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니스, 거장들과 함께 소생의 길로제6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현지보고베니스=백은하 lucie@hani.co.kr잠시 붙인 눈을 떴을 때, 베니스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가던 파리발 경비행기 속에서는 조용한 탄식들이 흘러나왔다. 몇백 마일 상공에서 바라본 물 위의 도시는 꼬불꼬불한 수로를 따라 도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인지 지면인지 모를 땅으로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검게 물든 바다 위에 띄워진 보트 위로 몸을 옮기니 잔잔해만 보이던 베니스의 파도가 얼굴을 때린다. 그러나 8월의 마지막 주, 베니스가 출렁거리는 것은 파도 때문만은 아니다.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와 휘장들, 기차역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까지, 사람으로 친다면 인생의 수많은 파고를 넘겨낸 이 환갑의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회춘의 중심, 모리츠 위원장올해로 예순개의 촛불을 밝힌 이 영화제는 파티 케이크를 자르는 첫 번째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1]
-
관광객, 동네주민, 언론인 그리고 스타들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브뤼노 뒤몽의8월27일 현지시각 저녁 7시30분, 개막식이 열리는 팔라초 델 치네마 앞은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과 자전거를 몰고 온 동네주민, ID카드를 목에 두른 언론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올해 개막식장 앞은 붉은 카펫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파도’(The wave)라고 이름 붙여진 조형물로 장식되었다. 60회 베니스영화제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주단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한 이 ‘파도’는 지난해 개막식장 앞을 나누면서 원성을 샀던 높은 연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설치되었다. 지역 행정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말하자면 ‘관내예술가’인 카를로 카파이에 의해 설계된 연단은 영화제 3주 전부터 대규모 공사에 들어가 개막식 아침이 돼서야 완성이 되었다. 하델른은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몇번이고 연단의 끝과 끝을 오가면서 새로운 연단을 시험했지만 정작 귀빈들은 그다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2]
-
규모의 팽창보다 균형있는 수상을로카르노만의 특색 잃고 사회성 짙은 작품에 편중, 대상작은 논란 여지 남겨로카르노=글 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사진 정한석1920년대 유럽 예술인들은 로카르노를 유토피아의 도시로 불렀다. 그리고 1947년 이곳에 영화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유토피아의 꿈은 영화예술과 조우하고는 오늘의 이름난 국제적 영화제로 성장해왔다. 이런 오랜 문화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가 8월6일 저녁 대형 야외상영장인 피아차 그란데에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53년작 뮤지컬코미디 <더 밴드 웨건>(The Band Wagon)으로 차분히 막을 올렸다. 이날은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7500석의 광장이 관객으로 꽉 찼고, 이곳에서 열흘 동안 매일밤 새벽 두세시까지 영화축제가 계속됐다.56회 행사의 특징을 말하자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커진 프로그램과 혼란스럽도록 여러 갈래로 갈라진 부문이었다. 듣자니 2003년 영화제에 참가신청을 요구한 영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
인간도 세상도 영화제도… 선명한 것은 없구나김기덕 감독과 동행한 정한석 기자의 로카르노 다이어리현지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기덕(사진 맨 왼쪽) 감독.로카르노=글·사진 정한석 mapping@hani.co.kr나쁜 남자 혹은 선승과 함께8월12일, 로카르노의 여행길에 과거의 나쁜 남자, 혹은 지금의 선승을 만나다. 10여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환승 비행편을 기다리던 중 김기덕 감독은 대뜸 영화제의 상 얘기를 꺼낸다. “영화상영만 딱 하고 바로 오면 좋죠.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폐막식까지 있는 거예요. 사실, 나는 내가 영화제에서 상 못 탈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전문적으로 영화를 보는 비평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취향이 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 참석에 대한 사연에서부터, 지금의 사회분위기, 영화철학, 자신을 해석하는 한국 영화비평 담론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
-
시상식장에서의 김기덕 감독.세태 혹은 문화8월14일, 오전 11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다. 그리고 오후 4시15분 열린 공식 상영장에서는 몇분간이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예상대로다. 김기덕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추상적인 ‘세태’가 아닌 정서적인 ‘문화’를 표현했고, 그것이 캐릭터와 풍경을 근거삼아 외국 기자(관객)들에 의해 한국 문화 또는 불교 문화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절이 한국에는 실제로 있는가?” “불교 문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등등. 적어도 그런 수준을 벗어난, 몇 가지 질문과 대답.당신의 이번 영화는 전작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전작들이 ‘클로즈업’의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다소 한 걸음 빠져나와 세상을 보는 ‘롱숏의 영화’이다.당신의 영화에서 ‘언어’란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는 나조차도 이 영화의 대상이 되는 그런 영화이다. 내 영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3]
-
악몽을 씨앗으로 시(詩)를 짓다2003 한국 호러의 ‘예술’ 도전- 절반의 성공, 혹은 시행착오에 대하여듀나 djuna01@hanmail.net<여고괴담>이 개봉된 1998년을 원년으로 잡는다면, 우린 벌써 한국 호러영화 부흥기의 5년째를 맞이하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두 차례의 여름 호러영화 열풍을 맞이했다. 첫 번째는 <가위> <하피>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와 같은 영화들이 무더기로 우리를 찾아왔던 2000년이고, 두 번째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장화, 홍련> <거울속으로> 과 같은 영화들이 개봉된 2003년이다.겨우 3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한국 호러영화가 이룩한 발전은 상당하다. 2000년 호러 열풍의 결과는 소문과 작품 수를 고려해본다면 시시했다. <가위>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고, 대부분 약간의 오컬트를 첨가한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1]
-
‘예술’을 너무 의식했던아까 2003년이 한국 호러영화가 ‘예술’을 하기 시작한 해라고 했는데, 만큼 그 표현에 어울리는 영화는 없다. <장화, 홍련>이 작정하고 만든 장르 호러영화라면, 은 작정하고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이다. 이수연은 김지운처럼 공포감 조성 따위에 매달릴 생각 따위는 없다. 공포를 주면 좋다. 하지만 억지로 관객을 질리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예술영화’니까. <장화, 홍련>의 안전망이 ‘깩깩 소음’이라면 의 안전망은 ‘예술영화’의 자의식이다.호러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무리한 시도 때문에 좋은 영화가 막판을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꿋꿋한 태도는 상당히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영화’의 자의식이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가 의식적으로 ‘예술영화’가 되려고 한다는 데 있다.은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영화는 강한 비극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
듀나의 2003 한국 공포 에세이 [2]
-
<카우보이 비밥>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한국을 찾았다. 국내 케이블방송에서도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실사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긴,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현실과 환상을 한 화면에 담았다고나 할까. 언제나 끼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벗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와 현실’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반절은 꿈속에서, 반절은 현실에서애니의 새 지평 연 <카우보이 비밥>과 와타나베 신이치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카우보이 비밥>의 마지막 화에서, 죽으러 가는 스파이크를 페이가 말린다. 그 순간 스파이크는, 처음으로 진심을 말한다. “이 눈을 봐. 사고로 없어져서, 만들어 넣은 거야. 그때부터 나는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현재를 본다구.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냐, 그렇게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을 보려했지. 하지만, 어느샌가 깨버린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루팡과 고우사토를 불러오다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우리에게 ‘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현실감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 않나. 방송을 할 속셈으로 머리를 잘라버리는 녀석들도 있고, 허구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녀석도 있고. 뭔가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 자체가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때로는 좀 의심스럽지 않나. 아마, 이런 생각도 작품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 대담에서도 와타나베는 ‘<이지 라이더> 같은 영화를 오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즘 세태’를 한탄한다. 오락이면서도, 현실에 굳건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던 영화와 사람들이 있었던 과거를 동경한다. 그것이 와타나베 신이치로이고, 스파이크 스피겔이다.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살아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안에 피가 흐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을까?<카우보이 비밥>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Profile | 1965년 교토 출생 · 선라이즈 입사 · 제작진행 스탭을 거쳐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연출 및 그림 콘티를 담당 · <마크로스 플러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애니매트릭스: Kid’s story> <애니매트릭스: Detective story> 감독모두들 농담으로 듣지만, 애초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이소룡의 정신세계였다. 빈센트와의 대결장면에서 스파이크가 보여준 포즈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판보다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시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른 아침 인터뷰에 몽롱한 상태였던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
What's up on TV?시청자를 사로잡은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8월 초순 싱가포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다. 며칠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한국, 타이,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의 IT 기자 5명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 기자는 엉뚱하게도 드라마에 대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여름향기>가 방송되고 있다는데 어떠냐?”, “배우 △△△는 요즘 뭐하냐?”, “요즘 한국 드라마가 미국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는데 비결이 뭐냐?” 등등.한국 드라마는 휴대전화처럼 내수가 국제 경쟁력을 키운 대표적인 상품일 것이다. 드라마가 내수시장만을 겨냥해 만드는 시절은 벌써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내수시장에서 규격화된 트렌디드라마가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 어디서 왜 생겨나는지 살펴봤다. - 편집자MBC 드라마국의 약진, 프로덕션 생산품의 추락<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 내 멋대로 찍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멋…> 이후 파편적인 캐릭터의 흔적은 ‘MBC표 드라마’에서 부쩍 잦아진다. <내 인생의 콩깍지>에서 박광현은 소유진과 10년 동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박광현이 헤어진 연인 소유진을 우연히 만나 급히 지폐에 연락처를 받아놓았는데 그 돈을 백화점에서 써버렸다. 뒤늦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그 돈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엉뚱하게도 자길 도와주려 애쓰는 여직원과 눈이 맞아 샛길 연애를 시작한다. 정해진 운명을 향해 직선처럼 곧장 나아가지 않는 게 실제 인생이다. <눈사람>에서 조재현은 자기와 미묘한 관계에 빠져드는 처제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완전히 외면하거나 푹 빠져드는 게 아니라 그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떨린다. 파편적인 인간은 파편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앞집 여자>의 변정수는 이를 극적으로 희화화한 경우다. 20%의 감정만 주고 20번째 만남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능숙한 바람기와 아내와 주부의 기능을 분리해서 완벽하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극적인 사연이 가슴을 치고, 호쾌한 화면이 참으로 좋소강력한 추종자 거느린 퓨전 사극 <다모>내가 너에게 무엇이더냐. 첫 방영부터 ‘다모폐인’들을 만들어내며 마음을 울리고 있는 <조선 여형사 다모>는 무협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처럼 아픈 질문을 쏟아내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서얼로 태어난 한을 칼끝에 품은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과 자신이 관비라는 사실을 너무도 뼈아프게 깨우치고 있는 포도청 다모 채옥(하지원), 왠지 모를 살가움과 솔직함으로 채옥의 마음을 끄는 역모의 주역 장성백(김민준). 세 사람은 결코 맺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에게 무엇인지, 너는 나에게 무엇인지, 묻고 새기며 서로의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간격 밑에는 십오년 세월과 정한이 묻혀 있다. 예쁜 사랑은 많았지만 가슴에 맺힌 사랑은 드물었던 TV드라마에서 이러한 감정의 깊이는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염두에 두지 않은, 진짜배기 오누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 배경과 의상만 시대극이고 나머지는 현대물로 대체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 극본을 썼다는 작가의 의도는 하나하나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볼 때 생생하게 읽힌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마음을 놓아버린 오랜 인연, 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남녀의 위태로운 연정은 2003년에 그대로 가져와도 공감을 부를만 하다.폐인들이 패를 이루니 <다모>도 힘을 받소<다모> 추종자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요소는 대사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 “다시는 나 같은 인연 만나지 말아라.” “나는 너를 이미 베었다.” “그리 떠나면 형제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허망하겠느냐.” <다모> 한회가 끝날 때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이 명대사들은 써놓고 보면 문어체에 가깝다. 곰곰이 따져보면 전체 대본에선 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순간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대사를 기억하고, 몇번이고 곱씹으며 패러디한다. 문어체이기 때문에 더욱더 기억에 남을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