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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 둘이서 일주일 동안 설전을 벌였다. 결론은 우리가 상업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찾아갔더니, 원하는 대로 만들어라, 제목만 가면 된다, 그러더라. “그럼 여고에서 만들어지는 괴담이면 되죠. 그럼 하죠” 하고 시작한 거다. 얼마나 힘든 건지도 모르고. 석달 동안 시나리오 쓰고 처음 들어간 거다. 어쨌든 <여고괴담>은 굉장히 예외적인 시리즈인 것 같다.
김 | 일단 그 테두리 안에 딱 들어오면 엄청난 자유를 주는 기획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공포라는 테두리 안에서 마음대로 해볼 수 있으니까.
민 | 지금은 3편이 만들어져서 시리즈가 됐지만, 우리한테의 제안은 속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얘기로 가자고 합의를 봤다. 전편하고 달라져야 하는 게 너무 큰 사명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하려는 이야기에 뭔가 집중할 수 있다. 1편은 입시제도의 문제점, 억압적인 학교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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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생들의 대빵 두 머리 귀신은 당시 두 머리가 번갈아가며 정신을 잃곤 했다. 다섯명의 말만한 여고생들을 휘어잡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과로로 쓰러져 다음날 눈도 못 뜨는 일을 사이좋게 반복했던 두 머리 귀신.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첫쨋날, 김 감독님이 쓰러지셨다… 둘쨋날, 민 감독님이 쓰러지셨다….”
3기생인 지효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2기 때의 두 머리 귀신이 합쳐져서 우리 감독님 귀신이 된 거 같아요.” 한쪽 귀신은 연기지도 및 상황설명, 의견묻기 등의 행동 패턴을 보였고, 다른 한쪽 귀신은 “그걸 내가 아니∼ 니가 알잖아∼”라는 말만 하고 다녔다는 두 머리 귀신의 특징을 지효 학생이 듣고, 이 상반된 현상이 3기 감독 귀신에게서는 모두 나타났다며 추론해낸 것이었다.
지효 | 저도 혼자 생각하고 정리 다 해서 감독님 귀신이랑 얘기하고 나면 더 불어나기만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피해다니고 그랬어요. (웃음) 촬영이 점점 시나리오랑 달
여고괴담 동창회에서 생긴 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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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 촬영 당시, 최민수는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배우인 조선묵을 흠씬 두들겨패서 기절시킨 적이 있다. <유령>을 찍을 당시 그는 감정선을 잃지 않으려고 세트에서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워가며 촬영을 마쳤다. 심지어 최근 상영 중인 <청풍명월>에선 진짜배기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소품이 아닌 진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최민수가 있는 촬영현장은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는다. 이건 일상의 문턱을 넘어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벗어나기 무섭게 배우라는 갑옷을 훌러덩 내던지곤 하는 이들과 달리 그는 평소에도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되새긴다. 혹시 핏줄 때문일까. 한 영화제가 마련한 회고전에서 한 지인은 그의 아버지인 고 최무룡 선생을 “무대 바깥에서도 배우였다”는 말로 회고한 적 있다. 그런데 최민수의 경우는 더 심하다. 모두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최민수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내 털은 내가 뽑는다”라든지 한때 회자됐던 최민수 시리즈 속 ‘최민수’는 이 둘의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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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비해 배우 최민수가 점유한, 그리고 90년대 한국영화가 그에게 허락한 영역은 넓다고 보긴 어렵다. <테러리스트> <유령> <리베라 메>로 대표되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 반대로 <결혼이야기> <미스터 맘마> 등에서 보여준 ‘대발이’식 코미디. 그가 보여준 것이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상업적인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그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연기에 대한 욕심을 상업영화의 룰에만 쏟아부었는데. 관객이나 평자들 중에 최민수가 하면 60밖에 못한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애초 20밖에 안 되는 것을 끌어올렸을 수도 있어요. 전에 임권택 감독님이 <백치 아다다>를 제의하셨는데, 세상을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건방지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부터 했다면 탄탄한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을 텐데 그건 내가 찾은 게 아니라 배운 거니까. 전 전
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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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 그리고 여름, 하지만 윤석호가 어떻게 변하니?<가을동화>에서 <여름향기>까지, 유석호 드라마에 나타난 불변의 법칙 혹은 콤플렉스<가을동화> <겨울연가>에 이은 윤석호 PD의 계절시리즈, 그 세 번째인 <여름향기>가 현재 방영 중이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윤석호 PD’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임이 분명하며, 제작초기부터 여러 국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을 만큼 범아시아적으로 ‘한류열풍’의 주역임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92년작 <내일은 사랑>부터 2002년 <겨울연가>까지 그의 드라마는 대중으로부터 끊임없는 관심을 받아왔고, 주인공들의 패션은 곧 유행이 되었으며, 전국팔도를 찾아 다니며 헌팅한 아름다운 장소들은 여행상품으로 등장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계절을 달리하며 속속들이 선보이는 윤석호의 드라마는 세월을 역행하고 있다. 지금 채널만 돌리면 옥탑방에 동거하며 생활대사를 내뱉는
윤석호 드라마의 불변의 법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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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의 오지랖, 한강보다 넓구려 _ 필참! 방자와 향단이“상혁이 니 입으로 유진이 보내준다고 했잖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잖아!!”(<겨울연가>) 자신보다 더욱 남의 일에 팔 걷어붙이고 흥분하는 사람들. 윤석호 드라마엔 늘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사이에는 ‘방자와 향단이’ 같은 캐릭터를 심어놓는다. 이들 조연은 대사대비 출연횟수가 지나치게 빈번하며 주인공에 비해 늘 떨어지는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주책스럽거나 수다스럽거나 눈치없다는 스테레오타입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따른다. <겨울연가>에서 박용하와 최지우의 친구로 등장하는 진숙(이혜은)과 용국(류승수)에 이어 <여름향기>의 방자와 향단이는 송승헌의 선배인 대풍(안정훈)과 손예진의 선배인 장미(조은숙)다. 이들은 시퀀스마다 패셔너블한 의상과 나름대로 튀는 설정으로 등장하지만 결국엔 드라마가 한정지운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처리된다.이들의 역할은 두 가지다. 주인공들
윤석호 드라마의 불변의 법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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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막무가내의 젊음을 돌이키다소피 마르소, 유덕화, 나스타샤 킨스키 등 DVD로 다시 만나는 80년대 청춘스타 10人요즘 문구점에선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인기스타들의 사진이 박힌 책받침과 연습장. 수북이 쌓인 사진 중에서 나의 우상을 골라내 정성껏 코팅하고 가방 속에 찔러넣으면, 진귀한 보물이나 신통한 부적이라도 얻은 듯 괜스레 가슴이 뻐근해오던 기억들.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당신이라면, 그들을 추억하고 싶을 것이다.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맷 딜런, 로브 로, 왕조현, 유덕화, 제니퍼 빌즈, 나스타샤 킨스키, 마이클 J. 폭스, 패트릭 스웨이즈….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남았지만, 남은 이들도 예전의 그들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억할 작품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손상됐다. 십수년간 닳고 닳아 사람의 형체와 움직임 정도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화질이 엉망이 돼버린 비디오 테이프, 바래지고 뭉개진 추억 앞에 망연할 필요는 없다. 80
DVD 연속기획2 - 다시 만나는 청춘스타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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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열혈남아>의 유덕화熱血男兒, 1988 | 감독 왕가위 | 출연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 출시사 라이브 DVD | 그외 출시작 <아비정전>,<천장지구>,<무간도>,<지존무상>,<결전> ,<파이터 블루>,<재전강호>,<용의 가족>“왜 지금껏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죠?”“나는 나를 잘 아니까. 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유덕화는 항상 가진 것 없는 남자였다. 그는 트렌치코트와 권총보다는 땀에 젖은 티셔츠와 식칼이 더 어울렸고, 조직의 보스라기보다는 그저 뒷골목 깡패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무거운 짐을 날라주는 것이 고작인 와. 연인 앞에 상처투성이 모습으로 굴러떨어지곤 하는 <열혈남아>의 한물간 깡패 와는, 그렇게 지독하게도 없어 보였던 십몇년 전 유덕화를 낯설고도 풍요로운 현재
DVD 연속기획2 - 다시 만나는 청춘스타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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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인가? 사기꾼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도그빌>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선 라스 폰 트리에, 열광과 혐오의 이유들소문대로다.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발적인 영화를 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왔던 <도그빌>은 관객의 극단적 반응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영화언어의 혁신을 이룬 걸작’이라는 찬사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가짜 예술품’이라는 비판이 트리에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댄다.<뉴욕타임스>의 평론가 A.O.스콧은 올해 칸영화제를 취재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칸영화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장대한 규모와 더불어 논쟁적 영화를 선호하는 취향이다. 그리고 이것이 칸영화제가 트리에를 그처럼 환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중략) 칸영화제에서 월요일에 있었던 <도그빌> 시사회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순간이었다. 마침내 논쟁거리가 생긴 것이다. <도그빌>은 냉소주의에 기반한 가학적이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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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트리에는 순수의 서약을 지키고 있는가?아마도 도그마95가 아니라면 트리에에 대한 논란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8년 칸영화제에서 <백치들>과 <셀레브레이션>을 내놓으며 알려진 이 서약은 한때 21세기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서약을 깬 것은 바로 서약의 주창자인 트리에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창작과정에 어떤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선언을 했지만 다시 도그마의 10계명에 얽매이는 것은 도그마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서약을 위반했다.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지키지 않을 서약을 또 다른 누벨바그의 선언처럼 제시한 이유는 단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닌가? 트리에를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평하는 이들이 트리에를 결과(영화)보다 말을 앞세우는 감독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이름 앞에 ‘선동가’, ‘호객꾼’, ‘앞잡이’ 같은 단어가 등장한 배경이다.그렇다면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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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에 관한 첫 번째 시선순결의 귀환그러니까 세상에는 모든 이미지가 사라져도 살아남을 것 같은 영화가 있다. 브레송이 그렇고 고다르가 그렇고 <도그빌>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라스 폰 트리에가 분필 하나로 만들어낸 세상은 세트를 없애고, 핍진성을 없애고, 스펙터클을 없애고, 교차편집을 없앤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창녀에게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행세하며, 값싼 유리를 비싸게 만드는 이곳은 인간의 모든 죄의식, 수치, 나약함, 허위, 사기를 모아 만든 유리의 성이다. 그곳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그마로 귀환한다. 177분 동안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보는 것 같은 단일한 무대 위의 종교적 수난극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와 연극과 소설이 삼위일체로 성큼 다가서는 기적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 히치콕이 우리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는 위치 대신 외화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물로 영화 안에 동참시킨 것처럼 라스 폰 트리에는 우리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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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커칠 상할까봐 스탭들 양말 바람으로 다녔어”구상에서 시사회까지, 영리한 실험 <도그빌>의 전말“이게 다 뭐 하는 짓이요?” 친구 니콜 키드먼을 위문하기 위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곧장 전용기를 타고 스웨덴의 <도그빌> 세트를 방문한 러셀 크로가 내지른 일성이었다. 그를 특별히 무례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를 맞이한 것은 글씨로 쓴 ‘개’가 짖어대는, 벽도 없는 집들의 마을이었으니까. 사실 <도그빌>의 세트에 처음 도착한 배우들이나 <도그빌>을 처음 본 관객의 머릿속을 지나간 첫마디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러셀 크로의 질문 아닌 질문에 붙일 수 있는 하나의 답은 ‘실험’이다. 실험의 목적이 무엇이건 라스 폰 트리에는 가운을 걸친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영화를 만들어왔고 <도그빌>을 만들었다. 햇빛과 물과 흙이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지 알기 위해 딱 하나씩 조건을 통제하며 강낭콩 싹을 관찰했던 초등학교의 과학 실습시간처럼. “한 가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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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원 개선을 위한 6가지 제안연구인력, 기획력, 자료 확충, 저작권 제도 등이 화두최근 한국 영화계는 100년의 역사 속에서 최절정기를 맞고 있다. 제작, 배급, 극장 등 영화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영상자료원이다. 영화필름을 수집, 보관, 복원하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교육, 연구사업을 펼치는 것이 목적인 한국영상자료원은 3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지금에 와선 부쩍 성장한 한국영화의 위상에 맞는 활동을 펼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영화·영상자료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예술적 가치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갈수록 중요한 현대의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인 탓에 영상자료원의 변화는 더욱 절실하다. 곧 이뤄질 신임 원장의 선임을 앞두고 한국영상자료원의 개혁 방향을 모색해본다. - 편
영상자료원,이렇게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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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마라 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다부천에서 만난 괴짜감독 3인 - 고드프리 레지오, 그렉 박, 빈센조 나탈리해마다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세상에 거리낄 것이라곤 없다는 표정을 한 용감하고 도발적인 영화들이 밤새워 요란한 카니발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스크린 주변에서 생수통이 든 가방을 메고 내성적인 눈빛으로 서성이는 수줍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 영화 감독님이세요?”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갑자기 중세 판타지 속의 용처럼 불을 뿜으며 열정을 나누려 할 것이다. 우리는 올해 부천에서 세명의 ‘괴짜’ 감독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세 감독을 감히 ‘괴짜’라고 부르는 것은 영화와 더불어 생존하는 그들의 방식이 독특하고 절묘하거나 기념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직자이기도 한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에게 영화는 성산에서 내려온 말씀이다. ‘천사 같은’ 후원자와 동료의 힘을 모아 만들어진 그의 <카시 삼부작>은 인류와 문
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감독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