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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주의에게 해 피 엔 딩
2003년 최고의 영화는 무엇일까? 올해 최고의 감독과 배우는 누구인가? <씨네21>은 올해도 기자, 평론가 28명에게 설문을 보내 올해의 영화인과 올해의 영화를 선정했다. 올해의 영화인은 감독, 시나리오, 촬영, 제작자, 남녀 배우, 남녀 신인배우 등 8가지 부문에서 뽑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올해의 영화는 1위부터 5위까지 베스트 5편의 명단을 주문했다. 기사는 올해의 영화인 가운데 남녀 배우로 선정된 송강호, 문소리의 이야기로 시작해 영화인 각 부문 선정자를 밝힌 다음 올해의 영화 베스트 5로 이어진다. 마지막에 배치한 외화 결산 각 부분 최고상은 유머를 덧붙인 보너스다.
★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5
김봉석 지구를 지켜라 / 영매 / 바람난 가족 / 장화, 홍련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김소영 바람난 가족 / 올드보이 / 살인의 추억 / 4인용 식탁 / 지구를 지켜라, 질투는 나의 힘
김소희 영매 / 질투는 나의 힘 / 올드보
2003 한국영화 결산 [1] - 2003 Best of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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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고 솔직한 블록버스터를 찍고 싶었다
강우석 감독은 달변이다. 말도 빠르고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아직 관객이나 평론가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조심스러울 법도 한데 일단 말을 시작하면 거침이 없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 그것이 강우석 감독의 성공비결이고 에너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실미도>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해, 한국영화의 현재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첫 기자시사회가 열린 지난 12월10일에 김봉석, 남동철 두 기자가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남동철 | 슬픈 영화 또는 눈물나게 만드는 영화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연출했다.
강우석 | 슬픈 영화를 찍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찍다보니까 영화가 슬퍼지더라. 장면장면이. 실화에선 훨씬 처참한 장면이 많은데 꼭 그대로 찍을 필요가 있을까, 했던 게 많다. 예를 들어 <복수는 나
국가주의에 대한 정면 공격, <실미도>와 강우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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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호평의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공격적인 마초이즘에 가득찬 수십명의 남자들 이미지뿐이었고, 무엇보다 소재 자체가 매혹보다는 폭로성 다큐멘터리에 어울림직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이중의 직설법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웰메이드’라는 기준에서는 다소 엇갈리는 평을 얻고 있지만 강우석식 대중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흥미로운 <실미도>의 이모저모를 강우석 감독론과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다.
의미 있는 과욕, <실미도>
강우석과 <실미도>. 언뜻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란 정치영화를 만든 적은 있지만, 강우석의 장기는 어디까지나 상황과 캐릭터가 끌어가는 코미디였다.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오도가도 못할 상황에서 벌이는 절박함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북파공작원의 억울한 죽음을 그린 <실미도>에는
국가주의에 대한 정면 공격, <실미도>와 강우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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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 해외도 그렇긴 한데 국내의 경우는 마니아와 일반 관객이 공포영화를 소비하고 반응하는 태도의 간극이 더 크다. 직접 느끼기에는 어떤가.
김송호 | 우리나라 팬덤은 해외 공포영화 팬덤에 비해 꿀리지 않는다. 단적으로 외국에서 원판 소스들을 주문하는 양만 따져봐도 한국이 몇위 안에 들 거다. 그렇게 많은 마니아들이 있는데도 그동안 공포영화에 대한 관심은 저조했다.
김종철 | 한국의 호러광들은 해외 원판을 들여오는 데 주저없이 몇 십만원씩 내놓지만 국내 공포영화 활성화를 위해선 절대 안 내놓는다. 업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호러존’만 하더라도 통신업체들로부터 회사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는 말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서버 정도만 지원해줘도 좋은데, 어느 업체에서도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 일부 호러팬들에 의해서 꾸려질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론 그 안에서도 상업적인 시도들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순수 어쩌고 하는.
김송호 | 국내에서 출시되면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한국 공포영화 총정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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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거울속으로> <아카시아>. 올해 공포영화의 목록은 유난히 풍성하다.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은 영화도 있고, 평단의 찬반 논란을 가져온 영화도 있다. 2003년은 공포영화 장르가 한국 영화계에 분명하게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해가 되었다.
이런 조짐이 감지된 것은 지난 2000년. 비록 인상적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가위> <해변으로 가다> <하피> <찍히면 죽는다>가 한꺼번에 나왔다. 이제 여름이면 공포영화 한편 정도, 라는 공식이 가능해졌다. 물론 한국 영화계에서 공포영화의 위치는 여전히 미약하다.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지향하는 감독도 거의 없고 공포영화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공포영화는 비주류 장르이고, 심지어 천박한 싸구려 장르라고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그러나 올 한해 한국의 공포영화가 스스로를 확장해
한국 공포영화 총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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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행운과 99%의 모험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을 만들기 위해 프로도만큼이나 힘든 여행을 떠났다. 그는 1995년 미라맥스와 ‘퍼스트룩’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에 따르면 미라맥스는 잭슨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검토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라맥스 사장 하비 웨인스타인은 잭슨의 영화 <천상의 피조물들>을 보고 그를 믿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98년은 시기도, 조건도 좋지 않았다. 잭슨은 <프라이트너>를 함께 만들었던 시각효과 회사 웨타를 파트너 삼아 35분 분량의 데모 필름을 만들어 능력을 증명했지만, 당시 메이저 영화사들은 힘든 여름을 맞이하여 긴축 경영을 시도하고 있었다. 미라맥스는 2억달러 넘게 들여 영화 세편을 한꺼번에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돈을 댈 제작사를 하나 더 찾아오든지, 두 시간 분량의 영화 한편을 만들든지, 프로젝트를 포기하든지, 잭슨은 세 가지 가능성 중에 첫 번째를 선택했다.
98년 7월, 일곱번
<반지의 제왕> 총정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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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빗
호빗은 제3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종족이었다. 먼 옛날, 안개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이주해온 호빗들은 농사를 짓고 잔치를 벌이면서 평화로운 삶을 지속해왔다. 난쟁이보다 크고 인간보다 작기 때문에 ‘하플링’(halflings)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하루에 여섯끼를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종족. 연초와 맥주를 좋아하고, 대부분 유쾌하며, 활쏘기와 돌팔매질에 능숙하다. 가죽처럼 질긴 털투성이 발바닥을 갖고 있어 신발 신을 필요도 없지만, 모험이나 여행과는 절대 인연을 맺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배긴스 집안의 빌보와 프로도는 환영받지 못하는 별종이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호빗 특유의 둥근 창문을 가진, 땅에 바짝 붙은 굴집을 두고두고 그리워했다.
빌보 배긴스
빌보는 51살 되던 해 참나무방패 소린과 열두명의 난쟁이들의 모험에 동참하게 됐다(호빗은 인간보다 오래 살아서 33살을 성년으로 친다). 간달프가 그를 제몫을 해낼 인물이라고 추천했기
<반지의 제왕> 총정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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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 기술과 담대한 모험심이 낳은 거대한 신화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은 내가 만든 최고의 영화들이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만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잭슨은 이 시리즈 덕분에 개런티가 2천만달러까지 치솟았고, 내년엔 염원하던 대작 <킹콩> 촬영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는 그에게도, 관객에게도, 다시 만나기 힘든 영화가 될 것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처음 두편은 전세계에서 29억 달러를 긁어모았지만, 이 수치는 영화 자체에 비하면 그리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원작이 출판된 지 46년 만에야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 거대한 신화는 첨단의 기술과 끝도 없는 수공, 무모한 꿈, 헌신적인 인력, 담대한 모험심이 한자리에서 만난 전대미문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은 중간대륙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연대기다. 이 소설은 1978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반지의 제왕> 총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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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파괴되어야 할 반지가 있었노라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3441년 동안 지속된 제2시대, 그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야만 한다. 태초에 창조주 일루바타르는 아이누족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라 명했다. 그 선율을 따라 땅과 바다가 떠오르고 생명이 들어설 여백이 생겨났다. 아르다, 곧 지구의 탄생이었다.
아르다에 매혹된 몇몇 아이누들은 발라라는 이름을 지니고 그 땅에 내려가 물을, 공기를, 혹은 대지를 다스리며 풍요로운 창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 어둠이 깃들었으니, 가장 총명하고 가장 힘있는 발라 멜코르가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발라들은 서쪽에 숨은 도시 발리노르를 건설하고 사악한 멜코르를 감금했지만, 멜코르는 영생의 빛이 담긴 보석 실마릴을 훔쳐 중간대륙으로 달아났다. 이제 멜코르는 모르고스라 불리는 어둠의 군주로 군림하게 됐다. 그에 대항하는 요정과 인간의 전투가 끝난 뒤에야 제1시대는 막을 내렸고, 실마릴은 바다와 하늘에 빛으로 남았다.
은신처에서 뛰쳐나온 발
<반지의 제왕> 총정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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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가 어느 날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길”
빗질 한번 안 한 듯한 부스스한 고수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크고 작은 동그라미 몇개로 완성된 그의 몸매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호빗을 닮았다. 호빗과 닮은 건 외모뿐이 아니다. 고향과 친구들, 작은 일상에 가치를 두는 삶의 방식도 닮았다. 가장 작고 평범한 족속으로서 중간계를 구해낸 프로도와 그의 호빗 친구들처럼 그 또한 영화사에 커다란 획을 하나 그었고, 자국의 영화산업과 관광산업을 일으켜세웠다. 아침 일찍부터 국립민속박물관 테파파에 모여든 전세계 300여 기자들은 그래서, 엘리야 우드나 비고 모텐슨이나 리브 타일러보다 피터 잭슨에게 궁금한 것이 훨씬 많은 듯했다. 언제나처럼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을 것인지, 턱시도는 입을 것인지, ‘포스트-반지’ 효과를 어떻게 실감하는지 등등.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긴장과 흥분이 뒤엉킨 피터 잭슨의 얼굴엔 긴 여정의 끝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당혹스럽고 슬픈 기색도 언뜻 비치곤 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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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스펙터클과 감성드라마의 조화
일찌감치 “영화사상 최고의 전쟁 스펙터클”을 예고했던 <왕의 귀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과 에너지와 스피드로 펠렌노르 전투를 연출해냈다. 중간계 최후의 보루 미나스티리스와 사우론의 검은 요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전투에선 20만의 오르크와 6천의 로한 군사가 격돌한다. 2부 헬름 전투에 동원됐던 오르크 군대는 1만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사이즈’는 아니다. 피터 잭슨과 웨타 워크숍 팀은 1부와 2부에서 ‘맛보기’로 등장한 사우론의 괴물들을 단체로 펠렌노르에 소환해냈다. 8층 빌딩 크기의 코끼리괴물(호빗들은 이들을 올리펀트라고 불렀다)이 조심성 없는 발을 쳐들어 닥치는 대로 밟아 뭉개고, 뱀의 머리와 박쥐의 날개를 가진 나즈굴의 검은 익룡이 병사와 말을 낚아채 공중에 내던지는 광경에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군쪽에도 히든 카드가 있으니, 바로 아라곤이 깨워낸 망자들의 군대다. 이실두르와의 맹약을 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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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케이션 부문이 있다면!
월드 프리미어가 열리는 앰버시 시어터는 시민들의 모금과 시의 기금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3부에 등장하는 나즈굴의 대장과 그의 애마(?)가 레드 카펫을 굽어보고 있다.
절대반지를 찾아 중간계를 헤맸다. 남태평양의 이국적인 풍광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웃음이 헤프고 맨발 산책을 즐기는 아담한 체구의 키위들이 “중간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순간, 그 말이 강력한 최면으로 감겨왔던 것 같다. 여기는 중간계다, 그러니 반지의 행방을 찾으라는.
사실상 ‘메이드 인 뉴질랜드’ 제품이나 다름없는 <반지의 제왕>의 흔적을 찾는 것은 가까운 로케이션 탐사로부터 시작됐다. 개인 농장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호빗들의 고향 호비튼을 들러보리라 계획했지만, 그곳은 웰링턴에서 차로 6시간을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아주 먼 곳이다. 안타깝지만 일정상 미션 임파서블이다.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한결같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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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의 대장정에 위대한 마침표를 찍다
“피터 잭슨을 총리로!” 이건 농담이 아니다. 12월1일 웰링턴 시내에 운집한 10만명의 군중 속에 선거 캠페인을 연상시키는 피켓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남국의 붉은 꽃송이로 엮은 화환을 목에 걸고 나타난 피터 잭슨에게 쏟아진 환호와 갈채는 머리를 멍하게 할 만큼 우렁찼다. 그는 뉴질랜드의 영웅이고 스타이고 제왕이었다. 실사 영화화 불가 판정을 받은 판타지의 고전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노하우도 인프라도 빈약한 고국 뉴질랜드로 들고 온 지 5년 만에, 그는 뉴질랜드의 존재감과 가능성을 만방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런 피터 잭슨을 배우 존 라이스 메이어스는 “캡틴 쿡 이래 뉴질랜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위인”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럴 만했다.
이틀 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월드 프리미어를 위해 말끔히 새 단장을 했다는 앰버시 시어터에 전세계 17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 이 작품을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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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액츄얼리>로 감독 데뷔한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세상에는 두 사람의 리처드 커티스가 있다. 한명은 <블랙애더> <미스터 빈> <디블리의 교구 목사>를 쓴 시트콤 전문작가이고 다른 한명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각본을 쓴 로맨틱코미디 작가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어색하고 이상하다. 한 작가가 텔레비전과 영화 모두를 넘나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명의 작가가 쓴 각본들이 장르와 매체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면 그건 신기하고 불편하다.
무자비한 블랙유머의 대명사
시트콤 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영국적인 블랙유머에 강하다. 그의 대표적인 걸작 <블랙애더>를 보자. 그와 로완 앳킨슨, 벤 엘튼은 블랙애더라는 성을 가진 일련의 주인공들을 난처한 곤경 속에 밀어넣으며 (가상의) 리처드 4세 시절부터 제1차 세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