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계를 거듭하며 강해지다, <리볼버> 오승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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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4-01-12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주하는 이야기.” <리볼버>의 로그라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욕망과 목표를 위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의 얼굴은 이내 우리가 마음 한켠에 숨겨둔 은밀한 비밀처럼 나타난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섬세함을 각본으로 그려내고, 담담한 감정의 레이아웃을 <무뢰한>으로 층층이 겹쳐낸 오승욱 감독이 8년 만에 메가폰을 들었다. 밀도 높은 연기로 자신의 반경을 또다시 넓힌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배우가 <리볼버>의 이야기를 현실로 구현한다.

- <리볼버>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조금 더 공개해줄 수 있나.

= 상관과 함께 비리를 저지른 경찰 하수영이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죄를 모두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간다. 그 대가로 많은 것을 약속받았지만 출소 이후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거의 투명인간이 돼버린 상황에 가깝다. 그래서 주인공이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명확하게 선과 악이 구분되는 권선징악은 아니다. 세상에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다는 뜻이다. 다만 자신이 저지른 죄로 고민하는 사람들, 더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생겼다. 이번 작품에선 그런 결을 담아내려고 했다.

- <보호자>(2013), <들개>(2013), <집>(2010) 등의 시나리오 자문 역할을 하고,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2012), <파수꾼>(2010) 등에 제작 자문을 했다. 다른 창작자에게 코치해주는 것과 자기 작품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텐데. <리볼버>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 어떤 고민이 담겼나.

= 처음부터 어떤 이야기를 쓸 거라고 명확하게 계획하는 감독들이 있다. 20여년 전 어느 날 허진호 감독이 그러더라. “승욱아, 행복이란 뭘까?” 그러더니 바로 <행복>이란 영화가 나왔다. (웃음) 내 작업 방식은 많이 다르다. 하나의 소재를 두고 여러 옷을 입혀보면서 상황과 인물의 달라지는 반응들을 살핀다. 책이나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문장이나 장면을 보고 ‘만약 저게 한편의 영화가 된다면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관점과 측면을 달리해 바라보려 한다. 그런 점에서 <리볼버>는 쉽지 않았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몫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자가 그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어떤 방식을 활용하게 될까. 이 부분을 고민하는 데 오래 걸렸다. 참신하지만 또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 방식을 통해 주인공이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했다.

- 책이나 영화에서 본 작은 단서로 영화를 확장한다고. 그렇다면 <리볼버>는 어떤 단서에서 시작됐나.

= 단서보다는 형식에서 시작됐다. 이소룡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사망유희>가 있다. 한층 한층 단계를 거듭하며 적들을 물리쳐 나가는 형식인데,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더라. 그 뼈대에 주인공이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가는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외에도 존 부어먼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등이 <리볼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그 작품들은 주인공이 훌륭하게 전투를 이끌어간다면 <리볼버>는 투명인간에 가까웠던, 존재감 없던 인간의 분투기에 가깝다.

- <무뢰한>에 이어 전도연 배우와 두 번째 작품을 함께한다.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 섭외라고 할 게 없다. (웃음) 이전에 내가 준비하던 영화가 여러 문제로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냥 집에 누워 있는데 전도연 배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한잔 살 테니 나오라고. 그러고선 얘기하더라. “놀지 말고 영화 하나 만들자. 내가 출연하겠다.” 그렇게 시작됐다. <리볼버>는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또 전도연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실제로 전도연 배우 출연이 확정되고 나서 제작사와 투자사가 결집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선택과 의지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생각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전도연에게서 보지 못한 얼굴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 전도연과 임지연의 화학작용이나 지창욱의 새로운 변신 등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크다.

=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해주면 좋겠다. (웃음) 이렇게 뛰어난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건 감독으로서 큰 축복이다. 전도연 배우는 장면에 대해 길게 논의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신의 주요점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베테랑이다. 장면마다 감정을 어느 정도로 드러낼지만 공유했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다. 대장(전도연)이 워낙 현장을 편하게 만들어줘서 촬영 내내 화기애애했다. 모든 스탭에게 사랑받는 배우다.

- 길어지는 극장 침체기 속에서 <리볼버>가 어떤 활력을 더하길 바라나.

= <리볼버>는 익숙하지 않은 영화다. 형식,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모두 조금씩 색다른 방식을 모색했다. 독특하고 기묘한 재미가 담긴 작품으로서 관객들이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작품으로 비쳐지면 좋겠다.

- <무뢰한>에 이어 <리볼버>를 영화제작사 사나이픽처스와 함께했다.

= 오랫동안 함께해오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척 두텁다. 상황에 따라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부분이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부분이랄까. 범죄영화와 스릴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이 세계관을 영화로 구축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 작품과 나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연결고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