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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주류? 세상의 주류!
기획력에 있어선 독보적이라고 해서 이들이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최초로 상하이 제편창에서 모두 촬영된 <아나키스트>는 드라마가 소재의 스케일을 잡아내는 데 실패했고, B급영화도 나름의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공포택시>는 전반적인 함량이 떨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이 두 작품은 결국 아무리 기획이 독창적이고 특이해도 이를 대중이 소화할 수 있도록 담아내지 못한다면, 기획조차 빛이 바랜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줬다.
특히 <공포택시>의 실패는 씨네월드에 큰 타격이었다. 씨네월드는 당시 투자자가 없어 <택시>와 <나인 야드> 등 외화로 번 돈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는데, 총제작비 13억 중 1억원 정도만을 건졌을 뿐이다. 결국 엄청난 빚이 쌓였고, 회사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에서 600만달러짜리 외화 패키지를 가져왔지만, 큰
씨네월드 3인방- 이준익 · 조철현 · 정승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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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찍는 행위의 아버지
<내가 여자가 된 날> <칠판> <사랑의 시간>이 잇따라 개봉한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들은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이다. 온 가족이 영화를 만드는 희귀한 사례로 이들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들의 영화 만들기는 이제 단순한 가십을 넘어섰다. 그 성공의 추동력을 아버지, 교육자, 감독으로서의 모흐센 마흐말바프를 통해 다시 생각해본다.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기 직전에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개에 물렸다.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 그 개가 불쌍해서 음식을 먹이려다 오히려 손가락을 물렸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광견병이 치명적인 이란의 테헤란에서 개에 물린다는 것은 목숨을 위협당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모흐센은 다음날 그 개가 다시 눈에 보이자 이번에는 장갑을 끼고 다가가 음식을 주었다. 이 일화를 들려주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되물었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의사는 위험해질 수도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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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문다
모흐센은 특별히 어떤 자극적인 상상을 끌어들여 진동을 일으키기보다, ‘현실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논픽션과 픽션을 뒤섞는 방식으로 표현해나가려 한다. 많은 영화에 그 자신이 출연하고, 또 스스로의 삶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자기 성찰적이라는 호평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흐센은 삶을 되돌아보고, 재구성하고, 다시 시작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점이 인간 모흐센과 감독 모흐센의 모습을 동일한 ‘인격체’로 만들어내는 진실이다. 젊은 시절 이슬람 급진좌파로 활동하던 시절을 기초로 만들어진 <보이콧>(1985)은 그런 첫 번째 성찰이었다(이 영화의 주연배우는 이후 <천국의 아이들>의 감독이 된 마지드 마지디이다). <순수의 순간>(1996)에서는 폭력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때로 되돌아가 칼 대신 빵과 꽃으로 영화의 결론을 바꾼다(17세의 모흐센은 사촌 여동생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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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 액션영화 들고 온 쿠엔틴 타란티노를 도쿄에서 만나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6년 만에 새 영화를 만들었다. 이소룡의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은 우마 서먼의 사진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았던 영화 <킬 빌>이다. 인용한 영화는 세다가 지칠 정도고, 타란티노가 좋아하는 장르도 빠짐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킬 빌>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한 계단 도약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내가 만든 첫 번째 액션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타란티노를 만났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서 칼에 벤 사무라이는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추운 겨울 찬바람이 스치는 소리군. 항상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사무라이의 상처에서, 뿜어져나오는 핏줄기가 서걱거린다. 사막 같았던 그 비장미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이미 30년 전에 사라진, 피묻은 원한은 피로 갚아야만 하는 세계. 쿠엔틴 타란티노는 검을 든 두명의 여전사를 눈밭에 세워 바로 그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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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 의상 제 고집이었죠”
도쿄에서 만난 이시이 오렌 역의 루시 리우
<타임>은 “<킬 빌>은 이시이 오렌에 관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한살 나이에 부모를 죽인 남자의 배를 가른 오렌은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눈밭에 선 루시 리우의 차가운 자태가 없었다면 그 매력은 조금 힘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킬 빌>에서 입은 흰 기모노의 안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세탁소에 가 있답니다. 피가 많이 묻었거든요”라고 농담을 던진 루시 리우는 또박또박하고 진지한 대답들을 들려주었다.
<킬 빌>은 일본 사무라이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렌과 브라이드가 눈쌓인 정원에서 대결하는 장면에도 그 정신이 녹아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렌은 검을 뽑기 전에 신발을 벗고 눈을 밟는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 사무라이 정신이 드러나는 의식이다. 오렌은 브라이드를 동등한 전사로서 존중하고, 그녀의 복수심을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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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 서먼 포스터 붙여놓고 ‘아~뵤’
도쿄에서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헐렁한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던, 어느덧 불혹에 이른 감독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타란티노는 함부로 입은 듯한 그대로가 편안해 보였다. 인터뷰도 비슷했다. 그는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길고도 분방한, 가끔은 어긋나기도 하는 답변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킬 빌>이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저 영화광처럼 느껴지는 그 모습이 변할까 싶었다. 영화 만드는 일을 ‘모험’(adventure)이라고 표현한 타란티노는 영화 한편이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그 모험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킬 빌> 1편은 브라이드와 오렌, 두 여전사를 중심으로 내세운다. 미국 액션영화로서는 드문 경우인데, 어떻게 이런 착상을 하게 됐는가.
=나는 일본영화와 홍콩영화를 무척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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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오마주를 날려~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 빌>을 스튜를 끓이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으로 끓였는지 모른다고 해서 스튜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희귀한 재료가 들어갔는지 안다면 감회는 각별할 터다. 이것은 아마도 길고도 긴 타란티노의 레시피 목록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순서는 가나다순이다).
<검은 도마뱀> 후카사쿠 긴지의 1968년작으로 괴도 검은 도마뱀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오렌이 ‘죽음의 88인회’를 이끌고 도쿄를 활보하는 모습은 숱한 범죄자들을 거느렸던 검은 도마뱀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 영화는 인기가 많아서 <흑장미의 관>이라는 외전을 낳기도 했다. 에도가와 람포 원작을 미시마 유키오가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
<그들은 그녀를 애꾸라 부른다> 원제가 <Thriller - en grym film>인 이 스웨덴 영화는 매음굴에 팔려간 소녀가 스스로 복수에 나서는 성인영화다. 타
매혹적 액션영화 <킬 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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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을 향해 돌을 던져라
영국의 퀴어감독 데릭 저먼(1942∼94)은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흘러든 예술가였다. 르네상스 시대 정신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르네상스 맨이었던 그는 화가로 출발해 불꽃같은 영화를 만들었고 글을 책으로 묶었으며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가꾼 탁월한 정원사였다. 이성애적 질서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지배를 묵시록적 징후로 바라보았던 데릭 저먼에게 영화는 실락원을 찾아 헤매는 몸부림이거나 그가 창조한 파라다이스였다. 문화학교 서울은 11월1일부터 14일까지 데릭 저먼 감독의 장편 전작과 실험 정신의 첨단을 엿보게 하는 단편, 뮤직비디오까지 총 26편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회고전과 두 차례의 강연을 마련했다. 탐미적이면서도 통렬한 데릭 저먼의 영화세계를 온전히 탐험할 수 있는 이번 기회는, 황홀한 도피와 차가운 각성을 선사할 것이다.
에이즈 합병증으로 숨지기 1년 전, 데릭 저먼은 <BBC>의 인터뷰에 응했다. “당신이 어떻
급진적 퀴어 감독 데릭 저먼 회고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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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추천작7편 - 전통과 전복이 공존한다
세바스티안 Sebastian
성 세바스티안은 보티첼리, 베르니니, 소도마 등에 의해 화살로 고슴도치가 된 미청년으로 묘사한 순교자다. 데릭 저먼은 군인임에도 신앙을 이유로 훈련을 거부하는 세바스찬과 그를 벌하는 상관 세베루스 사이의 긴장을 사도마조히스틱한 동성애 관계로 그렸다. 심신의 고통으로 팽팽해진 근육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자들처럼 뒤엉킨 팔다리가 가히 남성 누드의 황홀한 향연을 이룬다. 모든 대사가 고대 라틴어로 촬영됐음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하다는 평판에 힘입어 런던 개봉 당시 “파졸리니 영화의 흥행기록을 깼다”는 것이 감독의 자랑. 주로 부유한 동성애자들의 사재로 제작비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촬영하는 호사를 누렸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서 자아가 대변되는 해방감을 느낀 게이 관객의 반응이 데릭 저먼의 의욕과 연대감을 크게 자극했다.
희년 Jubilee
엘리자베스 1세의 희망에 따
급진적 퀴어 감독 데릭 저먼 회고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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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마지막 장이 열리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11월5일 밤 11시 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초유의 일정을 잡았다. 이걸 오만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기말의 1999년, <매트릭스>가 개봉되자 세상은 이 영화가 일으킨 ‘소란’을 ‘문화 현상’이라고 일컬었다. 철학자, 종교학자, 과학자들이 <매트릭스> 따라잡기에 뛰어들었다. 그 최종 마무리를 어느 한곳에 먼저 풀어놓지 않겠다는 건 흥미로운 배려다. 오만한 건 2편의 마케팅이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니. 이야기의 진폭을 넓혀가다 툭 멈춘 듯한 영화에 일부에선 혹평을 쏟아냈다. 최종편을 앞두고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안에 마련된 세계 첫 시사회도 어둠이 내려앉은 뒤 조용하게 열렸다. 다음날의 인터뷰 역시 조그마한 소란도 없이 나직이 진행됐다. 그러나 영화는 조용하거나 움츠러든 기색이 전혀 없다. <스타워즈>의
<매트릭스3 레볼루션> 세계 첫 시사회에 다녀오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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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휴먼의 미래는 무엇인가
철학하는 액션블록버스터라고는 하지만 한낱 SF 오락물에 일희일비하는 건 코미디일 수 있다. 이야기의 전제가 허무맹랑하다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석학들이 철학, 종교, 과학의 세 측면에서 <매트릭스> 1편의 화두를 파고드는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Taking The Red Pill, 굿모닝미디어 펴냄)는 그 전제가 충분히 근거있다고 말한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설립자이자 Java와 Jini 등을 개발한 빌 조이는 ‘왜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유전자 공학, 나노 기술, 로봇 공학의 현재 발전 속도라면 2030년까지 인간과 같은 수준의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 근거가 과학적이나 놀라울 게 없는 이런 예측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에 그를 근심으로 몰아넣는다. “우리 자신을 단계적으로 로봇 기술로 대체시켜 마침내 우리 의식을 로봇 속에 다운로드시킴으로써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꿈이
<매트릭스3 레볼루션> 세계 첫 시사회에 다녀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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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 인터뷰
난 <매트릭스>의 모든 것이 좋다
-키아누 리브스는 검은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고 <매트릭스> 속 네오처럼 걸어들어왔다. 3부작을 끝낸 그의 표정에선 홀가분하다기보다 허탈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교해달라’는 질문이 나오기만 하면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스포일러 때문에 일부 중요한 답변을 삭제해야 했다.
=3편에서 보여지는 네오의 운명에 대한 생각은. 이 세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것과 우리는 그와 같은 또 다른 영웅을 원한다는 것. 오라클이 말했던 매트릭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계속된다. 어쨌든 네오는 깨닫게 된다. 정말 강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토머스 앤더슨이라는 것과 분리되어 평화를 갈망하는. 정말 멋진 혁명이 일어난다. 난 그것이 정말 좋다. 난 <매트릭스>의 모든 게 좋다.
-당신은 네오의 일부가 스미스 요원이 되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나. 그는 머신시티로 간다. 그 머신시티는 에너지를 받아서 소비하
<매트릭스3 레볼루션> 세계 첫 시사회에 다녀오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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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프로듀서는 퇴직한 뒤에도 MBC에 책상과 컴퓨터가 그대로 놓여 있을 만큼 거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83년부터 90년까지, 그가 직접 연출한 <조선왕조 오백년>의 에피소드만 해도 400편을 훌쩍 넘길 정도. 사극의 장인이라고 할 만하지만, 그는 90년대 접어들면서 현대적인 인물을 도입한 <허준> <상도>로 사극의 또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 97년에 쓴 논문에서 이미 2000년대 사극의 경향을 정확하게 예측한 이병훈 PD를 숨가쁜 <대장금>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장금은 조선왕조 실록에 아주 짧게 언급될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발굴했는가.
=<허준>을 연출하면서 의녀에 관한 기록을 뒤졌다. 그중에서 1995년 중앙대 교육학과 박사논문이 장금에 관한 언급을 싣고 있었다. 중종이 “내 병은 여의(女醫)가 안다”라고 말한 거였는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의녀는 천민이었고, 의관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런
新 사극 전성시대 [6] - 이병훈 프로듀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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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희한한 장난을 쳤을까?
올해 부산영평상은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에게 감독상을,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에게 작품상을 각각 수여했다. 상의 기준과 권위에 절대적 신뢰를 표하지는 않더라도 여기엔 나름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화아카데미 11기 동기로 출발한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향과 연출 스타일을 가졌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통해 이른바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한 예를 보여줬다면 장준환 감독은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에서 고집스러운 자기만의 세계를 자유로운 공기 속에 흩어놓았다. 단순한 구분인지 몰라도 한쪽은 몇수 앞을 내다보는 치밀함과 영리함이, 다른 한쪽은 무던한 성격에도 털어지지 않는 아집이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평상이 봉준호에게 작품상보다는 감독상을, 장준환에게 감독상보다는 작품상을 수여한 것에도 비슷한 시각이 묻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감독의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1] - 봉준호