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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노라 보앗노라, 한국영화의 힘
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프로젝트가 어느 해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감독들의 우수한 프로젝트가 15편 이상 접수되었다. 선정에 어느 해보다 힘들었다”는 정태성 PPP 수석운영위원이 말은 총 18편의 프로젝트 중 선정된 5편의 한국프로젝트의 면면만 보더라도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다. 여기 미국으로 건너간 지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명세 감독을 비롯, 허진호, 정재은, 김인식, 전수일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 프로젝트와의 짧은 만남을 주선한다.
전쟁의 상흔, 생이별의 절규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
오랜만에 고국의 영화인들과 만난 이명세 감독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2000년 4월에 미국에 건너가 3년 넘게 이국 땅에서 영화준비를 했던 그에게 낯익은 얼굴과 정감어린 언어가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랜만에 만난 이명세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고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4]- PPP에서 만난 한국 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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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랑 이야기
허진호 감독의 <행복>(가제)
봄날이 간 뒤, 보리밭에서 웃음짓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 이후 2년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 <행복>(가제)을 들고 부산에 나타난 허진호 감독은 찰나의 행복 뒤에 잔인한 사랑의 붕괴과정을 담아냈던 전작의 고통을 말끔히 잊은 듯 보였다. 게다가 이제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말고 극적인 상황 속에서 나오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징한 탐험을 시작할 태세였다.
“DVD 작업 때문에 와 <봄날은 간다>를 연달아 볼 기회가 생겼다. 문득 <봄날은 간다>가 참 건조하게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카메라와 인물과의 물리적 위치뿐 아니라, 인물을 바라보는 심리적 거리 역시 너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어쩌면 나란 사람이 그 사이 많이 건조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5] - PPP에서 만난 한국 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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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연다
하나 마흐말바프, 이강생, 세디그 바르막, 마니쉬 자, 이제 영화감독의 길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한 이들은 뭔가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는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의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를 만든 14살 소녀감독, 11년 동안 배우생활을 한 뒤 모니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감독, 아프가니스탄의 척박한 터전을 헤치고 23년 만에 데뷔작을 만든 감독, 첫 단편으로 칸영화제에서, 첫 장편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까지, 아주 특별한 이들을 만나보자.
카메라에도 ‘인격’이 있습니다
14살 소녀 감독 <광기의 즐거움>의 하나 마흐말바프
소녀가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는 8살이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중편 다큐멘터리 <광기의 즐거움>을 만들었던 때는 13살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예술과 상업이라는 구분과 상관없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지금 14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8] -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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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끔찍하고 비극적인 기억을 읽었다”
탈레반 정권 후 첫 번째 장편 <오사마>의 세디그 바르막 감독
세디그 바르막(41) 감독은 영화제 게스트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끌었다. 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며,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제작을 맡아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허로 변해버린 아프가니스탄의 풍광 위에 생계를 위해 소년으로 변장했다가 비극의 낭떠러지로 발을 내디디게 되는 소녀의 운명을 겹쳐놓은 <오사마>(2002)의 절절한 울림을 대하고 나면 그에게 쏟아진 환대는 온당하고 마땅하다.
-관객 반응이 좋았다.
=진심으로 영화를 받아들인 것 같다. 어쩌면 한국도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본 적이 있는데 공감했다. 전쟁을 벌인 자들은 결코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다.
데뷔작 <오사마>를 만들기까지 바르막은 수많은 협곡을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9] -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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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인생의 절반은 황산벌에서 배웠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올 여름, 어느 촬영현장이라고 쉬웠겠느냐마는 유달리 몸으로 뒹군 현장이 있었으니, 바로 <황산벌>의 현장이다. 질퍽해진 땅 때문에 다리 한쪽 옮기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20kg이 넘는 갑옷과 온갖 무기들을 들고 나뒹굴어야 했으니 말이다. 6년 전 기획 때부터 올 여름 촬영현장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황산벌>이 드디어 이번 주말 극장에 걸린다. 그리고 이 영화와 함께한 정승혜 제작이사가 <황산벌>의 지난 6년의 기록을 여기 풀어놓았다.
#1 ▶ 6년 전, 조철현의 이준익 옆구리 찌르기
“‘백제의 마지막 날’을 소재로 사극영화 한편 맹글면 어쩌것소이. 계백장군, 의자왕, 김유신, 화랭이 관창 나오는 황산벌 전투 야그 안 있소….”
<키드캅> 이후 5년 만에 만들어 개봉, 절반의 성공을 거둔 <간첩 리철진>을 끝내고 이미 그 이전에 기획되었던 <아나
<황산벌>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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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사투리에 능한자 우대, 숙식제공”
“캐스팅도 다 했고 이제 슬슬 전쟁 혀야제!”
거시기 역의 이문식, 의자왕에 오지명, 계백 처에 김선아…. 그리고 류승수, 이원종의 기꺼이 특별출연, 김승우, 신현준 즐거운 우정출연…. 이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다. 분에 넘치게 좋은 주연급 배우들로 캐스팅 윤곽이 잡히고 대사 있는 역할만 60여명이 필요해 불가피하게 오디션을 봐야 했다.
과감히 신인배우들로 포진하자는 전략을 세운 뒤 500여명의 지원자 중 추리고 추린 250여명의 연기를 꼬박 열흘간 심사했다. “사투리에 능한 자 우대, 숙식제공”. 이 한줄에 몰려든 배우들의 열렬한 응원과 노력은 제작진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사실 사투리는 표현의 방식일 뿐 무조건 사투리를 잘한다고 뽑는 대신 열정이 살아 있는 배우들로 선발했다. 이른바 엑기스 천군만마인 그들은 끝까지 주연들을 긴장시키면서 ‘참여영화’의 진면목을 보여
<황산벌> 제작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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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와이어,No CG 리얼 액션의 진수
한국의 ‘국가대표 무술감독’ 정두홍은 얼마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와이어 액션의 유행은 지나간다. 그때를 위해 새로운 라이브 액션을 준비하겠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에게 결정적인 자극을 준 영화는 지난 10월8일 부산영화제 야외상영관에서 선보인 타이의 액션영화 <옹박>이었다. “후배 스턴트맨들이 <옹박> <옹박> 하기에 뭔가 해서 불법복제 VCD로 봤는데(이 영화는 이미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파일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옹박>의 액션은 아직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분명 사람이 공중을 날 듯 점프하는 데 중력감각이 느껴지며, 엄청난 스피드로 나무 위에서 움직이는 데 특수촬영의 흔적은 없다.
정말이지 영화가 내세우는 ‘No 와이어, No CG’는 사실로 보인다. 여기에는 와이어 액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6] - 정두홍 vs 토니 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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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홍 | 너무 뛰어난 배우를 데리고 찍어서 좋았겠다. 그래도 뭔가 어려움은 없었는지.
판나 리티크라이 | 글쎄…. 확실히 말하건대 얘는 천재다. 내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연습벌레다. 모든 기술을 완전히 습득한 것 같은데도 연습을 하루에 다섯 시간씩 한다.
토니 자 | 몸이 아파도 기절할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한다. 어떤 액션장면을 떠올리곤 내가 할 수 있다 없다를 테스트 해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된다.
정두홍 | 지금 몸무게가 어떻게 되나.
토니 자 | 63kg다. 다음 영화를 위해서는 62kg를 유지해야 하는데 부산 와서 음식을 마구 먹다보니 조금 쪘다.
정두홍 | 나도 공중에서 오래 떠 있으려고 체중조절을 열심히 하곤 했다. 그리고 3∼4년 동안 다리에 납덩이를 달고 야밤에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척추 연골 5개가 서로 붙어버린 것이다. (웃음) 이젠 조금만 높은 데서 뛰어도 허리가 아프다.
판나 리티크라이 | 나도 그렇다. 전세계 무술감독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7] - 정두홍 vs 토니 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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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 동안의 여정을 끝마쳤다. 10월10일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상영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거둔 이번 영화제는 예년과 달리 한달가량 앞당겨 치러졌다. 높고 화창한 가을 날씨의 엄호 아래 벌어진 이번 축제는 ‘해운대 원년’이라는 점에 시선이 모아졌다. 남포동에 자리했던 영화제 사무국이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게스트들의 행렬을 이끌었고, 해운대쪽 상영관도 10개관으로 늘어나 관객의 발길을 유혹했다. <인디펜던트>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 로저 클락은 “지난해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해운대가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는 게스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로 해변의 영화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3년 만에 부활된 야외상영 큰 호응
날로 커져가는 부산영화제의 규모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영화제쪽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공식 게스트 규모만 5329명. 지난해 5318명과 비슷한 수준이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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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의 취미가 스포츠에 국한돼 있던 게 아니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사진책에 밑줄 그어가며 자습을 하던 그가 드디어 ‘작품’ 수준의 영상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캔들-남녀조선상열지사>의 제작현장에 사진책과 더불어 라이카M6, 니콘F5 등을 들고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주로 스탭들을 주인공 삼아 찍었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잊지 않았다. 그 순간들이 자연스레 <스캔들…>의 제작일지가 되었다. 고맙게도 배용준은 <씨네21>을 위해 사진 인화를 직접하고,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컷들을 직접 골라(본인이 직접 고르지 않은 사진은 제작사에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코멘터리를 달아주었다. 여기에 모처럼 새로운 사극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는지 이유진 프로듀서가 따로 제작일지를 만들어주었다. 흑백사진은 모두 배용준의 작품이며, 컬러사진은 스틸기사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배용준의 <스캔들> 포토코멘터리
“앞
<스캔들> 제작기 [1]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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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느니 담배요! 빠지느니 살이구나”
하지만, 역시 세상에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하였더이다’, ‘아니겠소’ 등 대사들은 거의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다. 거기다가 이 조원이란 캐릭터의 느물거림은 상상초월. 달콤한 대사야 수도 없이 해봤고 눈물도 많이 흘려보았지만 입으로는 순정을 고백하며 돌아서서 야비한 미소를 날리는 이자의 경지는 쉽지가 않다. 말수 적은 이재용 감독님도 속으로는 걱정이 많은 눈치다. 아아∼ 끊었던 담배에 자동으로 손이 간다. 따로 다이어트를 안 해도 살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부러 살빼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랬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장에서 부용정 장면을 한참 찍던 두달 중 언제 찍힌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부담감과 중압감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날려보내고 싶었을까….
“요씬에서 감독님은 참으로 야릇하더이다”
요씬… 사극의 베드신을 부르기에는 참 재치있는 작명이다. 조원이 잠자리를 함께하
<스캔들> 제작기 [2]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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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돈 그리고 관리아저씨들과의 투쟁이라오
1998년 겨울 “지금, 사극이라고 하셨소이까?”
추석시즌에 <정사> 개봉을 하고 딩가딩가 놀고 있을 때였다. 이재용 감독님과 다음 영화 아이템을 이야기하다가 감독님이 ‘사극’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허걱, 웬 사극? 그러나 우리만의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한 사극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독님의 설명에 재미있는 도전일 것 같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제작환경에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시대극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가 어려웠다. 이재용 감독님은 <순애보>를 준비하고, 가끔씩 만나 “우리 그 사극은 언제 하는 거야?”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서 내러티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쇼데를로스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를 각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 지구반대편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안 일어났으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
<스캔들> 제작기 [3] - 이유진 프로듀서의 제작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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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돈이 둥둥 떠 있지요?”
이재용 감독, 정구호 미술감독, 임재영 기사님…. <정사>를 같이 할 때도 익히 겪었던 그들의 안목과 디테일을 누가 따라가랴. 게다가 김병일 촬영기사님도 ‘원칙’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다. 의상과 소품, 세트. 조명… . 무엇 하나 쉽게 되는 법이 없었다. 주·조연배우들의 의상을 일일이 손염색해서 평생 한복만 만들어오신 분이 손바느질로 하나씩 만들었다. 꽂이와 노리개 등 장신구도 박물관에서 거의 훔쳐오다시피 빌려오니 흠집 하나라도 나면 안 되고, 화각장, 자개장, 자수장을 비롯한 소품가구들은 ‘장인’들이 몇달에 걸쳐 만든 고가의 작품들이었다. 협찬은커녕 분위기는 거의 “너희들이 나의 장인정신과 예술세계를 알기나 해?”였다고나 할까….
1세트 500여평에 꽉 차도록 조씨 부인의 안채 ‘부용정’을 지었다. 연꽃이 떠 있는 연못에 누다리와 마당까지 있는 양반집을 짓고 나니 그럴듯했지만 그 넓은 규모의 세트를 조명하려니 어마어마
<스캔들> 제작기 [4] - 이유진 프로듀서의 제작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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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는 매년 60∼70편의 영화를 생산해왔다. 영화계에 돈이 넘치는 시기든 금융자본이 대거 철수하던 시기이든 제작편수의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투자가 많을 때 제작편수가 늘고 투자가 줄 때 제작편수가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영화는 자동차 찍어내듯 공장만 늘린다고 양산되는 것이 아닌 탓이다. 투입되는 자본과 생산되는 제품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정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스탭을 구성하는 매우 수공업적인 공정이 끼어 있다. 골방에 틀어박혀 한 장면 한 장면을 써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하는 과정은 돈이 많아진다고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힘든 일이다. 어떤 영화든 일정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10월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제작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새 영화들의 면면은 그 같은 시간의 결과물이다. 대부분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이들 영화는 적게는 1∼2년, 많으면 5∼6년의 기다림 끝에 카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