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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 에티엔-쥘 마레이와 더불어 영화 발명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사진)의 초기 영화가 발견되었다. 프랑스의 진보적 일간지인 <위마니테>는 지난 3월24일 조르주 멜리에스의 15번째 영화 <벽보 금지>가 프랑스 공산당 자료실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2002년 파리에서 열린 조르주 멜리에스 전시회의 운영을 맡았던 멜리에스의 증손자인 자크 말테트는 <위마니테>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1896년에 촬영된 것이며, 필름의 상태는 양호하다”고 밝혔다.
환상과 마술의 세계에 심취했던 조르주 멜리에스는 1896년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영화들은 로베르 후댕 극장의 연극무대 장치를 활용했다. 멜리에스의 초기작 중에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처럼 삶의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려는 시도들이 보이는 것도 있지만, 1897년 이후 환상적이고 신비한 장면을 만드는 데에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적 세계를 위해 멜리
[파리] 멜리에스 초기 영화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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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취재, 구미에는 결혼사기가 많다…
첫 번째 취재처는 구미경찰서. 한국은행 사기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쉽게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범인도 못 잡은 걸 뭘 알라카고 참…. 더이상 얘기는 못해주고 마~ 그냥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쇼!”
“그래도 용의자들은 있을 거 아닙니까?”
“용의자가 있다 커면 그놈이 범인일 수 있지만, 용의자가 없어. 80년대 초에 서울 영등포에 있는 뭐 은행에 비슷한 수법으로 했던 사람들까지 다 뒤져봤는데 다 죽고 읎어. 그래도 우린 계속 수사하고 있어. 내가 잡으면 연락할게.”
영화 취재를 왔다고 하자 신기한가보다. 여럿이서 모여들더니 한마디씩 거든다.
“나는 뭐꼬 그… <처녀들의 저녁식사> 그런 영화가 젤로 좋드만.”
“<무사> 찍은 영화사라구? 일본놈들 상대로 무사 한번 찍었으면 좋겠어. 그런 걸 찍어야지 무슨 사기꾼 얘길? 사기꾼들 별거 없어. 그냥 아저씨, 아줌마야.”
“이쪽 구미서는 결혼사기가 젤 많다
<범죄의 재구성> 감독의 사기사건 취재수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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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알아보거나, 그 작가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등으로 유명해진 찰리 카우프만(사진)은 이같은 희귀(?) 작가 중 하나. 특히 그의 새 작품 <순수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을 손꼽아 기다렸던 뉴욕의 영화팬들은 지난 3월19일부터 이 영화의 개봉관마다 장사진을 이뤘다. 호평 속에 개봉한 작품은 평론 전문 웹사이트 ‘라튼토마토닷컴’에서 전체 리뷰 평균 92%를 기록했다.
제목이 너무 길어 관객이나 극장 직원들이 <영원한 햇빛>이라고 맘대로(?) 줄여 부르는 이 영화에서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이 남자친구를 기억 속에서 모두 삭제시키는 의학 시술을 받자, 남자친구인 조엘(짐 캐리) 역시 홧김에 같은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는 시술과정
[뉴욕] 짐 캐리보다 유명한 작가, 찰리 카우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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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냐, 아니면 발이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방식을 두고 사람들은 우열을 가리고 싶어한다. 물론 어떤 것이 더 좋은 창작방법인지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서 모은 이야기와 머리가 쥐나도록 짜낸 이야기에는 나름의 쾌감이 있는 법이니까. “대한민국 대표은행이 털렸다”는 카피를 앞세운 <범죄의 재구성>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감독과 제작자가 함께 파트너를 이뤄 전설적인 사기꾼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취재한 내용을 캐릭터에 버무려낸 영화다. 예고편만 보더라도 박신양, 염정아, 백윤식, 이문식 등 주요 배우들이 맡아 연기한 캐릭터들의 개성의 충돌이 한껏 부각된다. 4월15일 개봉을 앞두고 믹싱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최동훈 감독을 졸라서 받아낸 시나리오 취재기는 영화를 맛보기 전에 한 숟갈 뜨는 애피타이저로는 더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프롤로그-1997년, 사기와의 첫 만남
1997년. 어느 백수가 대학을 졸업했다. 모름지기 지식인의 자세는 주경
<범죄의 재구성> 감독의 사기사건 취재수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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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에 ‘폐업’ 간판을 내걸어야 할 때가 왔나? 지난 10여년간, 대만 영화인들은 서서히 구석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80년대 초 대만 뉴웨이브[New Taiwan Cinema]를 열었던 세대는 (에드워드 양과 허우샤오시엔을 제외하고) 차이밍량을 대표로 영화제 바깥의 관객층에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버렸다.
허우샤오시엔(사진) 감독조차 지난해 12월 (예산을 지원했던) 일본에서 단 1회 상영 뒤에 최신작 <커피타임(Coffee Time)>을 철회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제 다른 관심사가 많아 영화는 부수적으로만 하고 있다. 90년대 말, 대만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완전히 항복하여 국내 스크린쿼터를 내주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그렇지만 그때 이미 국내산업은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대만영화의 ‘성공’에 대한 심리적 잣대는 박스오피스 수입에서 처참하게 낮은 대만달러(NT) 1백만 달러(미화 3만 달러)가 기준이다. 그렇다면 서서
[외신기자클럽] 대만영화 폐업 간판 내거나?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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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DVD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세계 영화산업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일본만 하더라도 2002년 기준으로 전체 극장 흥행수입이 1967억8천만엔 수준인 데 비해 DVD 판매수입이 1791억1100만엔, 대여수입이 155억엔, 총 1976억엔 수준으로 전체 흥행수입을 능가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DVD 판매 및 대여를 통한 수입이 162억달러로 VHS 시장 59억달러를 한참 추월했고, 박스오피스 흥행수입 80억달러 수준 역시 능가하였다. 이 수치를 바로 개별영화의 수입에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주요 할리우드영화의 DVD 수입이 대체로 박스오피스 수입과 일대일 정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혹시라도 DVD를 통해 90년대 초, VHS 시장이 한국 영화산업에 가져다주었던 축복을 다시 한번 재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섣부른 기대일 듯싶다. 지난해 영진위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2
[이슈] DVD 시장, 장기적 안목으로 키워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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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영화를 가장 많이 본 국가는 어디일까? 영진위 자료에 의하면, 2002년에 이어 일본이 수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일본에 대한 수출은 2002년 대비 658만 달러에서 1389만 달러로 111% 급상승했다. 미국이 비중과 금액(86만불->448만 달러) 양면에서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할리우드에 활발하게 판매된 한국영화 리메이크 판권 계약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이 향후 5대 수입국으로 진입할 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래픽 뉴스] 한국영화 일본에 가장 많이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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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교나 사설교육기관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고 볼 수 있다? ‘영상도서관’ 혹은 ‘영상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는 미디어센터가 5월 초 서울의 강서구와 성북구에 들어설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광화문 소재 미디액트가 유일한 미디어센터였다. 하지만 성북 씨네센터(5월4일 개관 예정)에 이어 강서미디어센터(5월7∼10일 개관 예정)까지 문을 열면 서울지역 시민들의 영상문화에 대한 접근은 좀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 10여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들 또한 미디어센터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 이들 미디어센터의 연이은 개관과 이후 활동은 아직은 생소하고 미약한 미디어센터 건립 움직임에 불을 놓을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가 전적으로 지원한 미디액트와 달리 강서는 “영진위가 기자재 비용(3억원)을 조달하고, 인건비를 중심으로 한 운영비와 공간 활용(연간 4억원)은 지역의 구청이 책임”지는 지자체의 적극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미디어센터가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
강서·성북 지역에 미디어센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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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뭐 어떡하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뭐
이번 영화 끝나고 또 다음 영화 준비하고
내년에 5월 세금땜에 아껴쓰고 저축하고
한푼두푼 모아모아 부모님께 집한칸을
간만에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술한잔을
-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인간 양동근은 좋고 싫은 게 확실하다 정말.
=(단호하게) 맞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당황스럽겠지만 지금 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이런 질문 처음 받아보겠지만.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뭐 솔직히. 국민으로서는 부실한 자세인 거는 나도 알지만. 근데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다 눈먼 사람들 같아서. 물론 그런 것들이 나와 관계가 있으면 음악으로든 얘기하겠지. 나랑 관계도 없는데 이야기하는 건 그런 건 거짓말이다.
-인간 양동근은 장래 계획 같은 거 세우고 그러는 사람인가.
=(단호하게) 아니.
-어. 대체 뭔가. 그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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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동근, 나는 언제나 나인 거지 뭐
연예인이란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아
내가 공인이란 것이 그리 자랑거린 아냐(알어)
여기서든 저기서든
개인일 수 없는 것이
권리보단 의무를
나보다 먼저 팬들을
내 웃음을 선사하고
나의 몸을 부식부식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친구들은 많은가.
=다 음악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쪽보다는 음악쪽 사람들. 같이 음반작업 스튜디오에서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힙합의 브러더 후드(brotherhood) 같은 정신.
=음. 그건 무슨 특별한 정신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밤새고 작업하고 녹음하다 같이 밥먹고 하다보면 친해지게 되어 있는 거지 뭐. 밖에서 영화찍거나 드라마할 때는 카메라 앞뒤에서 긴장하고 하는 일이 많지 않나. 그런데 음악작업은 그런 게 아니거든. 항상 같이 지내잖아. 같이 일하고 쉴 때는 같이 놀고 그러니까 영화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한테는 편한 사람들이 되는 거지.
-남자팬이 더 많을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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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겉늙은 거지 뭐
진리에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 수 있는 법.
모두 진짜를 말하니 어쩔 순 없어도 중요한 건 자신을 똑바로 밝히는 것.
그리고 비교된 남을 의식하고 우습게 말한 것 우습게 무지 속에 자신과 대화하는 것.
-양동근 1집의 <선문답> 중에서-
-늑대 좋아하는가.
=늑대? (거울을 쳐다보며) 음. 사실 평소에는 늑대를 좋아할 일이 없지 않나. 늑대를 아무 데서나 그냥 막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늑대>의 최 형사 역할. 당신과 닮았다. 싫은 것들과는 죽어도 함께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무리들 안에서만 혼자 노는 늑대 같은 이미지.
=처음 최철권 역할을 받았을 때 생각하길, 일하기 싫어하는 형사니까. 그리고 내가 원래 일하기 싫어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었다. 결국 그것도 일이지만. 뭐.
-일하기 싫어하는구나. 예를 들어 이렇게 생면부지의 귀찮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일 같은 거.
=전부 다 내가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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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의 양동근. 이 무뚝뚝한 남자가 낯선 상대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고 비로소 받아들일 시간은 빨리 오지 않는다. 그 시간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뽑아내야 하는 건 고된 일이다. 그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표정과 느릿느릿한 몸짓과 특히나 그 이마 위 가느다란 신경세포들의 곡선을 이룬 움직임, 그것들을 지면에 생생하게 옮겨놓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짧은 답변들 속에 엇박자로 튀어나오는 양동근의 거침없는 생각들과 미묘한 차이로 흔들리는 목소리의 변화.
양동근과 친근해지는 것만큼이나 그를 정의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우물우물 읊조리는 랩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수이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에너지를 분사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이야기하고 정의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네멋대로 해라> 이후 부터였을 것이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그 독특한 팬덤을 형성했던 <네멋대로 해라>는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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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년기의 대단원, 혹은 어떤 밀월의 추억
나는 한국영화가 소년기 혹은 성장영화 시대를 경과해왔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를 특징짓는 젊음은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의 육체적 연령의 문제를 포함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된 199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1천만 관객시대가 개막된 현재까지의 시기를 한국의 젊은 감독과 젊은 관객의 밀월기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60년대 세대의 감독들은 관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70, 80년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서적 통로를, 전통적인 영웅상이 아니라 양자가 공유한 소년성에서 찾았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품행제로>와 같은 자전적 색채가 강한 회고적 청춘드라마이건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좀더 양식화된 장르영화이건 또 아니면 <실미도>처럼 역사적 사건을 직접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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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몇몇 비평가들은 한국영화가 고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개봉된 이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극복돼야 할 결함이라기보다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징후이자, 많은 한국영화의 장르적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된 구성적 요소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고아의식이라는 용어는 소년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좀더 유용할 듯하다. 성공한 한국 대중영화들에는 영웅성의 자리를 소년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소년성이 한국 장르영화의 불안정하며 변칙적 성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여기서 소년성은 주인공들의 신체 연령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욕망과 그들이 맺는 관계의 성격을 지칭한다. <실미도>의 설경구, <공동경비구역 JSA>의 이병헌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소년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떤 소년성을 공유하고 있다. 원작 일본 만화의 제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