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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 연애소동>과 <클루리스>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십대를 기막히게 잡아냈던 에이미 해커링은 2000년대의 아이 <아메리칸 촌놈>의 주인공으로 제이슨 빅스를 낙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이슨 빅스는 에이미 해커링이 아닌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십대를 보여주게 된다. <아메리칸 파이>는 2000년대의 아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엽기밖에 없음을 증언하는 시리즈다. 이젠 도전이니 전복이니 하는 말을 하면 비웃음을 사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귀여웠던 <아메리칸 파이> 1편을 지나 3편인 <아메리칸 파이3-웨딩>에 이르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사라지고 색광 녀석들이 정신나간 짓만 끝없이 해대는 영화를 100분 가까이 보는 건 고역이다. 솔직히 ‘제임스’의 역동성과 ‘벤 모리슨’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사운드트랙이 아까운 수준. 일단 3편으로 시리즈의 매듭을 짓는다곤
주책바가지들, <아메리칸 파이3-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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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사무라이>의 호평과 흥행 성공 덕분에 전체적인 설정에서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 <쇼군>도 DVD로 출시되었다.
파라마운트와 가 제작해 1980년에 12부작 TV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었던 이 작품은 1975년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으로 1천만부 이상이 판매된 제임스 클라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국내에서는 125분으로 편집한 TV판 영화가 극장 개봉된 바 있다).
폭풍으로 일본 바닷가에 표류해온 영국 항해사가 막부의 장군에게 의탁해 사무라이로 생활해가면서 마침내 외국인의 몸으로 쇼군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작품의 줄거리는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다분히 터무니없는 결말로도 보인다. 하지만 미·일 합작으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여 일본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하였고, 미후네 도시로와 모리스 자르 같은 거물급 배우와 스탭들을 기용한 결과 전체적으로 매우 짜임새 있고 다채로운 영상과 연출로 완성되었다. 덕분에 방영 당시에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24년 만에 오리지널과의 만남, <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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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서 기술상을 수상했던 <마이크로코스모스>의 제작진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여에 걸쳐 전세계 36개국을 횡단하며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에는 알에서 부화하는 순간부터 지켜봐온 총 35종 1천여 마리에 달하는 다양한 철새들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와 남미, 호주의 여러 대륙들과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남극과 북극을 거쳐 파리와 뉴욕의 빌딩 숲까지 관통하는 장대한 여정을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할 만큼 시적이고 감동적인 아름다운 영상들로 화면 가득 펼친다.
450여명에 이르는 스탭들이 전세계 175개 지역을 여러 조로 나눠 헬리콥터와 경비행기에서부터 행글라이더와 열기구까지 동원해 엄청난 시간과 정열을 들여 촬영한 이 귀중하고 놀라운 영상은, 2003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에 노미네이트됐고,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전세계에서 3천만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릴 정도로 대중적인 호응도 얻었다(특히 미국에서는 9개월 이상 장기상영되면서 1천만달러 이상 벌어
철새들이 그리는 ‘자연의 교향곡’, <위대한 비상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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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짐 셰리던 영화는 고집 센 아일랜드 사람 같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 이야기인 <천사의 아이들>을 보기도 전에 우린 아일랜드인과 아메리칸 드림의 충돌을 그린 작품을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파 앤드 어웨이>나 <갱스 오브 뉴욕>의 반대편에서 아일랜드인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아니다. 물론 이 영화엔 감독 데뷔 이전에 뉴욕에서 가족과 함께 힘겹게 살았던 그의 이주 경험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여기엔 짐 셰리던의 또 다른 개인사가 숨어 있으며, 그것이 이 영화를 보편적 드라마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소녀는 세 가지 소원을 빈다. 미국 정착을 위해 빌었던 두 가지 소원 다음에 세 번째가 남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죽은 동생 ‘프랭키’와 ‘가족’을 위해 쓰이는 걸 본다. 그들이 머나먼 땅으로 온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슴속 슬픔을 잊기 위한 것이었으며, 언제나 그렇듯 그 해답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가족의 이름으로, <천사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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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이치> 座頭市2003년감독 기타노 다케시상영시간 116분화면포맷 1.78: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5.1 일본어자막 한글, 일본어, 영어 자막출시사 인트로미디어<하나비>에서 보여준 폭력의 강렬함을 넘어선 허무주의의 미학을 거쳐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한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선 것처럼 보였던 시점에서 뒷걸음쳐 야쿠자와 폭력의 세계로 돌아갔던 <브라더>가 좋지 못한 평을 얻자, 기타노 다케시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연애물과 시대극인 <돌스>와 <자토이치>를 차례로 내놓으며 새로운 방향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탐미적이었던 <돌스>에 이어 선택한 작품이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언뜻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기타노는 이 작품을 철저하게 오락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언제나 자신의 각본으로만 영화를
상식 파괴, 노련한 감독의 유쾌한 향연, <자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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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봄인가요? 아, 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영화사 봄을 찾는 이성욱 기자의 통화 내용을 들은 정한석 기자가 하하 웃으며 “계절에게 묻는 것 같았어요, 선배”라고 여담을 건넨다. 문득 걷고 싶어진다.회사 근처에 있는 효창공원은 멀리서 볼 때 아직 가라앉은 갈색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야트막한 관목들의 머리꼭지에 맑은 초록빛이 올라앉아 있다. 여린 싹은 내게 전혀 다른 감정들을 차례로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환하게 반갑다. 그리곤 안쓰럽다. 마침내 무섭다.오래전, 집 마당에 호박씨를 심었던 적이 있다. 호박죽 끓여먹는다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다듬다 보니 거기서 나온 씨마저도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한 구멍에 서너개씩, 요령부득으로 씨앗을 밀어넣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마침내 싹이 돋아 올랐다. 어느 씨앗도 실패하지 않고 한 구멍에서 여러 개의 싹들이 하늘을 향해 그 작은 두팔을 힘차게 벌리고 있었다. 너무 많은 호박이 열린 나머지
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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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가 우리에게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는 “이민가지 마세요”였었다. 국민들은 사실 뭐니뭐니해도 내 나라에 살고 싶었는지 그를 이 나라의 지도자로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케이블티브이의 홈쇼핑 채널에서 빅 히트를 기록한 신상품이 등장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이민상품’이었다. 이 홈쇼핑은, 지금은 얼마 안 남은 이데올로기의 흔적마저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깨끗히 닦아주는 쇼킹한 것이었다. 아, 이민도 일종의 상품이구나. 돈주고 사면 되는 거구나. 그것도 마이 홈에서 리모컨을 돌리다가 전화를 걸어 구입하면 며칠 뒤에는 캐나다인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 국가와 국적이란 것이 이렇게까지 가벼워질 수 있다니. 기분이 덩실 날아오른다.한반도는 사실은 말도 못하게 척박한 곳이다. 연평균 기온차가 40도가 넘고, 강우량은 가뭄 아니면 홍수, 국토의 대부분은 산악지대이고 지리적으로는 극동아시아에 고립되어 있다. 좋은 땅도 아닌데 어쩌다 길목에 위치한 이유
집17 - [날아가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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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특별한가?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순조롭게 이어가지 못하고 파경을 맞는 것에 비하여 굳이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있다면, 또는 막 태어난 신혼의 쌍들이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여 출산율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데도 힘들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특별한 사람이다.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런 특별함을 보여줄 길이 없다. TV를 틀면 온갖 특종들이 난무하고 이 세상은 정말 놀라운 곳임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네가 가진 특별함은 어딘가로 실종되고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거부된다. 유별나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을 것만 같은 세계 속으로 한발한발 빠져들어간다.발차기가 그림 같은 ‘마샬아트’의 달인, 예술 같은 볼링장면을 선사하는 시각장애인, 물구나무서서 온갖 기교를 부리는 기인들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세상이 저런 일이” 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만 세살도 안 된 아기가 ‘리틀 석가모니’가 되어 있질 않나, 초등학생인 ‘리틀 황비홍’이 날아다니질 않
평범해서 주눅든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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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묵묵히 ‘삼’(三)!이라 발음한 뒤의 그 여운이 무엇보다 좋고, 그러니까 삼삼한 기분인데다, 또 어떤 숫자를 좋아하시나요? 와 같은 물음에 비교적 정답이 아닐까 싶은 안도감- 그렇다, 그런 안도감이 나에겐 있다. 분명, 있다. 적어도 6이나 2보다는, 이 한국 땅에서 모름지기 번듯한 대답일 거란 생각이, 나는 든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무작정 나는 3이 좋은 것이다. 무작정 내가 한국인인 것처럼, 그렇다.그렇군.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은 3이라는 숫자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 당신의 부모도, 또 당신의 조부모도, 혹은 단군과, 심지어 웅녀(熊女)께서도 묵묵히 마늘을 씹으며 을 좋아하셨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2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건 두 사람의 지인 역시 제일 좋은 숫자는 3, 이라고 대답했다. 후회 없지? 글쎄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아무튼 번복할 기회를 한번 줄게. 그것 참… 그럼 7로 할까? 후회 안 하지? 아냐…
넘버, 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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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신화 만들기에 대한 존 포드의 영화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문사의 편집장은 현명하게도 “진실과 전설 중 결국 기록되는 것은 전설이게 마련이지”라고 충고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전시(戰時) 상황에서 신화가 사실을 압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특수성마저도 팀 버튼의 (거의 주기적으로 시도되는) ‘감상적 신화쓰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 <빅 피쉬>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팀 버튼의 전체 경력 속에서 살펴보자면 대니얼 월러스의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그의 최신작 <빅 피쉬>는 거의 성숙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작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 <빅 피쉬>는 브래드버리(역주: 미국의 소설가, 환상문학 계열의 작품들을 썼다)에 의해 시도된 마술적 리얼리즘의 향취를
<빅 피쉬>의 팀 버튼, 스필버그식 거짓말에 손을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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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 <만인보>(萬人譜) 서시
김동원 감독은 사람들이 <송환>을 “30년 넘게 감옥에 있었던 특별한 사람들을 12년간 따라다니며 찍은 특별한 다큐멘터리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절반은 동의하지만, 절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송환>을 본 사람들은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사람을 30, 40년씩 가둬놓는 한국 현대사가 특별한 것이지, 풀어주지 않아서 오랜 징역 살아야 했던 분들이 원래 특별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송환>의 김동원 감독을 부러워 하는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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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왜 딸에게 묻지 않는가?
<씨네21>은 지난 443호와 445호를 통해 페미니즘 비평을 둘러싼 강성률씨와 심영섭씨의 글을 실었다. 비판과 반론으로 이어진 이 논쟁을 소모적이라고 평가하는 황진미씨는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자”는 입장에서 <사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보내왔다. 그는 “이 글을 페미니즘으로도, 반페미니즘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편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영화읽기 자체”라는 입장이다.편집자
황진미/ 영화평론가 chingmee@hanmail.net
<사마리아>는 흔히들 이야기하듯 ‘딸과 원조교제를 하는 놈들에 복수하고, 딸을 용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통쾌한 복수극이자, 부녀간에 말없이 화해를 주고받는 가족드라마로 거칠게 읽었을 때나 가능한 독법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딸은 성매매가 아닌 몸보시를 하고 있었으며, 아비는 딸과는 일체의 교감도 없이 혼자서 심판과
<사마리아>의 ‘윤리’가 가진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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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사마리아>를 보고 김기덕의 변화를 말하다김기덕의 영화는 불편해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학취미가 있는 유능한 애인 같다. 애인이 자꾸 갈구면 이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남도 아니고 애인이 저러는 건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일말의 불안은 범죄현장을 찾는 범인의 심리처럼 가학의 상황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관계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불안을 매개로 연대한다. 나와 김기덕 영화의 관계가 이렇다. 나는 김기덕의 영화가 나를 구박하는 아주 매력적인 애인 같다. 불편하지만 결코 떠나버릴 수 없는.불편한 이유는 이렇다. 그의 영화는 한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지 못한 계층의 육성을 다룬다. 휴머니즘의 필터로 걸러진 얌전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핏발 선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째려보는 재현의 주체로서 소외계층을 다룬다. 이들의 존재는 폭력과 더러움과 야비함의 이물감으로 화면 속으로 들이밀어진다. “너희들 이런 삶도 있는 것 알아?”
김기덕은 ‘귀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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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주말, 9일 개봉작 가운데는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웠던 걸작 애니메이션 한편이 포함돼 있다. 르네 랄루 감독의 프랑스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은 73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면서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금까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애니메이션이 진출한 건 이 작품과 2001년 <슈렉> 둘 뿐으로, <슈렉>도 상을 받지는 못했다.
인간과 조금 다르게 생겼으나 매우 진화된 문명을 누리고 사는 거대한 종족이 사는 별에, 이 종족의 엄지손가락만한 인간들이 기생해 산다. 거대한 종족은 인간들을 애완동물로 사육하기도 하고, 야생으로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바퀴벌레처럼 죽여버리기도 한다. 미개해 보이던 인간들이 거대한 종족의 지식을 훔쳐 학습하고서 반란을 꾀한다.
쉬운 이야기, 평화공존이라는 메시지는 어린이들과 함께 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엉뚱
[주말극장가] 칸이 인정한 <판타스틱 플래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