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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햇살 속, 한적한 교외 묘지에 두 모녀가 찾아든다. 대단할 것 없는 이들의 소풍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감돈다. 그 슬픔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설명하는 반전 아닌 반전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드라, 다이애나, 홀리, 소니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녀들의 이름 아홉개를 제목 삼아 아홉개의 짧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삶과 세상을 말하는 영화 <나인 라이브즈>의 마지막 단편 <매기>의 내용이다. 일찍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통해 차분히 인물을 응시하는 섬세함으로 나른한 일상을 마법처럼 빛나게 만들었던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화법을 한층 밀어붙였다. 촬영감독에서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에서 TV 연출자, 그리고 다시 작가 겸 감독으로 수시로 정체성을 바꾸어온 그는, 인간을 우주로 바라보는 진심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을, 그의 삶과 영화를 전한다. 그
<나인 라이브즈>의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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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 중복? 말복 지나고 입추도 지나갔다. 이 지긋지긋한 천연 찜질방도 조금만 더 견디면 가을이다. 다들 산으로 바다로 산소 충전을 하고 오셨는지. 아니면 태평양, 대서양 넘어 스펙터클한 원정을 다녀오셨는지. 그나저나 휴가 끝물에 여행자 10계명이라니, 웬 뒷북이냐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극장가에는 여름 휴가의 기운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니 이해해주시길. 그중에서도 배낭여행의 므흣한 판타지를 와르르 무너뜨린 놈이 하나 나왔으니, 바로 그 이름도 정직한 <호스텔>이다. 하여 낭만 찾으러 갔다가 비명횡사한 미소년들을 기리는 차원에서, 소심한 A씨를 모셔 영화에서 얻은 안전여행 10계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동남아 순회여행을 다녀온 A씨는, 오늘의 태양보다 내일 뜰 태양을 더 걱정하고, 로마에 가도 꿋꿋하게 서울법을 고수하는 소심+우아+안전제일주의자. 당신이 오지 탐험가보다는 A씨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 스타일에 더 가깝다면, 기억해뒀다가 다음 휴가 때 다시
믿거나 말거나! 소심한 여행자를 위한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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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코올의 힘
홍상수 영화에서 술자리는 연애라는 메인코스에 이르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애피타이저 코스다. 술 없이는 연애도 없다. 왜냐하면 견고한 이성의 자리를 허물어내야 누군가 스며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은 등장인물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머쓱하고 쑥스럽게 연애의 세계로 들어선 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홍상수 영화에서 술자리엔 1인당 평균 소주 2병이 올라온다. <수정>처럼 주인공이 부자일 경우 양주와 와인이 올라올 수도 있지만 대개 주종목은 소주다. 가장 많은 소주가 올라온 술자리는 <생활>에서 명숙과 경수 그리고 성우가 함께 마신 소주 6병이다. 그 정도 알코올양이면 성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명숙이 경수에게 “우리요… 어색한 거나 깨게 뽀뽀할까요”라는 대사를 던질 수 있다. 술자리가 여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생활>에서 명숙과 경수, <극장>에서 동수와 영실, <해변>에서 중래와 문숙…. 아
연애는 남녀의 미래다! 연애학자 홍상수 따라잡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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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연애는 남녀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이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이래 10년째 해온 영화 작업에 따르면 그렇다. 신작 <해변의 여인>까지 홍 감독은 줄기차게 연애를 이야기했다. 물론 홍상수만의 영화 구조와 리듬을 제치고 연애만을 이야기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그렇다고 홍상수가 영화 언어를 발명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그의 영화는 연애의 영화라기보다는 연애의 생성과 소멸의 영화이다. 그의 연애영화에는 생활이 없다. ‘생활의 발견’은 끝내 없고 애써 그 발견 이전과 이후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생활을 발견하게 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해변의 여인>까지 연애박사 홍상수의 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연애라는 당신의 미래를 앞당기려면 밑줄 쫙. 지금 그 미래를 벌써 끝내버렸다고 해도 밑줄 쫙. 연애는 시작해도 끝나도 늘 현재진행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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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남녀의 미래다! 연애학자 홍상수 따라잡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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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협조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이성재 홍보담당관실 기획팀장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다 지원한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 경찰 안 나오는 영화는 웬만해서는 없으니까.” 서울영상위원회 김미애 로케이션팀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이성재 홍보담당관실 기획팀장은 “10편 중 7, 8편은 경찰이 끼는 셈”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경찰서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선다 하더라도 이는 이성재 팀장을 거치는 일이다. 서울시내 도로 촬영시 교통통제는 기본이고 대형 싸움신의 장소 제공이나 시내에서 헬기를 띄울 때 “그림이 잘 나올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3년째 이 일을 맡고 있는 이 팀장에 따르면 2003년을 기점으로 협조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올해 7월 한달만 섭외 지원한 작품이 8∼9편 정도였다고. 협조 원칙은 “경찰 본연의 임무에 반하는 것은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사에선 그림을 위해서는 뭐든 하지 않나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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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밟을 땅이 없어 보여도, 아직 한국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미개척의 로케이션지는 전국 곳곳에 있다. 국내 총 7개 지역 영상위원회 가운데 부산, 전주, 광주, 남도, 경기 등 5곳의 영상위원회 로케이션팀으로부터 카메라맨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은 명소를 소개받았다.
“어둡게도, 밝게도 표현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
부산영상위원회가 추천한 동아대 벙커
전쟁시 대피장소로 쓰이는 벙커가 대학교 내에 떡하니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하다. 동아대 캠퍼스 내 지하 벙커는 현재 미대생들의 동아리 활동장소. 그라피티 같은 벽화들은 미대생들의 솜씨다. 이곳은 2년 전 동아대의 소개로 발굴됐다.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장소다. 조폭들의 아지트로도 볼 수 있지만 <다세포 소녀>의 학생들처럼 독특한 인물들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으로 쓸 수도 있다. 어두운 공간일 수도 있고, 밝고 재밌는 공간일 수도 있고. 어느 쪽으로 쓰느냐가 미술작업을 통해 충분히 변형 가능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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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의 호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숙 부인(전도연)이 최후를 맞이하는 거대한 얼음 호수. 멀리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CG로 원경을 넓힌 것으로, 아쉽게도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작은 크기라고 한다. 국내의 호수 크기가 워낙 작을뿐더러 큰 호수일수록 두꺼운 얼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안전상의 문제도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늦겨울까지 튼튼한 얼음이 얼어 있을 만한 호수를 수배한 끝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영화 속에서는 숙 부인의 가냘픈 몸무게도 감당하지 못할 만한 살얼음이지만, 실제로는 몇 십명의 스탭과 촬영장비가 올라가도 문제없을 만한 두께였다고. 그럼에도 걸어다닐 때마다 얼음 밑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들이 스탭들을 불안케 했다는 후문이다. 2월에 크랭크인해 촬영 초반부에 찍었다.
인천 연안부두 컨테이너 야적장 <달콤한 인생>
선우(이병헌)가 총기 구입을 위해 명구(오달수)와 접선하던 공터. 누런 흙바람이 가득한 황량함이 비현실적인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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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 촬영·합작 등 근 몇년간 새로운 시도는 줄을 이었다. 그 어떤 비상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이 가능한 국내 로케이션 촬영도 끝내 예상치 못한 변수로 고생하게 마련인데 기후도, 음식도, 사람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의 어려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옛말 틀린 거 하나없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설정 때문에 충무로의 많은 영화들이 해외로 발을 옮겼다.
좁디좁은 한반도에서도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찾는 게 어려운 상황이니, 이국 땅에서의 로케이션 헌팅은 그 몇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인프라가 전무한 캄보디아 현지에서 그 어떤 실질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체 로케이션 헌팅을 진행했던 <알포인트> 제작진은 6개월 동안 캄보디아 곳곳을 뒤졌다. 믿을 것은 열혈 연출부와 막강 제작부뿐이었다. 미처 개발되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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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추격: <썸> vs <야수>
이보다 박진감 넘칠 순 없다
강도 높은 액션을 위한 로케이션을 물색·섭외하는 일은 일반적인 로케이션 헌팅보다 훨씬 까다롭고 중요하다. 일년 가까운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개봉한 두 영화는 액션 중에서도 센 축에 속하는 자동차 추격, 그것도 역추격 장면으로 눈길을 끌었다. 자동차 액션을 위한 로케이션이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은 통제의 용이함이다. 첨단의 퓨전스릴러를 표방한 <썸>은 다양한 자동차신을 선보였지만 그중에서도 터널 속 자동차 추격은 새로운 시도였다. 차선 변경도 금지된 터널 안에서 중앙선을 넘나들며 대형사고를 재현하기 위해 공항신도시 근처의 도로를 섭외했다. 차량 통행량이 적은 서울 외곽 신도시 주변 개통 직후의 도로를 우선적으로 물색한 결과 발견된 장소다. 일단은 터널 안 왕복 4차선을 통째로 통제하더라도 바로 터널 위 도로로 차량을 우회시킬 수 있고, 터널 안에서 웬만한 속도에 이르기 위한 50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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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맘에 들면 B가 문제고, B가 해결되면 C가 불안하다. 영화를 찍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세트와 달리 100% 완벽한 로케이션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작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장소를 찾기까지의 모든 어려움은 무의미해져버린다. 통제 불가능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잠복해 있기에 로케이션 촬영은 스탭들에게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받는 계기가 되게 마련. 그러나 힘든 도전일수록 성취한 뒤의 기쁨도 크다. 각 부문 스탭들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악몽의 촬영장소와 이를 극복한 후일담을 청해 들었다. 한여름의 하수구에서 한겨울의 유원지까지, 가장 자연스러운 화면 속에 감춰져 있어 더욱 의미심장한 눈물의 로케이션 이야기.
촬영: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엔 큰 제약이 따르게 마련”
한강의 하수구/ <괴물>
-김형구(<비트> <아름다운 시절> <봄날은 간다> <역도산> <극장전> 등)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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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 때까지, 도전 또 도전
<취화선> <천년학>의 임권택 감독
그의 인물들은 떠돌이 운명을 지녔다. 그와 함께해온 스탭들 또한 다르지 않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스탭들은 ‘유랑’을 각오해야 한다.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이 정처없이 떠도는 장면. 모든 스탭들이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버스로 이동하며 장승업의 궤적을 만들어갔다. 눈감고 상상해보라. “아, 여기야”라는 감독의 낮은 탄성. 기다렸다는 듯 모든 스탭들이 버스에서 내려 촬영 준비를 서두르는 풍경을. <취화선>뿐만이 아니다. <천년학> 제작진 또한 9월부터 또 한 차례의 유랑을 계획하고 있다. “세트를 짓더라도 대개 10%밖에 안 찍는다.” 한 스탭의 말이다. ‘남도화첩’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영화 속 가경(佳景)들은 발품 팔아 찾은 실경(實景)들이 거개다. 지치고 꺼릴 법도 하건만 스탭들은 감독의 이런 스타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감독을 도운 한 스탭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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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뒤편 골목은 일단 유보
다음 확인헌팅 장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뒤편 골목에 있다는 반장 집. 앞차를 놓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스탭들은 곧장 이동 분위기다. 사진으로 본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고, 밤 촬영이라 무난할 것 같았는데, 실제 보니 너무 낡았단다. 퇴짜 이유는 또 있다. 김동천 촬영감독은 “배우들의 동선이 확보가 안 되는데다가 반장 집 앞 장면은 비가 내려야 하는데 강우기 설치하는 것도 만만찮아 보이네요”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불만을 접수한 김효정 제작실장이 “여기가 사실 제 출퇴근길”이라며 평소 눈여겨봐뒀다는 골목길을 보여주겠다고 나선다. 길잡이를 자청한 김효정 제작실장의 걸음이 빨라진다. 뒤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인다. “실장님,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제 성격 알잖아요. 초조해하는 것하곤 거리가 먼데….” 응원과 위안의 대화가 오가지만, 점점 스탭들의 보폭도 빨라진다.
“대문이 하나였으면, 담이 좀 낮았으면, 중산층 정도의 집이었으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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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허가를 받지 못해서 도둑촬영을 했다. 한국과 중국의 축구경기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얻은 방송사 조끼를 껴입고서 카메라를 반입하는 해프닝을 벌였다.”(<쉬리>) “약속이 되어 있던 나이트클럽이 문을 안 열어주는 바람에 결국 촬영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비트>) “섭외를 위해 주인에게 ‘젊은 놈 하나 살려주십시오’라는 눈물로 쓴 장문의 편지를 보내야 했다.”(<8월의 크리스마스>) 불과 몇년 전 일들이다. 그때, 한국영화 로케이션 공식은 저지르고 보는 무데뽀였다. 감독이 점찍은 공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촬영허가를 따내야 했고, 틀어지면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촬영을 강행해야 했다. “제작부 막내 때 스탭들이 식사할 식당 잡아놓고 난 다음에 하는 일이 다음날 촬영 장소 섭외였다. 지금처럼 감독과 스탭들이 함께 사전 헌팅 회의를 하고 로케이션 계획을 미리 짜는 것도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싸이더스FNH 윤상오 이사의 말처럼,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 로케이션 대백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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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 본 첫 느낌은, 한마디로, ‘뜨악했다’. 말 그대로 <시간>은 ‘선뜻 끌리지 않는’ 또는 ‘미덥지 못한’ 김기덕의 영화였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은 매우 ‘낯선’ 김기덕의 영화였다. <시간>의 영화적 공간은, 그동안 익숙해져버린 전형적인 ‘김기덕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 공간은 <악어>의 ‘다리 밑’과 같은 도시 주변부적 삶의 치열한 생존의 공간도, <수취인불명>의 기지촌과 같은 역사적 공간도, <섬>의 ‘저수지’와 같은 상징화된 우화적 공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대 또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 대사가 많은 ‘수다’스러운 영화였다. <시간>의 공간은, 전형적인 홍상수적 공간에 가까워 보였다. 그 공간과 김기덕의 ‘유치한 대사’와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해 보였다.
새로운 공간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이제까지 이 글을 과거 시제로 써왔다.
김기덕의 <시간> 4인 비평 [4] - 변성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