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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이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2001), <태풍태양>(2005) 이후 12년 만에 세 번째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일본의 유명 작가 료코(나카야마 미호)와 가난한 한국의 유학생 찬해(김재욱)의 애절한 멜로드라마 <나비잠>이 그것이다. 정재은 감독은 그사이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 홀>(2013) 등 다큐 작업에 주력하며 빠르게 무너지고 솟아나기를 반복하는 동시대 한국의 도시 공간에 염려를 남기고, 인간과 상생하는 건축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이어 이번엔 해외 합작영화로 일본 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진 정재은 감독. “새로운 플랫폼을 향해 언제나 살 길을 찾아 헤맨다는 점에서 나는 어쩌면 계속해서 신세대가 아닐까”라는 그의 말에 적잖이 공감이 간다.
-한·일 합작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은경 프로듀서(<나비잠>의 한
<나비잠> 정재은 감독 - 동아시아 멜로의 감수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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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얼굴이라 연기 초짜인 줄 알았는데 무려 데뷔 6년차 배우다. 배우 정유민이 생명력을 생생하게 불어넣은 덕분에 <목격자>에서 ‘희원’은 단순한 살인사건의 희생자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었다. 정유민은 2012년 드라마 <홀리랜드>로 데뷔한 뒤 <음치클리닉> <반드시 잡는다> 등 두편의 영화와 <유나의 거리> <구르미 그린 달빛> <이판사판>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만 관객(8월 25일 기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한 <목격자> 홍보하랴, <흉부외과-심장을 훔친 의사들>(이하 <흉부외과>)과 <나인룸> 드라마 두편을 동시에 촬영하랴 정신없는 그를 만났다.
-<목격자>엔 어떻게 출연했나.
=전작 <반드시 잡는다>에 참여한 인연으로 <목격자>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두편 모두 같은 제작사
<목격자> 정유민 - 현장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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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한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은 ‘할리우드 키드’ 다음 세대의 출현, 이를테면 ‘놀란 키드’ 혹은 ‘마블 키드’의 출현을 선언하는 영화다. 영화에 대한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날이 불투명했던 한 젊은 감독이 주변 지인들을 그러모아 첫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애초 만든 단편영화 <회상, 어둔 밤>(2015)의 결말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추가로 촬영해 이어 붙인 이른바 확장판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말버릇처럼 되뇌던 “진정성 있는 영화”의 완결편을 만들어냈다. 지난 1년여 동안 관객을 만날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했을 심찬양 감독과 <어둔 밤>의 주연을 맡은 배우 오수경, 송의성, 심정용, 이요셉을 <씨네21> 사무실로 초대했다. 감독과 배우와 스탭이 그들 스스로 즐겁고 싶어 만든 영화인 만큼, 흥미진진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제작 전반에 대
<어둔 밤>의 ‘그냥 쩌는' 영화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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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극, 인공지능을 이식한 남자의 두려움과 고뇌. 블룸하우스의 첫 번째 SF 액션 <업그레이드>를 설명하는 문장들이다. 이 영화는 간결하고 독창적이며 기발하다. 무엇보다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설정과 소재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던 아이디어지만 익숙한 이야기도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흥미로워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5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이미 북미에서만 두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복합문화페스티벌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2018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장르 본연의 매력에 충실한 영화 <업그레이드>를 소개한다.
1. 블룸하우스의 첫 번째 SF 액션
블룸하우스는 영리하다. 블룸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를 시작으로 <인시디어스> 시리즈, 최근 <겟 아웃>(2017)과 <해피
블룸하우스의 첫 SF 액션 <업그레이드>의 매력 키워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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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이 오면>의 주인공 엔젤 라미어(도미니크 피시백)는 이제 막 18살이 되어 소년원에서 출소한다. 엔젤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흑인, 레즈비언, 가정폭력 생존자 같은 말은 필수적이겠으나 영화에선 부수적일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엔젤의 여자애인은 “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눈치다. 엔젤은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눈을 감으면 아빠가 엄마의 머리를 화장실 벽에 찧어대던 장면이 생각나. 그래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엔젤은 총을 구하고, 위탁가정에 맡겨진 동생과 조우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중이다. 엔젤의 아빠는 엄마를 살해했고, 엔젤은 엄마의 복수를 원한다. 어떻게 지냈냐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엔젤이 어떻게 답했어야 했을까. 엔젤은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런 얘기를 듣길 원해? 여자친구는 답한다. 좀 낫네.
나는 이 장면에 분개했다. 겨우 이 정도 반응을 듣기 위해서 자신의 악몽을 타인에게 말해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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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제인>은 선구적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에 관한 영화다. 1960년대 탄자니아 곰비 지역에 거점을 만들고 침팬지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젊은 제인 구달의 모습을 담은 화면은 “혹시 재연인가?”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 필터를 댄 최근 장르영화의 클립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제인>의 본론을 이루는 이 영상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100여 시간의 무성 16mm 푸티지를 편집해 음향과 음악을 더한 결과다. 촬영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구달에게 파견한 카메라맨 휴고 반 라윅인데 뒷날 그가 제인 구달의 첫 남편이 됐다는 사실은, 영상에 흐르는 관심과 친밀감을 설명한다. 미래의 연인 눈에 포착된 제인 구달은 정글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다정하고 냉철한 인간이다. 반 라윅의 필름은 1965년에 이미 <미스 구달과 야생 침팬지>라는 영화로 종합된 바 있으나 브렛 모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크레이지 서칭 아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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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짧게 김지운의 <인랑>에 대한 얘기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뒤늦게 IPTV로 봤는데 이 영화에 대한 기왕의 평점이 의아하게 여겨졌다. 김지운의 최고작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김지운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전부 부정할 만큼 이 영화의 완성도가 처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지운의 이전 영화 중에 흥행과는 무관하게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달콤한 인생>(2004)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는 주인공 선우는 나르시시스트로서의 단독자이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에 맞서 싸운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인랑> 역시 그런 점에서 김지운의 개인적 지향과 맞는 지점이 있을 터인데 주인공과 조직의 대결을, 납득할 만한 서사의 고정점이 없었던 <달콤한 인생>과 마찬가지로(이 영화에서 선우는 자신을 파괴하려고 한 조직의 보스에게 “내게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데 이는 관객이 서사에 갖는 의문과 동일하다), 실사영화 <인랑>은 애니메
김지운의 <인랑>의 나르시시즘, 윤종빈의 <공작>의 호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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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보유를 명분으로 미국이 전쟁을 한창 준비 중이던 2002~2003년. <충격과 공포>는 시민의 두려움을 먹이 삼아 전쟁의 몸집을 불려가던 조지 부시 정부의 내막을 파헤치는 저널리즘 드라마다. 군대 내 폭행 사망 사건을 파헤치는 법정물 <어 퓨 굿맨>(1992)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인물들을 힘 있게 그려낸 적 있는 로브 라이너 감독이 이번에는 거대 권력에 돌을 던지는 실화 속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대량살상무기, 충격과 공포 전술, 합동 언론 나이트 리더지 등 <충격과 공포>를 보기 전에 복기해볼 만한 실재 소재들을 정리해봤다.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의 위력은 어느 정도?
2003년 3월 20일 새벽,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미국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됐다. 미 공군이 영국 및 호주와 연합해 바그다드 곳곳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
<충격과 공포>를 보기 전 알아두면 좋을 이라크전쟁의 발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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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공장에서 일하며 보스코라는 이름의 개와 미스터 위스커스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는 제리(라이언 레이놀즈)는 동물들과 대화를 한다는 점만 빼면 평범한 독신 남자다. 회사의 모임에서 만난 경리부 피오나(제마 아터턴)에게 첫눈에 반한 제리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보스코와 미스터 위스커스에게 털어놓는다. 미스터 위스커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리는 피오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피오나는 제리를 바람맞힌다.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피오나를 만난 제리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자신도 모른 채 피오나를 살해한다.
동물과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는 <닥터 두리틀>(1967) 같은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분열을 앓는 살인마가 나오는 <미스터 브룩스>(2007)에 더 가깝지만, 영화의 스타일이 다르다. <더 보이스>에 미스터 브룩스나 한니발 렉터 같은 냉철한 포식자로서의 살인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깊은 상처를 가진 나약한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는
<더 보이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순도 100% 청년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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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 사는 88살의 재단사 아브라함(미구엘 앙헬 솔라)의 집에 손주들 여럿이 모여 할아버지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얼마나 화기애애한 광경인가 싶지만, 속사정인 즉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한 딸들이 죄책감을 덜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자선 파티였다. 딸들을 단호하게 귀가시킨 아브라함은 그날 오후, 자신이 만든 마지막 슈트 한벌만 챙겨 폴란드로 떠난다. 70년간 자신을 기다려온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첫인상은 온전한 1인분의 대우를 받지 못해 분할 따름인 노년의 인물이 번듯한 생활력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코믹한 분투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대인인 아브라함이 어떻게든 독일 땅을 밟지 않고 폴란드로 가겠다며 기차역에서 생떼를 부리는 장면에 이르면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에 빚을 지고 있는 이야기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잃은 자신을 물심양면 도와준 친구에게 아브라함이 전했던 다시 만나자는 약속.
<나의 마지막 수트> 전쟁의 상흔을 되짚는 노년의 귀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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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의 발목쪽이 입이 된 형태의 양말요정들은 얼핏 자그마한 코끼리 인형 같은 독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하나뿐인 가족인 할아버지를 잃은 양말요정 휴고(조연우)는 창고에 평생 먹고도 남을 양말을 저장해 둔 삼촌(박상우)과 그의 아들 홀쭉이, 길쭉이를 찾아간다. 요정을 잡으려고 덫을 설치하기 바쁜 레네 박사(이민형)와 양말요정계의 불량배 무리까지 만나면서 휴고는 짧은 생애 중 가장 큰 모험에 휘말린다.
한짝만 사라진 양말 때문에 난감해지는 것은 동서고금 보편적인 경험인 모양이다. 체코와 크로아티아가 합작한 동유럽 애니메이션 <양말요정 휴고의 대모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들이 양말 한짝을 훔쳐 먹는다는 상상력으로 색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특별한 꾸밈 없이 일상 공간이 섬세하게 구현된 배경 위로, 보드라운 양말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은 요정이 돌아다닌다. 기묘하고 넉넉한 귀여움을 안기는 광경이다. 민담 격의 모티브를 현대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한 영화는 그에
<양말요정 휴고의 대모험> 사라지는 양말 한 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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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유키나(쓰지야 다오)는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다. 원래 타대학 건축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공대. 주위를 둘러봐도 남학생들은 모두 뿔테 안경에, 체크무늬 셔츠 차림의 ‘고리타분한’ 공대생들뿐이다. 하지만 우연히 인력비행기 동아리에서 ‘만찢남’ 같은 순정만화 스타일의 선배 케이(다카스기 마히로)를 만나고 실망스러운 캠퍼스 생활에도 활기가 찾아온다. “체격이 조종사로 딱”이라며 가입을 권하는 케이의 말에 유키나는 그날부터 동아리 활동에 매진한다. 동아리에서 유키나는 전년도 인력비행 콘테스트에 짝을 이뤄 출전했다 실패한 선배 사카바(미미야 쇼타로)를 만나게 되고, 부상을 입게 된 케이 대신 사카바와 짝을 이뤄 콘테스트 출전 준비를 하게 된다.
젠틀한 케이와 달리 첫 만남부터 여자라고 무시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카바와의 신경전. ‘톰과 제리’처럼 으르렁대던 둘이 콘테스트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엉뚱한 캐릭터, 난데없는 음악, 코믹한 상황
<소녀, 하늘을 날다> 오합지졸 청춘들의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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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윌리스가 형사가 아닌 탐정을 연기한다. LA의 베니스비치 인근에서 활동하는 사립탐정 스티브(브루스 윌리스)는 매사에 자기 멋대로 행동하느라 수사를 그르치기 일쑤다. 어느 날 스티브가 거구의 두 남자로부터 그들의 여동생 놀라(제시카 고메즈)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그녀를 찾아내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가 오빠들에게 걸려 줄행랑을 친다. 한번은 지인으로부터 도난당한 자동차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를 추적하는데 하필 그 차가 마약상 보스 스파이더(제이슨 모모아)의 수중에 있어서 마약조직과도 얽히게 된다. 스티브의 일상이 제대로 꼬이기 시작하는 건 그가 아끼던 반려견 버디를 좀도둑들이 훔쳐가는데 하필, 그들이 마약상 스파이더에게 돈 대신 개를 넘긴 것이다. 스티브는 오로지 버디를 찾아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LA의 거의 모든 범죄자들과 뒤엉켜 싸운다. LA의 탐정 이야기라고 해서 필립 말로 스타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아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브루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 탐정으로 돌아온 브루스 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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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는 2003년 3월 19일 이라크 공습에 나선 미국의 군사전략 명칭이다. 로브 라이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충격과 공포 작전이 미국 사회에는 어떤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는지 파헤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나아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고 발표한다. 합동 언론사 나이트 리더의 기자 조너선 랜데이(우디 해럴슨)와 워런 스트로벨(제임스 마스든)은 부시 정부의 발표가 이라크전쟁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라 판단하고 백악관의 진짜 의중을 캐내려 한다. 하지만 ‘테러’, ‘대량살상무기’,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라는 자극적 말들은 미국 내 애국주의를 고취시켜 이라크전쟁의 본질을 가려버린다. 나아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같은 영향력 있는 매체들도 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상황. 나이트 리더 기자들은 이라크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이어
<충격과 공포> 이라크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외로운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