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충무로 입성기
2001-06-15

백 갈래 길, 목표는 하나

충무로로 가는 길? ‘3번 버스나 지하철 3, 4호선을 타라’ 같은 명쾌한 답이 어디 있으면 좋으련만, 수많은 감독지망생에게 그곳을 향한 길은, 시작도 끝도 안 보이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뚜렷한 정답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무턱대고 영화이론서만 잡고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라서 영화판에 아는 사람도 없고, 훌쩍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방법일까? 즐비한 학원을 다니는 게 길일까? 아니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단편을 찍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영화사에 찾아가서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쇼’ 하는 게 방법일까?

물론 최근엔 각종 단편영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리거나 외국유학 이후 데뷔하는 감독의 숫자가 전보다 늘어가는 추세다. 흥행신기록을 달성한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뉴욕대(NYU)를 졸업하고 제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영창이야기>로 우수작품상을 타면서 연출부 생활 없이 데뷔작 <억수탕>을 찍었고, 임순례 감독 역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로 이름을 알린 뒤 <세친구>로 데뷔했다. 단편 <호모 비디오쿠스>의 변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 영화학과 석사과정과 프랑스국립영화학교(FEMIS)를 마친 뒤 <인터뷰>로 장편 데뷔했고, 변혁 감독과 <호모 비디오쿠스>를 함께 만들었던 이재용 감독은 유학길에 오르는 대신 다큐멘터리 <한도시 이야기>의 작업에 들어갔고 이후 <정사>를 통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충무로 입성의 정석=도제시스템’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현재 <무사>의 개봉을 앞둔 김성수 감독은 <런어웨이>로 데뷔하기 전 몇편의 단편작업을 통해 “생각은 높은데 수가 낮은”, 즉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단편작업에서 탈피해 좀더 구체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충무로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처럼 현장에서 기본기를 익히면서 커나간 연출부 출신 중엔 김성수 감독을 포함,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를 거친 굵직굵직한 젊은 감독들이 많다.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을 비롯, 에 이어 <봄날은 간다>를 준비중인 허진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를 나와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현장수업을 받은 경우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 역시 영화아카데미 8기생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연출부와 조감독을 거쳤다. 이외에도 <눈물>의 임상수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5기 출신으로 <구로아리랑> <장군의 아들> <개벽> <장군의 아들2> <김의 전쟁> 등에서 연출부 수업을 받았고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4기 출신으로 <오늘 여자> <비처럼 음악처럼> <천재선언> 등의 연출부를 거쳤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은 <태백산맥>부터 <춘향전>까지 10여년간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와 조감독을 지내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앞선 사람들에게 ‘연출부’는 과거지사지만 현재 직함이 ‘연출부’인 사람들의 이력 또한 다양하다. 현재 촬영을 시작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남자> 연출부 고우철(27)씨는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고 방송사 FD를 거쳐 몇편의 단편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이고, 스크립터 한혜영(25)씨는 상명대 영화과 출신으로 처음 영화작업에 임하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연출부 박중희(31)씨는 방송아카데미에서 카메라를 배웠지만 영화일을 시작하며 연출부로 전환한 경우. 청년필름의 <와니와 준하>에서는 <백야 3.98> 등 TV쪽 세트일을 하다 들어온 권경업(31)씨, 연출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들고 직접 제작사로 찾아와 일하게 되었다는 권현정(29)씨가 착실히 연출부 수업을 받고 있다.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박준오(26)씨나 <정글쥬스>의 전승철(29)은 다른 연출부의 소개를 통해 작업에 참여한 경우. <고양이를 부탁해>는 실력파들이 뭉친 고급스런(?) 연출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유종미(30)씨는 <심청>이란 단편으로 제2회 대한민국영상대전에서 수상했고 스크립터 손현희(26)씨는 6월1일 방송된 KBS <단편영화展>에 <야유회>라는 16mm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선배를 통해 연출부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무작정 존경하는 감독을 찾아가 ‘읍소’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에 따라서는 연출부를 자청한 사람이 만든 단편을 보고 자신의 연출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박광수 감독은 응시자들에게 글을 쓰게 함으로써 자질을 테스트한다고 하며,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은 연출부들에게 대학원생 같은 학구열을 요구해서 매번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는 등 ‘공부하는 연출부’를 표방하기도 했다. 또한 요즘에는 <씨네21>을 비롯한 각종 매체 구인광고란에 나는 연출부 구인공고를 통해 충무로에 첫발을 들이는 젊은이들도 많다.

감독으로 가는 길, 물론 어떤 길을 통하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데뷔작을 탄생시키는 디딤돌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혹, 너무 늦었다거나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릴 필요는 없을 듯싶다. 93년, 이창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처음 뛰어들었던 때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백은하 기자

▶ 충무로

연출부 24시

▶ 영화야,

사무엘을 부탁해

▶ 충무로

입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