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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류승룡의 발자취

<극한직업>

맛깔난 대사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으로 돌아온 류승룡. 이번 영화에서 그는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위장 창업하지만, 오히려 장사가 너무 잘 돼 곤란해하는 마약단속반의 고반장 역을 맡았다. 여러 영화, 광고 등에서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웃음을 유발했던 그라면 이병헌 감독의 ‘말맛’을 200% 끌어올렸을 듯하다. 작품 속을 넘어 촬영현장에서도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활력을 북돋았다고.

그러나 류승룡은 무겁고 진중한 캐릭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코미디와 정극 캐릭터를 괴리감 없이 넘나드는 넓은 스펙트럼의 배우. 그렇다면 이런 다채로운 이미지를 자랑하기까지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극한직업>의 개봉과 함께,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류승룡의 발자취에 대해 알아봤다.

<극한직업> 촬영현장

서울예술대학교 재학 시절

류승룡의 과거 사진

어제 찍은 사진 아니다. 무려 20여 년 전 사진이다. 황정민, 정재영, 안재욱, 신동엽 등과 함께 그 유명한 서울예술대학교 90학번 출신인 류승룡은 덥수룩한 수염과 장발로 마치 도인 같은 스타일을 자랑했다. 100m 밖에서도 알아볼법한 비범한 모습. 또한 그의 과거는 여러 동기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언급한 바 있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동기들에 비해 일찍 스타덤에 올랐던 안재욱은 MBC <라디오스타>에서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있었다. 류승룡이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밥을 먹었다고 하더라. 그 친구들이 류승룡에게 밥을 사줬다. 깜짝 놀랐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후배인 라미란은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정말 도인이나 노숙자 같았다”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극으로 먼저 데뷔

(왼쪽부터) 뮤지컬 '난타'의 주역인 장혁진, 류승룡, 서추자, 김원해

류승룡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뮤지컬 <난타>를 통해서다. 그는 대학 동기인 김원해와 함께 <난타>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주방에서 벌어지는 요리사들의 소동을 그린 <난타>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기존의 뮤지컬과 달리, 대사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퍼포먼스’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를 넘어 영국,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류승룡 역시 멤버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등장하는 성기(류승룡)의 과거 사진들도 실제 류승룡이 <난타> 공연 당시 세계 곳곳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2017년에는 20주년을 맞이해 류승룡, 김원해, 장혁진 등의 배우들이 다시 모여 특별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난타>로 입지를 다진 류승룡은 2004년 장진 연출, 정재영 주연의 <아는 여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강도 1.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주인공 치성(정재영)이 대출을 받는 은행에 침입하는 캐릭터다. 다만 제대로 된 강도가 아니라 단순히 ‘8인조 강도’라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 9명의 회원들이 뭉친 것이다. 분홍색 복면을 쓰고 어설프게 협박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를 자아냈다. 그의 첫 영화 캐릭터는 코미디인 셈. 이후로도 류승룡은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 등 연달아 장진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

<아는 여자>

거친 인상의 무서운 캐릭터

<시크릿>

<7급 공무원>의 코믹한 요원, 기이한 사건들로 혼란스러워하는 <불신지옥>의 형사 등 류승룡은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영화 속 이미지 중 하나는 거친 인상의 악역이다. 그 시작점은 2008년 개봉한 느와르 스릴러 <시크릿>. 류승룡이 맡은 역할은 폭력 조직의 보스 재칼로 역할의 설정, 이름부터가 ‘나는 악역이다’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인공 성열 형사(차승원)과 대립하는 인물이다. 외관은 물론 표정, 대사 등으로 느와르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캐릭터. 류승룡은 ‘뱀’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연기할 때 거의 눈을 깜빡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악역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시크릿>의 카리스마를 이어간 영화가 2011년 개봉한 <고지전>이다. 북한군 중대장 한정윤을 연기한 류승룡은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아우라를 풍겼다. 영화 초반부에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싸웠지만 재등장부터는 커다란 흉터와 함께 전쟁에 찌들고 지친 모습으로 등장했다. 오히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체념해버린 듯한 태도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던 인물. 한정윤은 태도 변화를 통해 <고지전>의 핵심 메시지인 전쟁에 대한 모순과 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이후 류승룡은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 <명량>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해 카리스마 넘치는 거친 이미지를 확립했다.

<고지전>

찰진 코미디 연기

<내 아내의 모든 것>

그리고 2012년, 류승룡은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초창기 장진 감독의 작품 등에서 쌓아올렸던 코미디 감각의 ‘포텐’을 터트렸다.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온몸에 버터를 두른 듯한 느끼함으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온갖 오버스러운 표정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인물.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청스러움으로 과장된 연기와 생활 연기를 자연스럽게 오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억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연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코미디를 보여줬다. 류승룡 역시 정극뿐 아니라 코미디에서의 재능도 여실히 증명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계기로 류승룡은 ‘더티 섹시(더럽지만 섹시하다)’가 수식어처럼 붙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로 이병헌과 함께 코미디와 진지함의 중도점을 맞추기도 했다. 두 배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한 상황을 함께 연출하며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다. 그 결과 <광해>는 1200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한 <7번방의 선물>까지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류승룡은 연기력과 티켓파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는 배우가 됐다. 2014년에는 <표적>으로 보는 것만으로 아픔이 느껴지는 현실적인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작품 속 다양한 언어 구사

<최종병기 활>

류승룡은 앞서 언급한 <최종병기 활>, <명량>을 필두로 작품 속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한 배우로도 유명하다. 최근 시대극으로 흥행가도를 달린 김한민 감독은 두 작품에서 류승룡을 청나라인, 일본인 악역으로 변신시켰다. 당연히 구사한 언어는 만주어, 일본어다. 특히 <최종병기 활>에서는 청나라의 장수 쥬신타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을 강행해 변발로 출연했다.

이외에도 류승룡은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서는 북한 방언을 통해 고구려인을 표현, <고지전>에서는 현대의 북한말을 구사했다. 국적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유람한 과거가 있다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 역에서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아프리카어까지 보여줬다.

외국어, 사투리 대사의 경우 어색한 억양, 발음 등으로 연기력 논란이 일기 쉽지만 류승룡은 수준 높은 언어 구사력으로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병기 활>에서 만주어나 다른 작품에서 스페인어, 불어, 일어 대사들도 무식하게 외웠다. 하도 많이 해서 매니저들이 외울 정도였다” 전했다. 또한 “무식하게 한글로 써서 외웠다. 글씨 크기로 억양을 표현했다. 창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명량>

애니메이션 더빙

<가디언즈> 류승룡(놀스 목소리 역) 더빙현장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에도 참여했다. 첫 작품은 TV 만화 <롤링스타즈>의 극장판 영화 <지구대표 롤링스타즈>. 그는 주인공 럭키(류덕환)의 아빠 역 목소리 연기를 했다. 어린 두 아들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이후 그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가디언즈>의 산타클로스 놀즈 역, 일본 애니메이션 <캡틴 하록>에서 주인공 하록 역, 앵무새들의 이야기를 그린 <리오 2>에서 악역 나이젤 역까지 다양한 역할의 한국어 더빙을 맡았다. 2016년에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딸을 찾는 아버지 석규의 목소리 연기까지 맡았으니 실사를 넘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장르 속 다양한 캐릭터를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역> 류승룡(석규 목소리 역) 더빙현장

광고

※ 이 글은 간접광고의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류승룡의 팔도 ‘남자라면’ 광고 ‘I'm your man’

영화도 영화지만, 류승룡 하면 역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 그는 팔도의 ‘남자라면’ 광고에서도 이를 그대로 활용했다. 느끼한 표정으로 마늘을 부수고 도끼로 파를 자르는 등 특유의 코믹 연기를 1분 30초 동안 쏟아부었다. 또한 하이라이트인 “맛의 올가미, 맛의 덫, 맛의 감옥”은 “맛의 올가미”까지만 대본이고 뒤는 류승룡의 애드리브라고 한다.

남자라면을 시작으로 류승룡은 아버지의 이미지, 호쾌한 이미지 등으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계 블루칩 배우가 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음식 배달 어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 광고다. 그가 출연한 배달의 민족 광고만 해도 무려 7편이 넘는다. 풍속화를 이용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표방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광고는 류승룡의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류승룡의 ‘배달의 민족’ 15초 광고

류승룡의 ‘배달의 민족’ 광고 ‘신의 배달’

<킹덤>

<킹덤>

마지막으로 <극한직업> 이후 류승룡의 행보다. 그는 현재 <넷플릭스>의 첫 번째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인 드라마 <킹덤>의 1월25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조선시대,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 이창(주지훈)이 괴물이 돼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같은 조선시대를 배경이지만 <킹덤> 속 류승룡은 <광해> 속 그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가 맡은 역할을 극의 중심 악역인 조학주. 권력에 대한 욕망과 굶주림을 가진 인물이다.

현재 <킹덤>은 류승룡 외에도 주지훈, 배두나, 허준호, 김상호들의 명배우들의 출연과 <터널>의 김성훈 감독 연출, tvN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극본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직 공개 전이지만 이미 시즌2까지 제작이 확정된 상황이다. 2014년 <명량> 이후 오래간만에 악역으로 복귀한 류승룡의 어둡고 진중한 연기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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