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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3인 정수완, 유운성, 조지훈
정리 이영진 김민경 2007-04-26

“아쉬움도 많지만 지금 이 일을 또 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제8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마련한 3인의 프로그래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는 기존의 정수완, 유운성 2인 진용에 제1회 전주영화제부터 스탭으로 참여해 온 조지훈씨가 프로그래머로 새로 합류했다. 간절히 원하는 작품을 데려오기 위한 갖가지 애환들과 해를 거듭해도 알쏭달쏭한 관객 성향에 대한 고민까지, 개막을 앞두고 세 프로그래머들이 솔직한 수다를 풀어냈다.

정수완: 1명이 늘어나긴 했지만 영화제 규모를 생각하면 프로그래머 수는 아직도 부족하다. 프로그래머들이 섹션별로 전문화되야 할텐데 지금은 어렵다. 그래도 3인으로 늘어나면서 각자 다른 성향을 좀더 조화롭게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유운성: 상영작 중에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작품도 많고.(웃음) 정수완: 세 명이 함께 의견을 조율하다보니 대중과의 유리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제5회 때 대중성에 있어 실패한 사례가 있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을 처음 시작할 땐데, 프로그래머들의 선호 작품만으로 리스트를 채우다보면 대중과의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알릴 때도 ‘단계’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지훈: 그때 관객들이 환불 소동도 일으켰다. “난 영화를 보러 왔다구! 이게 영화야?!”하고.(웃음) 정수완: 우리 유운성 프로그래머도 영화에 대해 국내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박식한 사람지만, 영화 지식 뿐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 몸으로 쌓은 경험도 필수적이란 생각이 든다. 올해의 특징은 ‘한국영화의 흐름’이란 경쟁부문이 신설된 탓인지 한국영화 출품작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앞으로 한국영화 출품작의 질적 향상에도 좋은 토양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좋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많이 하면서 자리를 잡았지만, 앞으로는 경쟁 부문도 강화하고 싶다.

조지훈: 예매율 중에 의외의 반응이 많은 것도 특징적이다. 유운성: 인디비전 섹션이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크리구> 같은 작품은 예매 초기에 매진될만큼 반응이 굉장히 좋다. 조지훈: 생각보다 감독 지명도의 영향은 적은 게 아닌가 싶다.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들이 예매 선두권을 달려 깜짝 놀랐다. 이제 감독에 대한 기대보다 카탈로그의 짧은 소개글에 대한 의존도가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프라이즈> 같은 영화가 반응이 좋은 것도 소개글에 ‘노르웨이의 <트레인스포팅>이다’라는 코멘트가 들어가서인가 싶고.

유운성: 아무래도 부산영화제보다 지명도가 낮은 작품이 많은 탓이 아닐까. 제목의 영향도 상당한 것 같다.(웃음) 정수완: 제목으로 재미 본 영화는 몰라도, 제목으로 재미를 못 보는 영화는 확실히 있다. 조지훈: ‘노동자’, ‘농부’, ‘죽음’ 등, 제목에 이런 단어 들어간 영화는 잘 안된다. 이번엔 <어둠의 땅>, <혼돈의 땅>, <주의회> 등이 그렇다. 유운성: 한편 <에드바르트 뭉크> 같은 건 피터 왓킨스 회고전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갔다. 좋은 영화긴 한데 그렇게 잘 나갈 줄은 미처 몰랐다. 정수완: 왓킨스 회고전 중 가장 대중적인 건 <워 게임>인데, 그보다도 훨씬 많이 나갔다. 유명 감독 중엔 지아장커, 알랭 레네 등이 반응이 좋다. 사실 올해는 거장들의 영화가 부족해서 힘들었다. 베니스, 토론토, 베를린 수상작 중 많이 가져오는데, 사실 이번에 베를린 라인업이 너무 약하지 않았나. 또 놀랐던 건 미술감독 마스터 클래스의 매진 사례였다. 특수 스탭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 유운성: ‘카르트 블랑슈’ 섹션도 그렇다. 3인3색 감독들이 자신의 추천작을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지는 코너인데, 이상하게 이건 다 매진인데 정작 3인3색 작품들은 안 그렇다는 거다. 감독으로부터 자기 작품에 대한 얘길 듣는 것보다 그 감독이 남의 영화 얘기해 주는 걸 더 좋아하다니, 그건 대체 무슨 심리일까.(웃음) 조지훈: 관객 자체가 변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예전 관객들은 거장들의 영화를 잘 알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다른 성향을 가진 관객들이 오는 게 아닐까? <악몽의 섬>의 가이 메딘은 토론토 영화제에선 굉장한 스타였는데 반응이 약하다.

유운성: 영화제를 준비하며 반복되는 아쉬움도 있다. 존 포드의 <스트레이트 슈팅>은 정말 좋은 영환데, 아쉽게도 그 영화가 16프레임 영화라서 원본대로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 35mm 16프레임을 볼 수 있는 영사기가 단 한대도 없다. 그래서 어떤 곳은 상영 조건이 안된다고 아예 프린트 대여를 안해주기도 한다. 조지훈: 꼭 가져오고 싶었는데 이번에 못 가져온 작품도 생각난다. 내 경우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웬 더 리브즈 브로크>가 그렇다. 4시간짜리 다큐인데,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뉴올리언즈의 흑인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같은 작품이다. 유운성: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신작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는 전화도 정말 많이 하고 끝까지 매달렸는데 칸에 가겠다고 거절하더라. 그런데 인터넷에 뜬 칸 리스트 보니 없던데.(웃음) <그들의 이런 만남들>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 감독이 파트너인 다니엘 위예 사망 이후 너무 상심해서, 함께 작업한 영화들의 상영을 모두 막고 있어서 못 가져왔다. 출연한 배우들과 추모전 찍은 감독들 동원해 연락 넣고, 심지어 페드로 코스타 감독에게 부탁해서 매달렸는데 결국 안되더라.고백하자면 이번 다니엘 위예 추모전 영화들이 다 <그들의 이런 만남들>의 상영을 전제로, 이 작품을 이해를 돕기 위해 고른 영환데 결국 본편이 안온 셈이다.

정수완: 힘든 점도 많지만 어쨌든 계속 전주영화제와 함께 해와서 기쁘다. 지금까지의 추억보다도, 무엇보다 지금 이자리에서 이 일을 또 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유운성: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관객으로 찾아왔는데, 그 때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보고 정말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만약 내가 프로그래머가 된다면 그의 전 작품을 모으고 싶단 꿈을 가졌다. 작년에 타르를 헝가리에서 만나서 신작이 완성되면 특별전 하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그게 성사되면 전주에서의 가장 기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조지훈: 난 8년전 전주영화제가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전주영화제의 관객이었던 적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할 시기를 전주영화제와 보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내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제2회 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얻은 적이 있다. 밤 상영이 끝나고 GV가 끝없이 계속 이어져서 극장에 머무는 노숙자분이 화를 내며 싸움을 걸어온거다. 밖에선 스탭들이 그분을 말리느라 난리가 났는데 극장 안에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더라. 감독과 관객이 너무도 평화롭게 영화 이야기에 빠져들어 있는. 프로그래머가 된 지금도 그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정수완: 전주영화제가 시네토크 코너를 마련한 것도 그런 공기를 위해서다. 20∼30분이 넘는 GV를 마련하고 싶어서. 물론 차별화되니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의미가 크다.

정수완 프로그래머의 BEST 5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영화궁전) 대중과의 간극을 좁히면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 <우루세이 야츠라: 아름다운 몽상가> (오시이 마모루/ 불면의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찰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스꽝스럽게 풀어가는 애니메이션. <마음>(알랭 레네/시네마스케이프) 정말 재미있는, 연륜이 낳은 희극. <지단: 21세기의 초상>(더글라스 고든/시네마스케이프) 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며 인생을 말하는, 카메라의 놀라운 역량. <작은 마을>(누리 빌게 세일란/ 터키영화 특별전) 터키의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에 가족, 사회, 자연과 만나는 방법을 다 녹여낸 놀라운 솜씨.

조지훈 프로그래머의 BEST 5

<사유재산>(조아킴 라포스/인디비전) 자본주의에 대해 감독이 가진 생각을 인물의 관계에 녹여낸 뛰어난 설정이 돋보인다. <어둠의 땅> <코뮌>(피터 왓킨스/ 피터 왓킨스 회고전) 언론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피터 왓킨스의 주제가 지금도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다. <토끼 사냥꾼들>(페드로 코스타/ 디지털삼인삼색) 현실을 깊숙이 파고드는 시선이 좋다. <우리>(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영화보다 낯선-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특별전) 굉장히 파워풀한 몽타주와 사운드. 20분의 상영시간 안에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강렬하게 함축했다. 단편 <숏!숏!숏!> 섹션의 세 작품들.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하는 감수성이 내 취향에 맞는 듯. 관람 후 관객 반응이 가장 좋은 섹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BEST 5

<주의회>(프레드릭 와이즈먼/시네마스케이프) 현대 사회의 각종 제도가 테마인 와이즈먼 감독이 그 제도들을 생산해내는 의회에 카메라를 댔다. 와이즈먼다운 놀라운 디테일을 통해, 감독의 정치적 입장이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은 의회의 한계를 체감하게 된다. <두 전쟁 사이에서>(하룬 파로키/영화보다 낯선) 독일 기업체들의 시스템이 어떻게 히틀러 출연에 원인을 제공했는지, 시츄에이션의 연쇄만으로 설명해낸다. 영화가 이렇게 분석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할 수 있다. <에드바르트 뭉크>(피터 왓킨스/피터 왓킨스 회고전)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소재를 통해 왓킨스 영화 형식이 가진 정치적인 힘을 가장 잘 드러낸다. <슈뢰더의 멋진 세계>(미카엘 쇼르/ 인디비전) 내가 독일 감독의 최고 유망주로 꼽는 미카엘 쇼르의 작품.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상업적 감각과 보편적 소통을 놓치지 않는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감독의 레퍼런스가 그만의 스타일에 잘 녹아나 있는 점에 주목. <기성 오청원>(티엔 주앙주앙/시네마스케이프) 지아장커의 <스틸라이프>보다 더 좋아하는 작품. 오청원의 전설적인 삶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