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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영화비평] <매그니피센트 7>, 리메이크로 함축한 서부극의 역사와 정치적 공정성

<매그니피센트 7>

<매그니피센트 7>(2016)은 서부극의 고전 <황야의 7인>(1960)의 리메이크이지만 ‘7인의 총잡이가 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팀을 이루고 악한으로부터 마을을 구한다’는 기본적인 플롯 외에는 상당 부분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이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1954)와 <황야의 7인>이 마련한 서사의 밑그림을 따라가고 총과 말, 박차 등 서부극의 컨벤션을 충실히 재현하지만 그 나머지는 지극히 현대적인 각색과 번안화로 채워진다. 현대 액션 활극에 서부극의 기운을 불어넣었던 <더 이퀄라이저>(2014)와는 상반된 장르에의 접근법. 흑인 총잡이 샘 치섬(덴젤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7인의 멤버 구성은 백인만이 아니라 아시아계,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까지 아우르는 다층적인 인종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으며 시공간적 배경은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서 남북전쟁 이후 골드 러시(Gold Rush)가 한창인 마을 로즈크릭으로 변경되었다.

농민들을 수탈하던 <황야의 7인>의 칼베로의 도적떼는 <매그니피센트 7>에서는 금광 개발을 위해 마을에서 주민들을 몰아내려는 사업가 바솔로뮤 보그와 용병들으로 대체되었으며, 이에 맞서고자 총잡이를 구하는 여주인공 엠마(헤일리 베넷)는 극의 종반까지 싸움의 일익을 맡는 주도적인 역할로 뛰어오른다. 리메이크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변화는 고전 서부극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찰과 반작용의 소산이다.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와 남성우월주의, ‘무법천지 서부’(wild west)에 문명을 가져다준다는 식으로 그려져온 미국이란 국가의 형성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매그니피센트 7>의 구성은 철저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황야의 7인>에 대한 수정주의적 재해석이자 원작 이후 리메이크작이 나오기까지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서부극이 거쳐온 변화의 흐름을 응축한 결과물이다.

서부극 변천의 역사를 응축하다

<황야의 7인>은 <7인의 사무라이>가 만들어진 지 겨우 6년 만에 이뤄진 동시대의 리메이크였다. 하지만 <매그니피센트 7>과 <황야의 7인> 사이에는 50년이 넘는 시간의 거리가 놓여 있다. 중요한 건 이 사이에 있었던 장르의 역사다. 존 포드는 <샤이엔족의 가을>(1964)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탄압하고 보호구역 안으로 가두려 했던 역사를 다룸으로써 정통 서부극의 인종주의적 가치관을 뒤흔들었으며, 만들어진 영웅 신화의 배후를 캐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통해 서부영화의 신화적 이미지를 해체했다. 뒤이어 등장한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 <석양의 무법자>(1966)는 남북전쟁의 역사를,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에서는 서부로 뻗어나가는 대륙횡단열차를 통해 초창기 미국 자본주의의 탐욕을 조명하고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미국적 윤리관을 토대부터 부정하기에 이른다.

샘 페킨파는 <와일드 번치>(1969)와 <관계의 종말>(1973), 돈 시겔은 <최후의 총잡이>(1976)에서 황혼에 접어든 마지막 총잡이의 죽음을 그리며 저물어가는 서부극의 시대에 만가(輓歌)를 바쳤으며, 패러디 코미디의 창시자 멜 브룩스는 <불타는 안장>(1974)에서 흑인 보안관에 KKK단의 두건을 뒤집어쓴 유대인과 흑인을 등장시키는 등 정형화된 서부극의 컨벤션을 비틀고 조롱함으로써 그 안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냉소하기에 이른다. 안톤 후쿠아는 <황야의 7인> 이후에 있었던 이와 같은 서부극의 수정주의적 변화상을 <매그니피센트 7>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계몽된 21세기에 걸맞은 정치적 공정성의 서부극을 빚어낸다.

금광 개발에 혈안이 된 자본가 악당 바솔로뮤 보그는 열차 선로의 확장을 위해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족을 몰살한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총잡이 헨리 폰다와 사업가 가브리엘 페르제티를 하나로 합친 캐릭터이며, 남북전쟁을 겪은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굿나잇 로비쇼(에단 호크)는 장교 출신임에도 현상금 사냥꾼으로 전업한 <석양의 건맨>(1965)의 리 밴 클리프를 원작의 로버트 본에 엮어 극에 역사적 실재감을 부여한다. 멤버의 리더 격인 흑인 총잡이 샘 치섬의 등장은 <불타는 안장>의 흑인 보안관과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 복수를 원하는 노예 출신 총잡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과거에 인디언 머리가죽을 벗기곤 했던 잭 혼(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캐릭터는 <수색자>(1956)의 존 웨인에 대한 비틀린 오마주이다. 여성의 몸으로 마을 주민들을 이끌어 바솔로뮤 보그에 맞서는 엠마는 페미니스트 서부극의 시효 <자니 기타>(1954)의 인물과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섞여 있고, 전투의 한축을 맡는 인디언 전사 레드 하베스트의 비중에는 <샤이엔족의 가을>을 거쳐 <늑대와 춤을>(1990)에 이르기까지 차츰 개선 되어온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계몽된 시선이 반영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진영에 붙어 싸우는 두 인디언 전사의 대결에는 <라스트 모히칸>(1992)의 흔적이 역력하다.

정치적 공정성과 오마주 이상을 넘지 못하다

이외에도 <매그니피센트 7>에는 다른 수정주의 서부극으로부터 끌어온 오마주가 여럿 발견된다. 장면의 연출상 기병대의 돌격을 폭탄으로 저지하는 장면은 <무숙자>(1973)의 헨리 폰다가 적기병대의 말 안장에 담긴 다이너마이트를 저격해 터뜨리는 장면의 변주이며, 악당 보그쪽이 개틀링 기관총을 난사해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대목에서는 프랑코 네로가 관에서 기관총을 꺼내 잭슨 일당을 쓸어버리는 <장고>(1966)의 명장면을 뒤집어 오마주한다. 신식 무기 기관총(과 그로써 표상되는 자본의 위력) 앞에서 무력하게 몸을 숨기거나 맞서다 쓰러지는 구식 총잡이들의 비애감 서린 모습, ‘서부의 종말’을 그리던 수정주의 서부극의 테마는 다시 한번 반복된다. <매그니피센트 7>은 정통 서부극의 과오를 극복하려 한 수정주의 서부극의 유산을 반영하고, 인종과 성차간의 전형적인 역할상을 뒤집고 비중을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원작을 넘어서는 일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의 오마주와 정치적 공정성은 개연성과 핍진성이 결여된 각본에 의해 스토리텔링 속에서 단일한 주제의식으로 묶이지 못하고 파편화된 기호처럼 겉돌고 만다. 7인의 멤버들이 합류해 싸움에 나서는 각자의 동기, 잠시 팀을 이탈했다가 돌아오는 굿나잇 로비쇼의 감정변화, 외형적 개성에 비해 합법적으로 다른 수단을 쓸 수 있음에도 무작정 인명 살상을 도모하는 바솔로뮤 보그의 사업가답지 않은 무모함 등은 <매그니피센트 7>이 수정주의 서부극의 요소를 가져오지만, 정작 그것들이 어떠한 이야기의 맥락에서 기능했는지를 망각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만다. 안톤 후쿠아의 의도는 새 시대에 맞는 고전의 리메이크와 오마주에 있었겠지만 그로 인해 <매그니피센트 7>은 그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잃은 모자이크화(mosaic畵)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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