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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으로 1999년 겨울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개봉했다. 서울 67만명, 전국 14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를 남긴 <러브레터>는 이미 4년 전 일본에서 개봉해 한국의 일본영화 마니아들과 대학가 사이에서 엄청난 입소문을 몰고 다닌 전설의 영화였다. 지직거리는 VHS로 20만 한국인이 보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러브레터>의 국내 흥행기록을 깨는 일본영화는 2002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운 200만명의 흥행기록은 2년 뒤 겨울 미야자키의 또 다른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밑에 깔렸다. <하울의…>는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동안 <러브레터> 뒤를 이어 흥행 3위에 머무른 영화는 공포영화 <주온>이다. 복고적 감성의 일본 멜로
일본 젊은 영화의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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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잘 모르지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다”
김석윤 감독은 1992년에 공채 19기로 KBS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연출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본격적으로 ‘극’에 맛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 유재석, 이휘재, 남희석이 출연한 시트콤 <멋진 친구들>을 연출하면서부터다. 일종의 시트콤 연출 실험이었다고 할 만한 그 작품 이후 김석윤 감독은 <달려라 울엄마>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거치며 한국의 대표적인 시트콤 연출자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게 좋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확실히, 여러모로,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다.
-직접 감독을 맡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부분에서 지원은 하겠노라고 했지만 감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1년이나 시트콤 연출을 해서 타성에 젖은 상태여서 영화계 시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라고 했다. 영화는 나와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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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의 205회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올미다>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짜인 일상성과 현재성이었다. 음모와 혈연과 선녀들이 연방 ‘하늘이시여!’를 외쳐대는 브라운관의 세계에서 <올미다>의 일상성은 참 귀중한 것이었다. 미자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오뚝이 같은 30대의 여성성과 세명의 할머니가 보여주는 ‘늙은 여성’으로서 여성성. 보통의 드라마들이 끝끝내 외면하고 가는 현실적인 여성들의 삶과 고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준 <올미다>는 KBS 사장의 재치있는 말처럼 ‘오랫동안(Old) 기억될(Miss) 일기(Diary)’였다. 지지부진하던 시청률은 15%까지 치솟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열혈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종방한 <올미다>는 영화라는 새로운 매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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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부산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지석 교수는 대뜸 “왜 이제야 내려왔어요”라고 나무랐다. 그만큼 시네마테크 부산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알려져야만 한다는 뜻이었을 거다. 1999년에 개관한 시네마테크 부산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하워드 혹스 등의 쟁쟁한 회고전을 기획해왔고,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적은 지방에서 <더 차일드> <라스트 데이즈> 등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영화관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왔다. 최근에는 박찬욱과 김지운, 봉준호 감독 등을 부산까지 초대해 그들이 추천한 영화를 상영하고 강연을 듣는 ‘수요시네클럽’ 같은 적극적인 이벤트도 병행하고 있다. 터놓고 말하자면 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아간 데는 그처럼 서울에서도 대면하기 힘든 화려한 이름과 제목에 이끌린 것이 컸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만난 것은 바다를 향해 열린 번듯한 상영관과 소개 책자만 보아도 서울 관객으로서 부럽기만한 거장들의
영화의 바다를 비추는 작은 등대, 시네마테크 부산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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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전환하면 쾌감이 생긴다”
-현장에서 콘티를 그려가면서 작업하더라. 대사도 그때그때 바꾸는 경우를 봤고.
=즉흥적인 요소가 많았다. 미리 준비한 콘티는 거의 없었고.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적용하니 안 맞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만화적 상상력으로는 가능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면 안 맞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꾸는 일도 생긴 셈이고. 그런 결정은 직감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다보니 불안한 점이 많았다.
-뮤지컬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번 곱씹어본 이야기보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넣게 되었는데, ‘이런 장면에서 노래가 나오면 재밌지 않겠냐’는 생각이 떠올랐다. 뮤지컬을 하자고 마음먹고 <다세포소녀>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뜬금없이 카메라를 보고 얘기하면 어떨까’, ‘춤과 노래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결정했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 해보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형식적으
<다세포소녀> 촬영현장을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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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포소녀>는 특이한 영화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치고는 난데없이 ‘막 나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원조교제, 복장도착자와 같은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학교와 학생에 관해 갖고 있던 그리움이나 환상에 대항하는 동시에, 학교에 관한 발칙한 상상력이 극한에 이른 영화. 어느 대목은 순정만화 같고, 어느 대목은 발랄한 뮤지컬 같다. 원작 만화의 전복적인 아이디어를 살리면서도 만화와 다른 영화적인 요소들이 십분 살아난 영화 <다세포소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네번에 걸친 촬영현장 방문과 추후 취재를 통해 개봉을 앞둔 <다세포소녀>를 들여다보았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저도 오늘 원조교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담임선생님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놀라지도 않고 대답한다. “그래. 늦진 않았니? 얼른 가봐라.”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세포소녀>는 엉뚱한 상상력이 반짝거
<다세포소녀> 촬영현장을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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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에 관한 모든 권한은 우리 일본이 갖고 있다.” 일본의 이 한마디에 한반도가 얼어붙는다. 100년 전의 조약을 근거로 남북의 경의선 개통식을 방해한 일본은 개통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로 유입된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하겠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한다. 이에 대통령은 일본의 억지 주장에 강경하게 맞서려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총리(문성근)와 보수파 장관들의 주장도 거세긴 마찬가지다. 한편, 사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역사학자 최민재(조재현)는 100년 전 조약문서에 찍힌 국새는 고종이 직접 만든 가짜이며, 진짜 국새를 찾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민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 대통령은 ‘국새발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에게 일임하고, 불화의 씨를 없애려는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에게 최민재를 저지할 것을 명령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강우석 감독이 비분강개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드러낸다.
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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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젤리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톰캣(톰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보니스톤(빈스 본 + 제니퍼 애니스톤), 가플렉(벤 애플렉 + 제니퍼 가너), 애시미(애시튼 커처 + 데미 무어) 등 유사한 스타일의 합성어들이 할리우드를 떠돌고 있지만, 브란젤리나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모두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처음엔 브란젤리나도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의 결합이라는 프리미엄에다가, 당당한 연인을 넘어 실천하는 박애주의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안젤리나 졸리의 특별한 행보는 이 할리우드 스타 커플에게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현대적 귀족의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게다가 브란젤리나는 지난 5월 ‘완벽한’유전자 조합의 2세, 실로 누벨 졸리-피트를 낳고 연예 저널의 지면을 도배하면서 영국 왕실 뺨치는 세계적 로열 패밀리로 자리잡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스캔들을 뛰어넘은 스캔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브란젤리나 신드롬, 가십에서 판타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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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도 기억에 남는 강렬함을 꿈꾼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정인기
“이런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는 정인기의 얼굴에 난처함과 어색함이 동시에 어린다. 뒤늦게 연락이 닿은 탓에 모든 취재가 끝난 뒤 혼자 스튜디오에 서게 된 그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뒷북’을 쳐야 하는 입장. 이미 4명의 배우를 찍어놓은 단체 사진에 자연스럽게 붙여넣을 수 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이날의 첫 도전과제다. 시종일관 뻘쭘한 표정으로 걱정을 자아내던 그는 그러나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레 자유자재의 포즈를 선보인다. 만화책에서 막 오려낸 것처럼 ‘ㄱ’자 모양으로 팔과 다리를 꺾은 그가 풀쩍 뛰어오를 때마다 플래시와 폭소가 동시에 터진다.
“출연이라고 하기도 사실 민망하다.” <연애소설> <중독> <싱글즈> <주홍글씨> <주먹이 운다> <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5] -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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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슬픔을, 눈물로 웃음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의 양은용
“제가 여기 껴도 되는 거예요?” 안부 묻고 수다 떠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새침한 새색시마냥 입술 물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양은용이 조심스레 답한다. “다른 분들은 다 유명하시잖아요. 난 아직 몇편밖에 안 했는데….” ‘독립영화’ 배우라는 낙인(?)은 기꺼이 받겠으나, 독립영화 ‘배우’라는 명명은 아직 부담스럽다면서, 그는 쑥스러워한다. 1997년, SBS 공채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지 10년째. 아직 사람들도 <비단향꽃무> 같은 미니시리즈나 <드라마시티> 같은 단막극에 자주 출연한 탤런트로 그를 기억한다. <양아치어조>를 시작으로 <팔월의 일요일들> <내부순환선> 그리고 최근 <내 청춘에게 고함>까지, 4편의 독립장편에 내리 출연한 독특한 배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해 아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4] - 양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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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를 돌 위에 새긴다
<바라만 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양익준
사진 촬영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의상을 설명하던 기자는, 성인 남자 혹은 배우라면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양복 한벌, 가죽점퍼 하나가 없다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옷장을 뒤져 준비했다는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이번에는 ‘깜찍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는 귀여운 남자’라는 난해한 주문에 난감해한다. 그러나 이내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남들은 당연하게 지니고 있다는 옷 한벌 없이,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감동을 주는 배우 양익준의 진면모랄까. 10편에 이르는 단편영화, <강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장편에 출연했고, <KBS 독립영화관> 진행자로 얼굴을 알린 그는, 지난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세편의 출연작이 상영된 끝에 연기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출연작(<낙원>)과 연출작(<바라만 본다>)을 본선에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3] - 양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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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옥 순경, 이런 면이 있는줄 몰랐네
<살인의 추억> <그녀의 핵주먹>의 고서희
<살인의 추억> 이후 3년이 흘렀건만, 고서희는 아직도 권귀옥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선배 형사들의 잔심부름에 열중하던 중, 얼굴없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던 그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탓이다. 평상심을 잃지 않는 뚱한 모습은 초췌한 남자 형사들과 묘한 대조를 이뤘더랬다. <호랑이 푸로젝트>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엉뚱한 ‘백조’로 고서희를 캐스팅한 이지행 감독 역시 그 묘한 이미지에 끌렸다. “약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에서 갱생한 배두나 이미지로 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고, <호랑이 푸로젝트>에서 고서희에게 노란 후드티를 입히기도 했다.”
때론 나른하고 때론 똘망똘망한 동그란 고서희의 눈망울은 영락없는 엉뚱녀의 그것이지만, 어떤 이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2] - 고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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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우리를 응시하는 이 다섯 얼굴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하고 낯선 인상이 이들을 묶는 유일한 키워드라 생각하면 큰 오해다.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나이도, 경력도 천차만별인 이들을 묶는 키워드는 바로 독립영화. 독립영화계로부터 끊임없이 구애를 받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사실 배우의 평범한 얼굴 속에서 비범함을 끌어내고, 친근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생생한 캐릭터에게 아낌없이 자리를 마련하는 데 충무로는 비교적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시스템 안에서 많은 돈을 들여 만들지 않는 대신 늘 새롭고 도전적일 수 있는 독립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맹봉학, 고서희, 양익준, 양은용, 그리고 정인기. 누군가의 아버지로, 친근하고 개성있는 감초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연으로 충무로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수시로 얼굴을 비쳐왔던 이들은,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1] - 맹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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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관객들이 날 알아보니 신기하다”
-여러 운동에 능하다고 알고 있다.
=아홉살부터 5년간 무술 수련을 했다. 내가 연마한 것은 중국 대륙의 북방권이었고, 무술 수련의 특별한 동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그 나이 또래 대부분의 사내아이들처럼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아무래도 싸움이 많은 나이이니 확실히 배워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에는 수영을 하게 되었는데, 홍콩 대표로 3관왕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건강만큼은 자부를 한다.
-장철 감독의 <호협섬구>로 영화계 데뷔했는데, 당시 홍콩 영화계로서는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그렇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홍콩 배우들이 거의 대부분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서 성공을 하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운이 대단히 좋은 편이었다. <호협섬구> 오디션을 열었는데, 3명의 배우를 뽑는 데 3천명이 넘게 몰려왔고, 그중 한명으로 발탁됐다. 첫 데뷔작으로 비중있는 역을 맡았으니 운이 좋
천황거성 왕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