, 전작에서는 샘이 혼자 걸으며 연결을 만들어가는 구조였다. 그걸 반복해 나가는 이야기였지만 이번에는 카이럴 네트워크에 연결이 되면 ‘DHV 마젤란’이라는 배를 호출해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거기에 과거를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둘 합류하게 된다. 그들 역시 샘과 마찬가지로 고립되어 있던 사람들이었고. 이번에 달라진 점은 샘과 루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샘이 DHV 마젤란에 합류하고, 고립되어 있던 다양한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며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최종적으로 샘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 뒤늦게 그에게 집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단 속에서 느끼는 고립이라는 또 다른 측면도 함께 다룰 것이다.

- 배우 노먼 리더스의 어떤 면이 주인공 샘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샘은 플레이어의 분신이기 때문에 게임 디자인상 감정을 과하게 드러낼 수 없다. 샘은 기본적으로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마음대로 화를 내거나 울면 플레이어와 거리가 생길 수 있다. 내 게임 디자인에서 샘은 늘 방관자 입장에 있다. 대신 주변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변하고, 그 감정들이 스토리에 녹아들게 되는데 그런 구조 속에서 샘이라는 인물은 대체로 말이 없고 과묵한 성격이다. 내 세대 기준으로 말하면 스티브 매퀸이나 찰스 브론슨 같은 스타일이다. 수동적이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 돼보고 싶다’라고 느낄 수 있는 캐릭터. 그 점에서 노먼 리더스에게 제안을 하게 됐다.

- 한국 플레이어라면 마동석 배우의 깜짝출연이 반가울 것 같다.

마동석 배우의 ‘빅 팬’이다. 마동석 배우에게 게임 작업을 함께하고 싶은지 물어봤고, 마동석 배우가 ‘물론이죠’라고 하면서 시작됐다.

- 요즘처럼 AI로 무언가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배우를 직접 캐스팅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스캐닝하는 등 고생을 감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게임을 만들다 보면 4~5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 함께 일했던 배우들도 많지만 그중에서 캐스팅하게 되면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5년 정도 함께 작업하니까 서로 잘 맞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버텨낼 수가 없다. 영화라면 보통 3개월, 길어야 6개월 정도 촬영하고 끝나지만 게임은 매달 일주일씩 계속 촬영하니까 끝이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게임 제작 방식이 아니라, 직접 배우를 만나 동의를 얻은 뒤에 에이전시와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방식은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다. 함께한 배우와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 같은 존재로 생각하니까. 이건 배우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이나 아티스트, 그리고 우리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 전작과 달리 이번 게임은 낮과 밤을 세세하게 설정해 시간이 계속 흐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게임상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음, 예전에 만들었던 <메탈 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에서도 오픈 월드 구조를 적용했었다. 그 게임 안에서도 시간의 흐름, 특히 밤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고, 이런 표현이 가능했다. 그런데 <데스 스트랜딩>을 만들 때 제작상 여러 문제가 있어서 밤을 구현하는 걸 일단 포기했었다. 가령, 조명 문제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테마이기도 하고, 그걸 꼭 넣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게 됐다. 쉽지 않았다. 라이트 수량에 제한이 있고, 리얼타임으로 맵을 구성할 경우 시간을 고정하는 편이 훨씬 설정하기가 쉽다. 컷신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고정되지 않으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명확하지 않고, 그로 인해 연출이 어려워지니까. 가령, 석양 장면에서 감각적인 컷을 연출하고 싶어도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조차 힘들다. 그런 제약도 있고, 게임의 자유도를 고려하면서 밸런스를 조절해서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 밤하늘에 뜬 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산, 강, 나무, 자연을 풍성하고 생생하게 표현한 점도 좋 았다.

밤은 정말 어두우니까 밤을 리얼하게 만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약간 조명을 추가하고, 스튜디오 촬영처럼 연출했다. 밤의 즐거움은 하늘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별이 뜨면 좋겠다, 달이 뜨면 좋겠다, 같은 식으로 생각했다. 일부러 별자리나 링 같은 걸 표시하기도 했고. 플레이어가 되도록 밤에는 하늘을 보면서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출했다.

- 별이 일종의 조명 역할을 한다고 봐도 되나.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주변이 어두워져도 산의 윤곽선은 보이지만 뭔가를 보려면… 음…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도달하고 싶은 경지에 대하여

-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당신은 영화를 정말 많이 보고 사랑하는 시네필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거나, TV로 영화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밥 먹고, 자고, 목욕하는 일상에 영화관이 있었던 느낌이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 보기 시작했다. 딱 어떤 영화를 보고 영화광이 됐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영화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것 같다.

- 인생 영화 4편을 꼽아줄 수 있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감독 스탠리 큐브릭, 1968), <택시 드라이버>(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1989), <천국과 지옥>(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1963), 그리고 <매드맥스>(감독 조지 밀러, 1980).

- 이 작품들을 꼽은 이유가 뭔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직도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다. 그같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서 창작을 계속한다. 우주에 대한 동경이 있는 세대라 이 작품을 보면 실제로 우주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택시 드라이버>는 항상 고독을 상기시킨다. 어릴 때부터 고독을 자주 느끼면서 ‘이런 외로움, 이상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인가?’라고 생각했는데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아, 미국인도 외롭구나’라며 위안을 많이 받았다. 고독을 느끼는 성향이 지금의 <데스 스트랜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부모님이 꼭 다 보라고 해서 전부 봤었는데 <7인의 사무라이>도 좋지만 <천국과 지옥>을 특히 좋아했다. 유괴범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이 작품이 개봉하면서 유괴범을 처벌하는 법이 매우 무거워졌다. 영화가 법을 바꾼 셈이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가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됐다. <매드맥스>는 조지 밀러가 아무도 본 적 없는 세계를 창조했고, 대사가 거의 없는 데도 등장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데스 스트랜딩>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매드맥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의 디지털 사회는 정말 편리하다. AI도 그렇고. 그 편리함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다. 기술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인류가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AI가 모든 걸 결정하고 '이걸 봐라, 이걸 먹어라’ 식으로 명령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이 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래가 정말 괜찮을까 싶다.

-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세상이 직접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결국은 더 많은 사람이 게임 속 포터(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배달하는 사람) 같은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게 <데스 스트랜딩2>의 핵심 주제다. 요즘은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로 리모트가 당연해졌고, 콘서트도 디지털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A 지역에서 B 지역으로 그냥 순간 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사이에 우연히 만나는 것들이 중요하다. 그걸 다 없애고 인터넷에만 의존하는 것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월드 투어를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네트워크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 직접 와보니 비행기가 지연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그 모든 게 경험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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