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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미집’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 우리는 영화라는 거미집에 불들렸다
송경원 2023-06-09

<거미집>은 1970년 초 검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한 영화다. 감독 김열(송강호)은 ‘걸작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촬영이 끝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고자 한다.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데, 영화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재능과 욕망이 불일치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루 동안의 촬영 현장에서 김열 감독, 아니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질문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계속 영화를 할 수밖에 없는가.

- <조용한 가족>(1998)부터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하 <놈놈놈>), <밀정>(2016), <거미집>까지 다섯 작품을 함께했다.

김지운 (송)강호씨와 함께했던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일정한 성과를 남겼다. 그런 시너지들이 기본적인 믿음으로 자리했다. 어떤 작품이든 송강호라는 배우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어떤 감독이 그렇지 않겠나. 나는 그중에 제법 운이 좋은 사람일 따름이다.

- 범위를 좁히면 함께한 영화로 칸을 찾은 건 2008년 <놈놈놈> 이후 두 번째다.

송강호 그땐 기간이 짧아서 레드 카펫을 걷는 것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워낙 고된 영화여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감독님과 함께했던 영화 중 제일 힘들었던 영화 한편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놈놈놈>이었으니까. 올해는 상대적으로 기간도 꽤 여유 있고 함께 온 배우들도 많아 즐겁다. 영화제 레드 카펫 분위기도 현장을 닮는가보다.

- <거미집>에서 송강호 배우는 걸작을 만들고 싶은 중견감독 김열을 맡았다.

김지운 강호씨가 현장에 있을 때면 항상 또 한명의 감독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자 맡은 파트와 상대를 바라보며 몰입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면 감독의 일은 현장 전반을 시야에 두는 거다. 그건 타고난 시야의 문제에 가깝다. 배우 송강호는 흐름을 읽고 자신의 자리와 역할, 필요를 탐색하는 사람이다. 감독과 제작자의 시선으로 현장 하나하나를 챙긴다. 예를 들면 ‘저기 입구에 물건 좀 정리해야겠다’는 사소한 것까지. 좋은 배우에게 관록과 연륜이 생기면 이렇게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이유로 김열이라는 감독 역할에 송강호가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송강호 감독은 외로운 직업이라고 하지만 직접 연기해보니 이 정도일 줄이야.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어떤 선택에도 확신을 가지기 힘들다.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하고 적어도 겉으로는 무너지지 않은 척해야 한다. ‘이 사람은 뭘 믿고 이렇게 자신이 있지?’ 하는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열 감독의 내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것만으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현장의 여러 인물들의 욕망이 뒤엉켜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 이끌렸다.

-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첫 상영을 마쳤다.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지운 길이가 중요한 건 아니라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눈시울이 촉촉해졌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사실 오해다. 사실 칸에서 받는 긴 박수는 감사하면서도 힘든 부분이 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라고 주변에 물으면서 얼굴을 감싸쥐었는데 그게 울컥한 것처럼 기사화돼서. 오해를 꼭 풀고 싶었다. (웃음)

송강호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칸에 여러 번 왔는데 여전히 긴장되냐는 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상 긴장된다. 작품마다 긴장의 종류도 미묘하게 다르다. 많은 외신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느껴지는 책임감도 있고,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8번이 아니라 80번을 와도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사라지면 곤란하다. 매 작품, 매 순간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 <거미집>은 김지운 감독 초창기 코미디에서 볼 수 있었던 독특한 호흡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김지운 많은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코로나19 때 갇혀서 모든 게 멈춘 경험들이 거꾸로 영감을 주었다. 처음으로 1.66:1 비율로 찍은 영화인데, 그렇게 찍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가 앙상블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배우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그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얼핏 감독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를 둘러싼 촬영 현장 그 자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나가는 영화다.

송강호 행복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촬영이 없을 때도 촬영장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같은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배우로서는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임수정, 정수정 우리 영화의 보석 같은 두 수정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에게 잠재된 무언가를 끄집어내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구나 싶었다. 현장의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랑스러운 영화였다.

- 1970년 한국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 검열의 시대였던 1970년대 한국영화판의 고난 등을 상징적으로 빌려오고자 했다. 레퍼런스라면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디아볼릭>(1955) 같은 영화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우아한 영화들의 기조에서 탈피하여 장르영화에 탐닉했던 그런 에너지를 끌어오고 싶었다.

-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 제작의 고됨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칸에서 상영하기 안성맞춤이다.

김지운 당연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매번 질문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는가. <바빌론>도 그렇고, 이번에 경쟁부문에 온 난니 모레티 감독의 <브라이터 투모로>도 궁금하다. 모든 것이 멈춘 팬데믹 이후 ‘극장과 영화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원점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남는 건 하나였다. 아, 성공과 실패, 재능과 욕망, 그 어떤 불안에도 불구하고 끝내 할 수밖에 없는 것. 이 모든 게 영화를 향한 사랑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어떤 의도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다기보다는 영화를 향한 사랑이 남긴 흔적들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괴로워 할 필요도 없으니까.

- 김열 감독은 극 중에서 배우 대신 대타로 몸소 연기를 한다. 그런데 하다보면 연출자로서 장면보다 본인의 연기에 심취하고 욕심을 낸다. 송강호 배우가 감독을 연기하는 것처럼 감독 김지운이 연기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해서 재미있다.

김지운 사실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존재다. 때로 연기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그걸 지시할 수 있나 궁금하긴 하다. 그런 열정의 흔적을 담아내고 싶었다.

송강호 실제로 배우들에게 많은 시범을 보여주신다. (웃음)

김지운 그 캐릭터의 호흡을 아는 거니까. 감독은 흐름과 호흡을 조율하는 사람이고, 배우들은 거기에 피와 살을 보태 구체적으로 표현해주는 존재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앙상블의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작품 속에서 강박적으로 ‘플랑 세캉스’를 강조하는 것처럼 이건 잘라낼 수 없는 어떤 순간, 거대한 앙상블에 관한 영화이자 리듬이 중요한 일종의 스크루불 코미디이기도 하다.

송강호 김열 감독은 마지막에 어떤 표정을 보여주는데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 같다. 잘했는지 아닌지는, 걸작을 남겼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상관없다. 우리는 어차피 영화라는 거미집에 붙들려 이걸 할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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