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동시대의 영화작가를 동시대에 만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영화제와 시네마테크가 부재하던 시기에 등장한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 그랬고요. 여기, 그렇게 힘들게 만나는 작가의 리스트에 피터 왓킨스라는 이름을 올립니다. 연전에 전주영화제에서 <코뮌>이 상영된 적이 있지만, 그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일 거예요. 누군가는 이제야 그를 접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왓킨스는 그 정도의 선배입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마시길. 그는 외국의 평단과 대중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던 인물이니까요. 오죽했으면 그가 ‘주변화(marginalization)’이라는 용어를 자신에게 특수하게 적용해 가면서 주류 언론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밀어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글에 대한 사용을 다른 곳엔 허용하면서도 일체의 대중 매체에서 싣는 데는 제한을 두겠습니까(그래서 저는 왓킨스가 남긴 노트의 인용이 난무하는 이 글을 행여 그가 볼까봐 걱정입니다).
역사의식을 담아내기 위한 ‘페이크 다큐’
<에드바르트 뭉크>(1974)라는 영화로 왓킨스를 처음 만난 1990년대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하기는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극장판이 아닌 TV판이어서) 상영시간이 200분을 넘는 데다 보통의 인물영화와 너무나 다른 영화였으니 잊는다면 이상한 거죠.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의 차가운 공기와 깊은 슬픔이 물씬 전해지는 영화였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연기 도중에 저를 힐끗 쳐다보는 연기자들이었습니다. 뭉크와 어린 노동자 역을 맡은 배우가 제 눈을 바라본 순간 저는 얼어붙는 것 같았답니다. 제겐 너무 낯선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 때 제가 <에드바르트 뭉크>를 받아들인 방식은, 왓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의 감정적인 힘에 빠져 표면적인 단계에서 흡수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왓킨스가 원하는 바 어떤 논리적 귀결로 이어가진 못했던 거예요. 그리고 왓킨스가 뭉크의 모습을 빌어 자기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물론 몰랐습니다. 왓킨스는 화가로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뭉크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왓킨스와 인연을 맺었지만 곧바로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는 못했고, 그 사이에 케빈 브라운로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왓킨스와의 재회는 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브라운로우가 만든 <여기서 벌어졌다>(1965)와 <윈스탠리>(1974)의 매력에 빠졌던 저는 그런 작품들을 일컫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대해 알아가다 왓킨스를 재발견한 거죠. 이어, 1935년생인 왓킨스와 1938년생인 브라운로우가 영화적인 동지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고요. 작품에 역사의식을 심고자 노력한 그들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는 것들과는 비교를 불허합니다. 요즘의 ‘리얼리티 쇼' 같은 장르에 끼친 영향을 왓킨스 자신은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얘기지요.
영국에서 아마추어 영화운동 혹은 언더그라운드영화가 확산되던 시기인 1950년대 후반, 왓킨스는 단편영화 <무명병사의 일기>(1959)와 <잊혀진 얼굴들>(1961)로 주목받게 됩니다. 브라운로우의 증언에 의하면,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를 보고 ‘영화를 재발명할 기회’를 트뤼포에게 빼앗겼다고 낙심하는 영화청년이었다고 해요. 그러다 BBC에서 일할 기회를 잡은 그는 <컬로든 전투>(1964)를 만들어 영국 다큐멘터리의 전통을 이을 총아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워 게임>(1965)이 방영 금지되면서 그의 비극이 시작됐고, 한 대중스타의 흥망에 자신의 위치를 투영한 <프리빌리지>(1967)가 평론가들로부터 뭇매를 맞자 왓킨스는 고국을 떠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40년 가까이 영화의 망명자로서 세계를 떠돌며 영화를 만들게 될 거란 사실을, 그 때 그는 몰랐을 겁니다. 한 예로, 상영시간이 14시간에 이르는 대서사시 <여행>(1987)을 만들기 위해 왓킨스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5대륙을 누비는 동안 80군데가 넘는 단체와 기금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거든요. <여행>보다 더 많은 제작자가 참여한 영화는 드물지 싶어요.
내버려진 사람들의 역사로 복구하기 위하여
한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왓킨스의 영화도 변화를 거치긴 했습니다만, 원칙 몇 가지는 변하지 않고 지켜지고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연기자들이 언제나 카메라 혹은 관객을 봐야 한다는 것과, 대부분의 연기자를 비전문배우로 채운다는 것입니다(악역에 간혹 배우를 쓰긴 하죠). 관객이 허구가 아닌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고, 연기자는 연기자대로 영화가 요구하는 관점과 소통하도록 하기 위해 왓킨스가 세운 원칙은 초기 단편영화 때부터 시작된 거랍니다. 헝가리에서 일어난 1956년의 혁명을 재연한 <잊혀진 얼굴들>에서도 관객을 향한 눈빛과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왓킨스의 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화가 망상에 불과하며, 사회의 유지에 반하는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말합니다. 냉전시대에 영국의 한 지역에 떨어진 핵미사일을 가상한 <워 게임>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망상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걸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에서 선출된 병사들이 컴퓨터의 통제를 받으며 대리전을 벌이고 그것이 대중 매체로 방영된다는 <글래디에이터>(1969)의 설정이나,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들을 기어코 죽음으로 모는 미국 보수주의 집단을 묘사한 <퍼니시먼트 파크>(1971)의 상상은 베트남전과 68혁명 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물론 이라크전 같은 작금의 상황을 정확히 예건한 것과 진배없으니까요. 하지만 왓킨스는 특정 집단이나 국가를 비판하기보다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 위치한 사회·정치·경제·문화의 영역을 지나 각자의 심리적 상태까지 도달해 마침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자와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실제 살았던 역사, 전통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내버려진 사람들의 역사, 고통을 겪고 억압 받으며 산 사람들의 역사를 복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 평론가가 ‘잊혀진 얼굴에 대한 연구’가 왓킨스의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왓킨스는 매스 미디어의 위기를 비판하면서, 현존하는 대중매체가 바뀌기 전에는 시스템이 전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실의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특히 TV는 시스템의 위계질서를 유지·활성화시킬 뿐이며, 대중의 자각과 저항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왓킨스는 시스템과 대중매체에 대한 거부와 주체적 해석 그리고 사람간의 결속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소비사회의 확장과 가차 없이 벌어지는 집중화·세계화의 과정에서 시간과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시스템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러한 왓킨스의 관점이 집약된 작품이자 그가 창조한 세계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코뮌>입니다. 한때 왓킨스는 “사람들은 내가 1973년 경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영화계에서 소외감을 느꼈는데, <코뮌>은 그런 그에게 화려한 복귀의 기회를 제공해준 고마운 작품이지요. 너무 늦은 환대였지만 말입니다. 노동자와 하층민이 제 목소리를 내는 세상, 어용방송을 밀어낸 곳에 코뮈나드를 위한 방송이 자리한 세상은 왓킨스가 꾸었던 정치적 꿈과 같습니다. 누군가는 1871년의 혁명은 단명했기에 낭만적이고 비극적으로 느껴지고 지나간 환영처럼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용기 있는 작품은 우리가 배워왔던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결과를 현실에 반영하게끔 힘을 줍니다. <코뮌>에 참여한 연기자들이 나중에 운동단체를 결성해 프랑스의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하게 된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요.
사실 왓킨스의 주장은 너무 원론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사십년 전에 이미 자신의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올곧은 신념을 지켜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꼭 피터 왓킨스의 영화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미국군에 의해 죽은 이라크의 민간인에 대한 진실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데 미국의 한 학교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뉴스는 왜 매일 나오는지,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역사에는 무관심하면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왜 궁금한지, 의미 없는 일에 왜 시간을 보내는지, 책과 영화와 음악보다 토익서적이 왜 중요한지, 인간관계보다 아파트 한 채에 왜 목을 매는지,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의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전주영화제에서 왓킨스의 회고전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위에 언급한 작품에 더해 <어둠의 땅>(1977) <자유로운 영혼>(1994) 등 그의 대표작들이 두루 상영된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조금 바꿔볼게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퍼니시먼트 파크> <에드바르드 뭉크>와 <코뮌>은 절대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직껏 보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과 <프리빌리지>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만. 에드바르트 뭉크를 처음으로 제대로 평가한 독일의 한 평론가는 “여기 예술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여태 왓킨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당신도 이제 그런 말을 하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