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의 예외를 뺀다면 속편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전편의 후광으로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그러나 흥행 도사들도 속편을 만들다가 종종
실족한다. 속편 성공의 법칙을 모아봤다. 물론 이건 하나의 경향일 뿐 좋은 재능과 시운은 늘 예외를 마련한다.
1계.
반복하라. 그러나 더 크게,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반복하라
설명이 필요없는 속편의 대원칙이다. <투캅스2>의 카피는 ‘이번엔 더 지독한 놈이 나타났다’였다(<투캅스>의카피는 ‘웃다 죽어도 좋다’였다). 속편 파티의 VIP
관객은 전편의 지지자들이다. 그들을 특별 대우하기 위해선 전편의 메뉴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똑같다면 비난받을 것이다. 이 딜레마의
출구는 같은 메뉴라도 양을 더욱 늘리고 맛은 훨씬 강하게 하는 것이다. <미이라2>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다 아는 뻔한 스토리야”,
“이번엔 뭐였냐고? 뭐 미라랑, 피그미랑, 또 큰 벌레들이랑, 늘 똑같지 뭐”. 그러나 <미이라2>는 <미이라>와 똑같지
않다. 적은 더 살벌하고, 죽어나가는 사람은 더 많고, 쫓고 쫓기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거대한 모래바람이었던 이모텝은 이제 같은 형상의
해일이 된다. <미이라2>를 만든 스티븐 소머즈 감독은 전편에서 관객이 가장 좋아한 장면 10개를 뽑아 재연하고 확대하는 전략을
썼다고 한다. 그는 속편 교과서에 참으로 충실했다. <다이하드>에서 테러리스트를 포함해도 10여명 정도가 죽지만 <다이하드2>에선
두번의 비행기 폭발만으로 무고한 승객 230명과 테러집단 100여명이 몰살된다. 속편은 관객을 둔감하게 때론 잔인하게 만든다.
2계. 같은
배우를 써라. 가능하면 조연까지도
이유는 명백하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지 않는 <다이하드2>, 톰 크루즈 없는 <미션 임파서블2>을상상할 수 있을까. <원초적 본능2>에서 샤론 스톤을 볼 수 없다면 아마 에로영화 마니아들만 기다릴 것이다. 이 계율을 어기면 대개
가혹한 대가가 기다린다. 제이슨 패트릭이 키아누 리스브를 대신한 <스피드2>, 아놀드 슈워제네거 역할을 정말 뜻밖에 대니 글로버가
맡은 <프레데터2>가 그런 예다. 아마 <한니발>에 조디 포스터가 재기용됐다면 평가도 흥행성적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배트맨 포에버>의 발 킬머, <배트맨과 로빈>의 조지 클루니도 이런 평가를 벗기 힘들다. 이 계율의 예외는 싸게 만들어
애당초 스타를 기용하지 않는 B급 공포영화들이다. 처럼 아예 전편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초반에 다 죽여놓고
시작하는 공포영화도 많다. 브루스 캠벨로 끝까지 밀어붙인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가 예외적인 경우. 여하튼 이 때문에 신난
건 배우들이다. 1998년 <러시 아워>에서 30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은 크리스 터커는 올 여름 개봉될 <러시 아워2>에서
무려 1700만달러를 요구했다. <미이라>와 <미이라2>에 계속 주연을 맡은 브랜든 프레이저도 몸값이 500만달러에서
1250달러로 뛰었다. 뺀질이 영국인 역의 존 한나는 무명의 조연이지만 속편에서 100만달러를 받았다. 그러니 속편 제작비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영리한 폭스사는 <엑스맨>을 만들 때 출연진과 속편에 관한 장기 계약을 맺었다.
3계.
감독을 바꾸는 것도 위험하다
속편을 새로운 감독이 맡는 건 불안하다. 전작의 포인트를 반복한다 해도 감독이 바뀌면 어딘지 어색해진다. 새로운 감독은 전편의 흥행 요소를
끌어다 쓰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영화의 균형이 깨지기 십상이다. <엑소시스트2>는 전작의 엄청난 후광을 입고도
막상 전작과 너무 달라져 망한 케이스다. 존 부어맨은 자기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폴 버호벤이 떠난 <로보캅> 속편들,
웨스 크레이븐이 손뗀 <나이트메어> 속편들은(레니 할린이 연출한 4편만 빼고는) 참담했다. <결혼이야기2>나 <투캅스3>도
전편에 훨씬 못 미쳤다. 웨스 크레이븐은 10여년 만에 컴백해 보란 듯이 수작 호러 <뉴 나이트메어>를 내놓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모든 제약을 뚫을 만큼 뛰어나고, 반복되는 요소들을 최소화한 경우다. 매번 감독이 바뀌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로 고른
성취를 이룬 <에이리언> 시리즈나 전편의 요소들을 자기스타일로 완전히 삭혀낸 오우삼의 <미션 임파서블2>가 그렇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
4계. 주요인물은
죽이지 마라. 죽었다면 억지로라도 살려내라
처음부터 시리즈물을 염두에 둔 <스타워즈>나 <백 투더 퓨처>는 논외로 쳐도, 모든 대중영화는 속편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주요인물을 죽이는 건 속편의 흥행 잠재력을 위축시키는 일이다. <미이라>의 최초 각본은 이집트 전사 아더스 베이가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편을 염두에 둔 제작사의 요청으로 그를 살리는 쪽으로 시나리오가 수정됐다. <미이라2>에 나오는 스콜피언 대왕은 시간을
거슬러 원작의 앞이야기를 다룬 후속편에도 또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각 없이 죽였다 해도 어쨌든 살려내야 한다. 살리는 방법은 터무니없어도
된다. <나이트메어6>에선 전편에서 죽었던 프레디가 갑자기 번개를 맞고 살아난다. <터미네이터2>에선 전편에서 죽었던
사이보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판박이 모습으로 다시 제조돼 돌아온다. <하이랜더2>도 기발하다. 전편의 대결에서 불멸의 중세 기사
숀 코너리는 마침내 숨을 거두지만 속편에선 외계인이 되어 재등장한다. 홍콩영화들은 아주 쉽게 해결한다. <영웅본색2>는 전편에서
죽은 주윤발을 살릴 길이 없어 갑자기 미국에 쌍둥이가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한다. <천녀유혼2>에선 전편의 귀신이었던 왕조현이 버젓이
사람으로 나온다. 그냥 귀신과 닮은 사람인 것이다.
5계.
보안이 생명이다
스탠리 큐브릭 같은 작가들, 그리고 주로 미스터리영화들이 내용 사전 유출을 싫어하긴 하지만 속편 제작진은 유달리 보안에 전전긍긍한다. 이유는
속편이라는 사실만으로 너무 많은 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속편에서 새로운 건 아이디어 하나뿐이다. 그것마저 사전 유출된다면 김이 샐 수밖에.
조지 루카스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면서 어떤 정보나 스틸도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부추겼고, 팬사이트에는 갖가지 추측
시나리오가 난무했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아메리칸 파이2>에 출연하는 제이슨 빅스의 “영화 내용을 누설했다간 손가락이라도
잘릴 것”이라는 농담을 인용하며, 인터넷 때문에 속편 내용이 새나가자 제작사들은 배우들에게 점점 비밀 보장 서약을 요구하고 있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허문영 기자
▶ 속편영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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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 만들기 5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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