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 셰리던 감독에게 가족은 절대적인 이 지구상의 구성원이다. 뇌성마비로 뒤틀린 몸을 간직한 남자에게 <나의 왼발>의 어머니는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었고, 폭탄테러 혐의로 징역 15년을 살던 아들에게 희생을 감내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아버지는 용서의 다른 이름이었다. 가족은 이 험난한 세상을 뒷받침해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브라더스>는 짐 셰리던 감독이 그간 전개해왔던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인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영화는 한 남자 샘(토비 맥과이어)과 그의 사랑스런 아내 그레이스(내털리 포트먼), 그리고 두딸의 행복한 생활로 말문을 연다. 그러나 군인인 샘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고, 전사 소식이 들리면서 이 가족의 행복도 산산이 깨진다. 실의에 빠진 가족을 보살피며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줄 동생 토미(제이크 질렌홀)의 등장으로 <브라더스>는 얼핏 멜로드라마의 구성을 띠는 듯도 하다. 그러나 짐 셰리던은 죽
전장이 미국인의 마음속에 남긴 황폐함 <브라더스>
-
음악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다. 데뷔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가수의 두 번째 앨범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블록버스터 시리즈에도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 비평과 박스오피스 양면에서 대성공을 거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전편의 영광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경우다. <쥬라기 공원2>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정도가 이 비극적 징크스의 슬픈 사례라고 볼 만하다. 징크스를 무사통과한 사례로는 <스타워즈2: 제국의 역습>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많은 영화광들은 <에이리언2>와 <터미네이터2>를 거론하겠지만, 과연 <스크림>의 주인공들이 동의할까?
그렇다면 이 징크스를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슈퍼히어로 시리즈에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탈출하는 방법은 샘 레이미가 시리즈의 최고 걸작 <스파이더 맨2>에서 제대로 제시한 바 있다. 화력은 더 강하게, 스토리와 캐릭터는 1편과 마찬가지로 간결하고
토니 스타크의 방황기 <아이언맨2>
-
트위터를 통해 예고했던 ‘파격적인 에디션’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무려 홍상수 스페셜 에디션! 홍상수 감독의 열 번째 장편영화 <하하하> 개봉을 기념해서 60여 페이지를 털어 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호는 스페셜 에디션답게 ‘스페셜 에디터’를 모셨다. 정한석 기자가 바로 문제의 스페셜한 편집장이다. 정 기자는, 아니 정 편집장은 수개월 전부터 예의 그 악필로 숱하게 메모를 하면서 이번 호를 준비했다. 그러니 스페셜 에디션의 각 꼭지가 어떻게 기획됐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정한석 에디터에게 듣는 게 맞을 것이다. 그의 에디토리얼은 홍상수 스페셜 에디션(이 잡지를 거꾸로 뒤집으면 나오는)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은 1년 전부터 기획됐다. 그의 아홉 번째 장편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개봉을 앞두고 있을 즈음,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특집을 생각했고 그러자면 책 한권을 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에디토리얼] 무한도전!
-
“그건 버스를 기다리는 일과 같다. 한대를 기다리는 동안 30년이 지났는데, 두대가 연달아 오니 말이다.”(<가디언>)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리들리 스콧이 무려 30년 만에 <에이리언> 속편의 연출을 맡기로 결정했다. 스콧 감독으로서는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 이후 첫 SF물 연출이다. 오랫동안 시리즈의 창조자가 만든 속편을 눈빠지게 기다려왔을 SF팬들에게는 또 다른 반가운 소식도 있다. 리들리 스콧의 속편은 두편에 걸쳐 제작될 예정이고, 3D로 만들어진다.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2> 이후 4편에 이르기까지 혹평과 조소를 면치 못했던 <에이리언> 시리즈는 과연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속편은 1979년작 <에이리언>의 전사(前事)를 다룬다. 그러니까 시고니 위버가 타고 있던 우주선 노스트로모호가 정체 불명의 우주선을 발견하고,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기 이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원조의 힘을 보여주세요
-
-
부산국제영화제에 낙제점수를 준 당신은 누구인가. 최문순 의원이 지난 4월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물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09 국제영화제 평가 점수표를 확인한 최문순 의원실은 “두명의 특정 평가위원이 모든 영화제에 대해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줬으며, 두 평가위원의 평균점수가 전체 평균보다 무려 40점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최고·최하점의 차이가 무려 120점이 나고 있으며, 특정 심사위원은 부산국제영화제 점수를 300점 만점에 91.6점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문순 의원실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국제영화제 지원방향과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영화제에 대해 잘못된 사실과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가 국제영화제를 평가했다는 사실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평가서를 확인한 영화계 관계자들은 “모든 영화제에 대해 부정적 기술을 한 두명의 평가위원이 조희문 위원장과 정
[강병진의 영화 판.판.판] 점수 따로, 지원금 따로?
-
29일 서울 여의도 CCMM에서 MBC 일일연속극 '황금물고기'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황금물고기>는 5월3일 저녁 8시 15분 첫 방송 예정이다.
[황금물고기]박상원-조윤희 ‘막장 아닌 순애보 사랑’
-
<연애놀이>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겨울 내내 붙잡고 있었지만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겨울 동안 한산했던 7명의 공동 작업실이 날씨가 풀리니 제법 복작거린다. 작업실 구석 자리에 회색 천을 둘러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헤드셋을 낀 채로 작업한다. 어릴 땐 종이박스 속을 좋아했고, 대학 다닐 때에도 구석에서 작업하길 좋아했다. 그때부터 남아 있는 이런 습관은 애니메이션 작업이랑 잘 어울린다.
오랜 시간 혼자서 작업해야 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은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작업해나가고, 그리고 내 안의 문제를 거리를 가지고 관찰하며 작업해나가는 과정은 나에겐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기도 했다. 한데 요즘은 매일매일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어렵다. 잘해왔던 것들이 언젠가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이 부분이 오히려 가장 견디기 힘든 요소가 되었다. 갑갑한
[충무로 신세대 팔팔통신] 이제 회색 천 밖으로…
-
*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4월29일 오후 7시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영화제는 5월7일까지 총 9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5월12일 개막하는 제63회 칸국제영화제의‘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김동원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의 전작이 DVD 박스 세트로 5월7일에 출시된다. 이번 박스 세트는 그의 대표작인 <상계동 올림픽> <송환>을 비롯해 총 1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영주 감독, 정한석 <씨네21> 기자, 맹수진 영화평론가가 참여한 부가영상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2010 일민미술관 다큐멘터리 아카이브 정기상영회가 5월1일부터 16일까지 일민미술관 1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상영회에는 <경계도시1, 2> <호수길> <사당동 더하기> 등 총 22편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한줄뉴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外
-
잠정 휴업했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활동을 재개한다. 지난 1월30일 휴관식을 가졌던 미디액트는 서울 상암동에 둥지를 틀어 5월14일에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고, 지난해 12월30일 간판을 내렸던 인디스페이스는 5월 중에 온라인으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영화진흥위원회는 두 단체와의 위탁 운영 계약을 공모제로 전환했고, 그 결과 새 사업자가 선정됐다.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은 “영진위가 형식적으로 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공서비스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공모과정에 항의하는 한편,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공공서비스를 앞으로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해야 했다”고 상암동 미디액트 개관 배경을 설명했다. “퍼블릭 액세스와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미디어 교육은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며 그에 더해 이용자들과 함께 이용자가 중심이 되는 미디어센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그들이 돌아왔다
-
새로 연재되는 칼럼에서 처음 다룬다는 것이 ‘영화에 나타난 도시’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식상한 주제라고 치부하면서 곧바로 이 페이지를 넘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이, 도시의 풍경을 담은 지난 세기의 이미지들(영화, 뉴스릴, 텔레비전, 광고 등등), 즉 이제는 조금 달라졌거나 원래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변모된 그런 도시의 풍경이 담긴 이미지를 활용한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들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이 될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올 초에 본 한편의 걸출한 데뷔작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말하기 위해서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런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기존의 영상자료를 활용한 도시-에세이들이 잇따라 나온 것은 우연히 그리된 것이라고만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얼른 떠오르는 대로 몇편의 중요한 영화들만 언급해보면 (영화잡지 <시네마스코프>가 10년간 최고의 영화 10편 가운데 하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도시, 역사, 그리고 영화-에세이
-
아내가 집 나간 줄도 모르고 장난처럼 이혼을 선언한 남자가 후배와 함께 아내를 찾아다니는 좌충우돌의 코미디 <집 나온 남자들>은 일견 ‘남자들끼리 놀고 자빠진’ 상황을 그린 버디무비이거나 ‘그녀를 하나도 모르고 있었네’를 깨닫는 로드무비 성장담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은 이성애와 결혼의 가치를 부인하는 은폐된 퀴어영화로, 성 정치적 전복성을 지닌 텍스트이다. 이는 문제적 엔딩에 국한된 의미를 침소봉대한 결과가 아니다. 엔딩은 느닷없이 주어진 반전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논리적 귀결이자 거울상이다.
남자와 남자의 곡진한 연대
‘전화 안 받기’ 놀이를 하던 후배가 일년 만의 선배 전화를 받고, 새벽을 달려 강릉까지 함께 간다. 선배는 이혼을 결심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 동행하기” 위해 그를 불렀다. 둘은 바닷가에서 술 마시고, 여자 끼고 놀다 한 침대에서 잠들고, 부부관계 상담하다 며칠씩 같이 마누라를 찾아다닌다. 더구나 한 여자의 옛 애인이자 현재
[영화읽기] 가부장적 결혼의 권위에 하이킥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캐스린 비글로의 일관된 관심사는 하드보디 마초들이 우글거리는 신화적 남성 세계를 감싸고 도는 험상스러운 파국의 기운이다. 단적으로 영화 <허트 로커>는 ‘이라크전으로 무대를 바꾼 <폭풍 속으로>(1991)’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인데, 극한의 위험 속으로 초연히 걸어가는 수수께끼 같은 사나이와 마력적인 그의 남성성에 동화되는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영화의 바탕은 하나이다. <허트 로커>는 파멸의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자들에 대한 비글로식 탐구의 최신 버전쯤으로 보이는 바, 여기에는 반쯤 맛이 간 무모한 전쟁 중독자(<폭풍 속으로>의 패트릭 스웨이즈의 재림이라고 할 만하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캐스린 비글로의 야심은 이라크에서 활약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를 이끄는 제임스(제레미 레너)의 스릴 넘치는 오디세이를 좇아 매사에 호전적이고 물러섬이 없는 그의 행동방식으로부터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의 핵
[전영객잔] 눈 먼 전쟁-기계의 탄생신화
-
“우리가 어떻게 주변의 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이 땅에 남기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들의 자취를 찍고 싶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남겨진 분위기를 반영하려고 합니다. 사진이 가진 역사성이라는 힘이야말로 사진을 회화 드로잉, 조각 등과 비교할 때 리얼리티에 가까이 있게 만들어주는 차이점입니다.”
아마도 현존하는 사진작가 중 ‘남겨진 흔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마이클 케나를 고를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꾸준히 풍경 속의 여백을 관찰하는 사진가이며 단순함과 어슴푸레함을 자신의 미적 구도로 삼고 있다는 흔적을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전부터 그에게 관심을 가져왔다. 언젠가 어떤 인터뷰 중 존 레논의 노래 한 구절을 빌려 ‘삶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고 바쁠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Life is what happens when you are busy making other p
[김경주의 섬세함을 옹호하다] 빈 풍경, 어떤 허무 그리고 우리의 삶
-
지난호에 실린 ‘파타피직스 서설’을 통해 독자들은 파타피직스의 세계에 입문했다.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의 패러디라면 ‘파타포’(pataphor)는 ‘은유’를 의미하는 메타포(metaphor)의 패러디다. 과거의 시인과 화가들이 메타포의 대가였다면 현대의 파타피지션들은 파타포의 명인이라 할 수 있다. 파타포는 그저 몇몇 괴짜들의 해괴한 지적 유희에 불과한 게 아니다. 오늘날 그것은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체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의 말대로 “현대인은 파타피지컬한 종(種)이 되어가고 있다”.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메타포와 파타포는 어떻게 다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는 ‘두개의 상이한 사물 사이에서 불현듯 유사성을 깨닫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체스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투의 시뮬레이션이다. 하지만 진짜 전투에서 이루어지는 기동은 물론 보드 위에서 말들이 움직이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현상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모종의 유사성이 존재하
[진중권의 아이콘]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