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연휴에 월요일을 하루 더 붙여 딱 3일 뿐인 올 한가위 연휴. 휴일은 비록 짧지만 추석 극장가는 예년보다 ‘짧고 굵다.’ 지난주 개봉한 한국영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가 2002년 추석 시즌 개봉해 대박을 터뜨렸던 전편의 영광을 이어갈 태세지만, <형사: 듀얼리스트gt;와 <외출>도 만만치 않은 기세다. 이밖에 팀 버튼 감독이나 조니 뎁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이연걸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더 독> 등 외화도 흥행 몰이에 합류할 예정이다. 휴가가 짧아도 그냥 지나치기는 아까운 한가위 극장가 상영작을 장르별로 소개한다.
● 멜로/ 드라마
가족 모임을 뒤로 하고 오매불망 님 찾아 나온 연인들에게는 역시 멜로, 오순도순 손 잡고 나온 가족들에게는 뭐니뭐니 해도 드라마다. <봄날은 간다> 이후 4년만에 관객들과 만나는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 <외출>이 단연 눈길을 끈다. 허 감독 전작들에 비해 평이 갈렸고 욘사마 배용준의 출연으로 인해 영화 외적인 품평이 개입하기도 했지만, 입맛 다른 관객에게도 기본 값은 하는 섬세한 멜로다.
섬세한 멜로 <외출> 가족애 인상적인 <신데렐라 맨>
23일 개봉하는 <너는 내 운명>(박진표 감독)도 운명을 앞당겨 ‘유료시사회’ 형식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씨지브이와 프리머스 등 전국 33~34개관에서 시사회를 연다. 순정파 농촌 노총각이 운명적으로 만난 티켓다방 아가씨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과거가 있어도 좋고, 에이즈에 걸려도 좋고, 무조건 무턱대고 아내를 사랑하는 그의 순정이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시고 뜨뜻하게 데운다. <종려나무 숲>(유상욱 감독)은 하룻밤 사랑을 평생 간직한 어머니와 종려나무 한 그루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와 그 연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액자처럼 겹쳐놓은 영화다. 많이 보고 들은 듯한 내용이지만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러셀 크로와 르네 젤위거 주연의 <신데렐라 맨>(론 하워드 감독)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기적같은 재기를 이끌어낸 실존 복서 짐 브래독의 별명을 따 만든 영화.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과 그런 가장을 따뜻하게 격려하는 아내의 부부애, 그리고 가족애가 인상적이다. 또 지난 8월 초 개봉해 이미 관객 680만명을 동원한 올 최고의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감독)의 인기도 한가위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 코미디/ 액션
전통적으로 한가위 극장가의 최강자는 코미디 영화다. 올해에도 전형적인 조폭코미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정용기 감독)가 한가위 전주 개봉해 이미 130만명을 넘어서며 대박 행진을 시작했다. 조폭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려 큰 며느리감 물색에 나섰다가 강력계 여검사가 딱걸리는 바람에 가문의 위기를 맞는다는, 대체로 예상 가능한 내용을 다룬다. 김원희·신현준의 개인기는 전편의 김정은·정준호만 못하고, 유동근에 필적하는 김수미의 리얼 육두문자 퍼레이드는 너무 짧아 아쉽다. 하지만 세련미를 더한 연출과 시나리오가 그 빈자리를 채우며 겨드랑이를 간지럽힌다.
포복절도 <가문의 위기> 이연걸과 모건 프리먼의 <더 독>
<게스 후?>(케빈 로드니 설리번 감독)는 백인 사위가 못마땅한 흑인 장인의 필살기 이간질 작전을 다룬 코미디다. 장인-사위 커플을 이룬 버니 맥과 애시튼 커처 콤비의 연기가 가볍지만 유쾌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대한민국 대표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형사: 듀얼리스트>는 언어를 최대한 줄이고 움직임을 그 만큼 살린 ‘활동영화’다. 화폐위조범을 쫓는 여형사 남순과 위조범 하수인 ‘슬픈 눈’의 추적과 대결, 그리고 슬픈 사랑을 다룬다. 검무도를 보는 듯한 대결장면과 화려한 미장센, ‘슬픈 눈’ 역의 강동원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뤽 베송이 제작하고 이연걸, 모건 프리먼 등이 주연한 <더 독>(루이 레트리어 감독)은 이연걸식 액션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빠르고 정확한 공중회전과 손발차기가 가공할 파괴력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어머니를 죽인 악당에게 개처럼 사육돼 개목걸이만 풀면 미친듯이 사람을 패고 죽이던 남자가 음악가 부녀와 유사 가족관계를 맺으며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다.
● 판타지/ 공포/ 스릴러
일상을 털어낸 연휴 기간, 온 가족이 함께 판타지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름영화인 공포, 스릴러 영화를 즐기며 올 여름 무더위와 석별의 정을 나눌 수도 있다. 로알드 달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 콤비를 애타게 기다려왔던 팬들에게 한가위 과자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사탕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숲 사이를 흐르는 초콜릿 강물은 어린이들의 새콤달콤한 현재진행형 판타지일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자극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스내치> 프로듀서였던 매튜 본의 감독 데뷔작 <레이어 케이크>는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영국식 범죄 스릴러. 범죄 조직의 위, 아래를 아우르는 인물들의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와 사건의 그물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초콜릿강물의 판타지로 안내
공포영화의 거장 감독 웨스 크레이븐이 만든 스릴러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는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이용해 밀실의 공포감을 임계치까지 밀어붙인 잘 짜인 소품이다. 비행기 안에서 폭탄 테러 계획에 휘말리는 젊은 여성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무서운 영화3>(데이비드 주커 감독)도 15일 개봉한다. 전편들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배설물과 섹스신이 난무하는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식의 웃음과 공포가 아쉽겠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만큼 편한 영화가 되어 돌아왔다. <크림슨리버2:요한계시록의 천사들>은 살인사건에 얽힌 요한계시록 7개 봉인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영화다. 미스터리 공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간혹 선보이는 잔인한 장면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와 <박수칠 때 떠나라>(장진 감독)가 이미 간판을 내렸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본격적인 흥행몰이는 끝났지만 극장 개봉은 한가위에도 쭈욱, 계속된다.
놓치면 후회할 예술영화!
올 추석에는 입맛 까다로운 영화팬이 외로울 것 같지 않다. 여느 연휴 때와 달리 개성있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메뉴판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씨지브이 인디영화관을 비롯해 전국 10개관에서 개봉하는 <거칠마루>(김진성 감독)는 진짜 무술인들이 출연해 와이어나 컴퓨터그래픽의 포장없이 생짜의 액션을 보여주는 독특한 액션영화다. 무협사이트인 무림지존닷컴의 최고 실력자이지만 아무도 실체를 모르는 ‘거칠마루’에 도전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다종다양한 무술인들이 토너먼트식으로 경쟁을 벌인다는 이야기.
빔 벤더스 감독의 <랜드 오브 플랜티>(씨네큐브 개봉)는 9·11 이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미국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베트남전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맹목적인 애국주의자 삼촌과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온 박애주의자 조카가 함께 살해당한 아랍인의 시신을 가족에게 전하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낯선 영화적 경험을 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빛나는 거짓>(필름포럼 개봉)에 도전해볼 만하다. 평범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여정을 건조한 화면으로 보여주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심오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무의미하고 건조한 일상에 주목해야 할 영화다.
<동백꽃>(씨지브이 인디관 개봉)은 한국영화 개봉작 가운데 처음으로 본격적인 퀴어(동성애)영화를 표방한 작품이다. <슈가힐> 등의 단편을 통해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탐구해왔던 이송희일 감독을 비롯해, 최진성, 소준문 감독이 참여한 디지털 옴니버스 영화로 보길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이별하거나 재회하는 게이 커플, 게이임을 숨겼던 남편의 옛 애인을 만나는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폭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등에 식상한 코미디 영화 팬에게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필름포럼 상영)와 <불량공주 모모코>(뤼미에르극장 상영)를 추천한다. <은하수...>는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란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에스에프 영화로, 사기죄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양아치 은하계 대통령, 우울증에 빠진 천재 로보트, 얼떨결에 지구를 떠난 어벙한 지구인 등 하나같이 뭔가 이상해 보이는 인물들이 함께 떠나는 은하계 여행기다. 일본영화 <불량공주 모모코>는 공주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여고생과, 공주와는 상극이라고 할 만한 폭주족 여고생이 맺어가는 기이한 우정 이야기로 명랑만화같은 웃음 뒤에 찡한 감동을 주는 소녀들의 성장담이다.
8월말 개봉 이후 조용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도 추석 연휴때까지 하이퍼텍나다에서 연장상영된다. 우리가 몰랐던 북한의 일상과 역사를 알려주는 다큐멘터리로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도 좋은 영화들이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시네코아 상영)는 사랑과 외로움에 대한 깊은 통찰을 그린 뛰어난 멜로드마라이지만 일본 인디영화계의 꽃미남 스타 아사노 다다노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